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투업계선 SG증권發 투자자 보호제도 미비 논란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고수현, 박준우 기자)
우리는 지금 신용사회에서 살고 있다.
개인신용점수를 바탕으로 금융권에서 돈을 빌려 생활자금이나 사업자금으로도 쓸 수 있다. 이를 통해 절약한 개인자산을 재테크에 투자하는 소위 ‘빚테크’ 행태도 이제는 자연스런 현상으로 받아들여진다.
이는 비단 개인 뿐만이 아니다. 기업들 역시 빚을 내 확보한 자금을 바탕으로 사업을 확장하거나 일시적인 현금 유동성 문제를 해결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같은 ‘빚 권하는 사회’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특히, 지금의 고금리, 고물가 시기에는 그 위험성이 더욱 크다. 돈을 빌린 이들이 파산한다면 금융사 역시 위험할 수 밖에 없다. 과거 신용카드 사태는 물론, 최근 증권업계에서 불거진 SG증권발(發) CFD 사태도 어찌보면 신용거래의 위험성을 대변하는 사례들이다.
<시사오늘>은 금융권 전반에 걸쳐 신용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살펴봤다.
은행업권, 중소기업·가계대출 모두 ‘적신호’
고금리 직격탄을 맞은 건 중소기업들이다. 그야말로 곳곳에서 곡소리가 나온다. 중소기업의 유동성 위기 파편은 지역은행에도 날아들었다. 일반 시중은행보다 중소기업 대출 비중이 높은 상황에 차주들이 유동성 위기를 겪으면서 리스크가 확대됐기 때문이다.
3대 지역금융지주(BNK금융, JB금융, DGB금융) 자료에 따르면 올 1분기 연체율과 고정이하여신(NPL) 비율이 모두 큰 폭으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먼저 BNK금융지주는 올 1분기 NPL 비율과 연체율이 각각 0.52%, 0.56%를 기록했다. 이는 직전분기(2022년 4분기) 대비 각각 0.07%포인트, 0.16%포인트 늘어난 수치다.
JB금융지주의 경우 NPL 비율과 연체율이 각각 0.84%, 0.88%로 나타났다. 직전분기와 비교하면 각각 0.22%포인트, 0.30%포인트 늘어난 것이다.
DGB금융지주는 3대 지역금융지주 중 가장 높은 NPL 비율과 연체율을 보였다. 올 1분기 연체율은 무려 1.03%에 달한다. 직전분기엔 0.95%를 기록한 바 있다. 연체율 역시 1%대 진입을 바라보고 있다. 특히, 지난해 4분기 0.61%였던 연체율은 올 1분기 0.35%포인트 급증하면서 0.96%를 나타냈다.
이들 금융지주 계열 지방은행들의 중소기업 대출은 전체 대출 사업 포트폴리오의 40%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전체 대출 가운데 절반 가까이가 중소기업 대출에 집중돼 있다는 말이다.
즉, 지방금융지주의 NPL 비율과 연체율 증가는 곧 국내 중소기업들 가운데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회사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신호로 해석할 수 있다.
가계대출이라고 상황이 좋은 건 아니다. 최근 신규 가계대출이 급격하게 증가하면서 부실 확대 우려 역시 덩달아 커지고 있다.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우리·하나·NH농협)의 4월 신규 가계대출 취급액은 15조 3717억 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약 70%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지난 3월에도 신규 가계대출 취급액은 18조 4028억 원으로 전년 대비 80% 가까이 증가한 바 있다.
가계대출 증가세는 주택담보대출(전세자금대출 포함)이 견인했다. 실제로 4월 기준 주담대는 13조 7888억 원으로 전년 동기 7조 8536억 원 대비 76% 증가했다.
주담대 증가는 한국은행 기준금리보다 코픽스(COFIX) 금리가 낮아지면서 상대적으로 대출 문턱이 지난해보다 낮아졌기 때문이다. 이처럼 주담대를 중심으로 가계부채가 다시 증가세를 보이자 금융 전문가들은 예상치 못한 대외적 충격 발생 시 대규모 부실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실제로 가계대출 연체율도 높아지고 있다.
금융감독원 자료에 따르면 2월 말 국내은행 원화대출 중 가계대출 연체율은 0.32%로 전월 말 대비 0.04%포인트 증가했다. 대출 유형별로 보면 주담대 연체율은 0.20%, 주담대를 제외한 신용대출 등의 연체율은 무려 0.64%로, 각각 전월말 대비 0.02%포인트, 0.09%포인트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금융연구원 김현열 연구위원은 ‘금리 상승에 따른 차주의 이자상환부담과 소비의 변화’ 보고서를 통해 “지난해까지 이어진 금리 상승의 여파는 시차를 두고 올해 가계대출 금리에 반영될 전망”이라면서 “이자상환부담 증가로 인한 소비 제약은 특히 자영업자 및 저연령층에게 크게 나타날 것으로 예상되므로, 해당 계층의 소비 여력과 상환능력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해당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말 기준으로 금리 1%포인트 인상은 평균적으로 차주의 DSR을 1.94%포인트 상승시키는 것으로 추정된다.
우려가 현실화되지 않기 위해 은행업권은 나름대로 대비를 하고 있다.
고금리로 인해 일시적인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금융 취약계층을 위해 ‘상생금융’이라는 이름으로 은행업권이 금융지원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건 가계대출 부실을 맡고 연착륙을 지원하기 위해서다. 아울러 시중은행들은 대손충당금을 추가로 적립하며 리스크 확대에 대응하고 있다.
문제는 올해 정점을 찍은 한국은행 기준금리가 내년 초까지는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특히, 기업의 경우 이번 고금리 시기를 계기로 부실기업 정리를 통해 근본적인 한국경제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실적부진으로 이자비용조차 내지 못하는 부실기업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저금리 시절 포트폴리오 다각화 등을 통한 영업이익 개선보다는 대출을 통해 유동성 위기를 벗어났던 기업이 많았다는 방증이다.
금융감독원이 지난해 말 발표한 ‘2022년 정기신용위험 평가’ 자료에 따르면 2022년 부실증후기업은 185곳으로 나타났다. 이는 전년 대비 25개 늘어난 것이다.
금융전문가들은 지금의 글로벌 금융위기 상황이 저금리 시대에 연명하던 부실기업들을 정리할 적기라고 말한다.
신영증권 김학균 리서치센터장도 한국의 경제가 미국보다 고금리에 취약할 수 밖에 없는 구조라면서 장기적인 과제로 기업 구조조정 등을 언급했다.
그는 지난해 말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자금경색 지속에 따른 금융시장상황 점검 및 향후 대응 방향 토론회’에서 “2022년 3분기 기준 상장 제조업체의 34.5%가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못 내는 상황”이라며 “앞서 저금리 장기화에 따른 구조조정 지연이 부실 종목을 늘리는 결과를 가지고 왔다”고 꼬집었다.
김 센터장은 유동성 공급과 관련해 “필요시 구제금융을 하더라도 유동성에 문제가 있는 기관에 지원을 할 시 책임을 물어 굉장히 높은 패널티를 줘야한다”고 덧붙였다.
카드업권, 카드론·리볼빙…신불자의 그림자
여신업권, 그 중에서도 카드업계는 한국 신용사회의 단면을 전적으로 보여준다. 과거 신용카드 사태부터 카드업계 새 먹거리로 자리잡은 리볼빙까지, 카드업권은 개인신용불량자를 양성한다는 오명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아버지는 말하셨지~ 인생을 즐겨라~”
과거 현대카드의 광고는 중독성 있는 멜로디와 재치있는 가사를 갖춘 광고음악으로 인기를 끌었지만, 무분별한 소비를 조장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카드업계와 신용을 연결하면 빼놓을 수 없는 사건이 바로 2002년 ‘신용카드 사태’다. 전국민을 신용불량자 위기로 몰아넣은 신용카드 사태는 신용사회에서 무분별한 소비 조장이 어떻게 파국으로 치닫게 하는 지를 노골적으로 보여준다.
신용카드 사태가 터진 건 2002년과 2003년 사이지만, 위험 신호는 이전부터 끊임없이 있어왔다. 당시 금융전문가들은 무분별한 신용카드 발급과 12개월을 초과하는 초장기 할부가 과소비를 조장하고 이로 인해 신불자를 양성할 우려가 있다고 경고해왔다.
그러나 카드업계는 부실채권 등 리스크 관리보다는 수익성과 점유율 확보에만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무분별한 카드 발급, 과소비 조장 등은 결국 가계 부실 확대와 신용불량자 양산으로 이어졌고 곧 카드업계에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부실채권을 감당하지 못한 카드사들이 우후죽순 무너진 것이다. LG그룹의 LG카드가 부도 위기에 내몰렸던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 LG카드는 국내 최초로 국내 이용고객수 1000만 명을 돌파하는 기염을 토해냈지만, 사실 무분별한 신용카드 발급이 그 배경으로 꼽힌다.
최근에도 카드업권에서는 신용카드 연체율이 높아지면서 신용경색 위기론이 나오고 있다.
올해 1분기 전업 카드사들의 연체율을 살펴보면 현대카드를 제외한 모든 카드사들이 1%대로 진입했다. 롯데카드가 1.49%로 가장 높은 연체율을 보였으며 카드업계 1위인 신한카드(1.37%)가 그 뒤를 이었다. 이어 우리카드(1.35%), KB국민카드(1.19%), 하나카드(1.14%), 삼성카드(1.10%), 현대카드(0.95%) 순이다.
고금리 등의 영향으로 신용카드 고객들의 상환능력이 악화되면서 연체율이 증가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 같은 상황에서 차주들의 연체를 막기 위해 이용하는 ‘리볼빙’이 자칫 가계부채 폭탄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일부결제금액이월약정’이라는 정식 명칭보다 ‘리볼빙’이라는 이름이 더 친숙한 이 제도는 당월 청구금액 일부(이용자가 설정한 범위)를 익월로 넘기는 서비스이다. 당초 취지는 실수 또는 개인사정으로 인해 신용카드 청구금액을 지급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신용점수가 하락하는 불상사를 막기 위해 도입됐다. 그러나 장기간 이용 시 채무 누증으로 인한 연체, 신용하락 위험이 존재하기 때문에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면서 금융당국이 리볼빙 관련 설명의무 강화 등 제도를 손질하기도 했다.
문제는 지금도 리볼빙 이용금액은 꾸준히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일부 차주들은 리볼빙 제도를 일시적 자금경색 해소를 위해서가 아니라 일종의 ‘카드 돌려막기’처럼 청구금액 돌려막기 형태로 생각하기도 했다.
여신금융협회 자료에 따르면 리볼빙 잔액은 2020년 말 5조 3900억 원에서 2021년 말 6조 800억원, 지난해 말 7조 3600억 원으로 꾸준한 증사세를 보였다. 올해 1분기 기준 잔액 역시 7조 2150억 원(잠정치)으로 7조 원대를 여전히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신용카드발(發) 가계부채 급증 우려는 리볼빙 만의 문제가 아니다. 카드론 역시 연체율 증가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여신금융협회에 따르면 올 1분기 기준 카드론 대환대출 잔액은 1조 7278억 원으로, 전년 동기 9101억 원 대비 28.8%나 증가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올해 1분기 말 주요 카드사 6곳(신한카드, 삼성카드, 현대카드, KB국민카드, 우리카드, 하나카드)의 카드론 대환대출 잔액도 1조 1522억 원으로, 전년 동기 8916억 원 대비 29.23%나 증가했다. 대환대출 잔액 규모가 작년 말 1조 277억 원으로 이미 1조 원대를 돌파했던 상황에서 급증세가 이어진 셈이다.
카드론 대환대출은 카드사 카드론 이용 고객, 즉 차주가 대출이 연체됐거나 상환이 어려운 상황에 처한 경우 보다 저렴한 금리로 갈아탈 수 있도록 돕는 제도다.
카드론 잔액과 대환대출 잔액 규모가 모두 늘어난 건 자금경색, 유동성 위기를 겪은 차주들이 2금융권으로까지 손을 뻗어 대출을 받은 영향도 있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아울러 기존 차주들도 급격히 늘어난 금리부담에 허덕이며 연체율도 덩달아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금융지주 계열 카드사를 중심으로 대손충담금도 급격하게 늘었다. 업계 1위 신한카드는 올 1분기 대손충당금으로 1910억 원을 추가로 적립했으며, KB국민카드(1782억 원), 하나카드(1044억 원), 우리카드(1026억 원)가 그 뒤를 이었다. 특히 하나은행의 경우 전년 대비 무려 161.7% 급증한 규모를 적립했다.
아울러 대손충당금 이슈 뿐만 아니라 고금리로 인해 자금조달 비용도 커지면서, 카드사 수익성도 크게 악화됐다.
카드업계 한 관계자는 “전체적으로 가계부담이 늘어나면서 차주들의 상환력도 악화가 됐다”며 “연체율 증가에 카드론, 리볼빙 등 서비스에 대한 리스크가 확대돼 카드업계 역시 대손충당금 적립 확대 등을 통해 대응해나가고 있다”고 밝혔다.
빚테크의 함정…CFD發 투자자 ‘하이리스크’ 논란
가계부채는 투자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면서 덩달아 늘어났다. 빚을 내 투자하거나 이와 유사한 형태의 금융투자상품이 등장하면서다.
사실 예적금만으로 자산 증식이 가능했던 시대는 이미 지났다. 월급 일부를 단순히 저축하는 행위로는 더 이상 집을 살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고,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은 주식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금융투자업계는 이 같은 상황에 발맞춰 다양한 금융상품을 내놨고, 적은 투자금으로 많은 이득을 얻을 수 있는 차액결제거래(CFD)로 투자자들의 시선은 자연스레 쏠렸다. 앞서 교보증권이 2016년 CFD 거래를 처음 시작한 이래 12개 증권사들이 발을 들였다.
CFD는 일정 증거금만으로 주식을 살 수 있는 일종의 레버리지 파생상품(최대 2.5배)이다. 예를 들어 A증권사가 CFD 증거금률을 10%로 적용하면 투자자는 1주에 100만 원인 주식을 단 돈 10만원으로 살 수 있다. 기존에는 이처럼 적은 증거금률이 적용됐었지만 2021년 금융당국이 최소 CFD 증거금률을 40%로 상향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증거금률을 올린 것만으로는 CFD의 위험부담을 줄였다고 볼 수 없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앞서 금융당국이 CFD 규제를 완화했기에 증거금률을 일정수준까지 올렸다 한들 자격조건 완화로 인해 투자자들은 오히려 불어났기 때문이다.
규제 전 CFD에 투자하기 위해서는 최근 5년 중 1년 이상 금융투자상품 월말 평균잔고가 5억 원 이상을 유지해야 하는 필수조건과 함께 소득·자산·전문가 조건 중 하나를 충족해야 하는 선택조건을 모두 만족해야 했지만 2019년 11월 규제완화로 기존 5억 원이던 잔고 기준은 5000만 원으로 크게 낮아졌다.
그 결과 3년 전과 비교해 CFD 투자자는 약 8배 증가했다. 지난 4월 이전까지 양도세를 내지 않아도 되는 특성상 전문 투자자들을 비롯해 고액 자산가들이 주로 이용했던 CFD에 많은 투자자들이 몰린 것이다.
이와 관련해 정의정 한국주식투자연합회 대표는 “CFD 규제완화는 부작용을 고려하지 않은 섣부른 결정”이라고 지적했다.
CFD는 주가 하락 시 원금이 제로가 됨은 물론 마이너스가 잔고가 발생할 수 있다. 투자자들이 증거금을 채우지 못할 경우 반대매매가 발생하면서 증권사가 손해를 보는 구조로 많은 위험을 안고 있다.
지난 4월 24일 CFD의 고름이 결국 터졌다. SG증권발 대규모 주가하락이 발생해 8개 종목의 주가가 폭락했다. CFD를 이용해 해당 주식을 사들인 투자자들은 주가가 폭락하면서 빚더미에 앉았다. 적게는 수백만 원부터 많게는 수백억 원까지 추가증거금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불어난 미결제 잔고를 청산할 여력이 안되는 투자자들은 파산 신청을 하게 되고, 결국 반대매매가 발생한다.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반대매매를 통해 주식이 처분 되더라도 이미 주가가 폭락한 상태이기 때문에 증권사도 피해를 입게 된다. 특히 CFD를 많은 취급한 증권사일수록 그 피해는 더욱 크다.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지난 3월 기준 증권사별 CFD 잔액은 △교보증권 6180억 원 △키움증권 5576억 원 △삼성증권 3503억 원 △메리츠증권 3446억 원 △하나증권 3400억 원 △유진투자증권 1485억 원 △DB금융투자 1400억 원 △한국투자증권 1126억 원 △KB증권 664억 원 △신한투자증권 582억 원 △NH투자증권 134억 원 △유안타증권 63억 원이다.
결국 SG사태에서 비롯된 CFD 문제는 투자자와 증권사 모두 피해를 입은, 승자 없는 거래 시장이라는 오명을 남겼다. 하이 리턴, 하이 리스크라는 문제점을 안고 있었던 만큼 강한 규제가 필요했지만 오히려 규제는 완화됐고, 투자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증권사들간 수수료 경쟁 또한 치열했다.
CFD 수수료가 가장 높은 유진투자증권의 수수료율은 고작 0.225%며, 가장 낮은 메리츠증권과 삼성증권의 경우 0.015%다.
투자자와 증권사 모두에게 이득을 가져다 주던 CFD는 최근 마이너스 폭탄이 됐다. 특히 투자자들이 입은 손해는 회생이 불가능할 정도에 이르렀다. 증권사들은 뒤늦게 CFD 신규개설을 중지하는 등 조치에 나섰지만 상황이 터지고 나서야 뒤늦게 조치에 나서는 모습에는 실망감이 잇따랐다.
금융업계의 레버리지 등 투자에 따른 대규모 손실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투자자들의 과도한 투자, 과열된 시장, 금융투자업계의 안일한 리스크 관리, 금융당국의 물렁한 규제가 합쳐졌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이 같은 상황을 인지한 금융당국은 제도 개선에 착수했다.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CFD 등 개선이 필요한 부분에 대해 철저히 보완하겠다라고 밝혔으며,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한국거래소 등은 3400개 CFD계좌를 대상으로 주가조작 등 불공정거래 연계 여부에 대한 집중점검에 돌입한다고 발표했다.
CFD의 가장 큰 피해자는 한 순간에 막대한 빚을 떠안게 된 투자자들이다. 제도적 장치가 온전하게 작동되는 상황이라면 투자자들이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게 정당하다. 그러나 SG증권발 주가 폭락 사태를 통해 불완전한 CFD 제도가 여실히 드러난 것 아니냐는 의혹과 함께 막대한 손실을 온전히 투자자들이 부담해야 하는 데 대해서는 의문부호가 붙는다.
금융업계의 수익률은 갈수록 증가하고 있는 반면 감내해야 하는 손실에 대한 책임은 온전히 투자자들이 져야 하는 몫으로 전가되고 있다는 우려 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투자에 뛰어드는 사람들은 갈수록 늘어나고 있고, 관련 상품 또한 증가하고 있다.
실제로 증권사 상품을 처음 들여다보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헉’ 소리를 낼 정도다. 대중적인 펀드와 ETF 등을 비롯해 △주가연계파생결합사채(ELB) △주가연계증권(ELS) △파생결합증권(DLS) △DLB(기타파생결합사채) △타겟 데이트 펀드(TDF) 등 다양하기 때문이다.
ELS는 원금 보장이 되지 않는 상품으로 각각 주식·지수 등을 기초자산으로 삼는다. 기초자산 가격이 만기 때까지 특정 구간(녹인)으로 하락하지 않는다면 원금에 이자를 지급받을 수 있지만 원금 손실의 위험이 있는 상품이다.
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올해 1분기 ELS 미상환 발행잔액은 67조 6559억 원으로 지난해 동기 대비 9.1% 증가했다. 조기 상환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즉 상환되지 못한 ELS가 늘어난 것이다.
증권사는 다양한 상품들로 하여금 수수료, 이자수익 등을 벌어들이지만 투자자는 자칫 ‘모 아니면 도’ 상황에 놓이게 된다. 비교적 안전한 ELB 상품조차 투자자들은 원초적인 위험을 떠안는다. ELB는 사실상 증권사의 신용을 바탕으로 발행하는 회사채로 분류돼 원금을 보장하는 상품이지만 예금자보호가 되지 않는다. 즉, 증권사가 주저 앉게 될 경우 원금 자체를 돌려받을 수 없는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
이처럼 투자자들은 증권사가 취급하는 상품 중 위험 상품은 물론 원금이 보장되는 안전한 상품에서 조차 돈을 잃을 수 있다는 부담감을 느껴야 한다.
우리는 여전히 신용사회를 살아가고 있다. 개인의 신용을 통해 주택담보대출처럼 수 억원의 자금을 빌릴 수 있을 뿐더러 작게는 50만 원 상당의 소액대출까지 가능한 세상이다. 카드사 역시 카드론이나 리볼빙 등 대출 형태의 다양한 상품을 내놓았고, 금융투자업계도 유사한 형태의 상품을 통해 개인의 ‘빚테크’ 니즈를 충족시키고 있다,
그러나 명심해야 한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은 투자성공이라는 달콤한 과실을 따내려면 그만큼의 위험성도 감수해야한다는 의미지만, 투자성공의 길처럼 보이는 길이 낭떠러지가 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신용사회는 돈이 없어도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세상이 아니다. ‘나’라는 ‘개인’의 모든 정보를 바탕으로 돈을 받아낼 수 있는 지, 즉 상환여부를 금융사가 판단해 매겨진 점수에 따라 ‘미래가치’를 담보로 인정받는 세상일 뿐이다. 편하고 간단하게 돈을 빌릴 수 있는 세상, 이는 반대로 말하면 가벼운 터치 하나로 막대한 ‘빚’을 지게되는 무서운 세상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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