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위한 지도자의 책임정치 ‘고민’
“정치적 모멘텀 있어야 올 수 있다”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윤진석 기자]
한때 나락으로 떨어졌던, 안철수 전 바른미래당 공동대표의 패착과 돌아올 타이밍에 대해 생각해본다.
재작년 6월, 서울의 한 미용실에서였다. 어쩌다 정치 얘기가 나왔다. 50대쯤 돼 보이는 한 여성은 “안철수에게 등 돌렸다”고 말했다. 왜 그런지 물었다.
“너무 쉽게 물러나. 아니, 그런 지도자를 어떻게 믿어? 대통령 돼서도 뭐만 좀 문제되면, 금방 쪼르르 사퇴할 거 아니야?”
한창 국민의당 총선 리베이트 의혹 논란으로 시끌벅적할 때였다. 얼마 후 이 사건은 1심에서 무죄로 가닥이 났지만 당시는 혼탁했다. 새 정치가 추락했다는 비난이 들렸고, 당 지지율도 흔들렸다. 최측근이 연루된 일이라 안철수 국민의당 공동대표로서는 수세에 몰릴 수밖에 없었다. 20대 4‧11 총선에서 38석을 얻고 위풍당당했던 국민의당이었다. 수권 정당으로의 가능성을 목표로 거대 양당과 차별화되는 대안을 내놓겠다는 의욕도 한창 치솟을 때였다. 하지만 몇 달이 못 가 리베이트 파동이 터진 거였다.
당은 우왕좌왕했다. 갈팡질팡하기는 안 전 대표도 마찬가지였다. 유무죄 결론도 나오지 않던 때였다. 그럼에도 천정배 공동대표와 함께 서둘러 물러났다. 검찰 수사를 지켜보고 결과에 책임지겠다고 했지만 최종 결론이 나오기도 전이었다. 그렇다고 아무 문제없다, 정치적 공세다 등의 강한 반박 입장도, 적극적 대응도 없었다. 그저 파장이 확산되자 내린 결단이었다. 당 창당대회를 선언하고 대표가 된지 149일만의 사퇴였다. 당은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 체재로 돌입했다.
성급한 감이 없지 않았다. 안 전 대표는 정치는 책임지는 거라는 막스 베버의 책임 윤리를 강조하며, 본인은 매번 책임질 때 책임져왔음을 강조했다. 그러나 비난 공세를 견디지 못하고 쉽게 포기해 버리는 나약한 리더십으로 비치기도 했다. ‘판명도 안 났는데, 왜 물러나는 거야?’ 갸웃해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결국 또 철수?’
누군가에게는 그리 보였다. 아이러니했다. 책임지지 않는 기존의 낡은 정치와는 다르다, 자신이 한 약속은 지키겠다, 새 정치를 보이겠다며 사퇴한 건데, 거꾸로 책임지지 않는 모습으로 인식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떠나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라는 시 구절처럼 돌아보면, 안 전 대표는 잘 물러났고, 잘 떠났다. 대체로 파격적이었다. 2012년 대선 당시 불출마 할때도 “영혼을 팔지 않겠습니다”란 말로 전격 스톱했다. 경선 여론조사 과정에서 불공정 논란 등 못 미더운 일이 설령 있었다 해도, 불구덩이에 들어가 끝까지 겨뤄보자는 끝장 돌파력은 보이지 않았다.
그해 12월 19일 대선 당일엔 오전 일찍 투표를 마치고 배낭 하나 메고 단출하게 미국으로 떠났다. 안 전 대표의 표정은 밝았다. 그 시각만 해도 문재인 후보가 이길 것으로 많이들 점치는 분위기였다. 안 전 대표도 그런 내색이었다. 손을 흔들고 비행장 안으로 사라진 그를 향해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온라인 커뮤니티 곳곳 “고맙고 수고하셨습니다”라는 배웅의 인사가 넘쳐났다. 모두들 안 전 대표가 어느 밤 광화문 광장에서 노란 목도리를 문 후보에게 걸어주며 포옹하고, 맞잡은 손을 번쩍 들었던 감동의 순간을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상황은 달랐다. 대통령 당선의 영예는 박근혜 후보에게 돌아갔다. 얼마 안 가 반대 진영 유권자들의 분노는 안 전 대표에게 총을 겨눴다. ‘질 걸 알고 떠났다’, 원망의 눈들이 많아졌다. 나중엔 ‘MB(이명박) 아바타’라는 항간의 소문이 걷잡을 수없이 무성해졌다. 그리고 이 문제는 다음 대선에서 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 등에 적극 활용되며, 안 전 대표의 발목을 잡는 악재로 돌아왔다.
또 시간이 지나 안 전 대표는 바른미래당 창당 후 처음 치른 6‧13 재보선 참패 후 유승민 전 공동대표와 함께 곧바로 사퇴했다. 그리고 독일로 훌쩍 떠났다. 이후 간간히 방송 화면을 통해 근황이 전해진 안 전 대표는 마라톤 등에 참여하고 있었다. 표정이 밝고 세상 근심 없는 얼굴이었다. 그 무렵 우리나라는 지금도 그렇지만 장기실업자 문제, 서민 경기 악화, 자영업자 폐업 등으로 바닥 민심은 피폐해져 갔다.
더욱이 요즘도 그렇지만 정국은 적폐 청산이라는 칼날이 번쩍거렸다. 때 아닌 ‘빨갱이 논란’ 등 진영 간 편 가르기도 심화되고 정쟁 가열은 식어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안 전 대표를 찍었다던 또 다른 한 유권자는 얄미운 듯 TV 화면을 흘겨봤다. 그의 눈길은 마라톤 대회에 뛰어든 안 전 대표의 움직임을 쫓았다.
“나라가 이 모양인데, 팔자 좋네.” 그러면서 “이젠 안 찍어.”
그러니까, 요지는 이렇다. 안 전 대표의 패착은 서둘러 내려가고, 서둘러 떠나고, 서둘러 내던진 것에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렇게 말하면 본인은 억울할 것이다. 영혼을 팔지 않기 위해 출마를 접었고, 문 대통령의 당선될 것을 전제로 추후 개각 인선 등 부담을 덜어주고자 미국으로 떠났으며, 비록 억울하지만 정치적 공세의 먹잇감이 돼버린 리베이트 파동을 잠재워 당을 구하고자 사퇴했다고 할는지 모른다. 대선에 이어 서울시장 선거에서 패한 뒤 독일로 유학을 간 것 역시 성찰과 채움, 책임 통감의 일환이자, 떠나는 것이 곧 당을 위해 도와주는 것이라고 생각했을는지 모른다.
하지만 한때나마 그를 지지하고 기대를 보냈던 이들의 생각은 다른 것이다. 본인만 맑은 물에 살면 뭐하나. ‘낙선 위로 대신 외유’라고 꼬집던, 장진영 변호사의 일갈처럼 어려운 순간을 함께하지 못한 서운함과, 끈기와 돌파력, 자체 해결 능력의 부재만 부각될 뿐이었다. 진흙탕 속에서 연꽃이 피듯 오물을 뒤집어쓰더라도 국민 속에서 투쟁하고,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려는 것이야말로 끝까지 국민을 책임지려는 지도자의 자세가 아니겠는가, 하는 아쉬움이 든다는 지적이었다.
이런 가운데 최근 안 전 대표의 등판론과 복귀 시점이 회자되는 건 그에게 새로운 고민을 안겨 줄 것으로 보인다. 현재 바른미래당은 총선에서 살아남으려는 범여권파(호남계)와 범야권파(바른정당계)간의 주도권 쟁탈전 속 지지부지한 내홍을 거듭하고 있다. 그러면서 안 전 대표의 몸값도 커지는 모양새다. ‘유승민 하태경 오신환 이준석’ 등 바른정당계와 ‘이태규 김수민’ 등 안철수계가 손을 잡았다고는 하지만, ‘손학규 당권파’에서도 그가 설 곳을 마련하겠다며 러브콜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그런가하면 ‘박주선 김관영’ 등 호남계는 안 전 대표와 함께 ‘어게인 국민의당’의 돌풍을 다시금 만들어가고 싶은 바람을 보낸 적도 있다. 또 그의 복귀 시점을 놓고 한 당직자의 전언으로는 가을께 돌아온다는 얘기부터, 어느 의원 측은 그보다 더 빨리 돌아와야 고립무원(孤立無援) 되지 않을 거라는 조언도 전하곤 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스스로 돌아올 타이밍을 만들어내는 안 전 대표의 결심이다. 국민이 부르기 전에는 돌아오지 않을 것처럼 떠났지만, 국민이 어려울 때 만사 제치고 달려올 수 있는 저력을 보여주는 것. 그리고 당이 노선 갈등의 평행선을 달리며 존립 기반의 동력을 잃어가는 이때, 작은 밀알의 역할이나마 자처하겠다는 각오가 필요한 것이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17일 <시사오늘>과의 통화에서 “안 전 대표의 갈 길은 여전히 어중간하다”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봤다. 이어 “정치는 모멘텀(상승 동력)이 있어야 하는데, 안 전 대표가 돌아올 때쯤 돼서 과연 뭔가를 휘어잡을만한 뚜렷한 모멘텀이 있을지는 모르겠다”며 "그 동력을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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