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극 구조 깨지 않는 한 잠재력 추락
'보호법’ 추진, 野 적극 협력을
거대 노조도 기득권 버리고 개혁 협조할 때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이병도 주필]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해소는 노동개혁의 핵심이다. 노동시장 양극화는 임금과 소득의 양극화로 이어지고, 이는 계층 양극화로 확대돼 민주주의의 위기까지 초래할 수 있다.
한국 경제의 성장 잠재력 저하와 소득 양극화의 근본 원인으로 지목돼온 실로 중차대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국제통화기금(IMF)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도 ‘한국이 생산성을 근본적으로 높히려면 노동시장 이중 구조를 해소해야 한다’고 줄곧 지적해왔다.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국가적 과제”라는 윤석열 대통령의 최근 인식도 옳다.
기득권층과 취약계층으로 극명하게 이분화된 노동시장 구조, 임금·근로조건이 월등한 귀족 노조가 비정규직 등 노동 약자 위에 군림하는 그 견고한 구조를 깨지 않는 한 노동 취약층 양산은 막을 수 없다. 총선 전후로 동력이 떨어진 노동개혁에 더욱 박차를 가해야 하는 이유다.
법정 유급휴일인 지난 1일 근로자의 날에 양대 노총은 대규모 집회를 열었다. 하지만 노조에 소속돼 있지 않거나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닌 플랫폼 종사자 등은 대부분 평소처럼 일해야 했다. 근로자 노고를 위로하는 잔치에 가장 취약한 노동약자는 초대받지도 못한 셈이다. 2022년 노조 조직률은 13.1%에 불과하다. 노동자 대부분을 차지하는 87%의 노조 없는 노동자를 위해 정부가 더 많은 정책을 고민해야 할 때다.
노동약자들은 배달, 대리운전, 택배기사 등 플랫폼 종사자 및 근로형태 변화와 함께 등장한 특수형태근로 종사자 등이다. 이들은 양대 노총의 도움을 받는 정규직 노동자들과 달리 교통사고 위험에도 불구하고 비싼 보험료 때문에 보험 가입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시간제 근로형태가 많아 적절한 휴식도 취하지 못하는 등 열악한 근로환경에 놓인 사람들이다.
‘노동약자’는 여기에만 머물지 않는다. 대기업 근로자 평균소득(2022년 기준)은 월 591만 원으로 중소기업(286만 원)의 두 배가 넘는다. 더구나 대기업과 중소기업 근로자 간 보수 격차는 20대 후반 1.6배에서 50대 초반 2.5배로 갈수록 커진다. 노동시장 간 이동도 자유롭지 못하다. 모두 대기업 노조가 생산성 향상 없는 호봉제 구조 등 높은 기득권 울타리를 쳐놓은 탓이다.
이로 인해 인건비 부담이 커진 기업은 정규직 대신 비정규직을 채용해 비슷한 업무를 맡기면서 낮은 임금을 주는 방식으로 노조 요구에 의한 임금 인상분을 흡수해야 했다. 이렇게 노동시장 불평등이 고착화해 이례적으로 많은 노동 분쟁과 파업 사태를 불러온 것이다. 거대 노조의 비호를 받는 12%의 대기업·정규직이 88%의 중소기업·비정규직 근로자를 제물 삼아 특권적 혜택을 누리는 지금 같은 상황은 공정하지도, 지속 가능하지도 않다.
따라서 거대 양대 노조의 압박으로 인해 대기업 정규직 일자리에 특권적 혜택이 부여되고 있는 현재의 구조를 타파하지 않는 한 노동시장 이중 구조 개혁은 요원하다. 무엇보다 대기업·정규직의 ‘철밥통’을 지키는 데 골몰해왔던 거대 강성 노조가 국가의 미래를 생각해 기득권을 버리는 것이 중요하다. 정부도 강력한 개혁 의지를 가져야 하지만 비정규직 차별 철폐를 위한 노사정의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정부와 노사는 사회적 대화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를 통해 노동시장 유연화와 이중 구조 개선을 위한 대타협에 나서야 할 것이다. 4·10 총선에서 압승한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도 국정을 함께 책임진다는 자세로 노동시장 이중 구조 개혁을 뒷받침해야 한다.
우선, 정부가 현재 검토중인 법안에는 미조직 근로자들이 질병, 상해, 실업을 겪었을 때 경제적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공제회 설치를 지원하고, 노동약자들이 분쟁을 조속히 해결하고 제대로 보호받을 수 있도록 분쟁 조정협의회 설치도 담길 것으로 보인다. 노동약자를 위한 표준계약서와 노조에 가입되지 않은 미조직 근로자의 권익보호 및 증진을 위한 재정지원 사업의 법적 근거도 포함될 것으로 관측된다.
입법은 서두르되, 사각지대가 없도록 촘촘한 보완이 필요하다. 거대 야당의 협조가 절실함을 거듭 강조한다. 노동약자에 대한 부당한 처우개선은 노동계의 요구사안이다. 반대 명분이 없는 만큼 법안 처리에 협조해야 한다. 행여 ‘노란봉투법’ 등 포퓰리즘 입법과 연계하려는 속셈은 접는 게 옳다.
윤 대통령이 임기 중 설치법안을 준비하라고 한 노동법원 설치는 노동계의 숙원사업이자 야당에서도 그동안 입법을 추진해 온 사안이다. 노동법원은 재원 마련은 물론 노동사건 범위 조정 등 사법체계 변화가 필요해 사법부 협조도 중요하다. 사용자와 근로자가 함께 성장해 상생하듯 노동약자를 위한 개혁에 야당과 사법부도 동참해 진정한 노동 개혁이 되기를 바란다.
이병도는…
부산고·서강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 1979년 동양통신 정치부 기자로 출발한 후 연합뉴스 정치·경제·외신부 기자·차장, YTN 차장, 평화방송(PBC) 정경부장, 가톨릭 출판사 편집주간을 지냈다. 연합뉴스 재직 중에는 한국기자협회 부회장으로 일했고, '홍콩 유령바이어 사기사건' 보도로 특종상을 수상했다. 일본 FOREIGN PRESS CENTER 초청으로 자민당을 연구했고, 남북회담 취재차 평양을 방문했다. 저서로는 <6공해제(解題)>,<YS 대권전쟁>,<최후의 승자>,<영원한 승부사>,<대한민국 60년> 등이 있다. 평소 역사주의와 세계주의를 기준으로 한 집필 경향을 보여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