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진호 기자]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단순한 정치인이 아니다. 새로운 정치에 대한 청년들의 열망이 투영된 일종의 ‘상징’이다. ‘헌정 사상 최초의 30대 제1야당 대표’라는 타이틀을 단 순간, 이 대표의 일거수일투족은 ‘청년 정치’의 성패와 연결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이런 맥락에서, 이 대표의 최근 행보는 매우 실망스럽다. 윤석열 후보가 당의 대선 후보로 선출된 후, 이 대표는 꾸준히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의 이름을 입에 올렸다. 전권을 줘서라도 김 전 위원장을 ‘모셔야’ 대선에서 이길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김 전 위원장 영입이 좌절된 후에는 그를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소’라고 칭하며 “이제 김 전 위원장을 영입하려면 소 값을 쳐주는 정도가 아니라 모든 걸 더 얹어서 드려야 할 것이다. 프리미엄을 얹어야 한다. 전권을 드려야 된다”고 말했다. 제1야당 대표가 아니라, 마치 김 전 위원장의 뜻을 전하는 사절(使節) 같았다.
이뿐만 아니라 자신에 대한 ‘패싱 논란’이 나오자, 자신의 페이스북에 ‘그렇다면 여기까지입니다’라는 글을 올린 후 모든 일정을 취소하며 ‘당대표 사퇴설’을 불러일으켰다. 대선이 채 100일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당대표가 대선 후보와의 갈등 상황을 공개적으로 밝힌 것이다.
청년들이 이 대표를 헌정 사상 최초의 30대 제1야당 대표로 만든 것은 정치를 변화시켜주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었다. 청년들은 똑똑하고 당찬 이 대표가 ‘고인 물’들로 가득한 기성 정치판에 들어가 변화를 이끌어낼 것이라고 믿었고, 자신들의 희망을 ‘이준석’이라는 배에 실어 띄웠다.
하지만 대표가 된 후 그는 80대 노정객인 김 전 위원장 ‘모시기’에 혈안이었다. 청년들은 ‘뭔가를 바꿔주리라’는 믿음으로 이 대표를 밀어 올렸는데, 정작 이 대표는 ‘올드보이’ 영입에만 공을 들였다. 과연 당원들이 정치권에서 잔뼈가 굵은 노장에게 전권을 쥐어주라고 30대 당대표를 선택했을까.
윤 후보와의 갈등을 해결하는 방식도 실망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물론 우리 정치에서 기성 정치인들은 청년 정치인들이 넘기 어려운 높은 ‘벽’이다. 가뜩이나 머릿수에서도 밀리는데, 젊다는 이유로 무시당하고 자존심을 다친다. 아마 이 대표 역시 자신을 대표로 여기지 않는 ‘꼰대’들에게 많은 상처를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청년들이 이 대표에게 기대했던 것은 그 모든 고난을 이겨내고 유능한 정치인으로 인정받는 모습이었다. 청년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고 있는 제1야당 대표라는 지위를 활용해 자신을 향한 편견을 이겨내고, ‘철이 없어서 안 돼’가 아니라 ‘기회만 주어지면 잘 하네’라는 평가를 끌어내 제2, 제3의 이준석이 정치에 진입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달라는 것이었다. 그것이 정치 경력 길고 똑똑한 이 대표를 제1야당 대표로 만든 이유였다.
하지만 이 대표는 정치력을 발휘해 어려움을 극복하기는커녕, SNS와 언론을 통해 불만만 터뜨렸다. 어떻게든 물밑에서 갈등을 조정하고, 당의 분위기를 추슬러야 할 당대표가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는다고 갈등설을 부채질했다. 자연히 정치권에서는 이 대표를 ‘철부지’라고 평가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기대와는 정반대로, 오히려 청년 정치인에 대한 안 좋은 선입견만 강화시키고 있는 셈이다.
‘청년’의 한 사람인 기자 역시 이 대표가 얼마나 많은 어려움을 겪었을지는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모르긴 몰라도 겉에서 보는 것 이상으로 힘들고 외로웠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헌정 사상 최초의 30대 제1야당 대표라는 타이틀을 가진 그가 당연히 짊어져야 할 짐일 수밖에 없다. 왕관을 쓰려면 왕관의 무게를 견뎌야 한다. 부디 이 대표가 왕관의 무게를 이겨내고, ‘성공한 30대 당대표’로 정치사에 남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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