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및 경제 사회적 요인 본원적 처방 강구돼야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이병도 주필)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강력한 부동산 투기 억제대책들을 수없이 시행해 왔다. 그러나 거의 대부분 부동산 투기라는 사회적 고질병을 근절하는 데는 실패했고, 역기능만 노출시키곤 했다. 이번에는 과연 어떨까?
문재인 정부 첫 부동산 대책인 6.19 발표후 시장은 보란듯이 상승기류를 이어갔다. 이에 부동산 투기를 단절하겠다는 정부의 의지를 천명하듯, 전문가들의 예상을 훨씬 뛰어 넘은 융단 폭격이라고 불리는 고강도 대응책이 바로 8.2 대책이다. 전 정권에서 경기부양 수단으로 전락했던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이번엔 투기 세력의 척결, 부동산 가격의 안정화 및 국민의 주거 편의를 증진하겠다는 신념의 발로로 보인다.
최근 ‘8ㆍ2 부동산 대책’과 관련한 정부의 후속 조치가 이어지고 있다. 국세청은 강남권 다주택자와 재건축아파트 매수자 등에 대한 대대적 세무조사에 착수했고, 금융당국은 투기지역과 투기과열지구 외의 수도권 전역에서 다주택자 대출 조건을 강화키로 했다.
이번 대책의 특징은 주로 다주택자를 규제하는 것들로, 서울 강남권과 세종시에 재건축 아파트를 포함해 집을 3채 이상 보유했거나 고가 주택을 가진 미성년자들을 집중 겨냥하고 있다. 금융권은 투기지역 이외에서도 다주택자가 추가 대출을 받을 때 주택담보대출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을 일괄적으로 10% 포인트씩 낮추기로 했다. 투기지역 대출이 2건 이상인 다주택자가 대출을 연장하려면 1년 안에 주택 한 채를 처분해야한다는 조건도 내걸었다. 다주택자를 집중 겨냥한 것은 투기수요에 의한 집값 상승을 잡아야만 안정된 주거문화와 실수요자의 주거편의를 개선할 수 있다는 인식이 강하게 깔려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8·2 부동산대책을 내놓은 지 일주일 만에 규제지역의 집값 상승세가 일제히 꺾였다. 특히 이번 대책에서 집중적인 규제가 적용된 서울은 하락세로 돌아서며 직격탄을 맞았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가격이 하락한 것은 2016년 2월 29일 이후 1년 5개월 만이다. 관계자는 "8·2 대책에 예상보다 고강도의 규제가 포함되면서 전체적으로 관망세가 짙어진 분위기다. 최근 투자수요 유입으로 상승폭이 컸던 재건축단지 중심으로 급매물은 증가하고 매수문의는 실종되는 등 하락 전환되며 전국적으로 지난주 대비 상승폭이 둔화됐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장기적 효과적인 대책으로 자리매김할 지는 더 지켜 봐야 할 사안으로, 현재로선 그 결과를 예단킨 어렵다.
10년전 참여정부 실패와 공통점
투기에 휘말려 집값이 폭등하고, 서민대중의 ‘내 집 마련’이 어려워지는 고질적 악순환이 되풀이돼선 안된다는 게 국민 다수의 바람일 것이다. 일부 야권은 이번 대책을 “강남을 겨냥한 분풀이식 포퓰리즘”이라고 혹평하기도 했지만, 과연 그 결과는 어떻게 나타날 것인지, 주목치 않을 수 없다.
사실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10여년 전 실패한 참여정부 정책과 비슷한 성향을 보여 불안하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김수현 청와대 사회수석은 지난 3일 "어떤 경우든 이 정부는 부동산 가격 문제에 대해 절대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수석의 말은 "하늘이 두쪽 나도 부동산은 꼭 잡겠다"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다짐을 연상시킨다. 노무현 당시 정부는 지난 2005년 8.31 부동산대책을 내놓을 때 "헌법보다 고치기 어렵게 만들었다"라고도 했었다. 또,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8.2 부동산대책의 특징은 집 많이 가진 사람은 불편하게 된다는 것"이라며 "꼭 필요해 사는 것이 아니면 파는 게 좋겠다"고 충고한 것도, 꼭 10년 전인 2007년 당시 권오규 경제부총리가 "서울 강남의 고가 아파트를 팔고 분당의 같은 평형대 아파트로 이사 가면 세금을 내고도 돈이 남는다"고 경고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렇지만, 노 정부가 그렇게도 공을 들였던 부동산 대책은, 그다음 보수성향의 정권들 아래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국세청이 세무조사 카드를 꺼낸 것도 비슷하다. 지난 2005년 참여정부도 종합부동산세 시행에 착수, 당시 기획부동산 업체와 다주택자들이 국세청 조사를 받았다. 투기 단속에 세정당국을 동원하는 관행이 반복되고 있는 양상이다.
노후에 불안을 느낀 나머지, 부동산을 재테크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은 현재 일반화된 사회현상이다. 은퇴 후 재테크하는 일반 투자자들까지도 부동산 투기 세력으로 몰아 붙여야 할 지 의구심이 든다. 세금과 규제 강화를 골자로 한 8·2부동산대책으로 서민층의 주거안정이 가능해질 지 의문이란 지적이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이미 주택가격은 급등해 있고,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에는 새 집을 지을 땅도 여의치 않다. 수도권 과밀화 현상이 심해 서울은 수요에 비해 공급이 턱없이 부족하다. 따라서 정부 규제만으로 서민 중산층이 감당할 만한 수준까지 가격을 내리거나 주거환경이 좋은 곳에 공급을 확대하는 데엔 한계가 있어 보인다.
더욱이, 맞벌이 등으로 소득은 어느 정도 확보되고 있지만 가용 자산이 많지 않은 30·40대 실수요자들은 이번 LTV와 DTI 강화로 내집 마련이 더 어려워졌다. 서울 전체를 투기과열지구로, 11개 구를 투기지역으로 지정함으로 인해, 그간 상대적으로 집값 상승에서 소외된 지역에선 억울하다는 불평들도 많이 나온다. 선의의 실수요자들에겐 은행 대출의 축소와 규제로 내집 마련이 더 요원해졌다는 평가가 나오는 대목이다. 이들은 8.2 대책의 최대 피해자군으로 볼 수 있다.
역대 정부들 사례 ... 악순환 경향 많아
근래 부동산시장 주변에는 노무현 정부 시절을 떠올리며 부동산의 추가 상승을 점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당시 노 정부는 무려 12차례나 부동산 대책을 내놨지만, 5년간 서울 아파트값은 56%나 폭등했다. 공급 확대보다는 수요 억제 위주 정책, 일관성 없는 정책 등이 실패 이유로 지적됐다. 그 때 정부는 규제를 남발했고, 시장은 잠시 주춤하다가 폭등을 반복하는 악순환 현상을 보였다. 문제는 부동산을 수요와 공급이라는 시장원리에 의해서 풀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부의 규제와 통제로 풀려고 하는데서 비롯되었다.
문민정권 초기, 김영삼 대통령이 부동산실명제의 시행방침을 밝혔을 때 급매물이 쏟아져 부동산 시세가 폭락하지 않겠느냐는 우려도 적지 않았다. 그리고 부동산의 담보가치가 떨어져 금융기관들도 큰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란 전망들이었지만 결과는 달랐다. 부동산 실명제 이후 부동산시세는 서서히 하향 안정되면서, 상당기간 부동산을 효율적으로 이용할수 있게끔 하는 효과가 나타나기도 했다. 정책과 실물경제의 영향은 때로는 그렇게 다르게 나타났다.
역대 과거 정부들에서도 강력한 부동산 투기 억제대책들이 무수히 시행되었다. 땅투기와 토지의 과점을 막기위한 갖가지 대책이 해마다 강구됐지만, 토지 소유의 편중 현상이나 주택 보급률의 불균형이 개선되거나 향상되지는 못해 부동산투기를 근절하는 데는 실패를 거듭하곤 했다. 대책 수립 과정에서 실기한 경우가 많았고, 관계법령의 적용이 엄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란 분석들도 나왔다. 정부의 정책수립이 너무 편의적이거나 그때그때 임시방편적으로 마련됐다는 지적도 있다. 예외규정이 많으면 그것이 악용될 가능성에 대해서도 세밀한 보완조처가 완비되어 있어야 하는 것이다.
6공 노태우정부의 부동산 경제혼란
6공화국 노태우정부 시절은 부동산 혼란기였다. 90년 당시 일시에 주거비가 두배 가까이나 뛰어 올랐다. 부동산정책의 잘못 때문이었다. 현실적 여건과 부작용을 고려하지 않은 채, 임대기간 연장 등 조치들을 서둘러 진행, 보호해야 할 전세입주자들한테 오히려 불이익을 주는 현상을 초래했다. 성급하게 발표한 임대료 등록 및 조정제의 도입만해도 전세문제를 더 어렵게 했다. 집 소유자가 임대료 등기를 꺼려 전세놓기를 마다했고, 결과적으로 전세 공급량이 그만큼 줄었다. 또한, 당시 금융실명제가 실시되면 금융자산을 보유하는 것보다는 부동산이 유리하다는 판단에 따라 부동산 선호현상이 되살아났던 것도 한 요인이 됐다. 그 당시 부동산관련정책은 전 월세값 폭등,건자재품귀와 인건비 급등을 자초했다.
노태우 정권에 들어 부동산투기가 재연되면서 경제불안과 위기의식이 가중되었다. 그렇게 되자, 일각에서 통치권 차원의 부동산투기억제대책(대통령긴급명령권발동) 요구가 나올 정도였다. 연초부터 파동을 일으킨 전ㆍ월세가격 폭등에 이은 부동산투기는 우리사회에 전례없는 충격을 주었고, 특히 서민들의 실망과 좌절감을 심화시켰다. 사회 안정심리를 밑에서부터 흔들어 놓는 듯한 부작용을 수반했다.
당시의 '국토종합개발 계획'은 장기적인 비전 제시였을 뿐 그 근간을 이루는 토지정책이 확립되어 있지 않았기에 새로운 갈등과 비효율성, 빈번한 계획의 수정을 동반할 수 밖에 없었다. 90년 토지공개념제도가 본격적으로 실시되게 되자, 안정세를 보였던 부동산에 다시 투기가 재연, 한국경제가 경기침체와 인플레가 동시에 진행하는 스태그플레이션에 본격적으로 진입했다. 부동산 정책의 대(大)실패 사례로 남았다.
시중 유동자금 풍부…중.장기 전망에 철저를
이번 문 정부 8.2 부동산 대책의 경우 당장은 거래가 끊기면서 집값이 하향 안정되겠지만, 중장기적으로 집값 급등이 불가피하다는게 다수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공급 확대 대책이 일부 포함되긴 했지만 시장 수요에 턱없이 못미치기 때문에 중장기적으로 시장을 안정화시키기에 역부족이라는 것이다. 투기 수요 못지 않게 저 금리로 인한 풍부한 유동성이 부동산에 대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세제와 청약, 거래 시장 전반에 걸쳐 투기수요 억제책을 내놨기 때문에 최근 집값이 급등한 서울 등 수도권에서 일단은 시장을 안정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봤다. 일시적으로 주택거래가 주춤해지고 청약경쟁률이 낮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양도세 강화나 재건축·재개발 조합원 양도 금지 등의 규제는 오히려 공급을 축소시킨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한 양도세가 강화되더라도 기존 다주택자들이 매도를 미룬 채 계속 보유할 가능성도 높다. 보유세 인상이 없기 때문에 보유에 대한 부담이 달라지지는 않았기 떄문이다. 또 조합원지위 양도금지로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 부담을 떠안게 된 재건축대상 아파트의 현 조합원들은 재건축을 연기할 수도 있다. 이는 모두 주택 공급을 줄이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중장기적으로 부작용이 크다. 저금리 상황에서 시중 자금이 부동산 시장 외 투자처를 찾기 쉽지 않은 상황도 중대한 변수다.
일단 수요자들이 거래를 멈추고 시장을 관망하겠지만 언제든 다시 돌아올 수 있다는 게 문제다. 인위적으로 수요를 억누르면 나중에 오히려 시장이 더 가파르게 상승할 수 있다는 것이다.
주택투기 억제에도 한계가 있다는 의견이 많다. LTV(담보인정비율) DTI(총부채상환비율) 금융규제 강화로 내집 마련이 어려우면 임차 수요가 증가해 전세가격이 상승하기 때문에 오히려 갭투자를 활성화시킬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수요가 규제지역을 떠나 인근 다른 곳으로 옮겨가는 이른바 ‘풍선효과’도 꼭 차단돼야 할 대목으로 언급된다. ‘8·2 대책’ 발표 다음날, 1순위 청약을 접수한 부산 서구의 한 아파트는 평균 경쟁률이 250대 1을 넘었고, 세종시가 투기지역 등으로 묶이면서 인근 대전 유성구의 한 아파트는 평균 58대1의 경쟁률로 1순위 청약을 마감하기도 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상승세가 그동안 상대적으로 낮았던 성남 분당 등 신도시와 경기·인천으로까지 번지는 양상이다. 서울의 주택 공급이 부족한 상황에서 서울 전역을 투기과열지구로 지정하면 경기도나 인천의 주택가격이 치솟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서울과 가까운 경기도 지역에 투자수요가 몰려 규제 대상에서 제외된 기존 분양권 가격도 더 오를 수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시중 유동자금이 풍부하기 때문에 이들 자금은 반드시 대체투자처를 찾아갈 수밖에 없다.
정부자세 중요…정책신뢰 확보돼야
전문가들은 부동산 가격 급등의 원인을 정부가 잘못 짚고 있는 게 가장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최근 집값이 오른 것은 저금리에 따른 풍부한 유동자금 때문인데 단지 투기수요 때문에 집값이 올랐다고 진단한 것은 오판이라는 것이다. 거기다 특히 강남 집값이 비싼 것은 학군 등 교육 환경과 생활 편의 인프라, 한강 개발로 인한 조망권 등 더 나은 주거환경으로 수요가 집중되기 때문으로 인위적으로 집값을 억누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강조한다. 이와 더불어 건설사의 경쟁적인 고가 분양도 천문학적인 부동산 시세 형성을 초래해 분양가 상한제의 기준 수정도 절실한 상황이다.
현재 부동산의 심상치 않은 움직임은 우리 경제사회의 여러가지 복합적 요인도 한몫한다. 자유시장체제에서 사거래대상인 토지 가옥의 매매에서 공권력으로 투기를 완전 제거하기란 불가능하다. 정부의 대책이 투기 그 자체에만 초점을 맞춰, 물리적인 대증요법으로 임하는 한, 이를 해소할 순 없다. 돈의 흐름을 바로잡는 동시에 물가를 안정시켜 부동자금이 경제 발전을 위한 '정상적 길'로 들어오게 하여야 한다.
일률적인 규제로 겨우 내집을 마련한 서민들이 억울한 피해를 입지 않도록 하는 일도 간과돼선 안될 부문이다. 이같은 어려움을 극복하는 길은 경제정책의 시행에서 안정원칙을 고수하는 것이다. 거시경제적으로 물가안정 및 통화관리에 힘써야 한다. 통화공급이 방만해 물가가 뛰면 부동산 시세가 올라 투기를 조장하게 마련이다. 그리고 부동산 시세가 비싸면 다시 물가상승을 자극하게 된다. 서울이나 도쿄의 물가가 세계적으로 높은 것도 고가의 부동산 시세 탓이 크다.
정부 스스로의 자세도 중요하다. 예산집행에서 긴축기조를 유지하는 한편 정책의 신뢰성 회복을 위해 일단 결정한 정책은 일관되게 추진해야 한다. 특히, 경제는 정치 및 사회문제와 상호 연관성이 깊은 유기적 성격을 갖고 있다. 불안정국의 경제 파장도 유의해야 할 대목이다. 정국불안에서 오는 투자심리의 위축등 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간과돼선 안된다. 여야를 불문, 일관성있는 기조위에서 국민이나 기업인이 안정되게 경제활동을 준비하며 나갈 수 있도록 환경을 제공해야만 한다. 정치적 인기를 위해 시장경제 논리를 정치논리화하는 사례들은 지양돼야 할 것이다.
이병도는…
1952년 경남 진양에서 출생했고 서강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 1979년 동양통신 기자로 언론계에 입문한 후 1981년 연합뉴스로 자리를 옮겨 정치부 야당출입 기자로 오랫동안 활동해 왔다. 저서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