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표는 왜 선거구제 개편에 팔을 걷어붙였나 [현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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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표는 왜 선거구제 개편에 팔을 걷어붙였나 [현장에서]
  • 정진호 기자
  • 승인 2023.03.22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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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진호 기자]

선거제 개편 방향과 전원위원회 운영 계획을 주제로 한 정책설명회에서 발언하고 있는 김진표 국회의장. ⓒ연합뉴스
선거제 개편 방향과 전원위원회 운영 계획을 주제로 한 정책설명회에서 발언하고 있는 김진표 국회의장. ⓒ연합뉴스

김진표 국회의장이 선거구제 개편을 위해 팔을 걷어붙였습니다. 김 의장은 21일 국회 사랑재에서 ‘선거제 개편 방향과 전원위원회 운영계획’을 주제로 한 정책설명회를 열고 기자들에게 직접 선거구제 개편 필요성과 취지, 논의 방향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김 의장은 현재 우리 정치에서 나타나는 문제점 상당수가 소선거구제에서 기인한다고 지적했는데요. <시사오늘>은 이날 설명회에서 제시된 세 개의 숫자와 김 의장 모두발언을 중심으로 선거구제 개편의 문제점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49.98%


김 의장은 민주화 이후 소선거구제로 치러진 모든 총선에서 평균적인 사표(死票) 비율이 49.98%에 달한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많은 사표의 발생이 정치인들로 하여금 국민 전체를 위한 정치가 아닌 ‘진영 정치’, ‘팬덤 정치’를 하도록 만드는 원인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소선거구제는 상대 후보보다 한 표만 더 얻어도 당선되는 구조인데요. 이러면 굳이 다수 국민의 의견에 신경을 쓸 필요가 없습니다. B 후보가 득표율 29%라면, A 후보 득표율은 30%만 돼도 당선될 수 있는 까닭입니다. 이러면 A 후보나 B 후보 모두 60~70%의 득표율을 얻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없습니다.

자연히 정치인들은 다수 국민의 공감을 얻는 언행이나 정책보다는, ‘확실한’ 30%의 지지층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수립하게 됩니다. 그 결과가 진영 정치, 팬덤 정치라는 게 김 의장의 진단입니다. 때문에 김 의장은 선거구제 개편을 통해 정치인들이 다수 국민의 지지를 받기 위해 노력하게끔 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민주화 이후 치러진 총선에서 평균 사표 비율이 49.98%에 달했습니다. 국민이 찍은 표의 반이 선거 결과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정치인들은 ‘한 표만 이기면 되는데 뭐 하러 70~80%의 유권자들을 신경 쓰느냐’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지자들을 잘 결속해서 한 표만 이기면 된다는 행태로 갈 수밖에 없어요. 일정 지분만 확보하고 거기에 안주하면서 즐기는 행태가 십 수 년 간 나타나고 있고, 그 출발은 잘못된 선거제부터입니다.”

김진표 국회의장은 소선거구제가 거대 양당의 극한 대립을 유발한다고 본다. ⓒ연합뉴스
김진표 국회의장은 소선거구제가 거대 양당의 극한 대립을 유발한다고 본다. ⓒ연합뉴스

 

15%


두 번째로 김 의장은 비례대표 비율이 15%에 그친다는 점을 거론했습니다. 민주주의 체제에서는 인구수가 곧 권력입니다. 많은 인구가 모여 사는 곳일수록 더 많은 대표자를 국회로 보낼 수 있으므로, 해당 지역이 발전할 가능성도 더 높아집니다. 문제는 이럴 경우 인구수가 적은 지역은 낙후되고, 또 다시 인구가 빠져나가는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된다는 겁니다.

비례대표제는 바로 이런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도입됐습니다. 강원도처럼 면적은 넓지만 인구가 적어 많은 국회의원을 배출할 수 없는 지역이나, 사회적으로 소수자인 까닭에 ‘표의 힘’으로 정치권을 압박하기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제도가 비례대표제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비례대표제가 제대로 작동해야 지역균형발전도 가능해집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비례대표 비율이 15%에 불과합니다. OECD 국가 중 가장 낮습니다. 47명이라는 비례대표 수는 발전이 더뎌 인구가 적은 지역의 요구를 반영하고,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담아내기에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지역적 격차 해소, 사회경제적 차별 완화라는 비례대표제의 취지를 살리기 어렵다는 뜻입니다.

“지방 인구가 소멸돼가는 현상이 나타나는데 정치권은 아무런 대책이 없다는 비판이 나옵니다. 바로 이런 지역 간 갈등과 이해를 대변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기 위해 비례대표제가 도입된 건데, 여야가 선거법 개정 협의 과정에서 비례대표를 줄이다 보니 OECD 중 가장 낮은 15%밖에 안 됩니다. OECD 평균은 70% 정도입니다. 우리는 비례대표 비중이 너무 낮아요.”

 

81%


김 의장은 비례대표제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음은 물론, 심지어 각 정당의 이해관계에 의해 악용됨으로써 오히려 정치 불신만 강해진다고 봤습니다. 81%라는 숫자는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 등 4개 여론조사기관이 지난해 12월 15일 발표한 국가기관별 신뢰도 조사에서 ‘국회를 신뢰하지 않는다’고 답한 응답자 비율입니다.

김 의장은 또 비례대표가 땅은 넓지만 지역구가 적은 지역을 대표할 수 있는 인물이나, 지역 특성을 살릴 수 있는 전문가를 공천해 지역 간 갈등과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취지로 운영돼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각 정당의 이익을 위해 싸울 수 있는 ‘전사’를 확보하는 수단으로 잘못 쓰이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를 막기 위해 도입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마저도 깊이 있는 검토와 시뮬레이션이 이뤄지지 않다 보니 어느 쪽도 예측 못한 ‘괴물’인 위성정당 출현으로 귀결됐고, 이로 인해 국민들의 정치 불신이 극도에 이르렀다는 게 김 의장의 판단입니다.

“우리는 정당이 순위를 매겨서 공천하면 국민은 사람을 못 고르고 정당만 고르는 폐쇄형 명부제입니다. 이게 또 여러 문제를 만들었는데, 각 당이 자기 진영의 이익을 위해 앞장서 싸울 수 있는 전사를 확보하는 수단으로 잘못 쓰이고 있습니다. 이걸 막아보자고 도입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도마저도 위성정당 출현으로 귀결됐습니다. 위성정당이 자기 진영의 전사를 확실히 확보하는 방법으로 전락하니 국민들의 정치 불신이 극도에 이르렀어요. 국회 불신 비율이 81%까지 높아졌다는 조사 결과도 있습니다.”

김진표 국회의장은 협치의 제도화를 선거제도 개편의 목표로 제시한다. ⓒ연합뉴스
김진표 국회의장은 협치의 제도화를 선거제도 개편의 목표로 제시한다. ⓒ연합뉴스

 

선거제도 개편 방향은


대전제는 명확합니다. ‘타협의 정치’가 가능하게 하는 시스템 마련입니다. 김 의장은 모두발언 말미에 김대중 정부와 노태우 정부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민주화 이후 가장 원내 협의가 잘 됐던, 대화와 타협으로 합의안을 만들어냈던 김대중·노태우 정부 시절 경제·안보·문화·외교 등이 가장 크게 성장했다는 겁니다.

‘협치의 제도화’ 방안으로는 비례대표를 확대하는 방식(소선거구제+권역별·병립형 비례대표제, 소선거구제+권역별·준연동형 비례대표제),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하는 방식(도농복합선거구제+권역별·병립형 비례대표제)이 제시됐습니다.

우선 소선거구제는 지금과 같이 한 선거구에서 한 명의 대표자를 선출하는 방식입니다. 익숙하고 간단하며 양당제에 적합하다는 평가지만, 사표가 너무 많이 발생하고 양당체제가 고착화됨으로써 극한대립이 이어진다는 문제점이 있습니다.

중대선거구제는 하나의 지역구에서 두 명 이상의 대표자를 선출하는 방식입니다. 두 명 이상의 당선자가 배출되므로 사표 비율이 감소하고, 특정 지역에서 특정 정당만 당선되는 지역주의가 완화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역구가 넓어져 금전적으로 여유가 없는 사람은 정치에 뛰어들기 어렵고, 국회의원과 유권자 간 연대가 약해진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도농복합선거구제는 이 두 가지를 혼합한 방식입니다. 전면적으로 중대선거구제가 도입될 시 인구가 적은 농·산·어촌지역에는 초거대선거구가 발생할 수 있으므로, 이를 방지하기 위해 도시 지역에는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하고 농·산·어촌지역에서는 소선거구제를 유지하는 겁니다.

도농복합선거구제는 중대선거구제의 장점은 살리면서도 유권자 동질성 훼손과 금권 정치 등의 단점을 최소화할 수 있는 제도로 꼽히지만, 모든 유권자의 표는 동일한 가치를 갖는다는 표의 등가성 원칙에 위배돼 위헌 논란이 일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가 존재합니다. 또 정치적으로 특정 정당에 유리할 공산이 커, 실제로 도입되기는 어렵다는 현실적인 한계도 있습니다.

비례대표제 개편 방안으로는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이 거론됩니다. 비례대표제는 적용 범위에 따라 전국단위 비례대표제와 권역별 비례대표제로 나눌 수 있는데요. 전국단위 비례대표제는 우리나라처럼 전국을 대상으로 정당 득표율에 따라 비례 의석을 배분하는 것이고,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총 비례 의석수를 권역별로 나누고 각 권역에서 정당이 얻은 득표율에 따라 비례 의석을 배분하는 겁니다. 권역별 비례대표제 하에서는 지역주의가 완화되는 장점이 있지만, 비례대표제가 가진 또 하나의 목표인 직능대표성이 약화될 수 있다는 단점도 있습니다.

지역구 선거 결과와 정당득표율 연동 여부에 따라 병립형 비례대표제와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구분하기도 합니다. 병립형 비례대표제는 지역구 의석수와 관계없이 정당득표율에 따라 비례의석을 할당하는 것이고,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지역구 의석수가 정당득표율에 미치지 못할 경우 비례대표 의석수로 나머지 의석수를 채워주는 겁니다. 병립형에서 연동형으로 갈수록 비례성은 높아지고 사표가 줄어들지만, 지역구 의석수가 보장되는 상태에서 비례대표 수가 늘어나므로 전체 의석수가 확대되는 문제점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투표 방식에 따라 폐쇄형 명부 비례제와 개방형 명부 비례제로 나눌 수도 있습니다. 폐쇄형 비례제는 유권자가 후보는 선택하지 못하고 정당만 결정하는 현행 방식으로, 사회적 약자나 직능 전문가의 의회 진출에 용이하지만 공천 과정이 불투명하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반면 개방형 명부제는 비례대표 후보자를 유권자가 직접 뽑는 방식으로, 국민 수용성이 높지만 인지도 높은 인사에게 유리하고 사회적 약자나 직능 전문가의 의회 진출은 어렵게 한다는 문제점이 있습니다.

“협치의 제도화가 목표입니다. 소선거구제가 5년 단임제와 결합하면 협치를 할 수가 없습니다. 죽기 살기로 싸움만 하는 구조를 만들어놓고 협치를 어떻게 하겠습니까. 50% 국민의 뜻이 묵살되지 않도록 사표를 최소화하고, 지역주의 해소와 지방소멸에 대응하고, 비례성과 대표성을 강화하고, 다양한 정치 세력의 의사를 반영할 수 있는 방향으로 선거제도 개편이 이뤄졌으면 좋겠습니다.”

담당업무 : 정치부 기자입니다 (대통령실 출입)
좌우명 : 인생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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