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의 철학] 손학규 “변화된 국제 정세 속에서의 한미관계 문제는 신뢰다” 全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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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의 철학] 손학규 “변화된 국제 정세 속에서의 한미관계 문제는 신뢰다” 全文
  • 윤진석 기자
  • 승인 2021.05.09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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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1일 한미정상회담 앞두고 대한민국 어디로 갈 것인가 제언
“한국은 진정 美동아시아 전략 핵심축인가”…‘한미 신뢰 회복’ 
“국력 키우려면 친기업 친환경 조성해야”, 이재용 사면론 제기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윤진석 기자]

"손학규發 연동형 비례대표제 불씨는 살아있다"고 민주평화당 박지원 의원은 전망했다. 박 의원은 "그것은 손학규 대표의 자력이 아니라 박근혜 신당의 출범과 함께 한국당이 분열되고, 바른미래당 의원들이 친박당이든 비박당이든, 혹은 이념적으로 안 갈 사람들은 남아있게 되는 과정에서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뉴시스
손학규 전 바른미래당 대표가 한미 동맹 신뢰 회복을 강조했다.ⓒ뉴시스

 

“나는 대학생활을 반일운동으로 시작해서 박정희의 유신 반대 운동으로 젊음을 보낸 사람이다. 삼성재벌 소속 한국비료의 사카린 밀수사건 반대 운동을 주도해 처음 무기정학을 받았고, 모택동에 심취해서 ‘모순론’ ‘실천론’을 읽다가 감옥에도 갔다. 그런 내가 오늘 중국보다 미국을 중시해야 하고, 삼성과 이재용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 손학규 전 바른미래당 9일 페이스북 에필로그 중에서 - 

손학규 전 바른미래당 대표가 ‘변화된 국제 정세 속에서의 한미관계: 문제는 신뢰다’라는 제목의 장문의 글을 9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게재했다.

5월 21일 한미정상회담을 앞두고 “한·미 관계 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앞날을 위해서 대단히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며 정치 원로로서 대한민국의 나아갈 방향성과 관련해 취임 4주년을 맞은 문재인 정부에 몇 가지 당부의 글을 올린 것이다. 

해당 글에서 손 전 대표는 “과연 아직도 한국은 진정으로 미국 동아시아 전략의 핵심축(Linchpin)인가”를 물으며 “현실적으로는 한·미 안보동맹에서 한국에 대한 미국의 신뢰가 크게 상실돼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불신의 근거로 “한·미 동맹의 약화로, 첫째, 한·미 연합군사훈련의 부실화, 둘째, 전시작전통제권 조기 전환 요구”를 꼽은 그는 “우리가 미국의 신뢰를 잃고 동맹이 약화되면 중국도 일본도 그리고 북한도 우리를 멸시하고 우리 국익은 손상되기만 한다”고 지적했다. 

우리는 어디로 가야할 것인가. 당장은 한미 관계에 있어 “신뢰의 회복”이라고 보고 있다. 이를 위해 “한미 동맹을 튼튼히 하고 한미 연합 군사훈련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국력을 키우는 방법으로 4차산업혁명시대의 기술경쟁력을 높이는 것이 최우선의 과제임을 제시했다.

손 전 대표는 “정부의 지원도 중요하지만 친기업 환경을 조성해 주는 것이 정부의 첫째 역할”이라며 “이재용을 사면해서 우리 정부가 기업을 실제로 지원한다는 것을 보여 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기적으로는 “우리나라는 더 이상 제왕적 대통령 때문에 생기는 진영 논리와 패싸움, 이념 논쟁으로 피폐해 질 수 없다. 통합의 리더십을 발휘해야 할 때”라며  7공화국 건설을 피력했다. 

 

※ 손학규 전 대표가 쓴 ‘변화된 국제 정세 속에서의 한미관계: 문제는 신뢰다’ 전문을 ‘명사의철학’을 통해 소개한다. 


바이든 대통령의 취임 이후 미중의 대결구도가 예민하게 발전하고 있는 가운데 5월은 한반도의 운명을 가름할 중요한 계기가 될 것 같다. 4월 30일에는 바이든 정부의 대북정책 검토가 완료되어 정책기조가 발표되었고, 문재인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의 한미정상회담이 5월 21일로 잡혔다. 6월 11일에는 영국에서 서방 중요국의 G7정상회의가 열리고 문재인 대통령도 여기 참석한다. 

미중 대결 체제에서 미국이 집중할 중국 견제는 군사 안보 차원에서 뿐 아니라 반도체 등 경제 전쟁에서 코로나 백신 전쟁에까지 확산되고 있다. 한국은 미국과의 전통적인 동맹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 중국과의 끊을 수 없는 관계를 갖고 있는 한국은 지금까지는 안미경중(安美經中) 즉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양다리 전략으로 버텨왔다. 그러나 이번에 열리는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대한민국은 자칫 미국과 중국을 오가는 전략성 모호성의 포기를 강요받을 염려조차 있다.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 대북 평화프로세스를 펼쳐오던 문재인 정부는 바이든 행정부의 등장 이후 한·미, 한·중, 한·일, 남북 관계 등 모든 국제관계에서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문재인 정권은 임기가 1년밖에 남지 않았고 대선을 생각하면 국제관계를 대응할 실효적 기간이 몇 달 안 된다. 앞으로 이 나라를 책임지겠다고 나설 주자들이나 정당들도 나라의 미래와 안보, 경제, 그리고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에 대해 깊이 있는 대응책을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 

 

<전개 과정>


미국의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후 세계 전략의 중심 과제에서 중국 견제를 제1의 목표로 설정하고 이를 실행에 옮기고 있다. 취임 후 준비기간을 거쳐 3월 12일 쿼드(Quad: 미국, 일본, 호주, 인도)정상회담을 시작으로, 15-18일 블링컨 국무장관과 오스틴 국방장관의 일본과 한국 방문, 18-19일 알래스카에서의 미·중 고위급 외교 회담으로 국제정세 관리를 시작했다. 

4월 28일에 행한 상하원합동회의 연설에서도 바이든 대통령은 중국과의 경쟁을 승리로 이끌어 미국의 세계적 리더십을 확보하겠다는 뜻을 명확히 했다. 그는 북한의 핵 위협에 대해서도 동맹국들과 함께 외교와 단호한 억지전력을 통해 대응할 것이라고 했다. 4월 16일 일본의 스가 총리를 워싱턴으로 불러들여 취임 후 첫 대면 정상회담을 한 바이든 대통령은 5월 21일 문재인 대통령을 두 번째 상대로 정상회담을 계획하고 있다. 4월 30일에는 대북정책 검토를 마치고 정책 기조를 발표했다. 

쿼드 정상회담을 통해 중국 견제를 목표로 한 인도·태평양 전략을 확인한 미국은 알래스카 고위급 외교회담을 통해 대 중국 압박을 노골화했다. 미국은 블링컨 국무장관의 발언을 통해 신장 위구르족 인권문제를 비롯해 홍콩과 대만 문제를 꺼내는 등 처음부터 중국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중국의 양제츠 정치국원도 2분으로 예정되어 있던 모두 발언을 15분이나 하면서 미국의 내정간섭에 단호히 반대한다며 미국을 비난했다. 그는 ‘미국에는 미국식 민주주의가 있고 중국에는 중국식 민주주의가 있다’고 하며 미국이 말하는 보편적 가치에 대해 정식으로 반기를 들었다. 미국이 중국의 인권 문제를 거론한 데 대하여는 미국 내 흑인 인권문제를 제기하며 반론을 제기했다.

한국과 일본을 견인하기 위한 양국의 경쟁도 불꽃을 튀겼다. 4월 2일에는 미국 매릴랜드주 소재 해군사관학교에서 한·미·일 3국의 안보실장회의가 열렸고, 중국은 다음날인 3일에 한국 외교부장관을 중국에 초청해서 한·중 외교장관 회담을 개최했다. 회담 장소도 대만을 바로 앞에 둔 푸젠성 샤먼으로 미국을 상대로 신경전을 펼친 것이다. 

군사적 대결도 자주 벌어지고 있다. 3월 26일에는 중국 군용기 총 20대가 대만 서남부 방공식별구역(ADIZ)에 진입해 역대 최대 규모의 무력시위를 벌렸다. 4월 10일에는 항공모함 랴오닝함을 주축으로 하는 항모전단이 남중국해로 들어왔다. 미국이 전날 핵추진 항공모함 루스벨트함을 앞세워 남중국해에서 훈련을 전개한 데 대한 대응으로, 양국 간 군사적 대결의 일면을 보여준다. 

4월 16일에 열린 바이든-스가 정상회담에서 미·일은 대중국 공세 수위를 높였다. 양국은 공동성명에 “대만 해협의 평화와 안정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양안(중국과 대만)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권장한다.”고 발표했다. 정상회담 공동성명에서 대만을 거론한 것은 1969년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과 사토 에이사쿠 일본 총리의 회담 이후 52년 만이다. 

미·중 대결은 군사 안보적인 차원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경제 패권전쟁으로 확산되고 있다. 반도체 부족으로 자동차 공장이 휴업하는 상황이 발생하자 바이든 대통령은 4월 12일 백악관에서 19개 대기업 CEO를 화상으로 초청해 회의를 개최하면서 중국과 반도체 전쟁을 선언한 것이다. 이 회의에는 미국의 IT회사와 자동차 회사뿐 아니라 우리나라 삼성전자와 대만의 TSMC 등 반도체 회사도 초청했다. 중국에 대한 압박이었다. 또한 미국은 백신전쟁에까지 나서고 있다. 코로나 백신이 세계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5월 5일 백신 지적재산권 면제를 지지하겠다고 선언했다. 

 

<한국의 위치 찾기>


이렇게 미·중간 패권 경쟁으로 동아시아가 새로운 분쟁 지역으로 부상하고 있다. 한국은 그 한가운데에서 미국과 중국 양국으로부터 협공을 받고 있다. 우리는 대한민국이 가야할 길을 정확히 찾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새롭게 전개되는 환경에서 우리가 처해있는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해야 하는 것이 첫째로 할 일이다. 

배의 선장을 지냈던 친구 한사람이 언젠가 나에게 물었다. “학규야, 선장의 가장 중요한 책임이 무언지 아니?” 나는 잘 몰라서 “선원들을 잘 지휘하는 건가?” 하며 어물거렸다. 그는 “선장의 가장 중요한 책임은 망망대해에서 내 배의 위치가 어디인가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거야. 그래야 어디로 갈지 방향을 정하고, 그에 따라 항해 준비를 하는 거지.”라고 말했다. 바로 그거다. 급변하는 세계정세 속에 대한민국이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를 정확히 파악해야 우리가 나아갈 길을 결정할 수 있는 것이다.

한국은 미국 동맹국의 중심에 있는가? 미국이 한국을 핵심적인 동맹국으로 인정하고 있는가? 혹시 핵심동맹에서 이탈했는가? 미국과 중국의 대결구도에서 한국은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가? 미국과 중국의 한 가운데 있는가? 그럴 수는 있는가? 전략적 모호성은 계속 유지할 수 있는가? 미국의 입장에서 한국은 아직도 동북아 안보의 핵심축(linchpin)인가? 인도·태평양 세력의 중심에 들어갈 수 있는가? 중국과의 관계에서 친중을 표방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일부에서 말하고 있는 중립화론은 한국에게 가능한 시나리오인가?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할 여러 가지 위치 설정의 예(例)다.

분명한 것은 미국의 세계 전략에서 한국의 위치는 과거와 많이 달라져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이 과거에 일본의 주춧돌(Cornerstone), 한국의 핵심축(Linchpin)에 기초해 있었다면, 이제는 미국-일본-호주-인도를 연결하는 쿼드가 주도하는 구도로 세력전이가 발생하고 있다. 미국의 세계 안보와 국가 이익에서 한국은 그만큼 옆으로 비껴서고 있는 것이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대국적으로는 중국의 급격한 부상과 미·중 대결구도로의 변환으로 한국의 전략적 가치가 그만큼 축소된 때문이고, 현실적으로는 한·미 안보동맹에서 한국에 대한 신뢰의 상실이 그 이유다.

미·중 대결구도가 첨예화됨에 따라 미국의 입장에서 볼 때 한국은 더 이상 동아시아의 유일한 전초기지가 될 수 없게 되었다. 중국은 일대일로 계획을 통해 유라시아 대륙과 인도양, 지중해를 석권하려하고 있고, 그 전초전으로 중국 앞의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에서 주도권을 장악하려하고 있다. 앞으로 항공모함을 4척으로 증가시켜 미국이 독점하고 있던 해양권을 나누어 가지려하고 있고, 대만, 센가꾸 열도 등을 끼고 있는 인근 해역부터 장악하려 하고 있다. 중국은 세계제일국가를 꿈꾸는 중국몽의 실현을 위해 한 발짝 한 발짝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팽창하는 중국을 견제해야 할 미국으로서는 오직 한국의 휴전선에서 중국을 방어하고 압박한다는 것은 이미 구시대의 세계전략이 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코앞인 한국에서 대적하기 보다는 보다 크게 포위, 압박하는 것이 미국의 새로운 전략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미국이 새로운 전략개념으로 설정하고 추진하고 있는 인도·태평양 전략이고, 그 기초가 미국-일본-호주-인도를 엮는 쿼드 전략인 것이다.  

미국은 쿼드에 인근 국가를 더 참여시킬 계획을 세우고 있을 것이다. 소위 쿼드 플러스다. 한국, 베트남, 대만, 필리핀 등이 그런 나라들이고, 유럽의 동맹 국가로 범위를 확대하는 생각도 하고 있을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는 민주주의 국가들로 구성된 D-10이 그러한 구상 중의 하나일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민주주의를 향한 정상회담(Summit for Democracy)'을 계획하고 있으며, 민주주의라는 가치와 동맹을 중심으로 하는 다자주의로 중국을 포위하고자 하는 것이다. 

 

<문제는 미국의 신뢰다>


문재인 정권이 들어선 이후 한미동맹이 흔들리고 있다는 관측 속에 한국 정부에 대한 미국의 신뢰에 금이 가고 있다는 말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미국이 한국을 신뢰하지 않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우선 한미동맹의 가장 큰 축인 군사적 동맹에 관한 사항이다.

문재인 정권이 들어선 이후 한국 정부는 한미 연합군사훈련의 축소 또는 연기를 요구했고, 지난 3년간 한미연합훈련은 야외기동훈련 없이 지휘소 훈련만 실시했다. 키리졸브(KR), 독수리훈련(FE), 을지프리덤가디언(UFG) 등 3대 연합훈련을 폐지하고 병사와 장비가 실제로 투입되는 야외기동훈련이 없이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활용한 방어적 성격의 지휘소 훈련으로 대체한 것이다. 합동참모본부는 “한미동맹은 코로나19 상황, 전투준비태세 유지,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정착을 위한 외교적 노력 지원 등 제반 여건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훈련 참가 규모를 축소했다고 발표했다.

물론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주한미군 철수론 등 미국 정부의 한반도 전략 재검토 과정에서 미국 측이 한미연합훈련에 소극적이었다는 평가도 있다. 그러나 군사훈련 축소를 요구하는 한국 정부의 요구가 주된 요인이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올해(2021)도 전반기 한미연합군사훈련인 한미연합지휘소훈련(CCPT)이 3월 8일부터 18일까지 주로 컴퓨터 시뮬레이션 방식으로 실시되었다. 비록 도상훈련이기는 하지만 한미연합훈련이 열리는 기간에 미 국방장관이 한국을 방문했는데 그는 훈련소에 들르지도 않았다. 평상시 군대는 훈련으로 존재한다는 점을 의식하면 야외기동훈련이 3년째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황이 한미 군사동맹을 맺고 있는 미국의 입장에서는 결코 반가울 리 없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2020년 10~11월 실시된 미·일 양국군 4만 6천명이 참가하고 항공모함 등 전략자산이 동원된 미·일의 ‘킨 소드 21(Keen Sword 21)’이나 21년 2월 미·일·호주 연합공중 훈련으로 미군의 B-52H, 일본 항공 자위대의 F-15J 등이 참가한 '콥 노스 21 (Cope North 21)' 그리고 4월 6일 전개된 미·일간 스텔스기 연합훈련 등의 실제 군사훈련과 대비된다. 

미국의 동맹과 신뢰 면에서 일본은 우리보다 훨씬 앞서고 있으며, 한반도가 미국의 동북아 안보의 핵심 축에서 점점 벗어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한미연합군사훈련의 축소가 북한의 요청을 한국 정부가 수용한 것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미국은 한국정부가 한미동맹을 진정으로 원하는지에 대한 의구심을 갖기에 충분하다.

둘째, 전시작전통제권의 전환 문제도 있다.

노무현 정부 때 한국 정부가 전작권 전환을 요구했고, 이명박, 박근혜 정부 때 이를 연기했는데,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서 조기 전환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우리는 군사주권을 앞세워 전작권 전환을 요구하고 있지만, 미국은 조건이 성숙하지 않았다고 부정적인 견해를 밝히고 있다.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이 2021년 3월 18일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한·미 외교·국방장관 회의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전작권 전환을 위한 조건을 충족하려면 시간이 더 걸리겠지만 이 전환 과정을 통해 동맹이 강화될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이 발언의 핵심은 한국군이 현재 전작권 전환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고 있으며, 또 이 상태를 해소하기까지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점이다. 오스틴 장관의 이날 발언은 수개월 전 트럼프 행정부의 마크 에스퍼 전 국방장관이 2020년 10월14일 미국 워싱턴 펜타곤(국방부 청사)에서 열린 제52차 한·미 안보협의회의(SCM)에서 “전작권을 전환하기 위해 모든 조건을 완벽하게 충족시키려면 시간이 걸릴 것” 이라고 발언한 것과 똑같다. 그간 로버트 에이브럼스 주한 미군사령관도 전작권 전환이 시기상조라고 누차 말해왔다. 

한국 정부는 미국이 전작권 전환에 부정적인 점을 인식하고 최근 문재인 대통령 ‘임기내 전작권 전환’에서 ‘전작권 전환의 시기를 도출’하는 것으로 목표를 변경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미국은 전작권 전환을 요구하는 문재인 정부에 대해 불편한 기운을 숨기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셋째, 중국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저자세도 미국으로서는 불만의 요소다.

박근혜 대통령의 2015년 9월 중국 전승절 열병식 참관은 당시 중국으로부터는 커다란 환영을 받았지만 미국으로서는 불만일 수밖에 없었다. 그 뒤 박근혜 대통령이 미군의 사드 배치를 발표했고 사드가 일부 배치되었지만, 아직까지도 진행과정이 순조롭지 못하다. 중국은 이에 반발해서 보복조치를 이어왔고, 문재인 정부는 이에 대응해서 ‘사드 추가 배치 계획이 없고, 한국이 미국 미사일방어체계(MD)에 편입되지 않으며, 한·미·일 군사동맹으로 발전하지 않는다’는 ‘3불 정책’을 내세웠는데, 사드를 둘러싼 한국 정부의 조치가 미국으로서는 불만일 수밖에 없다. 

바이든 대통령 취임 이후 미국 정부는 조용히 문재인 정부의 대 중국 자세를 주시해 왔을 것이다. 당선 이후 문재인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는 2월 4일로 일본 수상보다 1주일이나 늦게 이뤄졌는데, 문재인 대통령이 1월 26일에 시진핑 중국 주석과 먼저 통화를 한 것이 이유가 됐을 것이라는 추측이 무성했다. 미국 정부의 공식 입장은 없었지만, 설사 시진핑 주석 측에서 통화 요청이 왔더라도, 지금은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통화부터 하는 것이 미국 신임 대통령에 대한 예의라고 하며 양해를 구했어야 했을 것이다. 미국은 한국이 이러한 외교적 역량이 없는데 대해 의구심을 가질 것은 당연하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이 취임 후 첫 해외출장이 하필 중국이며, 미국에서 한·미·일 고위급 외교회담이 열리는 같은 시각에 양국 외교장관 회담을 개최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의구심을 가질 만 하다. 물론 미 국무장관의 한국 방문으로 한·미간에 장관회의가 열린 후이긴 하지만 중국 정부가 한국 정부의 입장을 난처하게 만드는 처사에 한국 정부가 쉽게 응낙하는 것을 보는 미국의 눈이 고울 리는 없을 것이다. 한·중 외교장관 회담의 장소가 하필이면 샤먼인 것에 대해서도 미국 정부로서는 쉽게 납득할 수 없었을 것이다. 

넷째, 일본과의 불편한 관계는 미국 정부를 난처하게 만드는 또 하나의 큰 요인이다.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5년, 바이든 대통령이 부통령 때 중재해서 성사시켰던 위안부 문제 합의가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서 사실상 무효화된 것이 바이든 대통령으로서는 유쾌했을 리가 없다. 강제징용자 배상 판결과 관련한 대통령의 반일적 자세도 마찬가지다. 최근 들어서서 문재인 대통령이 일본에 대해 유화적인 입장변화를 표명하기는 했지만 구체적인 세부 지침을 내놓지 못하고 시일만 끌고 있는 것도 미국으로서는 불만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러한 일로 주일 한국대사가 일본에 부임한지 석 달이 넘었는데도 일본 외교부장관 면담도 못하는 사태가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과 관련해서도 미국은 한국정부에 불만을 갖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한·미·일 안보동맹의 중요한 기제의 하나인 지소미아는 미국의 특별한 관심사였다. 그러나 ‘징용·위안부 배상 판결’ 문제가 한·일 양국간의 갈등으로 비화하자 청와대는 2019년 8월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열고 “지소미아를 종료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고 지소미아는 폐기 직전까지 갔다. 다행히 종료 통보 효력이 발생하기 하루 전인 2019년 11월22일 정부가 ‘지소미아 종료 조건부 유예’를 내걸어서 효력이 유지되고 있기는 하지만, 미국으로서는 문재인 정부가 한·미·일 안보 공조 체제에 대한 믿음이 있는지 의심하게 만들었을 것이 틀림없다.

다섯째, 그리고 아마도 가장 중요한 것은 문재인 정부의 대북관이다.

문재인 정권은 북한에 대해 저자세로 임하고 북한의 요구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것으로 보이고 있다. 한반도 평화프로그램에 입각해서 북한과 대화와 협력의 기조를 유지하는 것은 이해한다고 하지만 북한의 도발에 대해서도 제대로 된 비판 한마디 없고, 핵문제에 대한 북한의 태도 변화가 없는데도 일방적으로 제재 완화만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종전 선언 요구도 한국에 대한 신뢰감축의 요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줄곧 한반도의 종전선언과 평화 협정 체결을 요구해 왔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원하는 문재인 정부의 진정성과 상관없이, 미국의 입장에서 종전선언은 자칫 주한미군의 철수론으로 연결되는 불안한 이슈다. 종전선언은 북한의 비핵화가 이루어진 연후에 할 수 있는 것으로 문재인 정부가 순서를 제대로 읽지 못하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또한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재개를 요구하고 있는데,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를 이루기 위해서 제재는 필수적이고 더욱 강화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나 자신도 박근혜 정부의 개성공단 폐쇄가 잘못되었다고 비판하고 북한과의 교류협력을 조속히 재개하라고 요구해 왔다. 그런데 문제는 북한이 핵문제에 대해서 아무런 진전된 방책을 제시하지 않는 가운데 한국 정부가 일방적으로 제재 완화를 요구하니까 문재인 정부에 대한 미국의 신뢰가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이상과 같은 미국의 문재인 정부에 대한 신뢰의 결여는 한·미 관계의 여러 마당에서 엇박자를 보이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북핵문제에 대한 양국의 다른 표현이다. 문재인 정권은 북한의 비핵화 문제에 대하여 항상 ‘한반도 비핵화’로 표현해 왔고,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로 표현하고 있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문재인 정권이 말하는 ‘한반도 비핵화’가 주한미군의 철수 내지 미군의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를 반대하는 북한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이라고 의심할 수밖에 없다. 

3월 18일 한·미 2+2 외교 국방장관 회담 후 발표된 블링컨 장관의 기자회견문에는 공동발표문에 들어있지 않았던 ‘북한으로부터의 위기,’ ‘북한 비핵화 의지,’ ‘중국의 반민주주의적 행태’에 대한 지적이 직설적으로 표현되었다. 반면에 정의용 장관은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등 북한에 대해 유화적으로 표현했다. 한·미간에 입장 차이가 있어서 북한, 중국 문제를 공동성명에 넣지 못했고 미국은 기자회견에서 이를 언급한 것이다. 직전에 일본에서 열린 미·일 2+2 회담에서는 공동성명에서 북핵과 중국 문제가 거론된 것과 비교가 된다. 

4월 2일 열린 한·미·일 안보실장 회의에서도 미국의 발표문과 한국의 서훈 안보실장의 기자 회견 내용이 달랐다. 미국은 회의 후 성명을 내고, “3국 실장이 인도·태평양 안보 문제를 포함한 공동의 우려 사안에 대해 협의했다”고 하며, “3국 안보실장들이 북한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관련 유엔 안보리 결의를 완전히 이행하는 것이 필수적(imperative)이라는 데도 동의했다”고 밝혔다. ‘인도·태평양 안보 문제’는 곧 중국 견제를 의미하는 것이고, 북핵 문제에 대한 강력한 제대 의지를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서훈 실장은 회의 후 특파원들을 만나 한·미·일 3국이 “북핵 문제의 시급성과 외교적 해결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했고, 북·미 협상의 조기 재개를 위한 노력이 계속되어야 한다는 데 대해서 뜻을 같이 했다”고 말했다. ‘북·미 협상의 조기 재개를 위해 노력한다.’는 이 내용은 백악관 언론 성명에는 담기지 않았다. 백악관 성명에는 ‘핵 확산을 방지하고 한반도 내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협력해 나가자’는 내용만 있을 뿐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4월 16일 스가 일본 총리와의 정상회담 후 발표한 공동성명에서 미·일이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에 전념할 것을 재확인했다고 말했고, 4월 28일의 상하원 합동 연설에서는 ‘북한의 핵 프로그램’에 대해 단호한 억지 전략을 공언했다. 4월 30일 백악관의 사키 대변인이 대북정책 검토를 발표하면서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로 표현했지만, 이는 문재인 대통령의 입장을 고려하고 북한에 대화의 창을 열어놓고 있다는 사인을 준 것에 불과하다.  

5월 3일 런던에서 개최된 G7 외교장관회의에서도 미·일 회담의 발표문에서는 ‘북한 핵·미사일 프로그램에 대한 우려 공유‘라고 표현되어 있는데, 한·미 회담 발표문에서는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한·미·일 3각 협력’으로 표현되어 있다.  

바이든 정부가 미국 국민들에게 말하는 것과 한국정부에게 표현하는 것이 다를 때 과연 한국 정부에 대한 진정한 신뢰를 가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일본과는 공유하면서 한국에게는 억지로 숨기는 북한 핵에 대한 표현을 보면서 ‘과연 미국이 한국을 제대로 신뢰하는가? 미국은 한·일간 갈등에서 어느 편을 들어줄 것인가?’하는 의문을 숨길 수 없다.

 

<미국과의 신뢰관계의 중요성>


우리가 미국의 신뢰를 잃고 동맹이 약화되었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질까? 우리가 미국, 중국과 등거리 외교를 하면서 미·중의 중간에 서있다고 했을 때 우리에게 어떠한 효과가 있을까? 우리는 국익을 지키고 남북관계는 호전될까?

미국은 분명히 쇠퇴하고 있으며 미국의 국제적인 영향력은 분명히 감소하고 있다. 2차 대전 이후 형성된 미국의 패권적 권위는 이제 현저히 약화되고 있고 미국 중심의 세계 문명은 변화를 바라보고 있다. 2001년 9.11사태로 미국은 아랍 국가들과 격심한 분쟁상태에 진입하였고, 2008년에 미국에서 발생한 금융위기 이래 미국의 경제적 위상 또한 크게 추락하였다. 트럼프 대통령의 등장 이후 국제 정치상의 리더십도 크게 상실되었고, 최근 벌어진 트럼프 지지자들의 의사당 난입, 인종 차별 총기사건 등으로 미국의 도덕적 위상도 심하게 훼손되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뉴시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뉴시스

 

중국은 경제력이 급부상하고 있을 뿐 아니라 군사력도 강화되고 국제정치적인 위상도 높아져서 미국과 더불어 양대 패권국가로 등장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와는 가장 인접해 있는 국가로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우리나라 무역의 1/4 이상이 중국에 의존되어 있는 현실에서 중국은 우리나라 생존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갖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미국에 일방적으로 의존해 있으면 우리나라의 국익은 여러 면에서 타격을 입을 것이고, 따라서 미·중간 등거리 외교는 필수적이며 미국과 일정 수준 거리를 두는 것도 불가피하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가설은 정말로 진실일까? 

미국이 약해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미국은 아직도 국제사회의 수장으로 민주주의 국가, 특히 시장경제 사회를 진두지휘하고 있는 국가다. 미국은 압도적인 지적재산권을 소유하고 있어서 IT산업뿐 아니라 새로이 전개되고 있는 4차산업혁명의 신기술을 주도하고 있는 세계 경제의 리더다. 

뿐만 아니라 세계 금융을 주도하고 있어서 미국이 금융제재에 나서면 어느 나라도 경제를 제대로 움직일 수 없다. UN의 대북 경제제재도 사실상 미국이 주도하고 있으며, 2005년 북한에 대한 금융 제재도 미국이 주도했다. 미국 재무부는 마카오에 있는 중국계 은행인 BDA에 대해서 북한이 이 은행을 통하여 돈세탁을 해 왔다는 이유로 미국 금융기관들이 이 은행과 직간접 거래를 하지 못하도록 했다. 다른 나라들에 대해서도 해당 은행의 불법 금융 활동에 유의하도록 통보함으로서 북한에 대한 금융 제재를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었다. 이는 금융 거래에 관한 미국의 통제력을 보여준 사건으로, 지금의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도 미국의 금융통제권으로 실효를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을 버리라는 게 아니다. 우리의 기본 노선은 미국과는 한미동맹을, 중국과는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를 계속 유지해 나가면서 국익을 지켜나가는 것이다. 미국과 거리를 두어 중국의 호의를 얻으려 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미국과의 관계를 돈독하게 발전시켜 중국으로 하여금 한국을 어렵게 여기고 중시하도록 하여야 한다. 중국도 미국 시장과 미국의 기술, 미국의 금융에 의존하지 않으면 생존이 불가능하다. 한국의 기술 산업에 대한 의존도와 한국 시장의 효용성 등을 생각하면 중국은 우리가 미국과 친분을 유지하더라도 한국을 바로 내치치는 못할 것이다. 

중국이 북한과 혈맹관계에 있으면서도 북한에 대한 UN제재를 전면적으로 거부하지 못하는 것은 미국이 갖고 있는 힘 때문이다. 대만이 미국과 안보상 긴밀한 관계를 더욱 발전시켜도 중국이 대만을 배척하지 못하는 것도 눈여겨보아야 한다. 대만의 총수출에서 중국의 비중이 58%나 되지만 대만의 반도체 없이는 중국의 제조업이 가동되지 못하는 현실 때문에 대만이 미국과 안보 군사 면에서 더욱 밀착하면서 다른 한 편 중국과 안심하고 경제적인 거래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대한민국이 추구하는 가치다. 바로 민주주의와 시장 경제다. 민주주의는 공정성, 다양성과 개방성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확장성을 보장한다. 시장 경제는 시민사회의 자유와 자율성을 기반으로 한다. 우리는 이러한 가치를 바탕으로 미국과 정치적, 외교적, 군사적, 경제적, 문화적 동맹을 이루어 왔다. 

중국은 우리와 오래된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공유하고 있고, 동북아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를 구축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중국이 갖고 있는 정치적, 사회적 가치를 공유할 수는 없다. 중국 공산당을 지배하는 폐쇄적 가치는 우리가 추구하는 민주주의와는 상충된다. 동북 공정을 비롯한 여러 가지 ‘공정’ 작업에서도 나타나듯이 중국이 오랫동안 지녀왔던 한반도에 대한 지배 정서는 쉽게 씻어지지 않는다는 점 또한 명심해야 한다. 
한반도 평화와 앞으로 추구해야 할 통일에서 중국은 중요하다.

독일 통일에 소련의 협조가 필수적이었듯이 중국의 협조는 앞으로 전개될 한반도 평화와 통일에 필수적 요소다. 그러나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서독이 소련의 협조 하에 독일 통일을 이루었지만 당시 서독은 나토의 일원으로 미국과 끊을 수 없는 맹방이었다는 사실이다. 미국과의 특별한 신뢰 관계 속에서 소련과 협상을 벌일 수 있었던 것이다. 마침 고르바초프라고 하는 소련의 지도자가 개방성에 입각해서 독일 통일을 지지한 점을 생각하면 오늘의 폐쇄적인 중국 공산당 지도부와는 다르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일본은 한미관계가 원활하게 돌아가지 않는 것을 내심 반기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것이 한일관계에서 일본의 입지를 강화하는데 오히려 도움이 된다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권이 들어선 후 지난 몇 년간 일본이 한국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견지한 것도 한·미간의 균열을 목도한 때문이다. 문재인 정권이 미국과 불편한 관계를 조성하고 미국이 한국에 대한 신뢰가 약해진 것을 본 일본은 마음 놓고 한국을 압박하고 위안부 문제나 강제징용자 배상 문제에 오직 자신들만의 주장을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이 최근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를 방류하기로 결정한데 대해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일본의 입장을 지지하고, 미국이 주도하는 IAEA도 방류에 문제없다고 입장을 표명하였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방한 중인 존 케리 미국 대통령 기후특사에게 한국 정부와 국민의 ‘심각한 우려’를 전달하면서 미국 측의 중재를 요청했지만 케리 특사는 ‘개입 불가’ 원칙을 분명히 했다. 그는 “미국은 일본 정부가 매우 엄격한 절차를 요구하는 IAEA와 충분히 협의했다고 확신한다”며 “일본이 가능한 모든 방안을 검토했고, 그 과정에서 영향이 투명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한·일관계의 악화 속에서 미·일관계의 친밀도를 보여주며, 미국이 한국을 경시하는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북한과의 대화와 협력을 위해서 한·미간의 돈독한 관계는 더할 나위 없는 필수 요소다.

북한의 첫째 관심은 미국과의 국교 정상화다. 이를 통해 북한 정권의 국제적 정당성을 인정받고 서방세계의 지원을 받아 북한 경제를 부흥시키는 것이 북한의 목적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남한에 원하는 것은 문재인 정권이 북·미관계 정상화에 가교 역할을 해주는 일일 뿐이다. 그 때문에 김정은은 2018년 3월 정의용과 서훈 대북 특사를 만난 직후 사흘 만에 미국에 보내 트럼프에게 북·미 정상회담을 제의하는 메신저 역할을 맡겼고, 2018년 6월 싱가포르 한·미 정상회담은 그렇게 해서 열렸던 것이다. 

그러나 2019년 2월 하노이 회담의 결렬 이후 김정은은 한국이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것을 파악했고, 북한은 미국의 신뢰를 받지도 못하고 중재자 역할도 제대로 할 수 없는 문재인 대통령을 헌신짝 걷어차듯 버렸다. 그 이후 북한은 김여정 등을 통해서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 입에 담지 못할 욕설과 비난을 가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대한민국이 미국의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중국이나 일본, 그리고 북한 등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데 결정적으로 저해요소가 된다. 미국과 돈독한 신뢰관계가 형성될 때라야 중국, 일본, 북한으로부터 좋은 대접을 받고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미국과의 신뢰회복을 위해서 해야 할 일>


한미정상회담을 앞두고 한반도 대미 정책이 주목되고 있다.ⓒ뉴시스(공동취재사진)
한미정상회담을 앞두고 한반도 대미 정책이 주목되고 있다.ⓒ뉴시스(공동취재사진)

한미동맹을 복원, 강화시키는 데는 우선 군사동맹의 강화, 특히 한미연합군사훈련을 과거 수준으로 복원하고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문재인 정부는 한미연합군사훈련을 비난하고 항의하는 북한의 입맛에 맞추기보다는 미군과의 합동훈련으로 우리의 방위력을 증강시켜야 한다. 북한이 저항하고 분쟁을 일으키더라도 북한에게 우리의 방위태세를 이해시켜야 한다. 

컴퓨터 시뮬레이션에 의한 지휘소 훈련이 아니라 군사력을 동원한 실제 야외기동훈련을 실시해야 한다. 한미연합훈련에서 항공모함이나 폭격기, 정찰기와 같은 미국 전략자산의 전개를 더욱 강화하여 북한에 대해 한미 연합군의 전쟁억지력을 확실히 보여주어야 한다. 전작권의 조기 반환 요구는 중단되어야 한다.

둘째, 중국과의 관계에서 미국의 불신을 사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 중국과 갈등을 빚을 발언이나 행동을 해서도 안 되지만 지나치게 친중·반미의 뉴앙스를 풍기는 발언이나 행동은 삼가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바이든 신임 대통령과의 첫 통화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에서 시진핑 주석과 먼저 통화한다든지, 외교부 장관이 샤먼이라고 하는 미·중 대결의 상징성이 있는 장소에서 한·중 외교장관회의를 연다든지해서 미국이 한국을 의심의 눈초리로 보게 하는 일은 삼가야 할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4월 20일 보아오포럼에 보낸 영상 메시지에서 “개도국에 대한 백신 기부와 같은 다양한 코로나 지원 활동을 펼치는 중국 정부의 노력을 높이 평가한다.”며 중국을 치하했는데, 4월 26일 수석보좌관 회의에서는 미국을 겨냥해서 “백신 개발국의 자국 우선주의, 강대국들의 백신 사재기”를 비판했다. 미국 정부로서 편했을 리가 없다.   

셋째, 일본과의 관계 개선은 필수적인 요소다. 문재인 대통령과 그의 지지자들이 보여준 반일 정책은 문재인 정권의 가장 큰 실책중의 하나다. 문 대통령은 위안부 문제나 특히 강제징용자 배상 판결과 관련하여 일본 정부와 타협할 수 있는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대책을 내 놓아야 한다. 

나는 2019년 8월 대법원의 ‘일본 강제징용 배상 판결’ 후폭풍인 일본의 경제 보복 사태에 대해서 “우리는 물질 배상 요구를 포기하고 정신적인 역사 청산을 요구하는 방식으로, 도덕적 우위에 선 대일 외교를 하자”고 제의했다. 또한 “대법원의 판결을 존중하되 대통령은 국가의 원수다. 해결책은 대통령과 국가가 내놓아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은 법률적인 차원에서가 아니라 국가의 수반으로 대승적인 차원에서 정치적이고 역사적인 해결책을 내 놔야 한다는 말이다. 한일 관계는 이해당사자나 지지자, 특히 국민감정이 개입되어 있는 만큼 국민을 설득하는 것이야말로 정치의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의 몫인 것이다.

최근 일본의 후쿠시마 오염수 방출 결정에 대해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일본 대사에게 유감을 표명하고 국제해양재판소에 제소를 검토하라고 지시한 것은 대일 외교의 미숙함을 다시 그대로 보여준 것이다. 대통령의 최측근이 ‘죽창가’ 논란을 일으킨다든지 하는 것도 문재인 대통령의 반일 속성을 보여준 것으로 일본은 문재인 정부에 대한 불신을 쉽게 해소하지 못할 것이다. 기업인을 비롯한 일본과의 이해관계에 익숙한 인물과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일본과 실질적인 조율을 시도해야 한다. 이렇게 해서 문재인 대통령은 퇴임 전에 일본과의 관계를 회복시켜 놓아야 한다. 

넷째, 북한에 대해서도 원칙있는 자세로 대해야 한다.

햇볕정책은 우리가 추구해야 할 대북정책의 기본이다.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는 우리가 가야할 길이다. 햇볕 정책은 김대중 대통령의 대북정책으로 독일 브란트의 ‘접촉을 통한 변화’를 추구한 대북 정책이다. 나 자신도 김대중 대통령 당시 소속 정당은 달랐지만 공개적으로 햇볕정책을 지지하고 경기도 지사 시절 이를 실천했다. 북한에 벼농사지원사업을 통해 단순한 지원이 아니라 경제적 기반을 마련하는 길을 제시했고, 2005년에는 평화축전을 개최하며 임진각에 ‘평화누리’를 건설하는 등 남북 평화와 협력에 기여했다.

그러나 북한은 문재인 정권이 들어선 이후 3번의 남북 정상회담과 3번의 북미 정상회담을 거치면서 좋은 관계를 유지하다가 하노이 회담이 파탄으로 끝난 뒤에는 남한과 문재인 정부에 대해 갖은 욕설로 비난과 조롱을 일삼으며 남북관계를 파탄으로 몰아가고 있다. 드디어 2020년 6월에는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공개리에 폭파하고, 이후 지속적으로 금강산과 개성공단에 대한 위협을 이어가고 있다.

이제는 북한에 대해 원칙을 세우고 엄정하게 원칙을 준수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우리가 합리적인 원칙을 세우고 엄정하게 지키는 것을 알면 북한은 그에 따르지 않을 수 없다. 

내가 경기도지사로 있을 때 일이다. 경기도의 농업관계 기술자가 평양에 상주하면서 벼농사 지원사업을 했는데, 2005년 가을에 수확을 기념하는 행사가 계획되고 우리는 비행기를 대절하여 방북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북한 측이 우리에게 아리랑 축제를 참관하라고 요구하였고 우리는 그 요구를 거부하면서 결국 북한 방문을 취소하였다. 다음해 봄에 모내기 행사에 참석을 준비하는데 북측이 우리가 방문하기 어려운 곳을 방문(참배)할 것을 요구하였다. 경기도 교섭단이 북측에게 ‘그러면 우리 지사님이 또 안 오실텐데요’ 하니까 북측이 자기들의 요구를 취하하였다. 

2007년에는 평양에서 동아시아미래재단이 북한의 민족화해협의회와 평양 인민문화궁전에서 공동 학술대회를 가졌다. 나와 북한의 아태평화위원회 이종혁 부위원장이 기조연설을 한 행사였다. 우리는 TV 카메라와 기자를 대동하겠다고 했으나 북측에서는 자기네가 촬영과 보도를 맡겠다고 하며 언론 대동을 거부해서 실랑이가 벌어졌다. 우리는 우리 측 언론이 없이는 북한에 가지 않겠다고 우겨서 결국 우리 요구대로 언론이 동행했다. 남북이 북한에서 공동으로 학술 대회를 갖는 것도 처음이지만 우리 측 TV 카메라가 동행한 것은 정상회담 말고는 없는 일이었다. 북한에 대해서도 그들이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 원칙을 세우면 그들도 따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북한에 대해 줄 것은 주고 요구할 것은 요구해야 한다. 북한이 한국에 대해 무한정의 혜택을 요구하면서 계속 한국을 비난하고 업수이여기는 것은 우리 정부의 원칙없는 태도 때문이다. 북한에게 한미동맹의 당위성을 설명하고, 이에 따른 한·미 연합훈련의 불가피성을 설득해야 하다. 북한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우리는 원칙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 북한도 우리가 진정을 갖고 현실을 인정하라고 요구할 때 그들도 원칙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미국의 신뢰다. 미국의 한국에 대한 신뢰 회복이야말로 북한에 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길을 여는 첩경이다. 신뢰회복을 위해서는 동맹관계의 회복이 가장 중요한 과제다. 무엇보다도 대한민국이 미국과 동맹관계를 유지하고 강화시키는 것이 동북아에서 안정과 평화를 유지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확고한 신념이 중요하다. 

정부의 외교안보정책 연구기관인 국립외교원의 김준형 원장은 한미관계를 ‘가스라이팅’ 상태라고 표현하고 ‘동맹중독’이란 말까지 써가며 한국이 미국의 예속관계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했다. 이러한 한미동맹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문재인 정부의 입장이라면 한국에 대한 미국의 신뢰는 깨질 수밖에 없다. 

김대중 대통령은 미국을 중시해서, “북한과의 대화에 대해 숨소리까지 미국에 알려주라”고 말했다고 한다. 한미관계가 두터워야 북한이 한국을 어렵게 대할 것이라는 점을 우리가 깨달아야 한다. 

 

<대책>


우리는 바이든 행정부의 취임과 함께 미·중 대결의 꼭지점에 놓이게 되었다. 그동안 중국 견제를 위한 포석을 해온 바이든 행정부는 한국 정부와 대중, 대북 정책과 관련한 외교적 시험을 시작한 것이다. 우리는 우리나라의 운명이 걸린 이 상황을 슬기롭게 대처해야 한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우리의 경제력을 향상시켜야 한다.

미국이 우리를 중시하고 소홀히 대하지 못하는 것도 세계 10위의 경제력이고 반도체를 비롯한 우리의 기술력이다. 한국이 G7 정상회의에 초청받고 앞으로 개최될 D-10 회의에 초청받을 것도 모두 우리 경제력이 그 기초다. 

우리는 경제력을 강화해야 하고 특히 기술력 강화에 매진해야 한다. 사드 사태에 롯데가 중국의 탄압을 못 이기고 결국 중국에서 철수했다. 그러나 중국이 삼성전자에 보복을 가하지는 못했다. 이러한 사례는 우리가 탁월한 기술 분야가 아니면 승부처가 없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IT 분야에서도 반도체 등 극히 제한된 분야에서만 중국에 앞서 있으나, 중국도 반도체를 비롯한 기술개발에 총력을 기울여 기술격차가 급속도로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다. 반도체 등 첨단기술산업에서 기술 격차를 더욱 벌려 중국이 한국을 무시하거나 배제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살 길인 것이다. 
 

이날 주총에 참여한 주주들은 최근 징역 2년 6개월 실형을 선고받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거취와 관련해 토론을 벌이는 등 뜨거운 열기를 보였다. 삼성전자 주주는 지난해 말 기준 295만 8682명으로 추정된다.ⓒ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삼성전자 정기주주총회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거취와 관련해 토론을 벌이고 있다.ⓒ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그러나 우리의 반도체 위상이나 우리가 추구하고 있는 ‘초격차’는 지금 위기에 처해있다. 대만의 TSMC는 비메모리 분야에서 생산력과 기술력 모두 압도적으로 삼성전자를 앞서고 있고, 투자도 앞으로 3년간 1천억달러(112조원)가 넘는 자금을 투입하기로 한 가운데 미국 애리조나에 짓는 파운드리 공장도 1개에서 최대 6개로 늘리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바이든의 반도체 투자 정책으로 인텔 등 미국 기업도 반도체 투자를 선언했다. 중국도 2015년 ‘중국 제조 2025’를 통해 반도체 산업을 비롯한 첨단 기술산업에 국가적 총력을 기울이며 첨단 기술 산업의 기술 격차를 빠르게 좁혀오고 있다. 

우리나라도 반도체 전쟁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정부차원의 적극적인 지원책을 강구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4월 15일 확대경제장관회의에서 "지금 세계가 맞이하고 있는 반도체 슈퍼 사이클을 새로운 도약 계기로 삼아 종합 반도체 강국 도약을 강력히 지원하겠다."며 다각도의 지원 방안을 수립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재정지원이나 세제 지원 등보다 기업이 자신있고 활력있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사회적인 친기업 분위기 조성이 필요한 것이다. 세계적인 기업의 총수를 미국 대통령이 초청한 회의에 참석할 수 없도록 구속하고 있으면서 어떻게 기업지원을 말할 수 있는가?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은 4월 12일 바이든 대통령의 반도체 화상회의에 참석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2016년 12월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자 시절 애플, 아마존, 테슬러 등 미국 최고의 기업 CEO 14명과 트럼프 타워에서 테크 서밋(Tech Summit)을 하는 자리에도 초청받았으나 참석하지 못했다. 외국 기업인으로는 유일하게 초청받은 자리였는데 특검의 출국 금지 조치로 가지 못해 트럼프 정권과의 효과적인 소통의 기회를 놓치고 만 것이다. 이러한 기업환경을 바꾸어주는 것이야말로 대통령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다. 

나는 이재용 부회장이 재상고를 포기하고 형이 확정된 1월 25일 그의 사면을 요구했다. 최근 경제단체장들이나 종교단체협의회 등에서 사면건의를 했고, 언론과 여당 국회의원들도 사면을 요구하고 있다. 지금 전개되고 있는 치열한 반도체 전쟁에 우리나라가 뒤지지 않기 위해 이재용 부회장이 역할을 해야 한다. 시간적으로 촉박하겠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이재용을 사면하고, 뿐만 아니라 이번 한미정상회담에 참여할 기업인 대표단에 그를 포함시켜 한국 정부의 친기업 분위기와 경제활력화 의지를 보여주기 바란다.

둘째, 대한민국은 강력한 국방력 확대를 추진해야 한다.

우리의 자주적 군사력 확대와 한미동맹의 강화야 말로 새로이 전개되는 신 냉전체제에서 우리가 살 길이다. 

지금 논의되고 있는 경항모 구축 계획을 확실히 시행하고, 오히려 경항모가 아니라 항공모함의 수준을 높여 한국 해군이 세계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아야 한다. 물론 엄청난 예산이 소요되는 항공모함 사업을 당장 쉽게 결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 해군과 군사 능력의 강화를 지금부터 준비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2021년 4월 9일 시제기를 공개한 한국형 전투기 ‘KF-21 보라매’ 프로젝트와 같이 최신예 전투기를 자체 개발 기술로 생산하는 항공산업의 발전은 국력의 향상 뿐 아니라 대한민국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는 데도 기여할 것이다. 이러한 군사력의 향상은 미국 등과 동맹의 수준을 높이는 데도 큰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우리 군사력 강화는 여기에 그쳐서는 안 된다. 인구 절벽과 4차산업혁명 시대를 맞이하여 우리 군의 구조를 AI 기반 무인·로봇 체계로 전환하는 체제 혁신을 준비해야 한다. 지금의 인구 추세로는 2026년이 되면 병력 50만, 2036년에는 40만을 유지하기 힘들다. 미국, 중국 등은 4차산업혁명과 연계해 군 체계를 전환시키고 있다. 첨단기술과 AI가 결합해 첨단과학기술강군으로 군대를 재설계, 개조해서 미래에 대비해야 한다. 강력한 군사력의 확보야말로 미국의 신뢰를 확보하는데 필수적인 요소다.

셋째, 북한에 대해서는 지금까지의 유화적인 자세를 버리고 확고한 원칙에 따라 대해야 할 것이다.

2019년 1월 트럼프와 김정은의 판문점 회담만 하더라도 문재인 대통령의 참여 없이는 북미 정상간의 회동을 만들어 줄 수 없다고 강력하게 주장했으면 그때와 같은 수모를 겪지 않았을 것이다. 

북한은 비핵화의 의지가 없다. 핵무기를 폐기할 의도도, 가능성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북한의 핵을 머리 위에 이고 사는 대한민국의 국민은 불안하기 짝이 없다. 우리는 북한이 핵과 미사일로 무장해서는 한반도 평화와 북한의 번영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북한에 설득해야 한다. ‘북한 비핵화’ 프로세스에 대해 명확한 프로그램을 내 놓으라고 북한에 요구해야 한다. 우리는 한반도 문제, 북한 핵문제의 제3자가 아니라 당사자다. 북한이 주장하는 바를 단순히 미국에 전달하는 것은 중재자의 역할이 아니다. 

북한은 핵과 미사일을 고수하면서 대북제재에 따른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고난의 행군’을 선포했다. 북한 인민의 삶은 같은 동포로서 우리가 같이 책임을 느껴야 할 부분이다. 이를 위해 북한이 핵을 포기할 길을 함께 찾는 것은 우리의 의무다. 

북한에 대한 제재는 완화되어야 한다. 금강산 관광이나 개성 공단 등 우선적으로 열 수 있는 길은 열어야 한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북한의 상응한 조치가 있어야 한다. 비핵화를 위한 납득할 만한 조치가 필요한 것이다. 북한을 설득해서 미국과 서방 국가들이 납득할만한 조치를 먼저 요구해야 한다. 그것이 대한민국이 해야 할 일이다. 북한은 반발하겠지만 남북이 함께 할 수 있는 길을 찾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책임인 것이다. 

넷째, 한국 외교를 이끌 적절한 인사의 등용은 외교의 가장 중요한 과제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초부터 정실인사, 캠프인사, 포퓰리즘으로 한국 외교를 어지럽혀 놓았다. 전문적인 직업외교관을 홀대하고 해서 외교관의 사기와 자존심을 무참하게 꺾어놓았다. 국제관계를 폭넓게 이해하고 넓은 인맥을 갖고 있는 원로들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기껏해야 이분들을 간혹 청와대에 초청해서 점심 식사를 대접하는 면피용으로만 이용했다. 그분들의 조언을 제대로 정책에 반영한 일이 없다.  

개인을 말하는 것은 조심스러우나, 안보실장에 서훈 씨를 임명한 것은 문재인 대통령의 한계다. 서훈 씨는 대한민국의 외교안보를 총괄하기보다는 대북관계를 다루는 실무적인 인물이다. 대북 평화 프로세스를 진행할 인물로 북한과의 협력 방안을 모색하는 데 유용한 인물이지, 대한민국의 국제관계를 총괄하고, 특히 미국과 교류하면서 신뢰관계를 구축하는데 적임자는 아니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동북아시아의 안보 질서를 대한민국의 차원에서 기획하고 구현할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인물이 안보실장으로 일하기를 바랐을 것이다. 이런 사람이 한·미·일 고위 외교회담에 나가 어떤 역할을 했을지는 상상하고도 남는다.

정의용 외교부장관은 외교부에서 통상전문가로 오랜 외교관 경력을 가진 능력있는 직업외교관이다. 문제는 문재인 대통령 밑에서 안보실장을 하면서 대북 업무를 주로 보면서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 평화 프로세스’에 익숙해진 사람이라는 점이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정 장관과 같이 북한의 입장을 미국에 전달하는데 익숙해진 사람이 지금과 같이 새로운 미국 외교를 추진하는 바이든 정부와 제대로 코드를 맞출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전임 김영삼 대통령 시절 국무총리를 지낸 이홍구 총리를 주미대사에 임명했다. 이홍구 총리가 사양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라를 생각해서 격에 맞지는 않지만 미국 대사를 맡아달라고 간청한 것이다. 미국의 중요성을 설득해서 이홍구 대사의 응락을 받아낸 것이다. 

김영삼 대통령은 한승주 교수를 외교부장관에 임명했다. 당시 한승주 교수는 이홍구 장관, 김경원 대사, 현홍주 대사, 사공일 박사 등 쟁쟁한 미국 그룹의 일원이었다. 김영삼 대통령은 한승주 장관을 내세워 미국의 조야를 잘 알고 미국과 잘 소통하는 그룹이 앞장서서 한국의 대미 외교를 원활하게 하고자 했던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금이라도 바이든 정부의 출범에 맞춰 외교 진영을 미국과 조율을 잘 할 수 있는 외교안보팀으로 바꿔야 한다. 미국의 입장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변화된 모습을 보고 싶어 할 것이고 그것은 인사의 변화에서 보여주는 것 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 

미국과의 신뢰관계 회복을 위해서는 미국이 납득하고, 미국을 설득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일례를 들면, 현 정부와 갈등을 빚긴 했지만 노무현 대통령 때 안보실장 및 외교부 장관을 하면서 그에게 ‘반미하면 우리나라가 망합니다’라고 설득한 송민순 장관 같은 인물이다. 꼭 송민순을 쓰라는 얘기가 아니다.

찾아보면 사람은 많다. 내 사람, 내 편만을 고르다 보니 시야가 좁아지는 것이다. 선거 때 나를 도왔다고, 이념적으로 나와 같다고, 내 진영에 속한 사람이라고 자질과 관계없이, 국익에 상관없이 사람을 써서는 안 된다. 열린 자세로 사람을 찾아야 한다. 미국이 신뢰하면서도 대하기 어려워 존중하는 사람들이 한미관계 등 우리 외교를 발전시키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5월 21일 한미정상회담을 앞두고 있다.ⓒ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이 5월 21일 한미정상회담을 앞두고 있다.ⓒ뉴시스

이러한 모든 것을 위해서는 대통령의 철학이 바뀌어야 한다.

이번에 국무총리를 임명하면서 대통령은 통합을 강조했다. 바로 대통령에게 필요한 것이 통합의 정신이다. 대통령은 국익에 우선해야지 이데올로기나 진영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의 안보와 국제관계는 오직 국민에게 봉사해야지 특정 이념이나 진영의 이해관계에 따라서는 안 된다. 대통령은 국민을 설득해서 국민의 뜻을 하나로 모으는데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이 좋은 뜻에도 불구하고 ‘퍼주기’논란에 휩싸여 많은 어려움을 겪었던 점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지금 이 자리에서 다룰 사안은 아니지만 국민통합을 위한 정치제도의 개혁은 항상 우리 앞에 놓여있는 숙제다. 대통령제가 갖는 지나친 권력집중이 국민통합에 저해요소가 된다는 점은 이제 국민 모두가 공감하고 있다. 독일이나 유럽의 여러 나라들과 같이 권력 분산을 통해서 국민을 진정으로 통합해야 한다. 이를 위한 개헌을 준비하는 일은 우리 국민 모두의 과제다. 그것이 내가 말하는 7공화국이다. 우리도 이제는 대통령 한사람에 모든 것을 거는 권위주의가 아닌, 권력이 분산되어 국민이 주인되는 진정한 민주주의로 가야 한다.

 

<에필로그>



나는 대학 시절에 이런 노래를 불렀다.
바람이 분다 바람이 불어
태평양에서 불어온다
미국대사관에 불이 붙었다
잘탄다 신난다
양키들은 카메라만 돌린다
불은 붙어도 물이 없어 못끈다
라라랄라 랄랄라 라라랄라 랄랄라
소방대들은 구경만 한다
잘탄다 신난다
양키들은 카메라만 돌린다

한일회담 반대 운동이 대학가를 휩쓸 때 “일본대사관에 불이 붙어도 ‘쪽바리’는 카메라만 돌린다”는 반일운동가를 ‘미국대사관’과 ‘양키’로 바꿔 부른 노래였다. 그만큼 당시 운동권에는 반미 정서가 강했고 나는 그 바람 속에 대학생활을 했던 것이다. 

나는 대학생활을 반일운동으로 시작해서 박정희의 유신 반대 운동으로 젊음을 보낸 사람이다. 삼성재벌 소속 한국비료의 사카린 밀수사건 반대 운동을 주도해 처음 무기정학을 받았고, 모택동에 심취해서 ‘모순론’ ‘실천론’을 읽다가 감옥에도 갔다. 그런 내가 오늘 중국보다 미국을 중시해야 하고, 삼성과 이재용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나이가 들어서 진보에서 보수로 바뀐 것인가? 그건 아니다. 세상이 변한 것이다. 세상이 바뀐 것을 내가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민족주의 운동의 시대에서 민주화의 시대로, 이제는 세계화를 넘어 첨단 기술 산업의 4차산업혁명 시대로 넘어가면서 우리가 가야할 생존과 번영의 시대를 보고 있는 것이다. 

박정희의 유신이 끝나고 영국에 유학을 갔다. 바깥세상에서 세계를 보고 나의 생각에 변화가 왔다. 김우중의 말대로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우리들만의 좁은 우리에 갇혀 있어서는 안 된다. 세계를 보고 역사를 읽어야 한다.

미국은 쇠퇴하고 있다. 중국은 강국으로 등장하고 있다. 샌드위치 신세같이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우리 한반도는 새로운 문명의 중심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또다시 속국이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의 미래를 보고 지금 준비해야 한다. 

미국과의 관계 회복이 가장 중요한 과제다. ‘신뢰’는 한·미관계의 핵심적인 요소다. 미국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을 다시 점검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의 힘을 세우는 일이 중요하다. 경제력과 군사력, 지금 전개되고 있는 4차산업혁명의 시대에 걸 맞는 기술산업의 혁신이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통합의 리더십이 우리 국력강화의 초석이 될 것이다.
민주주의는 위대하고 영원하다. 끊임없이 새로워지는 민주주의를 추구하고 그 원칙에 충실한 것이 우리의 살 길이다. 
2021. 5. 9
손 학 규

담당업무 : 정치부 기자입니다.
좌우명 : 꿈은 자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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