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악포럼] 김원웅 “친일청산 없이는 국민통합도 불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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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악포럼] 김원웅 “친일청산 없이는 국민통합도 불가능”
  • 정진호 기자
  • 승인 2021.03.17 14: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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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실에서 온 정치인(171)> 김원웅 광복회 회장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진호 기자]

김원웅 광복회 회장은 친일청산 없이는 국민통합도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시사오늘
김원웅 광복회 회장은 친일청산 없이는 국민통합도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시사오늘

일본군 위안부 망언, 야스쿠니 신사 참배…. 주기적으로 우리 국민의 ‘뒷목’을 잡게 하는 일본의 언행들이다. 그러나 김원웅 광복회장은 단순히 일본을 비판하는 것만으로는 이 문제를 풀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대한민국의 현주소를 먼저 돌아보고, 사회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일본의 진심어린 사과는 기대할 수 없다면서. 그는 왜 이런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일까. 3월 16일 국민대학교 정치대학원 북악정치포럼을 찾아 ‘항일독립운동 정신으로 완전한 자주독립을 묻는다’는 주제로 강연을 펼친 김원웅 광복회장의 이야기를 들어 봤다.

 

“친일파 입장에선 미국이 신분상승 시켜준 은인”


김 광복회장은 강연 시작과 동시에 구한말의 세계정세를 되짚었다. 미국은 조선의 독립에 아무런 관심이 없었고, 오히려 일본의 조선 지배를 지지했다는 설명이었다. 또한 조선은 우드로 윌슨 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 대상이 아니었으며, 오히려 일본의 3·1운동 탄압을 지원했다고 말했다.

심지어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미국은 한반도를 괌이나 사이판 같은 군사전략기지로 활용하기 위해 조선의 독립을 승인할 생각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우리 교과서에서는 이 같은 내용을 가르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이후 그는 자신이 왜 친일청산을 주장하고 있는지에 대한 역사적 흐름을 이야기했다.

“어쨌든 1945년에 일본이 항복하면서 남한에는 미군이, 북한에는 소련군이 진입했다. 이때 북한에 들어간 소련군 대장 치스차코프는 북한 주민들에게 이런 포고령을 내렸다. ‘나는 해방군이다. 조선인들이여 당신들은 자유와 독립을 되찾았다. 조선의 행복은 당신들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 해방된 조선인민 만세’라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같은 시점에 남한에 들어온 맥아더는 ‘나는 해방군이 아니라 점령군이다. 조선 사람들은 앞으로 내 말을 들어라. 내 말을 어기면 군법회의에서 처벌하겠다. 그리고 공용어는 영어로 한다’는 포고문을 발표했다. 포고문을 조선말로 쓴 것도 아니었다. 위에는 영어, 밑에는 일본말로 썼다. 출발부터 달랐던 거다.

그리고 맥아더는 조선에 있지 않았다. 서울에는 부하인 하지를 남겨두고 자기는 동경에 있으면서 일본 고위층에게 ‘조선을 겉으로는 독립시키고 속으로는 식민지로 써야 하는데 어쩌면 좋나’라고 물었다. 그러니까 일본이 ‘우리가 잘 다룰 수 있다. 우리가 양성한 친일파가 있는데, 그 사람들은 일본에 잘 보이려고 자기들끼리 경쟁이 치열하다. 일본을 위해서 충성을 다하는데 왜 미국을 위해서 일을 안 하겠나. 그들을 쓰면 된다’고 조언했다. 이게 맥아더가 머리에 입력한 내용이다.

맥아더는 이 말을 듣고 조선에 들어와서 친일파들을 기용했다. 일제 강점기 때 판·검사가 다 일본 사람들이었는데 그 사람들이 귀국하니까 빈 자리가 많았다. 여기에 법원에서 서기 일을 하던 악질적인 친일파들을 다 앉혔다. 친일파들이 다 판·검사가 된 거다. 나중에 그 사람들이 대한민국에서 판·검사도 하고 대법관도 하고 대법원장도 지내게 된다. 이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미국이 자기 집안을 신분 상승하게 해 준 은인이다. 친미(親美)를 할 수밖에 없지 않나. 한두 명이 아니다. 경찰, 군대 등등 사회 전반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 그게 해방 이후의 정국이다.”

 

“우리가 친일청산 안 하면 일본도 과거청산 나서지 않아”


그는 우리가 먼저 친일을 청산해야 일본의 사과도 받아낼 수 있다고 말했다. ⓒ시사오늘
그는 우리가 먼저 친일을 청산해야 일본의 사과도 받아낼 수 있다고 말했다. ⓒ시사오늘

열변을 토하던 김 광복회장은, 잠시 숨을 고르더니 제주도로 이야기의 무대를 옮겨갔다. 그가 언급한 것은 아직까지도 우리 역사의 아픔으로 남아 있는 제주 4·3사건이었다.

“해방 이후에 제주도 사람들이 3·1운동 기념식을 준비했다. 그래서 시민들이 학교 교정에 모여서 기념식을 하기로 하고 경찰에 집회신고를 했는데, 경찰이 미 군정에 이야기를 했더니 안 된다는 답이 돌아왔다. 근데 착하고 순진한 우리 국민들은 ‘자유와 평등의 나라인 미국이 반대할 리가 없다. 뭐가 잘못된 거겠지. 폭력 시위도 아니고 교정에 모여서 평화롭게 하는 건데 어때’라는 생각으로 약속 장소에 모였다.

이때 미 군정 지시를 받은 일제 경찰들이 거기를 습격해서 강제적으로 해산을 시켰다. 그 과정에서 한 어린 아이가 경찰이 탄 말 발굽에 치여 죽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러니까 주민들이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해방된 나라에서 3·1절 기념식을 하는 게 뭐가 잘못됐나’ 하면서 경찰에 항의를 했다. 여기서 경찰이 또 시민들한테 총을 쐈다. 그래서 주민들이 들고 일어났더니 ‘저놈들 빨갱이다’라고 하면서 다 죽인 거다. 희생자가 만 몇 천 명이었다. 말이 만 명이지, 제주도민 10분의 1정도가 희생당했다.

북한에서 친일청산을 하니까 거기서 도망쳐 나온 사람들이 만든 서북청년단이라는 게 있었다. 이 사람들도 제주도로 가서 수많은 사람들을 학살했다. 그래도 일이 수습이 안 되니까 이승만 정부가 여수·순천에 있는 군대한테 진압을 지시했다. 그런데 여수·순천에 있는 청년 장교들이 ‘동족을 살인하라는 거 아니냐. 아무리 봐도 경찰이 잘못한 거지 민중이 잘못한 게 아니다’라고 하면서 대표단을 뽑아 서울로 보냈다. 이승만 정부는 이 사람들도 다 빨갱이라고 하면서 감옥에 가둬버린다. 당연히 여수·순천에 있던 사람들이 또 들고 일어났다. 그러니까 그걸 여순반란사건이라고 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죽인다. 이 사람들이 3·1절을, 8·15를 기념할 자격이 있나.”

그러면서 김 광복회장은, 자신이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장으로 재임하던 당시 일을 상기하며 자신이 왜 친일청산을 외치고 있는지를 풀어놨다.

“제가 국회에서 외교통상통일위원장을 할 때 전 세계 정치인들을 많이 만났다. 그때 제가 일본 사람들한테 물어봤다. ‘너희들 독일처럼 진심으로 과거청산을 하는 게 어떠냐. 독일이 진심으로 사과하니까 프랑스랑 잘 지내게 됐지 않냐. 우리도 그렇게 잘 지낼 수 있지 않겠냐’고. 그랬더니 저한테 반문을 하는 거다. ‘내가 서울에 갔더니 일본 야스쿠니 신사에 있는 전범 졸개들이 국립묘지에 묻혀 있더라. 다 대통령, 국무총리, 장군까지 하고 죽은 다음에 묻혔던데 왜 우리한테만 그러냐. 야스쿠니 신사는 참배하지 말라면서 거기는 왜 참배하나. 일제 강점기 때 한일합방은 조선인의 행복이라는 사설을 쓴 신문이 한국 국민들이 제일 애독하는 신문이라며. 왜 너희들은 과거청산을 안 하고 우리보고 하라고 그러냐. 진심이냐.’

일본은 우리가 먼저 친일청산을 안 하면 과거청산 안 한다. 우리가 과거청산 하자고 하면 일본은 ‘또 우리한테서 돈 뜯어내려고 하는 거 아니냐’ 그렇게 생각한다. 한일관계를 풀려면 우리 내부 문제부터 풀어야 한다. 우리가 친일에 뿌리를 두고 분단에 기생하는 정치세력, 언론, 사회구조를 바꾸지 않는 한 일본은 과거청산에 나서지 않을 거다. 그 냉엄한 현실을 알아야 한다.

또 친일청산이 없으면 국민통합도 불가능하다. 우리 사회 갈등의 뿌리는 친일 미청산에 있다. 8·15 광복절 기념식에서 단하에서 박수치는 사람들은 독립군들이고 단상에서 박수 받는 사람들은 독립군 토벌하던 친일파인 이 구조를 바꿔야 한다. 저는 광복회 맏형으로서, 이걸 바로잡는 게 대한민국을 바로 세우는 길이라고 믿고 제대로 된 나라를 만들기 위해 노력할 생각이다.”

담당업무 : 정치부 기자입니다 (대통령실 출입)
좌우명 : 인생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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