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을 뒤흔든 11가지 연애사건>은 소설보다 흥미로운 스토리 안에 이채로운 미시사를 촘촘히 박아놓은 작품이다. 책의 초반부에 소개되는 1920년대 3대 연애 사건에서는 자유연애의 주역들이 기생에서 신여성, 다시 카페의 여급들로 이동했음이 드러난다.
모델 소설 논쟁으로 희생당한 김명순의 이야기에서는 한국의 근대 문학사가 슬며시 끼어들고, 김용주과 홍옥임의 자살 사건을 통해서는 동성애에 관한 시각이 지금보다 오히려 100년 전에 더 관대했음을 보여준다.
또한 독살 미인 김정필 사건에서는 구여성들이 자신들의 비참한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남편 살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했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밝혀진다. 조국의 독립과 혁명을 꿈꾸며 경성 시내를 활보하던 삼인당과 여성 트로이카의 이야기, 일제하 운동사상 가장 낭만적인 로맨스로 기억되는 박진홍과 김태준의 연안행에는 한국 사회주의 운동사가 그대로 묻어나며 이를 통해 독자들은 그들이 일본과 중국, 러시아를 넘나드는 세계인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저자 이철은 한국 노동자의 역사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혼돈과 격동의 도시 경성을 만났고 이후 당대의 인간 군상들을 연구하면서 식민지 조국의 폭압적 현실을 사랑으로 돌파해 나가려는 청년들과 조우했다. 친일과 반일의 이분법적 틀로만 인식되던 경성 시대 사람들이 실은 빛나는 젊음의 에너지를 지닌 인간이었다는 진실에 공감한 그는, 낡은 활자들 사이에서 인간의 더운 숨결을 살려냄과 동시에 과거의 담론에 현실을 비추는 역사서를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100년 전 경성에 펄떡거리는 심장을 지닌 인간이 살고 있었다
경성은 전前 근대와 현대, 동양과 서양이 공존하던 공간이었다. 한편에서는 자유연애를 부르짖는 젊은 목소리들이 있었지만, 다른 한편에는 여전히 억압적인 유교적 윤리의 벽이 굳건하게 버티고 서 있었다. 너무나 달랐던 두 흐름은 비극적인 충돌을 피할 수 없었다.
죽음으로써 맹세를 지킨 사회주의자 장병천과 기생 강명화, 사의 찬미를 노래하며 현해탄에 몸을 던진 윤심덕과 김우진, 죽음의 연애 공식을 실행에 옮긴 청년 의사 노병운과 카페 여급 김봉자. 그들은 불에 뛰어드는 부나방처럼 사랑에 생명을 던지며 죽음을 맞았다.
한편 마초적인 남성 문인들에 의해 탕녀로 낙인 찍혔던 김명순은 여성으로서, 온전한 인간으로서 살기 위해 발버둥을 치다 끝내 정신병원에서 생을 마감해야 했다. 또한 연인 백성욱과의 절대적인 사랑을 나누었던 김원주는 그 사랑을 완성하기 위해 구도자의 길을 걸었다. 비록 그들은 지금 이 세상에 없지만 그 사랑만큼은 오랫동안 사람들의 마음속에 남아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오늘날 젊은이들이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마음껏 사랑을 향유할 수 있는 것도 이들에게 빚지고 있는 터일 것이다.
이 책 <경성을 뒤흔든 11가지 연애사건>은 경성 시대의 생생한 공기와 함께 100년 전에도 이 땅에 펄떡거리는 심장을 가진 인간들이 살고 있었다는 진실을 가슴으로 느끼게 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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