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환 “야권이 집권에 성공하려면 혁명 이론 있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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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환 “야권이 집권에 성공하려면 혁명 이론 있어야”
  • 윤진석 기자
  • 승인 2013.04.26 12: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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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환 민주당 의원, 그의 혁명 일기는? ˝누군가는 5·4 이후 준비해야˝ ˝安도 큰 틀에서 야권˝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윤진석 기자]

지난 2일 국회의원회관 집무실. 김영환 의원을 접한 뒤 두 명의 인물이 떠올랐다. 무소속 안철수 의원과 북한 민주화 운동가인 (동명이인의) 김영환.

또 다른 안철수 ‘김영환’. 순간 고개를 갸웃할 거다. 듣는 안철수·김영환 의원 모두 기분 나빠할지 모르겠다. 설명하면 이렇다. 안 의원은 정치 신인임에도 대중적으로 유명한 거물급 인사다. 김 의원은 4선에 당 대선 후보 경선에 참여한 바 있지만, 안 의원에 비하면 무명 인사다. 하지만 이들은 동전의 양면처럼 맞닿아 있다.

안 의원은 새 정치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지난 대선 기간 대중은 안철수를 통해 새 정치에 대한 기대를 걸었다. 그러나 현실 정치에 뛰어든 그는 '미성숙한' 초짜에 불과했다. 여전히 안 의원을 통해 새 정치를 꿈꾸는 이들은 많다. 다만, 현재까지 검증은 안 됐다. 앞으로 그가 보여줄 숙제다.

“정치는 최초를 열어가는 일”

안철수가 새 정치의 이미지를 대표한다면, 김영환은 새 정치의 내용을 담고 있다. 그는 국회의원으로서 '최초'라는 영역에 여러 번 도전했다. ‘정치는 과거의 관행과 사고를 깨고 최초를 열어가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는 삶의 좌표가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시사오늘 박시형 기자

우선 2010년 국회의원 최초로 쌍방향 소통의 정치를 열고자 1인 방송국을 오픈했다.

『과거에는 3김(三金) 정치, 김대중 대통령이 ‘나를 따르라’고 외치면 열심히 따라가는 정치를 했다. 과거 우리 선조들이 하던 말로는 바로 멍석 까는 일이다. 다양한 콘텐츠를 국민 스스로 만들도록 장을 만드는 것이 바로 폴리틱스 2.0이다. 국민은 정책의 생산자가 되고 정치인은 정책의 편집자가 되는 것이다. <나라를 살리는 10가지 생각창고>(이하 김영환 책)중』

김 의원은 1인 방송에 의정뉴스, 영상 대담, 영상방명록, 맞춤형 이메일, 실시간 현장 중계, 쌍방향 영상 의정보고회 등을 담았다. 이중 인상적인 건 평범한 어르신들의 인생을 영상으로 기록해 자식들에게 이메일로 발송하는 ‘영상자서전’이다.
『어르신에게 ‘어르신 고향은 어디세요. 자녀는 어떻게 되세요. 말씀해주시겠어요?’ 라고 여쭤보면 처음엔 카메라가 있어서인지 당황해 하시지만 대부분 그의 인생 이야기를 들려준다. 완성된 영상 자서전은 어르신이나 자식들 메일로 보내드린다.(김영환 책 중)』

“단 한 번의 부정부패 없었다”

과학기술부 장관 시절에는 카이스트와 연계해 우리나라 최초로 과학영재학교인 부산과학 영재고를 만들었다. 여성과학자 육성을 위해 여성과학자 지정할당제를 최초로 시행했다.

새로운 시도가 접목된 의정활동도 다양하다. 전기통신사업법에 보편적 서비스 개념을 도입한 것도 대표 사례로 꼽힌다. 입법 활동을 통해 낙도 오지 농촌지역의 인터넷과 전기통신 인프라에 들어가는 비용을 정부가 부담하게 해 정보화 격차를 줄인 것이다.

사이언스 북스타트 운동, 핸드폰 요금 15%가량 인하, 장애인 통신요금을 30%가량 낮추기도 했다. 이 같은 활동은 8년간 상임위 활동에서 1등을 하게 된 동력이 됐다.17년 정치생활 중 단 한 번의 부정부패가 없다는 점도 새 정치의 내용을 채우고 있다.

ⓒ시사오늘 박시형 기자.

 “스스로 혁명가로 생각한다”

그는 동명이인인 김영환 북한 민주화 운동가를 연상케 한다. 물론 둘의 대북 관점은 다르다. 북한인권운동가 김영환은 햇볕정책과 민주화운동이라는 투 트랙 정책을 주장한다.

국회의원 김영환은 북한의 인권과 핵무장, 세습을 포함한 문제는 비판하지만, 봉쇄와 압박으로 체제를 붕괴시키는 데에는 반대한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닮은 점은 '혁명가', ‘사상가’라는 이미지와 맞닿아 있다는 것이다.

김 의원은 자신의 집무실에서 이런 말을 했다. "저는 스스로 혁명가라고 생각합니다. 30년 전에는 한국의 민주주의 혁명을 꿈꿨지만, 지금은 야권의 재편과 5년 후 야권이 집권할 수 있는 혁명을 꿈꿉니다. 내부적인 혁명과 외부적인 혁명이 동시에 진행돼야 할 거라고 봐요."

그는 야권이 5년 뒤 집권하는 데 성공할 수 있는 혁명 이론을 준비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혁명이 이뤄날 것인가를 보고 있죠. 5·4 전당대회 이후 민주당 골짜기가 어느 험로와 어느 광야를 거쳐, 또 어느 강과 어느 평원을 건너, 어느 산림을 통과할 것인가. 안철수라는 신흥 몽골군이 어디서 진을 치고 어느 기병대를 몰고 어디서 올 것인가. 그들과 어디서 합류를 하고 어디를 제압하면서 중원을 차지하게 될 것인가. 이런 여러 가지 그림을 그려보고 여러 경우의 수를 두는 겁니다. 5년 뒤 야권의 집권과 이를 위한 혁명…. 때문에 혁명 이론이 있어야 해요.”

“민주당 콤플렉스와 진보정치의 반성”

인터뷰 전날 김 의원은 486을 포함한 진보정치의 반성문(희망일기 11편)을 자신의 블로그에 올렸다. 관념적 급진주의에 대한 지적이다. 이는 곧 민주당의 총체적 문제와 연관된다는 점에서 글의 골자에 대해 들어봤다.

“민주당에는 3가지 콤플렉스가 있어요. 진보정당,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댓글, 시민단체에 끌려가는 걸 비판한 거죠. 그 주체가 저를 포함한 운동권, 그중에서도 486정치인, 친노(친노무현) 등 이런 세력들이에요. 왜 이런 과오가 생기는 건가, 저는 관념적 급진주의, 급진적 관념론에서 원인을 찾습니다. 현실을 직시하지 않고 관념적으로 생각하는 경향 때문인 거죠.”

이는 국민 삶과 동떨어진 길을 걷게 된 원인이 됐다.

“왜 우리는 국민 삶에 밀착하지 못하고, 현실을 반영하지 못했는가. 우리 운동권 출신들의 삶은 소시민 삶과는 거리가 먼 생활을 한 겁니다. 그나마 저는 의사 등 다양한 생활을 하다 정치에 입문했지만, 386 출신 정치인만 하더라도 학생운동 하다 바로 정치에 들어온 이들도 많았습니다. 부득이하게 민주화 운동하다, 학교에 쫓겨나 정상적으로 활동하지 못하다 보니까 사회경험과 소시민적 삶에 밀착하지 못한 채 괴리가 생긴 겁니다. 우리 스스로 정치를 하면서도 그분들의 아픔을 진심으로 이해하거나 대변하지 못한 거죠. 생활운동과는 다르게 계급계층 성향의 운동권적 편향을 낳은 겁니다.”

 “듣지도 않았다, 반론도 없었다.”

중요한 건 과오를 인정하면 된다는 얘기다. 늦었을 때가 가장 빠르다. “결국은 자기 성찰이 전제돼야 한다는 겁니다. 누구나 과오가 있잖아요. 그런 과오를 성찰하고 반성해야 정당도 건강해지고 한 인간도 건강해질 수 있어요. 만약 자기 성찰을 도외시한다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거죠.”

- 민주당이 지난 총선과 대선에서 모두 패했는데요, 그 원인은 뭐라고 보나요.

“총선에 패배하고 나서 제일 먼저 쓴 희망일기가 ‘나는 절망한다.’였어요. 총선에서 졌기 때문에 절망한 게 아니라, 이대로 가면 대선에 질 것 같아서 쓴 거였죠. 결국 그 예측이 맞았잖아요. 다시 읽어봐도 크게 잘못된 것이 없어요. 그때 제가 수십 가지를 지적했는데, 그중에서 서너 가지만 교정했어도 우리가 대선에 이겼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 구체적으로 어떤 점을 지적하셨는지 몇 가지 꼽는다면.

“총선 때 김용민 막말 파동, FTA 제주 강경 마을 해군기지 입장 번복, 통합진보당과의 정체성 논란 등이 있었잖아요? 이런 것들로부터 정체성을 유지해야 한다고 했는데 그것도 되지 않았고, 모바일 투표의 문제점에 관해서도 얘기했었죠.
친노 프레임을 강화하면 안 된다는 얘기도 했고, 이·박(이해찬 박지원) 연대 이런 것들은 문재인 후보가 정리해야 한다고 했는데 그것도 하지 않는 등.

하나하나 열거할 수 없는 일들이 자로 잰 듯 대선 패배로 이어진 셈이죠. 그때마다 쓴소리든 뭐든 공개적으로 비판했지만, 친노는 듣지 않았어요. 이렇게 하면 대선에 패배한다고 누누이 얘기했고, 왜 우리는 스스로 문제점들을 극복하려는 의지를 갖추지 못하는가, 부단한 질문을 던지면서 희망일기를 쓴 거죠. 그런데 어느 누구 하나 반론이 없잖아요.”

잠깐 그가 쓴 희망일기 여러 편 중 몇 가지 대목을 발췌해본다.

'지난 전당 대회에서 우리는 당론으로 총선 이후 “FTA 폐기”를 결의하였고 최고위원들은 하나같이 이것을 국민에게 맹세하였다. 이런 우리가 총선에서 이 말을 슬그머니 숨기더니 이제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이해찬·박지원의 담합은 어떤 미사여구로 포장해도 야합이다. 친노든 비노든 그들만의 잔치가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지금 한가로이 논두렁에 앉아 통합진보당의 추이를 지켜보고 있을 때가 아니다. 우리는 애당초 하나가 될 수도, 되어서도 안 되는 존재였다.'
'문재인 당선자가 안철수 교수에게 공동정권을 제안했다. 이게 현실화한다면 노무현식 경선에 한 가닥 희망을 걸고 있는 민주통합당의 후보들은 빛을 잃게 될 것이다.'
'그동안 좌청룡으로 내세운 통합진보당과의 연대도 총선 승리를 이뤄내지 못했다. 이제는 안철수 교수와의 단일화를 우백호로 배치하여 대선 패배를 준비하려 하고 있다.'
'자기쇄신과 변화 없이 ‘노무현표 이명박심판론’을 국민들에게 강요하고 있다.'
'한미FTA와 강정마을 해군기지 문제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참여정부 때 결정된 정책인데 통합진보당과 연대를 위해 인제 와서 반대하는 것은 무책임한 말 바꾸기 아니냐?”라는 새누리당 공격에 속수무책이었다. 이러한 문제들이 그 뜨겁던 MB 심판론을 날려 버렸다.'

- 대선 기간에도 당을 향해 여러 조언을 하신 줄 압니다. 

“민주당이 이렇게 하면 진다는 걸 명확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친노로는 박근혜 프레임을 이길 수 없다’, ‘전선이 낙동강에 있는 게 아니라 금강에 있다’, ‘중부와 중도를 잃는 선거는 패한다.’ 등 무수한 지적을 했고, 하나도 틀린 게 없었어요.

문재인 후보가 좋은 후보인 건 맞지만, 친노 프레임이라는 길을 열어주면서 국정 심판론이 희석돼버렸죠. 박근혜 후보의 최대 아킬레스는 이명박 심판론과 새누리당 정권교체론이었거든요. 그런데 민주당은 친노라는 최악으로 최선을 막으려 한 겁니다.”

“아, 동남풍이 불지 않았으면 우리가 이겼을 텐데…?”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다양한 사람들 무대에 올려야!”

그럼에도 민주당 내부의 대선평가는 엇갈리고 있다. 여전히 남 탓을 한다는 게 일각의 곱지 않은 시선이다.

- 민주당에서 자체적으로 대선평가를 한 줄 아는데요, 이점에 대해 어떻게 보십니까.

“마치 조조가 적벽대전에서 제갈량한테 당하고 난 뒤에 ‘아, 동남풍이 불지 않았으면 우리가 이길 수 있었는데….’ 와 비슷한 거죠. 무지몽매한 이들이 당 지도부를 형성하고는 선거를 이끌면서, 결과적으로 국민 수천만 명을 전쟁터로 몰고 나가 사지에 빠트려 죽인 거 아닙니까. 그래서 국민이 멘붕이 오고, 나라에 대해 절망하고, 밥맛을 잃게 하는 거 아닙니까.”

화제를 돌렸다. 김 의원은 지난해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 도전장을 냈다. 이에 대한 나름의 평가와 소회를 들어봤다.

- 대선 후보 출정식이 기존의 패러다임을 벗어난 형식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대선 후보 출정식을 했는데 비 맞으면서 청바지 입고했잖아요. 프레젠테이션 출정식을 한 거죠.”

김 의원은 2012년 7월 5일 국립과천과학관 광장에서 출정식을 개최했다. 출마선언 장소를 과학관으로 정한 데에는 과기부 장관 시절부터 가져온 그의 소신 때문이었다. “잘사는 나라의 밑거름은 다름 아닌 과학이다.”

그는 또 흰 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단상에 올랐다. 역동성과 창조적 상상력을 강조한 나름의 차별화 전략이었다.
핵심정책과 공약을 프레젠테이션 방법으로 소개한 것도 눈길을 끄는 요소였다. 특히 주목받은 데에는 원고 없이 연설 한 것도 한몫했다.

“몇 가지 키워드로 40분 동안 연설을 했어요. 대통령이 되면 무슨 일을 해야겠다고 말했습니다. 당연히 원고는 없었지요. 나름의 정책 비전이 뚜렷했습니다. 연설 장소에서 박근혜 후보든 문재인 후보를 비난하는 일은 없었어요.”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의 평가도 궁금합니다. 

“대체 컷오프를 왜 한 겁니까. 컷오프를 할 바에야 인지도 높은 사람 둘만 하면 되었지…. 경선이라는 것은 다양한 사람들을 무대에 올려 새로운 사람들을 발굴하기 위한 과정이잖아요. 그런데 기존 인지도를 가지고 컷오프 해서…. 제가 박준영 전남도지사보다 인지도가 낮아서 떨어진 거거든요.

그분이야 전라남북도에서 압도적인 표를 얻은 거고, 그에 비해 저는 국회의원 7~8년간 낙선하고 들어와 인지도가 낮았거든요. 쉬다가 들어와서 김영환이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대다수였지요. 그런데 그분은 완주도 하지 않았잖아요. 결과적으로 그렇게 됐잖아요. 

토론이나 공론 등의 실력으로 커트라인을 정하는 것도 아니고, 여론조사로 잘라버리는 그런 무지막지한 방법을 쓰면 안 되는 거죠. 만약 제가 본선에 올라 논쟁을 강렬하게 하고, 희망일기에서 언급한 얘기를 했으면, 당락을 떠나 많은 사람이 공감했을 겁니다.”

- 당내 쓴소리맨으로서 나름 외로웠을 법도 한데요.

“외롭지 않아요. 주관적인 거라 판단하기가 그렇지만, 글쎄요…. 저한테만 들리는 얘기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민주당 싫지만, 당신은 좋다’, ‘김형, 나 당신 얘기에 동감해’라고 말해 주는 분들이 많아요. 민주당 내 정상적인 분들은 제 얘기에 공감한다고 봅니다.

동감의 농도가 작은 집단이 국회의원이에요. 왜냐, 그분들은 줄을 서고 있기 때문이죠. 친노의 줄, 패권종파의 줄….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김영환이 악에 받쳐서 당에 해코지하고, 염장 지르는 일만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저 사람이 옳은 게 아닐까? 혹시? 이런 생각을 하는 의원들이 많아진 거지요.”

"민주당 부활 가능성…"

김 의원은 민주당의 살길은 편협한 사고에서 벗어나는 길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를테면 2013년도인 올해, 민주당이 '어느 언론매체는 나가도 되고, 어느 언론매체는 나가지 말아야 한다'는 규정을 뒀다고 해봅시다. 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얘깁니까. 나중에 시간이 지나고 봤을 때 ‘우리 선배들은 이상한 짓을 했구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죠.

새누리당에서 만약 <한겨레 신문>, <오마이뉴스>와는 인터뷰하지도 말라는 결정을 당론으로 채택했다면, 우리도 굉장히 웃을 거 아니에요? 말하자면 그런 거다 이거죠. 마찬가지로 저희 역시 종편 출연을 하지 말라, 이런 식의 사고는 아니라고 보는 거죠. 민주당이 시대에 뒤떨어진 편협한 생각을 하지 말고 진취적으로 미래를 내다보면서 가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 5·4 전당대회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민주당의 전망에 대해.

“민주당은 현재로서 생존 내지는 부활할 가능성이 없다는 게 제가 가진 결론입니다. 당이 혁신해야 하는데, 당이 대체 뭘 하면 국민 마음을 얻을 수 있을까…. 김한길 당대표 후보로 바꿔만 주면 되는 건가…. 그러면 얼마나 손쉽겠어요. 물론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당이 친노가 아닌 비주류로 바꿔만 주면 당이 살아난다? 물론 그렇게만 된다면 좋죠. 근데 그분들로 바뀐다고 해서 민주당에 희망을 준다? 저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민주당의 폐단은 워낙 오래됐고 골수에 사무쳐 있어요. 악성 세균이 침투했을 때 항생제를 쓰기 위해서는 진단을 정확히 하고, 세균의 정체가 뭔지를 알아야 하잖아요? 그래야 박멸할 거 아닙니까. 지금 그 작업을 하고 있어요. 이론 작업을 하는 중입니다. 뭘 없애야 하고, 뭘 하지 말아야 할 지.”

“5년 후까지 내다봐야”

일각에서는 김 의원이 당 대표에 도전하지 않는 점을 의아해하기도 했다. 그간 민주당에 자성의 목소리를 던지던 그였다. 반 발짝 물러나 훈수를 두기보다 직접 나서야 하지 않겠느냐는 권유도 들려올 법했다.

- 당 대표 출마는 왜 안 했습니까.

“김영환은 왜 안 나오나. 더 화끈하게 시원시원하게 얘기도 해야 하지 않느냐, 자꾸 물어보죠. 그런데 누군가는 5·4 이후를 준비해야 한다고 봅니다. 지도부가 잘 갈 수 있도록 이론을 제시해야 하고, 등불을 들고 가야 할 사람도 필요할 수 있고.
또 민주당 밖에서는 안철수가 신당을 도모할 거 아니겠어요?

전체 흐름에서 볼 때는 이분도 야권이기 때문에 이 그림을 어떻게 봐야 할 건지, 누군가는 떨어진 채 봐 줄 사람도 필요하다고 봅니다.민주당이 없어서는 안 되지만, 민주당만으로는 되지 않는 정세 속에서 민주당을 포괄하는 야권의 전체 그림을 그려야 하는 거지요. 적어도 차기 대선이 있는 5년 후까지 내다봐야죠. 이게 지금 제 생각입니다.”

- 안철수와 민주당과의 관계 설정은 어떻게 될까요.

“당분간은 민주당과 안철수 세력으로 각각 정립돼 갈 거로 예상합니다. 민주당과 안철수는 야권이라는 큰 틀 속에서 개혁 경쟁을 실천하게 될 겁니다. 그러다 어느 시점에 연대하거나 통합하거나 아니면 전부 와해해서 새로 묶이거나 등의 과정을 거치게 되지 않겠어요? 안철수 역시 새 정치 실험이 깎이고 좌절되기도 하고, 민주당은 또 한계를 보이고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고…. 여러 가지 것들이 보이잖아요?”

- 김영환이 바라보는 시대인식과 비전은 무엇입니까.

“우리 사회는 어디로 가야 하나. 문화예술, 과학기술, 생태환경을 결합하는 트리풀 악셀론으로 가야 한다고 봅니다. 이것은 과학기술과 문화예술, 생태환경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서로 융합하는 개념입니다. 경계를 넘어 통섭하면 새로운 창조가 이뤄집니다.”

나라를 살리는 ‘김영환 생각’

그는 자신의 책에서 “상상력”과 “창조력”에 대해 누차 강조해왔다.

『10년 전부터 저는 과학예술과 문화예술을 섞어야 한다고 주장해왔습니다. 모두 직관을 바탕으로 하는 창조행위이며 상상력의 행위입니다. 지금은 창조적 상상력이 곧 경쟁력이 되는 사회입니다.(김영환 책 중)』

그는 또 남한에 북한공단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제가 어렵지 않습니까. 경제를 살리기 위해 남한에 북한공단을 만들어야 해요. 강화도 북단, 파주 김포검단, 인천남동, 시화반월 등에 공단을 만들고 북한의 노동자가 내려와 일하고 올라가는 평화공단을 만들어야 해요.”

이공계 출신에게 병역특례를 줘야 한다는 정책은 신선하다. “이공계 기피 현상을 막는 방편으로 젊은이들에게 병역특례를 주는 대신 모병제 중간단계로 가야 합니다. 군인 수를 감축하되 해군력과 공군력 중심으로 국방체계를 전환해야 합니다.”

“본회의장 부수던 때랑 뭐가 다른가?”

그는 이날 아침에도 (답답한 마음에) 가슴이 막 뛰었다고 했다.

“미국이 얼마나 큰 나라입니까. 근데 실업률이 2%밖에 안 돼요. 우리나라 청년 실업률은 최소한 35%에요…. 리쇼어링(re shoring)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미국 제조업 기업들이 생산시설을 본국으로 다 되돌리는 거예요.
더군다나 미국 성장률도 한국 성장률보다 높은 시대를 맞고 있어요. 도대체 이 나라 정치인들과 국회가 뭘 하느냐는 거죠. 재원은 없고, 복지는 해야 하고….

추경을 채권으로 마련하는 나라가 되어버렸어요. 우리나라가 재정이 얼마나 튼튼한 나라였습니까. 제조업의 나라, 성장률의 나라 아닙니까. 수출 강대국의 나라 아닙니까. 그게 다 어디로 가고 미국보다 뒤지는 성장률과 미국의 몇 배되는 실업률을 갖고 있느냐는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 정치인들이 대안을 내놓고 있지 못하고 있는 겁니다.

이제 정말 대통령이든, 야당이든, 정치인 한 사람으로서 뼈아픈 반성을 해야 해요. 당장 우리 국민에게 먹고살길, 일할 자리, 성장할 수 있는 방도, 복지를 충당할 수 있는 재원을 마련해줘야 합니다. 그런데 대통령이 되었다는 사람이 그런 건 안 하고 맨 이상한 인사만 하고…. 국민한테 실의와 좌절만 주고 있지 않습니까. 집권당이든 야당이든 발목잡기, 목살 잡기나 하고. 예전 국회에서 해머로 본회의장 때려 부수던 때랑 뭐가 다릅니까.”

“저라도 북한 지도부 설득하고 싶다”

김 의원의 양미간이 더욱 찌푸려졌다.

“넌더리가 나요. 국민이 볼 때는 이런 거죠. 전쟁 일촉즉발이면서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남북한이 전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담보로 위협과 공갈을 앞세우고 있으니, 원…. 서로가 군비를 경쟁하면서 불장난을 하고 있잖아요. 우리도 그러지 말아야 하고, 저쪽도 그러지 말아야 해요. 이러다 전쟁 터지면 어떻게 할 거냐는 겁니다. 정치권이 위기감이나 긴장, 나라에 대한 걱정과 사랑도 없이 흘러가고 있어요. 국민을 도살 처분해 땅에다 파묻고 싶은 겁니까, 뭡니까.”

- 북한의 전쟁위협을 막기 위해 박근혜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이라고 보나요.

“박근혜 대통령은 미국과 중국과 대화 할 때가 아니고, 최측근을 북한에 파견해야 합니다. 지금이야말로 남북한이 절실하게 대화할 때입니다. 본인이 최측근을 보내기 어려우면, 저라도 보내줬으면 좋겠어요. 저라도 북한 지도부를 설득해보고 싶은 심정입니다.”

- 김정은의 노림수는 뭐라고 보나요.

“이쪽에 대해 미국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본인들이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해서 뭔가를 풀어보려고 하는 겁니다. 자기들은 너무 힘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거죠. 이걸 우리는 다 알고 있지 않습니까. 지금 저들이 하는 건 정상적인 게 아니에요. 정상적이지 않으니까 미친개를 몽둥이로 때린다…? 그런 생각 대신 오죽하면 저들이 저런 생각을 하겠나, 저걸 어떻게든 설득해서 포기하게 하자는 생각을 해야 할 때입니다.

칼 들고 덤비면 누구라도 상처받을 수 있는 거 아닙니까. 그 식칼을 내려놓게 해야지요. 앞서 제가 말씀드린 대로 남한에 북한공단 만들자고 제안하는 겁니다. ‘내가 땅을 줄 거니까 너희가 와서 경작해’, ‘삼천오백만 평을 줄 거니까 너희가 경영해’, ‘땅은 우리 땅이지만 니들이 경영해서 가져가’…. 이러면 왜 그들이 안 하겠어요.”

- 박근혜 정부에게 당부하고 싶은 바가 있나요.

“우리 민주당이 잘못해서 갖다 바쳤잖아요. (사이) 박 대통령이 잘못하면, 부녀가 정치적으로 다 죽는 겁니다. 반대로 박 대통령이 잘하면 부녀가 다 성공하는 거예요. 이는 가문의 문제가 아니라, 나라가 얼마나 융성하고 발전하겠습니까.

역지사지. 야당의 목소리를 존중해야죠. 사회적 약자들부터 자길 비판하는 사람들을 품어야지요. 에이브러햄 링컨, 오바마도 그렇게 했잖아요. 자기를 반대하던 사람들을 동지로 만드는 것보다 더 큰 게 어디 있겠습니까. 정치는 덧셈의 예술입니다. 뺄셈의 정치를 해서는 안 됩니다.”

P.S. 김영환 의원은?

민주통합당 김영환 의원(4선)은 충청도 두메산골에 태어났다. 부모님 두 분 다 무학으로 한글을 겨우 깨치는 정도의 수준이었다. 아버지는 중국집을, 어머니는 메리야스 노점상을 운영했다. 연세대학교 치과대학에 입학할 때는 의사로 성공해 가정을 일으키겠다는 다짐을 했다. 하지만 얼마 안 가 박정희 유신체제의 불합리함을 목격하면서 학생운동에 뛰어들게 된다.

대학 제적 두 번, 20개월간의 감옥 수감,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 정치수배자로 일 년간 도망자 신세로 살았다. 또 전기기술자, 현장노동자, 단순조립공 등의 생활을 하다 이를 형상화한 시를 써서 문단에 등단하기도 했다. 15년 만에 대학 졸업 후 치과 의사로 지내다 1995년 김대중 총재의 권유로 정치권에 입문, 안산 지역구에서 당선됐다. 국민의 정부 당시 최연소 기술부 장관을, 18대 대선에서는 지식경제위원장을 맡았다.

담당업무 : 정치부 기자입니다.
좌우명 : 꿈은 자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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