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美 문화원 점거 농성 사건’, 5·18 광주 항쟁 공론화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김자영 기자]
오는 4·10 총선에서 주목되는 곳 중 하나는 정청래 대 함운경 대결이 펼쳐지는 서울 마포을이다. 두 사람의 대결은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취임 초부터 공언한 ‘86 운동권 청산’ 프레임에 맞춘 운동권 매치로 해석된다.
함 회장은 전국학생총연합(전학련)의 하부조직인 서울대 삼민투(민족통일·민주쟁취·민중해방 투쟁위원회의) 위원장 출신으로, 1985년 5월 미국 문화원 점거 농성을 주도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이 사건으로 그는 징역 6년 6개월을 살았다. 강성 운동권 학생이었던 셈이다.
국민의힘은 함운경 민주화운동동지회 회장을 전략공천하며 “민주화운동동지회를 결성해 운동권 정치 해악을 해소하는데 헌신하고 있는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함 회장과 정청래 의원 매치가 성사되며, 미문화원 사건과 민주당 정청래 의원이 1989년 10월 학생 운동 시절 가담한 서울 정동 주한미대사관저 방화 미수 사건이 대조되기도 했다.
‘서울 미문화원 점거 사건’은 1985년 5월 23~26일 나흘간 서울 지역 5개 대학 학생 73명이 서울 미문화원을 기습 점거한 일을 말한다. 1985년 2·12 총선에서 김영삼·김대중의 신민당이 돌풍을 일으키는 등 시민들의 민주화 요구가 밖으로 표출되던 때였다. 미문화원을 점거한 학생들은 ‘광주사태 진상규명’ ‘미국의 공개 사죄’ ‘국정조사권’ 등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다.
학생들이 뿌린 유인물은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글’이란 제목으로 돼 있다. 이 유인물은 “우리들은 전국학생총연합(약칭 전학련) 광주사태위원회이다”라면서 “이 단체는 지난 80년 5월 광주민중항쟁의 굴절된 역사적 의의를 재조명하고 그 진상을 밝힘과 동시에 당시 사태 책임자들의 정체를 폭로하고 우리나라의 민주화와 민족화합의 밑거름이 되고자 결성됐다”고 주장했다.
이 유인물에서 학생들은 △광주사태 진상과 그 책임자는 명백히 국민 앞에 공개돼야 한다 △광주사태 주모자와 관련자들은 책임을 져라 △광주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미국은 한국민 앞에 정중히 사죄하라 △신민당은 국정조사권을 발동하고 광주사태진상규명위원회를 즉각 구성하라고 주장했다.
- 1985년 5월 23일 자 <동아일보> ‘30여 명 도서실서 미문화원 2층에 바리케이드’
함 회장이 2019년 5월 23일 <시사오늘>과 가진 인터뷰에 따르면 삼민투를 비롯한 투쟁위원회는 감옥 갈 사람 순번을 정해놓았는데, 희생을 자처하는 이들이 상당히 많았다고 한다. 그는 중심에서 사건을 추진한 것에 대해 “순서대로 고르다 보니 나한테도 기회가 온 거였다. 나 역시 그런 걸 불사하겠다고 생각한 사람 중 한 명이었다”고 전했다.
점거 장소로 미 문화원을 택한 이유와 관련해 “상징적 효과가 크고 점거하기 쉽다 보니 그리됐다. 점거하기 용이한 반면 독재정권이 가장 취약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건들 수 있는 곳이었다. 전두환 정권이 상당히 당황할 수 있다고 봤고, 정치적 파장으로 볼 때도 5·18 진상 규명을 분출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실제론 ‘반미 시위’ 성격보다 정치적 파장을 고려했다는 것.
학생들은 약 72시간 만인 5월 26일 자발적으로 미문화원에서 나왔다.
서울 미문화원 도서관을 점거, 농성을 벌여온 서울 시내 5개 대학생 72명은 26일 낮 12시 6분 만72시간 만에 농성을 풀고 미문화원을 나왔다. (중략) 삼민투위 소속인 이들 학생들은 농성을 풀기에 앞서 △미 행정부에 드리는 글 △제반민주화세력에 드리는 글 △백만학도에 드리는 글 그리고 △신민당에 다시 촉구한다는 등 4개 성명서를 발표했다.
학생들은 제반 민주화 세력에 드리는 글에서 미국 측이 불성실한 태도로 일관, 우리들의 요구를 거부했고 농성을 통한 대화는 문제해결을 위해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보다 강고한 투쟁을 위해 농성을 풀기로 했다고 밝혔다.
학생들은 ‘미 행정부에 드리는 글’에서 미국은 광주사태를 지원한 사실을 인정, 사과하고 현 정권에 대한 지원도 중단하라고 주장한 뒤 이제 미국은 제3세계 정권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학생들은 이 글에서 “시종일관 평화적인 방법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으나 미국 측의 불성실한 태도로 농성의 한계를 느낀 데다 27일 있을 남북적십자회담을 고려해 농성을 풀기로 했다”고 말했다.
- 1985년 5월 26일 자 <조선일보> ‘미문화원 농성 풀렸다’
함운경 당시 서울대 삼민투 위원장을 비롯해, 고려대 이정훈 삼민투 위원장 등 25명이 구속됐다. 해당 사건은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공론화하는 데 기여했다. 그전까지는 광주에서 있었던 일을 언급하거나 언론에 보도하기 극히 어려운 환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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