韓 빠진 '新애치슨 라인' 우려
韓美日 동맹 균열과 한·미 관계 갈등
美 "靑이 거짓말" 황당하고 참담
외교안보 대혼란 감당 관건
트럼프는 돈, 文은 北 이유로 훈련 외면
또 기업이 희생양인가 - 경제계 반향
‘혼란’ 파고든 北 도발 … "김정은만 웃고 있다"
美, 한일 갈등 후폭풍 중재해야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이병도 주필)
정부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전격 파기에 따른 후폭풍이 거세다.
한·일 갈등이 출구 없이 ‘강(强) 대 강’으로 치닫고, 한·미 동맹에도 심각한 파장이 일고있다. 대한민국 국가안보의 실질축이자 교두보인 한미관계가 곳곳에서 적신호(赤信號)다.
한국과 일본간에 유지돼온 군사정보 교류가 더 이상 이뤄질 수 없게 된데 대해, 미국이 강한 실망감을 표시하면서 한·미·일 3국의 안보동맹 균열에 대한 국내외 긴장감도 결코 적지않아 보인다.
미 행정부가 한국 대신 ‘문 정부(Moon administration)’라는 표현을 쓰면서 요즘처럼 강한 어조로 동맹국인 한국의 결정에 유감을 표한 것은 유례가 없다. 한일 두 나라가 다른 분야에서 마찰이 있더라도 상호 방위와 안보 연대는 완전한 상태로 지속돼야 한다는 게 미국의 기본 인식이다.
정부의 이번 '지소미아 파기' 조치는 韓日 양국 간 믿음이 사라진 상황에서, 민감한 군사정보를 어떻게 교환하느냐는 논리다. 일리가 없진 않지만, 안보상의 국익을 따져볼 때 큰 오판이 아닐 수 없다.
'한·미관계 더 걱정'...기업인들 좌불안석
“강한 우려와 실망감” 수준이던 미 정부 반응이 주한미군 문제로까지 번진 것은 여간 심각한 일이 아니다.
문제가 해소되지 않으면 주한미군 안전성을 위한 독자적 조치를 취하거나, 최악의 경우 철수 카드를 꺼낼 수도 있다. 동맹 관계도 비용 개념으로 보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입장에서는 미군 주둔 및 훈련 비용의 전액 부담을 요구해올 가능성도 없지 않다. 여기에다 한국 내, 그리고 문 정부 일각의 반미 정서까지 겹치면 한·미 동맹 자체가 위협받을 수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 연합 군사훈련에 대해 "완전한 돈 낭비"라고 했다. 트럼프는 '북한 미사일 발사에 대해 우려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최근 김정은에게 아주 멋진 편지를 받았는데 그는 한국이 '워 게임'(연합 훈련)을 하는 데 화가 나 있었다. 나도 그런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이렇게 말했다. 핵무장한 한·미의 적(敵) 김정은에게 맞장구를 친다. 66년 한·미 동맹 역사상 이런 일은 없었다.
따라서, 지소미아 파기가 어떤 부메랑으로 돌아올지는 가늠조차 쉽지 않다. 지소미아 연장을 전제로 했던 한·일 갈등에 대한 미국의 중재는 물 건너갔고, 동맹 유지비용은 더욱 커질 게 뻔하다. 일본에선 ‘3차 수출규제’ 가능성을 점치는 보도까지 나왔다.
“모든 것이 불확실해졌고, 이제는 한·일보다 한·미 관계를 걱정해야 할 판”이라는 국내 경제계의 한탄이 지금의 상황을 함축한다. 그야말로 기업이 더 걱정들이다. 자칫 지소미아 파기가 한·일을 넘어 한·미 경제 관계에까지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기업인들은 좌불안석이다.
70여년 전 역사에서 비롯된 한·일 갈등이 경제보복을 넘어 한·미·일 안보공조를 흔드는 데까지 나아갔다. 재계는 일본이 취한 보복만으로도 벅차다. 반도체 소재용 3개 품목 가운데 불화수소(에칭가스) 등 2개 품목은 아직 한국행 수출이 묶여 있다. 도대체 기업이 언제까지 한·일 역사갈등의 희생양이 돼야 하는지 참으로 답답하다.
지소미아는 한미일 안보협력 고리
지소미아는 한미일 안보협력에 없어서는 안 될 고리다. 정부가 미국의 양해를 구했다고 했지만, 미국은 줄곧 지소미아 유지를 요구해왔다. 과연 지소미아 파기가 국익을 위한 결정인지 의구심이 든다. 향후 외교안보 대혼란을 감당할 수 있을지 우려치 않을 수 없다.
청와대는 “미국이 이해하고 있다”고 강조했지만 정작 미국에선 “우리에게 알려준 것과 정반대”라며 강한 불쾌감을 드러냈다. 미 국방부가 “한·일 이견 해소를 위한 신속한 협력을 촉구한다”는 성명을 냈다가 몇 시간 뒤 “강한 우려와 실망을 표명한다”고 반응수위를 높인 것도 전례없는 일이다.
지소미아 종료는 한미일 관계 악화를 가져와 북한의 비핵화에도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맺은 협정이다. 지소미아가 폐기되면 북한 비핵화를 위한 한미일 공조에도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북한의 최근 미사일 도발은 지소미아 파기를 둘러싼 한일 갈등과 한미동맹 균열, 나아가 동북아 안보 구도의 혼란을 부추기려는 의도가 다분해 보인다. 한미일 3각 안보협력의 연결고리가 끊기는 상황을 북한은 핵·미사일 능력을 확충하면서 향후 북-미 협상에서 몸값도 높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여겼을 것이다.
그러잖아도 미중 무역전쟁의 파고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한일관계 악화로 안보 위기까지 커질 경우 우리나라는 이중삼중의 위험을 떠안을 수밖에 없다.
‘페이퍼 동맹 ’시대, 안보 경제 우려
한미일 안보협력 체제를 견실히 유지해야 할 미국으로서는 예견된 반응이다. 지소미아 파기가 3국 안보협력에 미칠 파장의 정도는 차치하더라도, 협정 자체가 갖는 상징적 의미가 적지 않은 것도 미국의 우려를 자아낸다.
미국은 미국대로 지소미아 파기를 한국이 한미일 안보협력 체제에서 이탈하려는 움직임으로도 판단할 수 있어 주목된다. 이 때문에 지소미아 종료 결정이 한미동맹을 약화하는 변수가 되거나 미국과 동맹 현안을 조율하는 데 부담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이와 관련,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미 연합군사훈련에 대해 노골적으로 부정적인 시각을 계속 드러내 그 의중에 더욱 관심이 쏠릴 수 밖에 없다. 때문에 미국이 한국에 대해 동맹의 편에 확실히 서라며 방위비 분담 협상과 호르무즈 해협, 남중국해 등 현안에 청구서를 들이밀 가능성이 우려된다.
주요7개국(G7) 정상회의에 참석한 트럼프 대통령은 무늬뿐인 한미연합훈련에 대해 “나는 그것을 완전한 돈 낭비라 생각한다”고까지 했을 정도다. 지소미아 파기가 결국 한미 간의 틈을 벌리고 한미동맹의 약화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밥 우드워드 워싱턴포스트 기자의 책 ‘공포’에는 “트럼프가 주한미군 주둔에 35억달러나 쓸 이유가 있느냐. 철수시켜라”라고 한 얘기가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 직후에는 “언젠가 주한미군을 철수하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런 취지의 트럼프 대통령 발언은 한두번이 아니다. 지난해 6월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 후 “돈이 정말 많이 든다”며 중단 방침을 밝혔고, 지난 2월 하노이 미·북 회담 결렬 후에도 “군사훈련을 할 때마다 1억 달러 비용이 들어 오래 전 포기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런 발언의 강도가 점차 심해지고,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미국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폐기 결정을 한 뒤 이런 극단적 표현까지 나오게 된 것이다.
본격적인 파열음
주한미군, 연합훈련, 연합사령부 등 한미동맹의 세 축도 흔들리고 있다. 미국 대통령은 주한미군 철수를 공공연히 얘기하고, 연합훈련은 사실상 도상(圖上)연습이 된 지 오래다. 연합사령부는 전시작전통제권이 전환되면 한국군이 앞서고 미군이 뒷전에 앉는 구조로 개편된다.
이미 키리졸브 연습과 독수리 훈련, 을지 프리덤 가디언 등이 폐지되면서 한·미 동맹은 사실상 훈련 없는 ‘페이퍼 동맹 ’시대로 접어들었다. 따라서 문 대통령이 미국을 향해 훈련 필요성을 설득해야 하는데, 오히려 동조하고 있다. 북한과의 대화를 위해선 훈련 중단이 필요하다는 인식이다. 이미 북한은 물론 중국과 러시아도 한국을 대놓고 무시하기 시작했다. 미·중 무역전쟁이 격화하면 한국은 가장 큰 타격을 입을 것이다. 문 정부가 동맹 강화를 외면하면 안보와 경제는 누가 지킬 것인가.
문 정권 출범 후부터 삐걱대던 한·미 동맹은 이제 본격적인 파열음을 내는 지경까지 왔다. 이번에도 미국은 안보 보좌관, 국방장관,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차례차례 방한해서 "중국의 군사적 팽창, 북한의 핵·미사일 공동 견제에 중요하다"며 '지소미아 유지' 입장을 전했고 주한 미 대사는 마지막으로 못 박듯 강조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정부는 일방적으로 파기 선언을 했다. 지소미아는 한·미·일 3각 안보 축으로 동북아 안보를 챙기려는 미 전략 구상의 핵심이다. 일본에 보복한다는 청와대의 지소미아 파기 카드가 미국을 격앙시키고 한·미 동맹에 심각한 불신을 초래했다. "한·미·일 3각 공조 체제에서 한국이 사실상 탈퇴를 선언한 것"이라는 전문가들 비판은 흘려 들을 일이 아니다.
비용 청구서 밀려들 가능성
한미는 이르면 9월 중순 내년 이후 적용할 방위비 분담금 협상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한미는 지난 3월 협상에서 올해 한국의 분담금 수준을 작년의 9천602억원보다 8.2% 인상한 1조389억원으로 정했다. 이미 꽤 높은 비율로 증액했지만, 미국은 한국이 이제 부유한 나라라며 트럼프 대통령을 필두로 더 큰 폭으로 올려야 한다고 지속해서 압박한다. 일각에서는 미국이 전략자산 전개 비용 등 직·간접 비용까지 모두 합해 올해의 6배에 가까운 수준을 내라고 요구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한국의 국제적 고립이 심해지면 북핵 협상과 남북관계에서 북한의 통미봉남 전략만 강화해주는 최악의 흐름으로 이어질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우리 정부에 대한 미국의 압박 강도가 지금보다 거세질 수 있다는 점이다. 인도태평양전략 참여와 방위비 분담금 인상, 호르무즈해협 파병, 관세 장벽 등 그렇지 않아도 트럼프 대통령이 벼르고 있던 여러 안보비용 청구서들이 한꺼번에 밀려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미 미군 주둔 비용은 물론이고 연합훈련과 전략자산 전개, 호르무즈해협 방어, 남중국해 자유항행 비용까지 연 50억 달러(약 6조 원)의 청구서를 내민 터다. 정부가 정략적인 고려 때문에 고립의 길을 자초하면 그 결과 발생하는 부담과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이 지게 된다.
이러다간 돈 주고 사야 하는 동맹, 위기 때 흥정부터 하는 동맹이 될까 걱정이다. 북한의 잇단 미사일 도발로 위협을 키우고 있지만 우리 정부는 대화 재개에만 매달리며 트럼프 대통령의 잇속 빠른 돈 계산에 동조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국 갈수록 고립 ... 경제 불확실성 증폭
그러잖아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종종 동맹국들을 혼란스럽게 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경제·통상 정책은 오로지 미국 제일주의를 내세운다. 지소미아 파기에 실망한 미국이 앞으로 어떤 조치를 취할지는 예측 불허다.
이런 가운데, 한국은 미·일 양국이 주도하는 ‘인도-태평양 전략’에 소극적이라는 지적이 적잖았다. 그런데도 지소미아를 폐기해 버린 건 ‘신(新) 애치슨라인’을 스스로 그은 행위가 아니냐는 비판마저 나온다.
최근 주변 상황을 둘러보면 서로 믿고 의지할 우방은 사라지면서 한국만 갈수록 고립되는 구도다. 트럼프 행정부는 안보 문제에서도 걸핏하면 돈을 더 내라고 닦달한다. 우리와 함께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유지하면서 각 방면에서 손 잡을 수 있는 일본과는 최악의 상황이다.
북한의 위협이 갈수록 커지는데도 정부는 안보동맹을 굳건히 하기는커녕 약화시키는 모습이다. 지소미아 폐기 같은 일이 이어지면 미국의 동북아 안보 구상이 한국을 뺀 미·일 동맹을 주축으로 재편될지 모른다.
한국 경제도 예외일 수 없다.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만큼 충격이 클 수밖에 없다. 그런데 수출부진을 보완할 투자는 감소하고 내수도 견고하지 않다.
설상가상으로 한·일 갈등은 지소미아 종료 등 안보 분야로 확산된 상태다. 국내외로 경제의 불확실성이 증폭되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이럴 때일수록 기본을 충실히 해둬야 한다. 단기적으로 경제의 변동성이 확대될 것에 대비한 대응책을 세워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외풍에 흔들리지 않도록 경쟁력 강화방안도 추진해야 한다.
지소미아 전략적 가치
최근 쟁점이 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지소미아'는 안보 면에서 실질적인 도움을 줘 왔다.
2016년 체결 후 양국은 모두 29건의 정보를 교환해 왔다. 일본은 위성으로 수집한 사진 자료 등을, 한국은 인적정보(휴민트)를 통해 얻는 정보를 나눠가지며 서로에게 적잖게 기여해 왔다. 지난해 말 강제징용 판결로 한·일 관계가 나빠진 뒤에도 7건이 교환된 것만 봐도 양쪽에서 지소미아를 어떻게 여기는지 알 수 있다.
정경두 국방부 장관도 지난 21일 국회에서 “지소미아의 전략적 가치는 충분하다”고 시인한 바 있다. 이처럼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협력관계를 깨버린 것은 걱정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지소미아가 파기될 경우 이같은 한일 협력은 물론 한미일 안보협력 체제에 만만치 않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우려가 크다.
인적 정보(휴민트)에선 우리가 일본을 앞서지만 감시정찰 능력은 일본이 우위다. 특히 동해로 발사되는 북한 미사일을 끝까지 추적하는 데 일본 대북정찰위성(7대)은 매우 긴요하다. 그런데도 정부가 수조 원대 일본 위성을 공짜로 이용할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한 것은 '안보 자해'나 다름없다.
정부는 협정이 종료돼도 2014년 체결한 '한·미·일 정보공유약정'(TISA)으로 보완할 수 있다고 하지만 3국 간 정보공유약정은 미국을 매개로 한 간접교환 방식이어서 위기 발생 시 신속한 대처가 어렵다는 진단들이다. 동북아 안보 정세가 엄중한 상황에서 지소미아는 국가 안보와 국민 생명을 지키는 데 필요한 전략 자산이다. 특히 북한이 신형 미사일·방사포로 위협하는 이 시기에 협정을 없애버린 것은 성급한 결정이다.
청와대는 “국익을 고려해 판단했다”지만 야권은 ‘백해무익한 자해(自害)행위’라고 비판한다. 무엇보다 많은 국민이 외교적 고립과 안보 공백에 빠지는 것 아닌지 불안해하고 있다.
한일갈등 다시 경색, 실익 없어
최근 한일간 갈등은 일본이 수출절차 간소화 대상국(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하면서도 지난달 수출규제 3개 품목 외에 개별심사 항목을 추가하지 않았고 최근 잇따라 수출규제품목에 대한 수출 승인이 나면서 완화되는 국면을 맞았다.
그러나, 한국 정부의 이번 지소미아 파기 결정으로 한일 갈등은 다시 경색될 수밖에 없게 됐다.
지소미아는 한일 어느 한 쪽이 일방적인 수혜를 입는 협정이 아니다. 양국이 모두 상대국의 군사정보를 받는 안보상 주요한 협정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북한의 잠수함 동향에서는 일본의 광범위한 해상초계기 정보, 북 미사일의 궤도 추적에서는 일본의 군사정보위성의 정보를 많이 활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가 지소미아를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라거나 일본 수출규제의 맞대응 카드로 여긴 것부터가 큰 오산이다.
우리 군은 북한이 동해상으로 쏴대는 미사일 정보를 파악할 수단이 없어 일본 정찰위성 정보에 의존해온 게 현실이다. 우여곡절 끝에 2016년 지소미아가 체결된 배경에는 이를 한·미·일 안보동맹의 상징으로 삼은 미국의 강한 설득이 있었다.
그런 지소미아를 청와대가 일방 파기한 것은 곧 동북아 안보협력의 심각한 균열을 의미한다. 미국 조야에서 ‘가장 위험한 시기의 실망스런 정치적 결정’이란 반응이 나오는 이유다. 때문에, 지소미아 폐기가 일본에 실질적 타격을 주지 못하면서 미국과의 동맹 관계에 악재가 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또 경제 마찰을 안보 문제로까지 확전시켜서는 실익이 없다는 논리도 제기됐다.
교각살우(矯角殺牛) 잘못
정부는 일본이 얼토당토않은 안보상의 이유를 들어 경제 보복을 가한 데 대한 맞대응이라고 설명하지만, 경제 보복에 안보 사안을 끌어들이는 것이 과연 적절했는지 의문이다.
서로를 신뢰하지 않는 관계에서 비밀을 공유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그 신뢰의 기반을 걷어차는 것은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잘못을 범하는 것일 수 있다.
또한,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는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을 만나 한·미·일 공조의 중요성을 거론하면서 지소미아 연장을 언급했다. 미국도 체면을 구긴 셈이다.
물론 문재인 정부의 지소미아 파기 결정은 협정 종료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일본의 일방적인 경제보복 조치에 맞서 한국의 협상력을 높이는 수단이라는 측면도 있을 것이다.
협정 만료 90일 전 통보를 하도록 돼 있지만, 실제 협정 종료일은 11월 22일이다. 그 전에 협정 종료 의사를 철회할 수 있는지에 대한 명시적 규정은 없다.
후폭풍 구체화...국제미아 전락 우려
지소미아 파기 결정의 후폭풍이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모건 오테이거스 미 국무부 대변인은 지난 25일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한국 정부의 지소미아 종료는 한국 방어를 더욱 복잡하게 하고 미군에 대한 위험을 증가시킬 수 있다”고 했다. 주한 미 대사관은 26일 이를 리트위트하면서 한글 번역문도 함께 올렸다. 이젠 외교 채널을 통하지 않고 미국의 입장을 한국인들에게 직접 정확하게 알리겠다는 의도일 것이다.
게다가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참석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한국 측이 한·일 청구권협정에 대한 위반을 방치하고 있다”면서 “국가와 국가의 약속을 지키도록 요구해 가겠다”고 공언했다. 미국으로부터 불신받고, 일본으로부터 배척당하는 상황이다.
지소미아 파기는 사실, 몇 가지 우려를 낳는다. 먼저 한·일 경제관계가 더 뒤틀리게 생겼다. 당분간 한·일 관계는 돌파구를 찾기 힘들다. 한일 갈등이 과거사와 경제를 넘어 안보로 확대되면서 양국 간 긴장과 대립이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을 것이 뻔하다. 두 나라 기업들만 죽을 맛이다.
군사·안보 측면에서도 지소미아 파기는 파장이 크다. 원래 지소미아는 이명박정부가 추진하다 밀실협상 논란에 휘말려 중단되는 곡절을 겪었다. 그 바통을 박근혜정부가 이어받아 2016년 전격 처리했다. 그렇게 탄생한 지소미아는 전후 한국이 일본과 체결한 첫 군사협정이란 평가를 받았다.
지소미아 파기로 기대할 수 있는 전략적 이익이 전혀 없는데 설명도 미흡하니 ‘조국(법무부 장관 후보자) 구하기’, ‘반일감정 부추기기’ 같은 비판이 무성해질 수 밖에 없다.
한미 동맹의 파열음도 불가피하다. 청와대는 "미국이 우리 입장을 이해한다"고 했지만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실망했다"고 쏘아붙였다. 오죽하면 전 국무부 동아태담당 수석부차관보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뺨을 때린 격(slap in the face)"이라고 했겠는가. 우리가 일본과 등진 상태에서 미국과도 소원해지면 동북아 안보의 외톨이로 전락할 가능성을 결코 배제할 수 없다.
한미 간 신뢰가 뿌리부터 흔들리면 미국 안보전략의 중요 축에서 한국이 배제될 가능성이 있다. 북한의 핵 폐기가 좀처럼 진전되지 않는 가운데 미국·일본과의 협력 고리가 삐걱댄다면 국제무대에서 우리의 설 자리는 좁아진다. 자칫 외교·안보·국방 전반에서 국제미아 신세로 전락할 수 있다.
북한ㆍ중국ㆍ러시아에 유리
이런 상황을 맞아 북한이 지난 24일 오전 단거리 발사체 두 발을 발사했다. 올해 들어 벌써 9번째 도발이다.
북한의 도발은 한미 연합지휘소훈련이 끝난 지 나흘 만이자, 우리 정부가 일본 측에 지소미아 종료를 통보한 다음 날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진작 “연합훈련이 끝나면 도발도 멈추고 실무협상도 시작될 것”이라고 했고, 청와대도 최근까지 북-미 실무협상의 조속한 재개를 점치며 희망적 관측을 했지만, 그런 기대는 허망하게 빗나갔다. 김정은은 3년 전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수중발사 성공’까지 언급하며 더 큰 도발 가능성을 시사했다.
한미일은 이번 북한 도발에 제각각 결이 다른 대응을 보여 북한의 노림수가 먹혀들었음을 드러냈다. 일본은 이전과 달리 한국보다 26분이나 먼저 발표했다. 비록 구체적인 정보는 없었지만 독자적인 정보수집 능력을 과시하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이후 한국과 일본의 발표는 발사 시간이나 사거리에서 차이를 보여 공조 부재가 낳은 허점을 노출했다. 우리 정부는 이번에도 우려를 표명하며 대화 재개 노력을 강조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단거리 미사일을 제한한 적은 없다”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일본은 “명백한 유엔 결의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한반도 안보 상황과 한미동맹의 무게를 감안할 때 우리 정부의 부담이 커진 것도 분명하다. 공교롭게도 지소미아 종료 결정 이튿날 리용호 북한 외무상은 담화를 통해 미국을 강도 높게 비난했다. 지소미아 종료가 북한ㆍ중국ㆍ러시아에 유리한 결정이라는 정치적 해석을 부추길 수 있는 대목이다.
정부는 북핵과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대응에서 엇박자를 낸 데 이어 한미연합훈련마저 무용지물로 만들었다. 이런 가운데 지소미아마저 파기했으니 앞으로 방위비 협상에서도 적지 않은 난관이 예상된다.
안보협력 고리에 민감
정부는 “이번 결정이 한미동맹과는 별개의 사안”이라고 했지만, 미국은 한미일 3국을 연결하는 안보협력의 고리가 끊기는 것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미국이 이번 결정을 미국 주도의 동북아 안보협력 체제에서 한국이 이탈하려는 조짐으로 해석할 가능성도 있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실망했다는 표현과 함께 한일 양국이 관계를 옳은 곳으로 되돌리라고 촉구했다. 국무부는 논평에서 협정 파기가 동북아에서 직면한 안보적 도전과 관련해 문재인 정부의 심각한 오해를 나타내는 것임을 분명히 해왔다고 밝혔다.
트럼프만 황당한 것이 아니다. 미 국무부 대변인은 지소미아 파기에 대해 "한국 방어는 더욱 복잡해지고 미군에 대한 위험도 커질 것"이라는 글을 올렸다. "실망"에 이어 '미군에 대한 위험'까지 언급했다.
한국에 주둔한 자국군이 위험해졌다는 인식은 앞으로 미국이 어떤 조치를 취할지 예상할 수 없게 한다. 최악의 경우엔 미국의 동북아 안보 전략에서 한국의 우선순위가 하락하는 사태까지 올 수 있다.
미 국무부가 한국 정부가 아니라 ‘문재인정부’라 부르고 ‘심각한 오해’ 운운한 것도 예사롭지 않다. 지소미아는 한·미·일 3각 안보협력을 강화해 북한과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동북아 전략의 핵심 요소임을 되새기게 해 준다.
한·미동맹 관리가 시급하다. 정부는 이제라도 외교 역량을 발휘해 미국에 우리 입장을 이해시키고 후유증을 최소화해야 할 것이다.
트럼프 태도 우려
우려스러운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 군사훈련을 대하는 태도다.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참석한 트럼프 대통령은 25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회담 전 기자들에게 한미 훈련을 '완전한 돈 낭비'라고 평가하고 축소된 형태로 진행된 최근 훈련에 대해서도 "솔직히 할 필요가 없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런 발언은 한·미 동맹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고 동맹의 결속력을 저하시키게 된다. 이는 중국이나 러시아의 지역 내 발언권 확대를 초래하고 결과적으로 미국의 이익을 훼손하게 될 것이다.
이런 발언에는 두 가지 의도가 담겼다고 해석할 수 있다. 내년 대선을 앞둔 그로서는 북한과 비핵화 실무협상을 진행해 일정 성과를 내야 하기에 북한을 달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또 다른 속내는 우리나라를 상대로 한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협상에서 대폭 증액을 관철하기 위한 기선잡기 포석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자국 이익이 우선이라고 해도 동맹국을 겨냥해 지나치게 돈 중심의 발언을 거듭하는 것은 바람직해 보이진 않는다.
아무리 협상용이라고 하지만 비상식적으로 과도한 수준이 언급되는 자체는 매우 우려스러운 일이다. 안보 협력을 위한 공동의 비용이라는 개념을 도외시하고 한국만 훨씬 더 이익을 챙긴다는 시각에서 나온 것이라면 더욱 곤란하다.
더 심각한 인식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한·미 훈련 때문에 ‘화가 나 있었다’면서 그런 주장을 펼쳤다는 사실이다. 한·미 동맹은 기본적으로 상호 공동 방위를 책임지는 군사동맹이며, 군사동맹의 핵심은 연합 훈련을 토대로 한 연합 전력(戰力)에 있다. 그런데 동맹의 적(敵)인 북한 지도자의 인식은 중시하면서, 정작 동맹을 내팽개치는 발언은 서슴지 않은 것이다. 게다가 한국 대통령과 만난 자리가 아니라 일본 정상 앞에서 세계 언론을 상대로 그렇게 했다.
경제적 이익에만 집착
미국 정부는 한일 갈등이 한일 지소미아 종료에 이를 정도로 악화했는데도 적극적인 중재 노력 없이 방관한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는다.
우리 정부가 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하자 그제야 '강한 우려와 실망감'을 표명했고 그전에는 이렇다 할 관여를 하지 않았다. 일본 정부가 과거사 문제를 빌미로 무리하게 경제보복을 가한 것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의 최근 발언을 보면 미국 정부가 동맹의 역할 대신 방위비 분담금 증액 등 경제적 이익에만 집착하는 듯한 태도를 보인다는 비판을 면키 어려워 보인다.
이런 이유로 미국 언론에서도 트럼프 행정부가 동맹 유지와 관리를 소홀히 하고 동맹 네트워크에 대한 투자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문제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는 소식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지속적인 압박을 접하는 우리 사회에서도 분담금의 과도한 증액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결코 적지않다.
美 동북아 안보구상과 의무
한·미·일 협력을 방패로 북핵 위협은 물론 중국의 팽창 야심까지 견제하겠다는 게 미국의 동북아 안보 구상이었다.
미국이 중국을 겨냥한 한미일 3각 안보협력체제를 중시해 온 만큼 한국의 지소미아 종료 결정 이후 반복적인 유감이나 우려 표명은 그렇다 쳐도 한미 연합훈련 무용론이나 주한미군 위험론을 거론한 것은 아무리 방위비분담금 협상 등을 염두에 둔 것이라 해도 지나치다.
미국은 한일 갈등 와중에 ‘안보 청구서’부터 챙기는 소아적 태도를 버리고 동맹으로서 제 역할에 충실하고 있는지 자문해야 한다.
하지만 미국은 지금껏 손을 놓고 있었다. 일본이 한일 갈등을 격화시키는 상황에서 사실상 일본을 편들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와중에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 연합훈련에 대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비난에 공감을 표했다.
조만간 시작될 방위비분담금 협상에서 한국을 압박하려는 의도다. 한미 동맹이 우리에게만 중요하고 가치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미국은 계산기부터 두드릴 게 아니라 먼저 동맹으로서의 제 역할부터 이행해야 한다.
더욱 주목해야 할 것은 '한국'이 아니라 '문재인 정부'라고 지칭한 것이다. '왜 한국이라고 하지 않고 문 정부라고 하느냐'는 질문에 '이것은 문 정부가 한 것'이라고 했다. 여기엔 문 정부가 전통적 동맹 한국이 걸어왔던 기본 궤도에서 벗어났다는 인식이 들어 있다.
지금 문 정부의 행동이 한국민 전체를 대표하지 않고 있다는 암시도 깔려 있을 수 있다. 특히 '문 정부가 심각한 오해를 하고 있다'는 표현은 목숨을 걸고 상대를 지키겠다는 동맹국 사이에서 쓰일 수 있는 표현이 아니다. 문 정부를 믿을 수 없다는 분명한 입장 표명이다. 물밑에서는 더 심한 말이 나왔을 것이다.
미국이 진정으로 한미일 3국 안보협력 체제를 중시한다면 안보를 빌미로 한 일본의 경제보복을 강 건너 불 보듯 해선 안 됐다. 안보협력을 훼손하는 일본의 아전인수식 조치에는 일언반구도 없다가 우리 정부가 고심 끝에 불가피하게 결정한 지소미아 종료에 대해서만 강한 우려를 표명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
한일 양국 모두의 불행을 막으려면 미국이 나서서 동맹 네트워크를 튼튼히 다져야 한다. 더 늦기 전에 한국과 일본을 협상 테이블에 앉혀 건설적이고 미래지향적인 합의가 이뤄지도록 중재자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
무너진 신뢰와 극단적 선택 가능성
지난 22일 청와대가 지소미아 파기 결정을 할 때 이런 상황을 예상했는지 의문이다. 제대로 예상하지 못했다면 안보 무능을 자인하는 일이고, 예상하고도 그런 결정을 내렸다면 한·미 동맹 및 한·미·일 안보 협력을 무시하겠다는 의도일 것이다.
문 대통령 판단이 궁금한 이유다. 여권 핵심에는 ‘적이 없는 데 동맹이 왜 필요한가’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문 대통령은 반미·반일 노선을 선택하려는가. 그렇지 않다면 지소미아 파기 철회 등 결자해지에 나서야 한다.
이와관련, 이낙연 국무총리는 고위당정청회의에서 "일본이 경제보복 조치를 원상회복하면 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재검토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지소미아가 종료하는 11월 23일까지 3개월 남았으니 그 기간에 타개책을 찾아 양국이 진정한 자세로 대화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는데 일본 정부의 긍정적인 답변을 기대한다.
이대로 가다가는 한일 관계는 파국을 맞게 될 것이다. 지금이라도 일본은 경제보복을 중단하고, 한국은 지소미아 종료를 재검토해야 한다. 그런 다음 상대가 수용할 수 있는 협상안을 가지고 대화에 나서야 한다.
한미 간에도 한번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는 건 쉽지 않다. 호르무즈 파병, 방위비 대폭 인상 등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할 수도 있다. 트럼프는 벌써 이 계산을 하면서 주판알을 튕기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만약 한국 방위비 분담금 5배 인상 등 자신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어떤 극단적 선택을 할지 모른다. 주한미군 주둔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모두 상상하기 힘든 일이지만 문재인 정권 2년 반 만에 그 일들이 눈앞에 와 있는 것 같다.
트럼프 대통령의 돈타령은 어제오늘만의 일이 아니다. 줄기차게 동맹국들의 ‘안보 무임승차’를 비판해 온 트럼프 대통령이다. 김정은과의 정상회담에서조차 ‘훈련에 돈이 진짜 많이 든다’ ‘주한미군을 빼내고 싶다’고 했다. 공동의 이익에 기초한 동맹을 일방적 시혜로 보는 인식도 어처구니없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북-미 대화와 한국 방어비용을 한데 묶어 계산하고 있다. 북-미 협상이 잘되면 연합훈련 영구 중단과 주한미군 철수를 걱정해야 할 판이다.
한국 정부 신뢰성도 관건
한국 정부의 신뢰성도 관건이다. 지난 6월 문재인 대통령이 "남북 대화가 다양한 경로로 이뤄지고 있다"고 말한 다음 날 북 외무성 국장이 "그런 것은 하나도 없다"고 일축했다. 문 대통령에게 '거짓말 말라'고 한 것이다.
한·미 정상 통화 내용이 공개되자 청와대는 '사실무근'이라더니 내용 전달자가 드러나자 '기밀 유출'이라고 했다.
작년 남북 군사합의 직후 청와대 비서관은 평양에서 "서해 완충 지역은 (NLL 기준으로) 정확하게 길이가 북측 40㎞, 우리 40㎞"라고 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북측 50㎞인 반면, 우리 쪽은 85㎞로 훨씬 더 많이 양보한 것으로 나타났다.
북한 어선이 '삼척항 인근'까지 떠내려온 것처럼 거짓 발표한 것도 청와대 개입 의혹이 있다. 안보의 기본은 믿음이다. 국민이 믿어야 하고, 동맹이 믿어야 한다. 둘 다 무너지고 있다.
최근 한·일 갈등은 문 정권 등장으로 촉발된 측면이 강한 만큼 문 대통령이 결자해지해야 할 책임이 있다. 그럼에도 안보와 결부시켜 국민 안위까지 위협받게 한 것은 심각한 잘못이다.
더 근원적 문제는, 한·미 동맹의 신뢰를 심각하게 훼손하며, 그 결과로서 미·일 동맹을 강화시킴으로써 일본 아베 신조 정권을 거드는 역설적 결과를 초래한다는 점이다.
한·일, 대화로 문제 풀어야
일본의 추가 보복조치로 한·일 관계가 나락으로 떨어지는 건 아닌지도 걱정스럽다.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한·일 갈등을 풀어나갈 창의적 해법 마련도 서둘러야 할 것이다.
일본의 고노 다로 외무상은 한국의 이번 결정이 지역의 안전보장 환경을 완전히 오판한 대응이라며 극히 유감이라고 항의했다. 다른 정치권 인사들도 '어리석은 오판', '최악의 선택' 등의 표현을 동원하며 강력히 반발했다.
아베 총리는 미국과 확실히 연대하며 지역 평화와 안정을 확보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의 협력이 없다면 미국과 더 협력해 대응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한·일 양국은 감정적 대응을 자제하고 외교적 대화로 문제를 풀어나가야 한다. 과거사를 둘러싼 갈등이 경제와 안보 분야로 번져나가는 상황은 양국 모두에 막대한 피해만 안길 것이다.
단시일에 접점 찾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 때문에 10월 22일 나루히토 일왕 즉위식이 주목된다. 축하사절 파견을 계기로 특사 외교가 가동될 수 있기 때문이다.
더 멀리는 10월 말~12월 예정된 아세안+3(한중일) 정상회의,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한중일 정상회의도 기회가 될 수 있지만 상호 피해를 주는 갈등 해소는 이를수록 좋다. 강제징용 배상 판결을 둘러싼 이견을 좁히는 외교 당국 간 대화 유지는 물론 수출 규제 당국 간 대화도 조속히 이뤄져야 한다.
‘안보 외톨이’ 상황 극복을
오늘 한국 정부의 선택과 관련, 미국 일본의 우려와 반대로 북한과 중국, 러시아는 웃음짓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한·미 간 틈새를 파고들기 위해 연내 방한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미국 주도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모호한 태도를 보여온 한국으로선 더 복잡하고 험난한 외교·안보 상황에 직면할 것이다. “한국이 자기 발등에 총을 쏘고 있다”는 미국 뉴욕타임스의 지적은 괜한 얘기가 아니다.
한국 정부가 처음부터 협상 카드로 사용하기 위해 지소미아 파기라는 무리수를 둔 것이라면 그것은 한참 잘못된 셈법이다. 한번 금이 간 동맹 또는 우방과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은 한·일 갈등의 해법을 찾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국가가 일구이언을 해 발생하는 위신 문제도 가볍지 않다.
한국의 ‘안보 외톨이’ 상황은 막아야 한다. 그러려면 독도 영토수호훈련을 치르더라도 예년처럼 일본을 불필요하게 자극하지 않도록 조용하게 실시하는 전술이 바람직하다. 우리의 생명을 지키는 최선의 방책은 굳건한 동맹체제다. 이를 위해선 트럼프 행정부와의 신뢰를 회복하는 한편 하루빨리 일본과의 갈등을 푸는 지혜가 절실하다.
청와대는 지소미아가 종료되더라도 정찰위성과 경항모 등 전략자산 확충을 통해 한미 간 의존도를 높일 수 있다는 입장이다. 국방역량 강화는 당연하지만 주변국을 자극해 군비 경쟁을 촉발할 수 있음은 유의해야 한다. 물론 더 시급한 것은 한미 간 신뢰 제고다. 미국의 공개 불만이 한미동맹 훼손으로 귀결되지 않도록 세심하고 치밀한 외교적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한반도 안보지형 - 배전의 노력 긴요
전격적인 지소미아 파기로 정부는 복잡한 안보환경 변화에 슬기롭게 대처해야 할 또 다른 과제를 안았다. 한일갈등과 안보불안 해소 등에서 국민적 합의를 바탕으로 한 기민한 외교력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정부는 이제 지소미아 협정 종료에 따른 정보 공백을 메우고 한·미·일 안보동맹을 다질 수 있는 구체적이고 실효성 있는 대안이 무엇인지 분명히 밝혀야 한다. 냉정을 되찾아야 한다. 퇴로를 열어두지 않고 나라를 벼랑 끝으로 끌고 가는 것은 지극히 위험하다.
청와대나 정부가 먼저 나서 대결 국면을 조장하고 극한 상황으로 몰고 가는 일을 벌여서는 절대 안 된다.
미국과의 관계가 훼손되지 않도록 관리하는 일은 핵심 과제다. 굳건한 한·미 동맹과 군사 협력은 상존하는 북한 핵과 미사일 문제 해결을 위해서 중요하기 때문이다.
한·미 양국이 북한의 전술 무기 증강을 방치하는 것은 한·미 상호방위조약의 정신에도 위배된다.
한·미 동맹의 근간으로 1953년 체결된 조약 2조에는 “당사국 중 어느 1국의 정치적 독립 또는 안전이 외부로부터의 무력 공격에 의해 위협받고 있다고 인정할 때에는 언제든지 서로 협의한다”고 돼있다. 양국은 더 이상 북한의 전술 무기 증강을 좌시해선 안 된다. 한·미 조약과 유엔 결의에 따라 엄중하고 원칙적으로 대응함으로써 대화를 압박해야 마땅하다.
무엇보다 한·미 동맹에 균열이 없도록 해야 한다. 지소미아를 폐기했다고 해서 안보가 파탄나는 것은 아니지만 안보 불안이 없도록 상황을 관리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후유증을 최소화해야 한다. 복잡해진 외교안보 환경에서 국익을 최우선으로 한 지혜로운 대처가 긴요한 시점이다.
북핵·미사일 위협이라는 당면한 동북아 최대 현안 앞에 한일 갈등과 한미 균열을 방치할 수는 없다. 지금이라도 위기의 한일, 한미 관계 복원 외교에 적극 나서야 한다. 한반도 안보지형에 틈이 생기지 않도록 배전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무엇보다 지소미아 연장을 바라던 미국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외교적 역량을 극대화할 필요가 있다.
이병도는…
1952년 경남 진양에서 출생했고 서강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 1979년 동양통신 기자로 언론계에 입문한 후 1981년 연합뉴스로 자리를 옮겨 정치부 야당출입 기자로 오랫동안 활동해 왔다. 저서로는, <6공해제>, <97년 대선 최후의 승자는>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