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김기범 기자)
인천에 사는 A씨는 추석 명절을 맞아 며칠 전 최상급의 한우 포장육을 구입하다 황당한 일을 겪었다.
동네 정육점에서 고기를 산 A씨는 집에서 쉬던 중, 문득 ‘축산물 이력제’ 사이트를 (http://aunit.mtrace.go.kr) 를 상기하게 됐다.
평소 꼼꼼한 성격의 소유자였던 A씨는 생각난 김에 사이트에 들어가 자신이 산 쇠고기의 포장에 붙은 라벨지에 기입된 쇠고기 이력번호를 입력했다.
그러나 의외의 결과가 산출됐다.
A씨가 쇠고기 이력 시스템에 입력한 이력번호대로라면 방금 구입한 고기의 도축일이 1년도 훨씬 전인 2016년 2월로 나온 것이었다,
의아한 A씨는 나머지 이력번호를 조회해 봤다. 그 번호로 조회한 쇠고기의 도축 날짜는 작년 이 맘 때인 2016년 9월.
이 때부터 A씨는 자신의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분명 비싼 제 값을 주고 산 최고급 한우가 훨씬 1년 전에 도축됐다는 이력을 본 이상, 가족의 먹거리에 대한 불안을 떨쳐버릴 수 없었던 것이다.
그보다는 1년 전에 도축된 쇠고기가 지금까지 시중에 유통될 수 있다는 현실이 납득되지 않았다, 더구나 자신이 구입한 고기는 누가 보더라도 1+ 등급의 신선한 생고기였던 것.
A씨는 의구심을 이기지 못하고 바로 축산물 이력제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는 농림축산식품부 이력지원실(1577-2633)로 전화했다.
저간의 사정을 설명한 후, 원래 1년 전에 도축된 쇠고기가 지금 현재 팔릴 수도 있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은 식약처로 연락해 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정작 쇠고기 이력제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는 관할 부서가 알려준 식약처에서는 1년 전에 도축된 것이 사실이라면 혹시 냉동고기를 산 것 아니냐는 답변만 돌아올 뿐이었다.
단지 1년도 더 된 이전 시점에 도축된 쇠고기에 대한 유통 가능성 여부만을 알고 싶었던 A씨는 답답함을 토로했지만, 결국 정 의심스러우면 불량식품 통합신고센터(1399) 로 전화해 보라는 얘기만 공허하게 들려왔다.
아직 불량식품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는 상태에서 섣불리 신고센터에 전화하는 것은 의구심을 해소하기는커녕, 동네 정육점을 무고하게 몰아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A씨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당장의 궁금증 때문에 식약처의 권고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예상대로 연락한 불량식품 신고센터에서는 자신들은 불량식품 근절을 위해 불법 사례에 대한 신고 접수만을 받을 뿐이라는 원론만 제시했다.
그나마 유일한 위안이라면 A씨가 신고센터 상담원에게서 아마 쇠고기 유통에 관한 것은 농수산물품질관리원의 관할일 것이라는 희망 섞인(?) 대답을 받은 것이었다,
똑같은 사연을 앵무새처럼 여기저기에 반복하기도 지쳤던 A씨는 원하는 답변에 대해 어느 정도 마음을 접으면서도,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농수산물품질관리원 지역사무소에 전화했다.
그러나 담당직원들이 모두 외근중이라 여하한 답변이 불가하다며, 번호를 남겨 놓으시면 다음날이라도 연락하도록 조치하겠다는 여자 보조원 직원의 상냥한 대답에 맥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A씨는 고심 끝에 자신의 원천적 불안과 궁금증을 해결하고자 고기를 구입한 동네 정육점에 찾아가기로 결심했다. 아무런 영문도 모른 채 저녁 장사로 바쁜 업체 사장을 붙잡고 추궁한 결과, 돌아온 답변은 A씨에겐 놀라운 것이었다.
누가 봐도 그저 푸근하고 선량한 동네 자영업자의 모습인 사장이 A씨의 탐문 끝에 얼굴색이 변하며 답한 얘기는 솔직히 포장재질에 부착된 라벨의 쇠고기 이력 번호들은 조회한대로 1년 전에 도축한 소의 고유 번호들이라는 것이었다.
규칙대로라면 그때마다 들어오는 고기에 맞춰 새로 라벨들을 생성, 이력 번호들을 새로이 기재해야 하지만, 업체 사정상 그만큼 소요되는 시간과 비용을 일일이 소모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예전에 쓰던 라벨과 이력번호들을 그대로 답습하며 재활용 하고 있다는 것.
더 놀라운 사실은, 시중 정육점 중 90%는 자기처럼 기존의 옛날 쇠고기 이력번호들을 재활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거의 대형 마트와 산지에서 직접 유통되는 경우를 제외한 수치다.
의심을 주체 못한 A씨의 끝없는 탐문에 연신 고개를 조아리는 정육점 사장의 계속되는 대답은 더 뜻밖이었다.
구청 등의 관할 관청에선 간헐적으로 예고 없는 점검을 나오지만, 그때마다 담당 공무원들은 적당히 눈감아 준다는 것이었다.
계속해서 미안해 하는 정육점 사장의 답변은 그러면 절대 안 되는 것인데, 우리 사회가 무조건 원칙대로만 돌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라, 일 년에 두어 번 찾아오는 관청 공무원들도 업계 사정을 알기에 부착된 쇠고기 이력번호는 무시하고 업체 사장이 따로 내미는 증빙서류를 통해 점검을 마친다는 것이다.
결론인즉슨 포장에 붙여진 라벨은 업체 사장이나 이들을 관리 감독해야 하는 담당 공무원들에게는 전시행정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그래도 일일이 쇠고기 이력 고유번호를 갱신하여 붙이지 못할 뿐, 따로 믿을 만한 증빙서류가 있기에 그것으로 따로 대처해 왔다는 것이며, 비록 팔고 있는 고기와 부착된 고유 번호는 다른 것이라도 품질 자체는 완벽히 보증할 수 있다는 사장의 답변이었다.
A씨는 아연실색하면서도 새로운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라벨지에 기재된 유통 기간은 실상 소고기 이력과는 전혀 일치하지 않으며, 전혀 관심이 없는 소비자는 그저 고기의 겉모습과 이력 번호만 보고 아무 의심 없이 구입한다는 것이다.
오히려 일부 악덕 상인들이나 유통업자의 경우, 쇠고기 이력제를 얼마든지 소비자를 속일 수 있는 수단으로 전락시킬 수 있다.
그 사실을 알고서도 법과 제도를 신설해 이를 관리 감독하는 관할 공무원들이나 소관 부서에서는 애써 묵인이나 방조로 일관하고 있다는 사실에 A씨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쇠고기 이력제가 도입된 지, 어언 10년이 지났다.
애당초 취지와 의도가 훌륭했던 그 제도가 지금 현재 겉보기엔 소비자들의 환심과 신뢰를 샀을지언정, 실제로는 소비자의 방심을 유도하는 기만과 현혹의 기제가 되고 있다는 사실은 쓸모없는(?) 일에 집착하는 이가 아니라면, 거의 모든 사람들은 모르고 있다.
형식적으로 붙여지고 감독되는 포장육 라벨의 이력번호 체제도 전시행정에 불과하지만, 자신들이 버젓이 운영하고 있는 사이트에서 발생되는 민원인의 의문점들을 속 시원히 해결해 주지 못한 채, 책임 소재를 떠넘기며 다른 부처로 연락하라는 일선 행정부서의 탁상행정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서울에 사는 시민 B씨는 “우리의 건강을 책임질 먹거리에 대한 안정성과 신뢰성을 담보하고자 만든 쇠고기 이력제가 오히려 국민들의 함정이 되고 있다는 생각에 모골이 송연하다” 며, 이번 추석 명절에 앞서 담당 부처의 철저한 전수조사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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