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다각화 통해 40년간 성장 계속
수십년의 M&A→수십개의 계열사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방글 자유기고가)
M&A 승부사로 불리는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또다시 초대형 빅딜에 나섰다. 한화그룹은 최근 2조 원을 들여 대우조선해양 경영권 49.3%를 사들이기로 결정했다.
김승연 회장은 오랫동안 M&A 귀재로 불렸다. 1982년 취임과 동시에 인수합병 시장에 큰손으로 등장했고, 한화그룹을 경영하는 40년간 크고 작은 M&A를 계속해왔다. M&A를 통해 한화그룹의 사업을 다각화하고 사세를 확장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우조선해양도 김승연 회장이 오랫동안 눈여겨 본 매물 중 하나다.
<시사오늘>은 2008년부터 이어져온 한화그룹의 대우조선해양 인수 스토리를 돌아보고, 1982년부터 한화가 진행해온 대표 M&A를 통해 한화그룹의 성장과정을 살펴본다. <편집자주>
한화의 창업주 그러니까 김승연 회장의 아버지 故 김종희 회장은 ‘다이너마이트 킴’이라 불렸다. 국내 최초로 다이너마이트생산에 성공, 국산 다이너마이트를 생산 및 판매한 인물에게 붙여진 별칭이었다.
한화는 그렇게 화약을 기반으로 성장했다. 그러다 어떻게 방산은 물론이고 화학, 유통, 에너지를 넘어 우주로까지 사업을 넓히게 됐을까.
한화의 모태를 만든 인물이 김종희 창업주라면, 한화를 현재와 같이 그룹으로 발전시킨 것은 김승연 회장이다. 김승연 회장은 회장직에 있는 40년간 M&A를 계속했고, 한화의 사업분야 역시 40년간 다양해졌다. M&A를 중심으로 사업다각화에 성공한 케이스다.
그렇다면, M&A 승부사로 불리는 김승연 회장의 첫 인수 대상은 어디었을까.
김승연 회장은 1977년 한국화약의 ‘이리역 폭발사고’와 함께 경영에 투입됐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 김종희 창업주가 유명을 달리하면서 어린 나이에 회장직에 앉는다. 이 때가 1981년 8월 1일, 김 회장의 나이 29살 때다.
김승연 회장이 M&A 승부사로의 역할을 시작한 것은 바로 다음해인 1982년이다.
당시 제2차 오일쇼크로 세계적 석유화학기업인 다우케미칼이 한국 시장 철수를 결정했다. 그러면서 한국에 세운 한양화학과 한국다우케미칼이 M&A시장에 매물로 나왔다. 이 때 한양화학과 한국다우케미칼의 적자는 각각 75억 원, 430억 원으로 두 회장의 적자만 500억 원에 달했다. 때문에 한화의 임원들은 인수를 반대했다. 일각에서는 김승연 회장이 젊은 혈기로 무리한다는 지적까지 나왔다.
하지만 김 회장은 사업다각화 위해 석유화학사업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고 인수 의사를 굽히지 않았다. 그는 또, 다우케미칼의 매각 이유에 주목했다. 한양화학과 한국다우케미칼을 내놓은 이유가 본사의 재무구조 개선 때문이지 석유업계 불황 때문은 아니라고 파악한 것.
인수 1년 후, 두 회사는 모두 흑자로 돌아섰고 그룹 주력으로 자리잡았다.
한국화약, 한양·다우 경영권 인수
한국화약이 한국다우케미칼의주식 100%와 한양화학 주식 50%를 합친 850만 주, 6000만 달러를 인수 두 회사의 경영권을 장악했다.
지난 27일 한국화약그룹과 미국 다우 회사 간에 맺은 주식매매 본계약은 한국다우주식 738만2846주 4750만 달러, 한양화학 111만5847주 1250만 달러를 한국화약이 매입하며 계약금 2000만 달러는 내달 10일까지 서울 시티뱅크에 예치시키고 나머지 4000만 달러는산업은행 보증으로 8년 균등 상환한다는 조건이다.
그동안 미 다우 측과 한국화약 측 간에 의견이 맞서왔던 사용계약 기술료(로열티)는 매출액의 3.5%로 하되 8년동안 기간을 줄였고, 양도소득세·증권거래세·이자소득세는 미 다우가 전액 부담키로 조정되었다.
한국화약그룹은 주식매매계약이 정식 체결됨에 따라 금주안에 사장을 비롯한 인사 등을 매듭짓고 인수작업에 들어갈 예정인데 사장에는 전직 장관 최각규씨가 이야기되고 있다.
본계약은 당초 15일 체결할 예정이었으나 양측 의견이 대립, 지연되어왔다.
-1982년 11월 29일자 <매일경제>
이로써 한화는 화약사업에 이어 석유화학사업까지 발을 뻗을 수 있게 됐다.
화학사 인수에 성공한 김 회장은 곧바로 유통사업으로 눈을 돌린다. 이 때도 창업을 통한 유통사업 진출 보다는 기존업체를 인수하는 방식을 택한다.
한양화학 인수 3년 후인, 1985년 한화는 한양유통(1985)을 인수하며 유통업계 진출을 본격화한다.
한화, 한양유통 인수
한양그룹 계열회사인 한양유통이 한국화학그룹으로 넘어가게 됐다.
30일 한양그룹의 주거래은행인 상업은행은 한양그룹의 재무구조를 개선하고 주력업종인 건설업에 전념토록 유도하기 위해 한양유통을 한국 화약그룹에 인수시키기로 결정, 이날 두 그룹이 가계약을 체결했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한국화약그룹은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에 위치한 한양쇼핑센터, 파르코백화점 등 한양유통의 자산과 부채를 모두 떠맡게 됐는데, 인수가격 등 구체적인 양도조건은 공동 실사를 거쳐 추후 결정키로 했다.
-1985년 12월 1일자 <조선일보>
이 때 인수한 한양 쇼핑 영동점과 패션 전문점 파르코는 1990년 갤러리아백화점 명품관으로 재개점한다.
비슷한 시기 한화는 정아그룹 인수도 결정했다. 하지만 실사 결과 자산이나 사업규모에 차이가 있어 인수협상 과정에 진통을 겪는다.
결국 한화가 정아그룹을 손에 쥔 것은 인수를 결정하고도 4년 후인 1989년에서다.
舊명성그룹 5개 계열회사 한국화약서 정식인수
한국화약그룹은 24일 서울민사지법의 판결에 따라 그동안 법정관리를 받아온 구명성 그룹 계열의 정아레저타운·정아관광·정아건설·정아컨트리클럽·명성 등 5개사를 정식으로 인수했다.
서울민사지법 합의 50부(재판장 김헌무 부장판사)는 23일 5개사 법정관리단이 신청한 회사정리계획안을 인가했었다.
한국화약그룹은 이같은 법원의 인가에 따라 명성 5개사 중 정아레저타운을한국국토개발로 상호를 바꿔 존속시키고 정아건설, 정아관광, 정아컨트리클럽 명성등 4개사는 한국 국토개발에 합병시키기로 했다.
한국화약그룹은 86년 12월 명성의 채권은행인 상업은행과 5개사 인수계약을 체결했었으나 그동안 인수협상과정에서 조건이 맞지 않아 정식 인수가 지연돼왔다.
이에 따라 79년 3월 태평양레저타운설립을 시작으로 83년 6월 명성사건이 터지기까지 4년만에 21개 계열기업을 거느린 재벌기업으로 성장했던 김철호 씨의 명성그룹은 창업 10년만에 완전 소멸됐다.
인수자금은 이자부담 1130억 원을 포함, 모두 2728억 원이다.
그러나 김철호 전 명성그룹 회장 측은 이날 확정된 정리계획안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 회사정리절차폐지신청서를 법원에 제출하는 한편 법원인가에 대해 항고키로 하는 등 반발하고 있다.
-1989년 6월 24일 <경향신문>
결과적으로 한화가 1985년 인수한 한양유통과 동양백화점은 현재의 한화갤러리아로, 1989년 손에 쥔 정아그룹은 한화호텔&리조트로 탈바꿈한다.
하지만 김승연 회장의 사업다각화를 통한 성장 전략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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