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윤명철 기자)
이성계는 정권교체에 성공했다. 고려는 더 이상 백성의 나라가 아니었다. 몽골의 침략에서 백성을 구하지 못하고 왕실의 안위만 중시해 보호국을 자처했다. 후대 사가들은 ‘원간섭기’라며 자주성을 수호한 것처럼 호도하고 있지만, 이 시절부터 고려왕들은 몽골의 피가 섞였다. 태조 왕건의 순수 혈통 왕계는 무너졌다.
당시 권문세족은 권력의 마약에 취한 검은 커넥션이었다. 문벌귀족, 무인, 친원파 등은 고려 왕조에서 권력의 단 맛을 빨아 마신 권력마약중독자들의 연합체다. 고려왕은 권력 마약 중독자들이 내세운 바지 사장에 불과했다.
누군가는 이성계를 역적이라고 비난한다. 정몽주와 같은 고려의 충신들과 비교한다. 문제는 그들이 지키고자 했던 것이 고려의 왕실인지, 백성인지는 알 수 없다는 점이다. 그들 역시 고려 왕실이 백성을 지키기는 데는 역부족이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고려 왕실을 구실로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려 했다는 합리적 개연성도 충분하다.
이유는 명확하다. 고려 국가시스템은 이미 붕괴됐다. 개성의 중앙정치만 바뀐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향리로 대표되는 지방 토호들은 지방 권력을 점령했다. 철옹성같은 토착비리가 뿌리 깊게 박혀 있어 대대적인 개혁이 필요했다. 왕권교체가 아닌 왕조교체가 필요했다. 정몽주가 지키려 했던 고려 왕실이 나라를 구할 능력이 있었을까. 온건파 사대부가 개혁을 실행할 능력이 있었을까? 과면 민심이 이들을 지지했을까? 의문이 앞선다.
이성계는 왕조교체를 시대정신으로 삼았다. 민심이 그를 따랐다. 원명 교체기에 국가 안보를 위협했던 홍건적과 왜구를 무찌르며 국민의 영웅이 됐다. 국가적 위기에도 최고 지도자 우왕은 존재감을 스스로 폐기했다. 그저 이성계와 최영의 힘에 의존해 자신의 안위만 지키기에 급급했다.
이성계에게는 인적 인프라가 풍부했다. 정도전과 같은 유능한 신진사대부들이 함께했다. 이성계 가족들도 강력한 우군이 됐다. 조선 최초의 왕비 신덕왕후 강씨는 동북면 변방의 무장에 불과했던 이성계를 개성 중앙 정치무대에 우뚝 서게 만들었다. 막강한 재력으로 인재들을 이성계 사람이 되게 했다. 정실부인이 아니면서도 왕조창업의 동지이자 일등 공신이었다. 이방원도 빼놓을 수 없다. 과거에 합격한 문인 출신이었지만 정몽주 처단 등 무인 못지않은 과감한 실행력을 자랑했다.
정도전이 마스터 플랜을 짜면, 부인 강씨가 후원하고, 이방원이 피를 묻히며 정적을 제거해 조선을 개국했다. 한 마디로 삼박자가 착착 맞은 환상의 트리오였다. 민심이 왕조교체를 지지할 이유를 이들이 만들었다. 이성계는 왕조교체, 조선 개국이 가능한 데는 민심, 혁명파 신진사대부, 가족 없이는 불가능했다.
최근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를 보면 필패의 길로 접어들었다는 생각이다. 윤석열은 민심, 신진사대부, 가족이 없다. 당내에서는 내일 당장 선거를 치르면 필패한다는 말도 심심치 않게 나온다. 일부 당내 인사들은 '윤 후보를 찍고 싶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찍을 수밖에 없는 현실에 분노한다'는 속내도 드러내고 있다.
윤석열은 민심 확보에 실패했다. 코로나19 확진자와 중증 환자, 사망자가 급증하며 연일 신기록 갱신 중이다. 미국과 중국은 베이징 올림픽 외교 보이콧 등으로 편가르기에 나서며 전방위에서 대치 중이다. 하지만 정치권은 민생보다는 대선에만 몰두하고 있다.
대장동 의혹이 성남시 한 곳만의 일일까? 온 나라가 지방권력과 토호들이 협작해 혈세 도적질과 이권 챙기기 의혹이 난무하고 있다. 또한 지역 현안보다는 내년 지방선거 공천에만 목을 매고 있다. 흡사 고려말 내우외환 시기가 연상된다.
정도전과 같은 기획자가 없다. 사람은 넘쳐나는데 정권교체 후 논공행상에 더 관심을 갖는 기회주의적 인사들이 돋보인다. 또한 정권교체에 실패하는 것이 차후 자신의 정치적 입지에 유리하다는 정치공학적 오판에 집중하는 인사들도 있다고 한다. 정권교체 실패가 공멸이라는 생각은 전혀 없어 보인다.
윤석열의 참모들 중에는 이방원 같이 피묻히는 충신들이 없다. 내부총질에는 능수능란하지만 집권 여당과의 전쟁에는 망설임이 너무 많다. 당내 정적 제거에만 몰두한 자중지란 제조기들만 가득 찼다. 오죽했으면 민주당 내에서는 이재명이 당선된다면 이준석이 최대 공신이라는 비아냥이 나올 정도다. 한 마디로 민심아 떠나라, 떠나라 하는 굿판을 벌이고 있는 한심한 작태다.
윤석열 후보가 정권교체를 원한다면 이성계가 민심을 얻기 위해 갖췄던 조건이 무엇인지 깨달아야 한다. '윤석열을 정권교체의 적임자'라는 민심을 얻지 못하면 선거는 필패한다. 국민을 살리려면 민심부터 얻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