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통령 흑역사 거론한 美 언론 [金亨錫 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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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통령 흑역사 거론한 美 언론 [金亨錫 시론]   
  • 김형석 논설위원
  • 승인 2023.04.09 21: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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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기소되자 ‘우리도 한국처럼?’”
“NYT· WP· CNN 한국 정치보복 사례 들어”
“망신…어쩌다 우리가 후진 정치 모델로”
“그러나 미국도 이젠 변화 받아들여야”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김형석 논설위원)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4일(현지시간) 기소인부절차를 위해 뉴욕 맨해튼 형사법원에 출석해 있다. 그는 지난 2016년 대선 당시 성인영화 배우 스토미 대니얼스에게 성관계 입막음을 위해 돈을 건네고 회사 장부를 위조한 혐의 등 34개 중범죄 혐의로 기소됐으며, 혐의를 모두 부인했다. 그는 형사 기소된 미국의 첫 전직 대통령이 됐다. ⓒ AFP/연합뉴스

지난달 말 트럼프에 대한 기소가 확정되자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CNN 타임 등 미국의 주요 언론들이 일제히 ‘우리도 한국처럼 되나?’라며 한국 대통령들의 흑역사를 끄집어냈다. 전·현직 대통령에 대한 기소가 한 건도 없었던 미국이 지난 수십 년 동안 전직 대통령에 대한 검찰 기소가 반복돼온 한국처럼 ‘정치 후진화’의 길로 가는 것 아니냐는 논조다. 망신스럽다!

K팝을 비롯해 젊은이들이 각종 스포츠와 예술 활동을 통해 일궈놓은 한국의 이미지가 하루아침에 곤두박질쳐지는 일이 벌어진 거다. ‘그럼 그렇지! 너희들의 기본이 그 정도밖에 안 되지’라고 비아냥거리는 소리가 미국뿐만 아니라 미 언론이 영향을 미치는 지구촌 곳곳에서 들려오는 듯하다.

우리 대통령들의 흑역사

트럼프에 대한 기소가 옳은 일이든 잘못된 일이든, 또 한국의 정치가 후진적이든 아니든, 그들이 거론한 한국 대통령의 흑역사는 틀림없는 사실이다. 팩트(fact) 자체는 틀리지 않았다는 얘기다.

지난 2월 12일 자 이 칼럼란의 ‘정치가를 기다리며’에서 밝혔듯 전직 대통령에 대한 기소와 처벌이 반복돼온 것은 맞다. 미 언론이 밝힌 대로 수사받고 복역했던 대통령 외에도 한국의 대통령들은 대부분 큰 불행을 겪었다. 하야해서 외국 땅에서 쓸쓸히 타계하고, 부하의 총에 맞아 숨지고, 바위에서 뛰어내려 숨지는 등 외국에선 보기 힘든 대통령들의 불행한 역사다.

그러나 이런 한국의 예가 후진적이며, 대통령에 대한 기소의 예가 전혀 없었던 미국의 예가 정치 선진국이라는 미 언론의 이분법이 반드시 옳은 것일까? 실제로 미국 내 일각에서도 최근 ‘정치의 사법화’ 여부와 상관없이, 대통령에게 일종의 면책특권을 줬던 관행을 바꿀 때가 됐다는 여론도 일고 있다고 전해진다.

성추행 등 트럼프의 무려 34건 혐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전직 대통령이라도 처벌받아 마땅하다. 그건 과거 일부 대통령의 일탈행위와는 완전히 다른 성격의 범죄로 봐야 한다. 그런 범죄를 정치적 타협의 대상으로 삼아 얼버무리고 지나가는 것은 21세기 미국의 바람직한 모습도 아니다. 그런데 트럼프는 지난 4일(현지 시간) 뉴욕 맨해튼 형사 법원에서 진행된 기소인부절차에서 34건의 중범죄 혐의를 모두 부인했다고 외신이 전해왔다. 34건 모두를 부인? 미국 검찰이 그렇게 엉터리였나?

트럼프의 막무가내가 한국의 어느 정치인과도 많이 닮았다. 그러니 대통령을 지낸 사람이라도 사법처리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 것이다.

망신스러워도 극복해야 할 일

“미국 민주주의가 시험대에 올랐다” “트럼프가 한국의 박근혜, 이탈리아의 실비오 베를루스 코니의 반열에 올랐다”라고 호들갑을 떨며 사실과 부합하지도 않는 예를 드는 미국의 주요 언론들, 곧 이성을 되찾기를 바란다. 어떻게 성폭행 혐의를 받거나, 섹스 파티를 벌였다가 증인 매수 혐의까지 받았던 성추행범과 박근혜를 단지 사법 처리 대상이 됐다는 사실만으로 같은 반열에 올려놓는지. 박 전 대통령 지지자들뿐만 아니라 한국민 모두가 억울해할 일이다.

망신은 이왕 당한 거고, 그렇더라도 우리는 꿋꿋하게 우리의 길을 가는 게 맞다. 국회의원에 대한 불체포 특권 등 온갖 특혜도 구시대의 유물로 던져버리고, 대통령을 지낸 사람이더라도 큰 죄를 저질렀다면 당연히 사법처리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 특히 정치인들의 방종이 도를 넘은 현 상황에서는 국가의 균형 발전을 위해서라도 ‘정치의 사법화’를 일정 부분 감수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정치 보복성 사법처리가 배제돼야 함은 물론이다.  

트럼프가 지지자들을 규합하기 위해 꼼수를 동원하고 있다고 외신들은 전한다. ‘초현실적 상황’, ‘정치 보복’이라는 뻔한 소리로 사회관계망 서비스(SNS)를 통한 여론전을 이어가는 중이라는 얘기다. 누가 누구에게 배웠는지는 몰라도 우리나라 상황과 어쩌면 그리 닮았는지…. 공화당 경선에서 트럼프가 압도적 1위를 차지했다는 사실 역시 우리 정치 상황과 많이 닮았다.

미국도 ‘한국처럼’ 변화 받아들여야!

미국의 거대 언론에 충고한다. 한국의 대통령 탄핵과 사법처리 과정이 무리했다면 그건 한국이 반성할 일이다. 그러나 그걸 후진 정치의 한 예로 들며 트럼프에 대한 기소 및 사법처리에 미온적 의견을 내보이거나 심지어 부정적 의사를 보이는 건 비이성적이고 전통 있는 언론사로서의 정론(正論)에서도 벗어난 일이다. 트럼프 처리 문제에 관한 한 우리는 바이든 정부의 방식에 동의한다.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리처드 닉슨, 르윈스키와의 스캔들로 인해 위기에 몰렸던 빌 클린턴. 이들은 한국 대통령들과는 달리 탄핵당하지 않고 사법 처리 되지도 않았다. 과연 그게 미국 정치의 선진화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됐을까? 아니면 그런 전례들로 인해 위증을 밥 먹듯이 하고 지지자들의 의사당 난입을 응원한 막가파 대통령의 출현이 가능해진 것은 아닐까. 우리는 후자라고 믿는다. 

그래서 미국으로선 최초라는 전 대통령의 사법처리가 늦기는 했지만, 그런대로 바람직하다고 보는 것이다. 건국 이래 230년 동안 없었던 일이라도 ‘건국 이래 없었던 이상한 대통령’ 한 사람이 나타나서 못된 짓을 할 수 있다.

한국의 문재인 전 대통령도 지난 2016년에 “법 앞에 만인은 평등하다. 대통령도 범죄행위를 하면 당연히 수사 받아야 한다. 퇴임 후 불기소 특권이 없어지면 그때 당연히 조사받아야 한다”라고 언급했었다. 그의 말이 딱 맞다. 

국가를 운영해온 전직 대통령에 대한 얼마간의 법적 아량은 필요하지만, 그것이 ‘법 앞에 만인은 평등(Are all equal before the law)하다’라는 법치주의의 핵심 주장까지 훼손해서는 안 될 일이다. 대통령에 대한 사법처리 문제와 관련, 미국도 한국처럼 변화를 받아들일 때가 됐다. 

김형석(金亨錫)은…

연합뉴스 지방1부, 사회부, 경제부, 주간부, 산업부, 전국부, 뉴미디어실 기자를 지냈다. 생활경제부장, 산업부장, 논설위원, 전략사업본부장 등을 역임했다. 

정년퇴직 후 경력으로 △2007년 말 창간한 신설 언론사 아주일보(현 아주경제)편집총괄 전무 △광고대행사 KGT 회장 △물류회사 물류혁명 수석고문 △시설안전공단 사외이사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코바코) 사외이사 △ 중앙언론사 전·현직 경제분야 논설위원 모임 ‘시장경제포럼’ 창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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