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박근홍 기자]
현대엔지니어링이 결국 상장 철회를 결정했다.
28일 현대엔지니어링은 IPO(기업공개)일정을 철회한다고 공시했다. 상장 일정 철회 사유는 차가운 공모 시장 반응이다. 현대엔지니어링은 지난 25~26일 수요예측을 진행했으나 최종 경쟁률이 50 대 1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로 인해 희망 공모가 범위 하단인 5만7900원도 지키기 어렵게 되면서 불가피하게 상장 철회 결단을 내린 셈이다.
현대엔지니어링 측은 "보통주에 대한 공모를 진행해 최종 공모가 확정을 위한 수요예측을 실시했으나 회사 가치를 적절히 평가받기 어려운 측면 등 제반 여건을 고려해 공동대표주관회사 등 동의 하에 잔여 일정을 취소하고 철회신고서를 제출했다"고 설명했다.
'회사 가치를 적절히 평가받기 어려운 측면 등 제반 여건'으로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으로 건설업계 전반에 리스크가 커진 데다, HDC현대산업개발발(發) 광주 신축 아파트 공사현장 건물 붕괴사고까지 터지면서 건설주가 약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 꼽힌다. 또한 미국의 테이퍼링·금리 인상, 우크라이나 사태 등으로 국내 증시가 연일 하락장이라는 것도 상당한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또한 과도한 오너일가 챙기기도 흥행 저조 원인 중 하나로 분석된다. 현대엔지니어링은 전체 공모 물량 1600만 주 가운데 1200만 주(75%)를 구주 매출로 분류했다. 구주 매출은 기존 주주가 보유하고 있는 주식 지분 중 일부를 투자자들에게 공개적으로 파는 것을 말한다. 여기에는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약 534만 주), 그의 부친인 정몽구 명예회장(약 143만 주) 등 그룹 오너일가가 보유한 현대엔지니어링 지분이 대거 포함됐다. 흥행에 성공했다면 두 사람은 총 5000억 원 가량의 자금을 확보, 이를 사실상 그룹 지주사인 현대모비스 지분을 늘리는 데 활용해 지배력 강화에 나섰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중론이다.
이로 인해 회사 안팎에서는 이번 상장 목적이 신성장동력 발굴 등에 써야 할 투자금 조달이 아니라 오너일가 챙기기라는 비판이 제기돼 왔다. 사측과 갈등을 빚고 있는 현대엔지니어링 노조가 상장 반대 목소리를 냈고, 동학개미들 사이에서도 청약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분위기가 형성됐다(관련기사: ‘IPO 대어급 건설사’, 상장 앞두고 안팎서 잡음, http://www.sisaon.co.kr/news/articleView.html?idxno=132887). 이 같은 점을 고려해 기관 투자자들도 수요예측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은 것으로 풀이된다.
때문에 업계에서는 현대엔지니어링이 조만간 다시 상장에 도전할 공산이 크다는 분석이 주를 이룬다. 현대모비스 지분이 0.32%에 불과한 정의선 회장이 실질적으로 경영권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현대엔지니어링을 통해 실탄을 마련할 수밖에 없다는 이유에서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정 회장이 최근 현대글로비스 지분을 파는 등 실질적 경영권 승계를 위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현대엔지니어링은 연내 IPO에 재도전할 수밖에 없다"며 "이번 흥행 저조는 충분히 예상되는 부분이었고, 수요예측 전부터 현대건설에 흡수시키는 우회상장 카드에 대한 말도 다시 돌고 있는 상황"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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