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각선 ‘다단계 하도급’ 위험 외주화 지적…“제도적 해결 필요” 목소리도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올해 국내 조선소 건조량은 전년 대비 20% 이상 증가할 전망이다. 선박류 수출액 역시 전년보다 10%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올해 조선 시장 예보는 ‘맑음’, 조선 3사의 수주도 순항 중이지만, 자칫 발목을 잡힐 수 있는 암초가 곳곳에 숨어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잔잔한 바다 밑 침잠해 있는 조선업계의 예비 혹은 당면 과제와 그 풀이를 점검해 본다.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권현정 기자]
올해 조선업계에서 중대재해 사망자 13명이 발생한 것으로 집계됐다.
업계와 정부가 대응에 나서고 있지만, 다단계 하도급 구조 등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없다면 땜질식 처방에 그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올해 조선업 중대재해 9건…한화오션은 산안법 위반 적발로 과태료·사법 조처
23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올해 조선업계에서는 중대재해 9건과 이에 따른 사망자 13명이 발생했다. 한화오션 2명, 삼성중공업 1명, HD현대중공업 1명 등이다.
고용부는 각 사업장에 대해 작업중지 명령을 내리고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을 포함한 조사를 벌이고 있다.
특히, 지난 1년간 중대재해로 사망자 3명이 발생한 한화오션에 대해서는 지난 2~3월 특별감독을 실시해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안 여러 건을 적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용부는 한화오션 및 협력사에 대한 과태료 부과, 사법조치 등을 시행할 예정이다. 고용부 관계자는 “과태료 부과는 사전통지가 된 상황이고, 납부 전이다. 아직 (감독이) 진행 중”이라며 “원청, 하청 등 (조사) 대상이 다양하다 보니, 어느 사업장에서 어떤 위반이 발견된 건지 확인하고 정리하는 절차가 오래 걸리고 있다”고 했다.
잇따른 중대재해가 인력 리스크 재점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지난해 10월 이주와 인권연구소가 발표한 '조선업 이주노동자 실태조사 보고서'를 보면, 설문조사에 참여한 외국인 노동자 중 44.3%가 조선소에서 가장 힘든 점으로 ‘위험한 작업환경’을 꼽았다. 지난해 조선소 신규 인력 중 86%는 외국인 근로자로 채워진 것으로 전해진다.
대형 조선사, 정기점검·협력사 지원 등 대응…정부도 중소 조선사 대상 간담회 나서
조선소들은 저마다 대응에 나서고 있다.
한화오션은 지난 3월 노르웨이 DNV 선급과 손잡고 국제안전경영시스템 평가를 추진한다고 밝혔다. 전체 사업장에 대해 사전평가를 거쳐, 이를 바탕으로 향후 5년간 안전시스템 강화에 나선다는 게 골자다. 지난해 안전·보건·환경(HSE) 경영방침을 개정하고, 이를 7개국 언어로 번역해 생산현장에 배포하기도 했다.
HD현대 조선 3사는 정기 안전점검, 작업 전 안전 미팅(TBM) 등을 통해 사고 예방에 나서고 있다. 사내 협력사 안전관리자 지원 강화, 사외 협력사 대상 최고안전책임자(CSO) 파견 교육 등 협력사의 안전보건 역량 확보를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삼성중공업은 매 분기 산업안전보건위원회를 열고 있다.
정부 역시 지난 4월 고용부·안전공단·8개 조선사 구성의 안전보건협의체를 출범, 조선사 합동점검을 기획하는 등 리스크 가능성에 대비하고 있다.
특히, 중소 조선사의 안전 확보 역량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만큼, 지난 21일부터는 '중소 조선사 사업주 간담회', 중소 조선사 사업주 및 안전 담당자 대상 긴급 안전보건교육 등도 진행 중이다.
‘다단계 하도급’ 고용구조, 숙련공 밀어내 안전문제로…“제도적 지원 필요”
교육 및 지원 강화만으론 충분하지 않다. 조선업계의 다단계 하도급 고용구조 등의 본질적 문제를 파고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국내 조선업계 생산공정 대부분은 1차 하청인 사내하청, 2차 하청인 ‘물량 팀’ 등이 담당하고 있다.
물량팀은 프로젝트 단위로 생겼다가 해체되는 방식으로 운영되는데, 사내하청보다 임금이 높다. 이에 따라 숙련공은 물량팀으로 유출되고, 물량팀은 다른 업종으로 유출되고, 그 자리를 비숙련공이 채우고 하다 보니 전반적인 안전보건 역량이 떨어지면서 사고가 나는 악순환이 발생한다는 것.
실제 고용부 집계에서, 지난 2007년부터 2017년 9월까지 조선업에서 발생한 324명의 사망자 중 하청노동자 비율은 전체의 79.3%(257명)로 나타났다.
대형 조선사에 비해 부족한 중소 조선사의 안전보건 역량 등도 해소해야 할 과제로 꼽힌다.
업계는 물량팀 금지 등을 골자로 한 조선산업기본법을 제안하는 등 방안 마련에 나서고 있다. 변광용 전 거제시장 지난 총선에서 조선산업기본법의 제정을 공약으로 내세우는 등 정치권도 반응하는 모습이다. 다만, 아직까지는 업계 논의에 그치고 있다.
정흥준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인력 구성이 다단계 하도급 방식으로 이뤄져 있는데, (하도급 소속 노동자들은) 일터를 옮겨가면서 일한다. 일의 경험이 오래되더라도 공간이 새로워지면 사고가 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조선산업기본법처럼 안전 역량 확보, 숙련공 양성 등 산업 전반에 체계를 만들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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