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박근홍 기자]
소황제(小皇帝), 급격한 인구 증가에 부담을 느낀 중국 공산당이 독생자녀제(獨生子女制, 1가구 1자녀) 산아제한정책을 펼친 이후인 1980년대 태어난 세대를 이르는 말이다. 위키백과는 소황제 세대에 대해 '풍요로운 경제적 기반을 가진 부모의 과보호 속에서 성장해 사회적 활동량과 소비 수준이 높아 중국의 떠오르는 주류 소비계층으로 대두됐으며, 다소 이기적이고 독선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또한 이기주의와 개인주의가 심화되는 현상을 중국 사회의 소황제 현상으로 일컫는다'고 소개하고 있다.
옛 신문을 뒤적거려 보니 우리나라에서 소황제 얘기가 본격 다뤄진 건 2000년대 중반,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이다. 이전까진 중국의 소황제 현상을 비판하는 기사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때 국내 경제활동의 주축은 IMF 외환위기로 사실상 강제적 산아제한정책이 이뤄진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 자녀들을 낳고, 경기 회복기 속 맞벌이에 나선 사람들이다. 저출산과 고소득이 맞물린 것이다. 당시 언론 기사를 살펴보면 SBS는 '아동복 시장 고가 열풍'(2005년 10월)이라는 보도를 통해 "아이를 귀족처럼 키우자는 심리가 많다. 이는 세계 최저를 기록한 저출산에 따른 '한국형 소황제' 현상의 등장과도 무관하지 않다"고 분석했다. 〈매일경제〉는 '소황제를 잡아라'(2005년 10월)는 제목의 기사에서 "하나밖에 없는 아이를 황제처럼 키우려는 부모들의 심리로 백화점업계 1인당 객단가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 탄생한 소황제들을 우리는 지금 Z세대라 칭하고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엔 소황제라는 개념이 상륙하기 전부터 이미 소황제에 준하는 세대가 있었다. 한국전쟁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하고 대한민국 경제 부흥을 이끈 1950~60년대생 베이비붐세대가 낳은 X세대다. X세대는 '딸·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라는 표어로 대표되는 국가 차원 산아제한정책이 전개된 1970년대부터 1980년대 초반에 태어났고, IMF 외환위기 직전인 1990년대 초중반 문화를 주도했다. 이들은 3저 호황과 민주화 이후 자유를 동시에 누렸고,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에 반항 심리를 가졌으며, 자신만의 개성을 추구했다. X세대가 '네 멋대로 해라'를 실천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전쟁을 겪은 부모들의 경제·문화적 지원이 있었다. 이들은 자신이 이루지 못한 꿈을 자녀가 대신 실현했으면 하는 기대감이 컸고, 자신은 누릴 수 없었던 자유, 번영, 교육, 풍족한 먹을 것과 입을 것들을 자녀들에게 제공했다.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를 살펴보면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표현을 언론에서 자주 쓰기 시작한 게 1990년대 초반이다. '마마보이', '마마걸'이라는 유행어가 등장한 것도 1993~4년께다.
전후복구와 경제재건을 수행한 베이비붐세대가 1990년대 준(準)소황제로 군림한 X세대를 낳았고, IMF 외환위기를 겪은 X세대가 낳은 자녀들이 2000년대 중반 소황제로 군림했다. 국가적 경제 타격을 경험한 세대가 경제적 풍요를 이룬 후 그들의 자녀에게 경제적 지원을 아끼지 않은 것이다. '풍요로운 경제적 기반을 가진 부모의 과보호 속에서 성장해 사회적 활동량과 소비 수준이 높다'는 중국형 소황제에 대한 사전적 정의가 한국판 소황제, 'K-소황제'에도 해당되는 셈이다.
다만, 최근 언급되는 K-소황제의 양상은 그 정의와 미묘하게 다르다. 현재 K-소황제로 군림하는 세대는 알파세대, 밀레니얼세대의 자녀이자 Z세대의 조카다. 밀레니얼세대는 '삼포 세대', '88만 원 세대'라 불린다. IMF 외환위기 속 학창 시절을 보냈고, 금융위기 가운데 캠퍼스 생활을 했다. 베이붐세대와 X세대의 전성기와 비교했을 때 풍요로운 시절을 보내온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이들이 맞닥뜨린 사회는 장밋빛이 아니라 청년실업, 저임금, 집값 폭등이 펼쳐진 '헬조선'이었다. 본격 디지털 세대인 Z세대는 역대 어느 세대보다 온라인·디지털 환경에 익숙하고, 고품질의 교육을 받았다. 향후 우리나라 경제를 이끌 혁신적인 인재들임은 확실하나, 소득 수준이나 사회적 위치 측면에서 아직 경제활동의 주축으로 보기 어렵다. 밀레니얼세대와 Z세대는 경제적 풍요를 이루지 못한 세대임에도 알파세대를 소황제로 떠받들고 있는 것이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난 걸까.
부모라면 내 자식에게만큼은 최고의 환경을 제공해 주고 싶은 게 당연하다지만 객관적인 배경들을 살펴보자. 가장 큰 이유는 끝 모를 추락을 거듭하고 있는 출산율로 평가된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22년 3분기 합계출산율(가임여성 1인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은 0.79명으로, 지난 2분기 0.75명에 이어 사상 처음으로 2개 분기 연속 출산율 0.7명대를 기록했다. 이 같은 추세라면 2022년은 연간 출산율이 0.7명대로 집계되는 첫 해가 된다. 저출산이 아니라 '초저출산' 수준이다. 1998년 1.48명, 2005년 1.08명이 누리던 부모의 경제적 지원이 이젠 0.79명에게 향하고 있으니 자연스럽게 소황제가 나타날 수밖에 없는 셈이다. 여기에 초혼 연령이 높아지면서 심리적으로도 자식이 귀하게 느껴졌고, 온라인 채널의 발달로 물질적 지원이 쉬워졌다. 아이 한 명을 위해 부모, 친인척, 지인 등 10개의 지갑이 열린다는 '텐포켓' 현상이 발생할 만한 환경이다. 노후에 대한 불투명성이 확대된 점이 영향을 끼쳤다는 '차가운 분석'도 있다. 이전 세대와 달리 밀레니얼세대, Z세대는 국민연금, 주택연금 등 노후 소득 보장을 위한 사회보장제도의 혜택을 누릴 가능성이 낮아진 실정이고, 이에 차선책으로 자녀를 보험으로 삼고자 소황제로 모시고 있다는 논리다. 이밖에 코로나19 사태도 K-소황제 재출현에 영향을 줬으리라.
흔히 소황제의 부작용으로 이기주의와 개인주의 심화로 인한 사회적 위험을 꼽는다. 우리나라보다 심각한 소황제 현상을 겪은 중국에서 이 같은 사례가 여럿 존재한다. 미국 랜드연구소는 중국군 전투병 중 80%가 소황제 세대여서 군 전력의 약화 원인으로 분류된다는 보고서를 낸 바 있으며, 중국 경제전문 매체인 경제관찰보(經濟觀察報)는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은 소황제 세대가 제조업을 외면하고 서비스업으로만 향하면서 노동시장이 붕괴됐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생각도 든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싸가지가 없다'와 같은 말은 소포타미아 수메르 점토판에도, 이집트 피라미드에도, 그리스 고전 일리아스에도, 로마의 카틸리나 탄핵문에도, 중국 한비자의 책에도, 우리나라 조선왕조실록에도 쓰여 있다. 젊은 사람이 나이 든 사람을 이해할 수 없는 건 자연스런 일이다. 나이 든 사람이 올챙이 시절을 생각 못하는 것도 그렇다. 이기주의·개인주의 심화는 특정 세대의 문제라기 보단 세대갈등의 일종이라고 해석하는 게 더 합리적이지 않을까.
소황제들이 오히려 지속가능한 경제발전에 기여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한중 소황제 세대들은) 기성세대와 다른 성장 배경 등으로 사고방식이나 경제활동이 차별화될 수밖에 없다. 특히 코로나19 로 인해 성큼 다가온 디지털 경제 패러다임을 한층 빨리 흡수하고, 한발 더 나아가 각종 기술 혁신과 디지털 경제 패러다임을 구체화시킬 세대임이 분명하다. 즉, 혁신의 속도가 더욱 탄력을 받을 공산이 높다는 점을 시사한다. 이는 각종 기술혁신 혹은 창업 혹은 각종 투자가 더욱 활성화될 수 있는 긍정적 동력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중요한 건 소황제가 왜 나타났는지, 소황제 세대가 얼마나 이기적인지, 이로 인한 사회적 부작용은 무엇인지가 아니라는 생각이다. 오늘날 인간은 오랜 시간 진화 과정을 거치면서 생존·번식 본능이 강한 유전자들로 재구성된 생물이다. 아이를 낳고, 아이를 지키고, 아이에게 좋은 것들만 해주는 건, 자녀를 소황제처럼 대우하고 싶은 마음은 인간의 원초적 본능이다. 그저 시대적 상황과 경제적 수준에 따라 정도가 갈릴 뿐이다. 또한 앞서 거론했듯 중국의 소황제와 현재 우리나라의 소황제는 미묘하게 다르다. 전자는 부모의 풍요로운 경제적 기반 아래 자란 세대이지만, 후자는 부모의 경제적 수준이 풍요롭지 않음에도 소황제 대접을 받고 있다. '소황제 세대가 문제다', '소황제 현상이 사회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라는 식의 접근은 애초부터 생물학적 측면에서 상당한 오류가 있고, 지금 우리나라의 사정과도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모두 황제'라는 걸 인정하고 출발해야 하지 않을까. 한 세대가 미래세대를 챙기는 건 어느 세대에게나 본능적인 일이고, 그 시대의 경제사회적 수준에 맞춰 미래세대에게 최선의 보살핌을 해주는 게 당연하다는 걸 말이다. 그 다음엔 '황제를 위하여'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지 고민해야 한다. 일례로 앞서 보도한 'K-소황제②'에서 보듯 우리나라는 초저출산 시기임에도 가정에선 아이들을 보낼 어린이집, 유치원을 찾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또한 일부 기업들은 급격히 성장한 키즈 시장에서 수익성 확보에만 혈안이 된 채, 아이들을 위한 제품·서비스의 품질 개선을 게을리하기도 한다. 가격엔 거품이 잔뜩 꼈다. 몇몇 부모들은 '내 아이를 위해서'라는 명분을 앞세워 자신의 왜곡된 허영심을 아이들에게 투영해 양극화 우려를 심화시키고 있다. '오은영 신드롬'이 괜히 나타났으랴. 안전하지 못한 사회도 문제다. 1999년 씨랜드 참사, 2014년 경주 마우나리조트 붕괴 참사·세월호 참사, 2022년 이태원 참사 등으로 얼마나 많은 K-소황제들이 목숨을 잃었는가.
특히 고민해야 할 대목은 '원죄'다. 작금의 우리나라 사회를 이끄는 세대들은 이미 초저출산과 집값 폭등이라는 씻지 못할 죄를 미래세대에게 저질렀다. K-소황제들 대부분은 앞으로 조부모, 부모 부양과 자녀 양육을 함께 감당하는 처지에 놓일 것이다. 이 같은 부양·양육 부담은 향후 우리나라의 경제 역동성을 저해할 가능성이 높다. 최근 수년간 급등한 집값으로 부동산 공화국이 공고해진 점도 미래세대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다. 땅은 현재세대가 미래세대에게 빌려서 사용하는 것이라는데, 그 토양을 현재세대가 망가뜨렸다. 아무리 금리가 올라도, 인구구조에 변화가 생겨도 한번 오른 집값은 IMF급 충격이 오지 않는 이상(온다면 이미 경제 전반이 파탄이 난 상태일 것) 큰폭으로 떨어지지 않는다. 이 같은 부분들에 대한 중장기적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 외국인 이민 활성화 등 미래 생산가능인구를 늘리는 방안을 찾고, 후분양제 등 국민 주거안정을 위한 본질적인 대책들의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
1988년 개봉한 〈마지막 황제〉는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이자 중국의 마지막 황제인 선통제의 이야기를 다루는 영화다. 그의 인생은 매순간 윗대와 시대에 휩쓸렸다. 선통제는 서태후, 위안스카이 등 기성세대의 권력 싸움에 휘말려 원치 않는 황제 놀음을 하고, 이후 일본 제국에 끌려가 만주국 황제 노릇을 했다. 그리고 일본의 무조건 항복 선언 후엔 소련군의 포로가 돼 감옥 살이를 하다가 중국으로 이송돼 말단 공산당원이 된다. 영화 속 선통제는 한 아이에게 '나는 중국의 황제였단다'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자취를 감춘다. 어른들이 만든 어지러운 세상에서 우리의 황제인 아이들이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표류하다가 쓸쓸한 마지막 황제가 되는 일은 없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들의 황제를 위하여.
좌우명 : 隨緣無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