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백신 등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 바닥쳐…한국판 뉴딜 성공 위해선 새로운 길 걸어야"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박근홍 기자]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이 문재인 정부를 향해 쓴소리를 했다. 지난 18일 서울대학교 교수회관 컨벤션홀에서 열린 제73회 동반성장포럼에서 '한국경제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제언'이라는 주제로 연단에 선 정 이사장은 '동반성장', '실물과 금융부문의 조화·균형', '정부의 신뢰 구축'이 선행돼야 우리나라 경제가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룰 수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그는 현 정권의 부동산대책 실패, 즉흥적·단편적 개혁 반복 등으로 국민들이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를 잃은 상황이라며 정부가 새로운 접근 방법을 통해 국민신뢰를 재구축하고 정책 틀을 근본적으로 재정비해야 한국판 뉴딜을 비롯한 경제 회복 정책들이 성공을 거둘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동반성장 철학을 시대정신으로 삼고, 미래에 대한 지나친 낙관에서 벗어나 보다 투명하고 확고한 국정전략을 펼쳐야 한국경제가 다시 한번 도약할 수 있다고 역설했다.
정 이사장은 "동반성장이란 더불어 성장하고 함께 나눠 다 같이 함께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자는 철학이다. 일각에서는 빨갱이, 사회주의라고 비판하는데, 있는 사람들에게 빼앗아 없는 사람에게 주자는 게 아니라 전체 분배구조를 공정하게 고치자는 의미"라며 "우리나라는 IMF 외환위기 이후 대기업들의 불공정거래가 심해졌다. 수출을 해서 외화를 벌어야 하는데 단기간에 제품의 질을 제고할 수 없으니 중소협력사들을 대상으로 단가를 후려쳐 가격을 낮춘 거다. 그렇다 보니 대기업의 수출 실적이 좋을 때도 그 이익이 중소기업에게 넘어가지 않았다. 불공정거래행위로 돈을 벌었다면 이제 중소기업에 보상적 차원에서 합당한 성과를 돌려주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왜 그래야 하는가. 문재인 정부는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펼쳤다. 소득을 올려주면 소비가 늘고, 공급이 증가하고, 투자가 확대돼 경기침체가 완화될 것이라는 기대였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이미 분배구조가 불공정한 가운데 저출산·고령화와 가계부채 급증 현상까지 겹친 상황이었다. 이런 환경에서 소득주도성장은 경제정책이 아닌 인권정책 효과밖에 누릴 수 없었다"며 "소비를 늘려서 경제를 살리는 것보다는 투자를 늘리는 방향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고, 그게 바로 동반성장이다. 투자는 기업들이 한다. 그런데 지금 대기업들은 돈은 많은데 마땅한 투자처가 없고, 중소기업들은 투자하고 싶어도 돈이 없다. 그럼 대기업이 갖고 있는 돈을 '스무드'(smooth)하게 중소기업에 옮기자는 거다. '스무드' 붙이지 않으면 빨갱이 소리 듣는다(웃음)"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래서 내가 제기한 게 이익공유제다. 정부여당에서는 '코로나19 이익공유제'를 주장하고 있는데, 이는 '정운찬표 이익공유제'와 전혀 다른 얘기다. 대기업이 계획한 것 이상의 초과 이익이 나면 그것의 일부를 중소협력사들에게 나눠주자는 거다. 그럼 중소기업이 투자에 나설 수 있고, 생산이 이뤄지고, 고용이 이뤄지고, 소비가 확대되고, 경기침체가 완화되는 구조가 형성된다. 결국 장기적 성장의 기초, 지속가능한 성장의 기초가 만들어진다"며 "자꾸 사회주의 얘기를 하는데, 이익공유제라는 개념은 세계에서 자본주의가 제일 발달한 미국, 그중에서도 가장 자본주의적인 할리우드에서 처음으로 나왔다. 대박 나면 이익을 공유하고 더 주는 '러닝 개런티'가 바로 그것이다. 이후 크라이슬러, 캐리어, 롤스로이스에서 비슷한 개념을 도입했으며, 다른 여러 국가에서도 제조·건설·유통·서비스업에서 이익공유제를 시행 중"이라고 부연했다.
또한 그는 "동반성장은 기업과 경제 문제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다. 동반성장이란 형평을 위한 노력으로 주로 언급되는데 그보다는 '수월성'(秀越性)이다. 빈부 간, 지역 간, 남녀 간, 세대 간에도 동반성장이 필요하다. 서로 함께 성장하고, 배우고, 이해하는 과정에서 동반성장은 새로운 사회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핵심적 가치로서 적용범위가 매우 넓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삶의 철학"이라며 "금융과 실물도 마찬가지다. 자본주의는 성숙해지면 금융부문이 커진다. 금융이 지나치게 비대해지면 경제를 산업자본주의에서 금융자본주의로 변화시킨다. 이는 미국발(發) 금융위기 등 거의 예외 없이 국민경제에 많은 폐단을 만들었으며, 끝내는 큰 재앙을 불렀다. 동반성장은 금융의 자유방임을 관리하고, 금융에서 가장 중요한 신뢰를 지킬 수 있게 한다. 그래서 동반성장은 금융부문과 실물부문의 조화와 균형을 가능케 하는 철학"이라고 말했다.
정 이사장은 "금융만큼 신뢰가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정부 정책이다. 오늘날 한국에서 정부 정책의 신뢰 수준은 어떤가. 25차례 발표한 주택시장 안정정책, 물론 좋은 마음으로 내놓은 부동산대책이겠지만 결국 집값 급등이라는 최악의 결과를 야기했고, 정부의 공언은 모두 거짓말이 됐다. 백신 관련 정책도 그렇다. 야당이 수십번 동의하지 않은 장관을 일방적으로 임명한 것도 마찬가지다. 안타깝게도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는 바닥을 쳤다"며 "이제라도 정부는 새로운 길을 걸어야 한다. 그간 정책 실패를 인정하고 정책 틀을 근본적으로 재정비해야 한다. 그리고 명확하고 일관된 정책 기조를 견지해야 한다. 정책의 기본 바탕으로 신뢰를 다시 구축하는 길로 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신뢰 구축을 위해서는 '정직'과 '투명성'이 가장 중요하다. 요즘 뉴딜이 참 많은데, 아쉽게도 사실 새로운 게 없다. 다 예전에 했던 거다. 난 한국판 뉴딜 정책이 성공하길 바란다. 그러나 뉴딜은 말 그대로 새로운 접근이다. 과거의 방식과 결별한 완전히 다른 새로운 대응을 뜻한다. 지금이라도 뉴딜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새로운 접근방법을 모색하길 바란다. 그래야 국민 신뢰와 지지도 얻을 수 있다"며 "미국의 뉴딜은 구호만으로 성공한 게 아니다. 루즈벨트 대통령은 뉴딜 정책을 펼치면서 은행법 제정을 통해 은행과 증권시장을 분리시켜 미래에 대한 지나친 낙관이 경제를 파탄시키는 일이 다시는 없도록 하겠다고 약속했고, 이를 실천에 옮겼다. 이후 2차 세계대전까지 50개의 주요 정책이 루즈벨트 대통령이 직접 출연한 라디오 방송을 통해 국민에게 쉬운 말로 허심탄회하게 전달됐다. 팬데믹 상황에서 우리 정부가 배워야 할 덕목"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정 이사장은 "이 같은 측면에서 동반성장, 금융과 실물부문의 조화와 균형, 그리고 정부 정책의 신뢰 구축은 한국경제의 지속가능 성장을 위한 최소한의 필요조건"이라며 "특히 불확실성이 심화된 코로나19 시국에서는 무리한 웅비보다는 생존이 중요하다. 그런데 지금 정부는 앞으로 국가가 나아갈 방향을 설정하지 못하면서도 이런저런 개혁을 서두르고 있다. 즉흥적으로 이뤄진 단편적 개혁들이 쌓이면 나라는 갈피를 잡지 못하고 불신만 쌓인다. 지금이라도 미래에 관한 비전을 갖고 확고한 전략 위에서, 단기적으로는 어려움을 극복하고 장기적으로는 내실이 있는 개혁을 단행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한편, 동반성장연구소(이사장 정운찬)가 주최한 이번 행사에서 참석자들은 전염병 확산 방지 차원에서 일정 간격을 유지하고 마스크를 착용한 채 강연을 들었다. 또한 동반성장연구소는 이번 행사에 앞서 사전 예약 방문제를 도입했으며, 행사장 입장 시 체온을 측정했고, 악수 등 불필요한 신체 접촉을 삼가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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