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조찬옥 (사) 민주화추진협의회 사무총장]
오늘날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공존하는 한국사회의 갈등 키워드는 불평등이다. 경쟁과 평등이라는 갈림길에 놓인 사회적 불평등은 한국경제가 고도의 성장을 거치면서 지난 수십 년간 고착해온 고질적 폐단이 되고 있다. 특히 산업, 금융, 노동, 교육 등 각 분야의 경제적 불평등은 분배구조 개선을 위한 방향타를 요구하고 있다.
지난 역사를 통해 배웠듯 1929년 대 공항 시대의 불평등의 탈출로는 뉴딜정책이었다. 경제적 불평등과 소득의양극화 문제는 필연적으로 나타나고 경제적 불균형은 부의 불균형과 소득의 불균형이란 측면을 보이고 있다. 경제학의 이런 변화는 불공평이 심화돼 사회문제가 된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불평등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언제나 중요한 사회적 갈등의 요인이 되고 있다. 그래서 경제사회정책의 가장 중요한 주제가운데 하나였다. 하지만 현재의 불평등은 이미 일상화된 만성적 질병수준에서 다뤄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 국민 4명 중 3명은 우리나라 불평등과 불균형이 매우 심각하다고 여기고 있다.
부의 불균형
대한민국에서 부의 불평등과 불균형이 얼마나 심각한지 물었더니 응답자의 75%가 심각하거나 매우 심각하다고 답했다고 한다. 요즘 MZ 세대가 불평등한 사회에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이유는 간단명료하다. 어릴 때 열심히 공부를 하라고 해서 공부하고 대학에 안가면 사람취급 못 받는다고 해서 대학에 가고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하려면 각종 자격증 준비를 하는데 취업은 사막에서 바늘 찾기보다 어렵고 간신히 취업을 해도 연봉은 보잘 것 없다.
여기에 결혼을 하려고 하면 집값은 하늘만큼 높아 자동으로 연애포기 결혼포기 내 집 마련 포기 출산포기 등으로 박탈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 오늘날 MZ 세대들의 공통적인 현실이다. 이러한 문제는 MZ 세대들만이 격고 있는 문제가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대부분의 세대가 격고 있는 보편적인 문제가 되었다.
이는 우리사회가 부조리하고 불평등한 사회라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세상이 원래 불평등하다는 것을 인정하라는 빌 게이츠의 말이 생각난다. 그의 말대로 우리는 정망 불평등하고 불공정을 받아들여야 할까 의문이 생기면서 이제 우리는 불평등하고 불공정을 받아들여야 한다. 오늘날 시대에 때어날 때 가난한 것은 잘못이 아니지만 죽을 때 가난한 것은 본인의 잘못이라는 빌 게이츠가 의도를 가지고 한 이 말을 의미해볼 필요가 있다. 영국의 사회학자 리처드 윌킨슨은 불평등한 사회일수록 고소득자들은 우월감을 느끼고 저소득 자들은 자신을 가치 없는 사람이라 여기고 있다.
불평등과 자수성가를 모두 경험한 키스 페인은 자신의 저서 부러진 사다리에서 가난하고 불평등하면 사람의 마음도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다고 경종을 울렸다. 이제 불평등에 대한 인식은 마지노선을 넘어 우리사회에 아노미(사회규범의 동요 이완 붕괴 등으로 일어나는 혼돈 상태)현상과 불안정을 초래할 수 있다고 했다.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사상가이며 교육자 장자크 루소는 1775년에 발표한 인간 불평등 기원이란 논문에서 인간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불평등의 원인이 소유의 개념에서 시작되었다고 했다.
이 논문은 또 다른 저서 사회개악논의 이론의 기초가 되었고 인간 불평등의 원인을 보다 근원적인 시각에서 밝혀냈다는 것에 의미가 깊다. 불평등이 심할수록 우리사회는 사소한 일에도 분노하게 되고 구조적 문제에 분노하기보다 꼴찌가 되지 않기에 분노한다는 사실이다. 또 다른 20세기 철학자 존 롤스는 우리사회는 약간 또는 전적으로 불평등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존 롤스는 불평등을 인정하자고 했다.
21세기 자본
자본주의는 빈부격차를 인정하기 때문(불평등을 인정하지 않고 모두가 평등해야 한다고 주장한 마르크스의 철학은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권력자는 결국 부의 분배를 하지 않고 독점을 하게 된다.)이란 불평등을 방관하자고 주장한 것은 아니다. 롤스는 가장 불리한 여건에 있는 자에게 불평등을 보장할 만한 이득을 주어야 한다고 했다.
이러한 담론은 존 롤스가 정의론에서 시작되었고 마이클 샌덜의 정의란 무엇인가를 통해 지금까지도 우리사회에서 크게 유행되었고 이 시대의 담론으로 자리 잡고 있다. 정의라는 담론은 공정 공평에 대한 역사적 축소의 산물이 되었다. 프랑스 대 혁명을 거치면서 시민혁명의 핵심가치는 자유와 평등이었다. 이후 자본주의가 정착하면서 자유는 우선가치로 자리를 잡았고 평등은 형식적 평등과 실질적 평등으로 갈라지게 되었다. 이로써 자본주의에서 평등은 법 앞의 평등 기회의 균등이라는 형식적 평등사상으로 축소되고 그 결과는 심각한 불공평으로 이어졌다.
21세기 자본이란 내용으로 2014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프랑스의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는 자본의 수익률이란 그 자본을 현재 소유한/할 최상위 계층에게 막대한 부와 자본이 집중된다는 것이 그가 주장한 목소리였다. 1945-1975년 이후 자본에 대한 불평등이 심화되었고 이는 21세기 내내 지속될 것이라 하였다. 피케티가 통찰한대로 부의 분배의 역사는 언제나 매우 정치적인 것이기에 순전히 경제적인 메카니즘으로 환원될 수는 없는 것이다.
근본적으로 자본의 수익률이 경제성장률보다 늘 크기 때문에 소득수준별로 누진적인 글로 벌 자본세를 획기적으로 증대하여 부과하는 등 이를 상쇄할 공공정책이나 제도를 집행하지 않는 한 불평등은 심화한다고 하였다. 하지만 피케트의 분석만으로는 부족하여 이를 바탕으로 1970년대 이후 자본주의수익률을 경제성장보다 큰 폭으로 늘린 주범을 찾아야 한다고 하였다. 그 주범은 바로 신자유주의 체제와 자본가 국가를 중심으로 한 지배동맹이었다.
신자유주의 체제는 자본주의 체제의 야만을 제한하던 거의 모든 제도를 규제혁파라는 이름으로 제거하였다. 가난한 서민과 노동자들의 탄압을 막던 법과 규정들이 풀리자 이들은 자본의 야만에 무방비상태가 되었다. 신자유주의 체제는 자본주의 체제의 야만을 제거하던 거의 모든 제도를 규제혁파라는 이름으로 제거하였다.
이 체제는 자본의 유연성이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비정규직을 양산하였다. 자본주의체제 특히 신자유주의체제 이후 자본=국가=보수언론-사법부=종교권력층=전문가 집단과 어용지식인으로 형성된 기득권 동맹이 견고하게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에 국가는 자본의 강탈과 시기를 견제하기는커녕 이를 방조하고 제도적으로 지원하여 때로 자본의 면에서 노동자들에게 폭력을 가하기도 하였다.
양극화의 문제
이미 세계 불평등이라는 보고서가 2018이라는 책으로 나온 이유가 무어라 기록으로 차마 남기지 못 할 수준의 몇 십여 개국의 경제지표를 철저히 분석해서 각 국가의 소득분배 불평등을 확인시켜준 사실이 있다. 세계적인 경제학자 2008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폴 크루그먼 미 시립 대 경제학교수는 부의분배는 상상보다 훨씬 불평등할 수가 있다고 하였다.
또한 양극화는 1980년대 이후 세계 경제성장은 전 세계 신흥 중산층에 막대한 이익을 만들어 주는 경제사적으로 가장 훌륭한 업적을 만들어냈다. 이러한 경제성장 이면에는 양극화와 같은 문제가 발생을 했고 부의 분배는 우리들의 상상보다 훨씬 불평등할 수 있다고 하였다. 폴 크루그먼 교수는 한국 역시 대단한 경제성장을 이미 거두 워고 부의 분배를 통해 생활이 개선되었지만 현재(평등정도)는 과거와 같은 수준이 아니며 이런 현상은 당연히 긍정적이지 않아 발전 공유하는 사회로 가야한다고 지적하였다.
그리고 양극화는 사회정치적으로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오는데 미국이 그 선봉에 서있다며 미국정부를 우회적으로 비판하기도 하였다. 크루그먼 교수는 양극화를 해결할 방법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한 답은 아무도 모른다며 다만 분명한 사실은 극빈층을 글로벌 경제에 편입시키지 않는다면 문제가 더 커진다는 것이었다.
부의 불평등은 경제변수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사회적 변수에도 영향을 미치며 국내는 물론 대외경제변수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대한민국 순자산 상위 10% 가구가 전체의 58.5%를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자산이 소득보다 경제적 불평등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노력만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원칙이 무너진 사회, 부의 대물림으로 불평등이 심화되고 돈을 가질수록 권력이 증가한다는 인식이 강해져 대부분 92.2%의 부가 대물림되고 있다고 느끼고 있다. 우려가 되는 부분은 돈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그 영향력이 큰 반면 부를 축적할 수 있는 성공의 기회는 매우 제한적이라는 사실이다.
대한민국은 노력만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나라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29%이었고, 개인의 능력에 따라 모두가 부자가 될 수 있는 사회라고 생각하는 숫자는 21%에 불과하며, 가난한 사람들도 열심히 일을 하면 상류층이 될 수 있는 사회라고 인식하는 사람들은 13.6%이고, 당연히 일만 열심히 하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기대감은 13% 뿐이라고 한다. 결코 우리나라는 계층상승의 꿈을 가질 수 있는 사회가 아니라는 것이다.
부잣집에 때어나면 별다른 노력 없이도 부모의 재산을 물려받아 계속 부자로 살아가고 가난한 집안에서 때어났다는 이유만으로 개인의 잠재력과 무관하게 평생을 가난 속에 살아야 할 운명을 짊어지는 경우도 수없이 보고 듣는다. 소득불평등이 높을수록 적대감, 인종적 편견이 심하고 여성의 지위도 낮아진다. 그렇다면 불평등은 언제부터 심화되어 왔을까?
인간이 사회를 만들기 시작한 수 만 년전 일까? 아니면 그때는 평등한 세상이었을까? 인간의 욕심은 더욱더 많은 무언가를 원하게 되고 그 욕심에 의해 인간세상이 발전해 왔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불평등을 야기하게 되고 사회적 문제를 만들게 되었다. 이러한 문제를 적나하게 파헤친 불평등의 대가의 저자이며 2011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조지프 스티클리츠가 신자유주의의 역린인 시장실패를 집중적으로 비판하였다.
정치시스템의 과제
조지프 스티클리츠는 불평등의 책임을 정치시스템에 돌리고 있다. 현대경제에서 정부가 게임의 규칙을 정하고 있기 때문이며 정부는 무엇이 공정한 경쟁이고 무엇이 경쟁을 저해하는 불법적인 행위인지 결정하기 때문이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불평등은 꾸준히 증가해왔고 금융위기와 대침체를 통해 최근 몇 년 사이 불평등은 더 이상 간과할 수 없을 만큼 심각해졌다고 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불평등을 완전히 제거할 수는 없지만 완화할 수는 있다고 한다. 그래서 불평등이 사회에 해로운 이유는 단지 그것이 윤리적으로 올바르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무엇보다 불평등은 비효율적이기 때문이다. 부유층은 상위 1%의 사익이 나머지 99%의 이익이 된다는 관념을 심어주기 위해 자신들이 가진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중산층과 빈민층을 설득하고 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우리사회에 만연해 있는 부의 불평등을 조금이나마 해결하기 위해서는 고액소득자들에 대한 세금인상에 따른 세금징수가 절대 필요하고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임금격차 해소와 양질의 일자리, 비정규직 정규직을 늘려나가는 정책을 시행해야 부의 불평등이 조금이나마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스티클리츠는 오늘날 불평등이 얼마나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는지 그리고 이러한 불평등이 초래한 방식이 어떻게 경제성장을 저해하고 효율성을 떨어뜨리고 있는지를 명료하게 밝히고 있다.
불평등은 진공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시장의 힘과 권모술수의 상호작용을 하는 가운데 생겨난다고 보았다. 불평등은 자본주의가 낳은 문제라기보다 20세기 민주주의가 낳은 문제라고 한다. 수익은 개인이 차지하지만 손실은 사회에 떠넘기는 짝뚱 자본주의와 불안전한 민주주의가 상호작용을 일으켜 난치상태의 불평등을 불러온 것이다.
스티글리츠가 지적한대로 경제 불평등은 정치 불평등을 낳았고 반대로 정치 불평등은 경제 불평등을 더욱 심회시키는 과정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오죽했으면 소득양극화 소득불평등을 조금이나마 완화시키기 위해 시장자본주의 옹호론자였던 국제 통화기금(IMF)에서도 부자증세를 통한 소득불평등 완화에 동조하는 의견을 내놓는 등 이전과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IMF는 갈수록 벌어지는 소득격차가 성장을 저해할 수 있다면서 이를 타계하기 위해 부동산 과세 등 부자증세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권고하고 있다. IMF는 또 연금지급 연령을 높이고 소비세보다 소득세 인상이 더 효과적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와 관련 과세와 재정지출 정책이 소득불균형 개선에 효과적인 것으로 분석되었다면서 한 예로 이를 통해 선진국의 소득격차가 평균 3분의1이 감소되었다고 강조했다.
이어 여전히 성장에 초점을 맞추면서(소득)불균형을 외면하는 것은 실수라면서 윤리적인 측면만 아니라 성장자체를 낮추고 덜 지속적으로 맞출 수 있기 때문이라고 경고하였다. 그래서 한국사회는 소수만이 승자가 될 수 있는 경쟁이 아닌 모두가 누릴 수 있는 행복의 가치를 존중해야 한다. 먼 훗날 남들이 부러워하는 부자가 되어 좋은 집에 살고 좋은 차를 타며 행복하겠다는 희망이 아니라 지금 내가 선 바로 이 자리에서 소박하나마 가족 이웃과 함께 누리는 소소한 행복이 누구에게나 폄하되지 않고 존중되는 그런 사회가 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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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찬옥은…
故김대중 전 대통령 사단인 동교동계 소속으로 현재는 사단법인 민주화추진협의회 사무총장을 역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