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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로 보는 정치] 임시정부 국민대표회의 실패와 한국당 전대

기사승인 2019.01.13  10:5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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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정권 재창출을 위한 지도부 선출이 시대 요청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윤명철 논설위원)

   
▲ 한국당이 이번 전대를 보수정권 재창출이라는 새로운 방향을 제시할 지도부를 뽑지 못한다면 제2의 국민대표회의의 전철을 밟게 될 것이다. 사진제공=뉴시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3·1 독립운동의 민족적 열망에 의해 탄생했다. 독립운동 지도자들은 효율적인 독립운동을 이끌 통일된 조직체의 필요성을 깨달았다.

먼저 이미 국내외 각지에서 활동 중인 여러 임시정부를 통합해야 했다. 연해주의 국민의회와 국내의 한성정부, 그리고 상하이 임시 정부 등이 대표적인 통합 대상이었다.

이들은 독립국가 건설이라는 민족의 열망을 바탕으로 한성 정부 주요 인사들을 위주로 정부를 구성했고, 중심지는 상하이에 두기로 했다. 초대 임시 대통령은 이승만이 뽑혔고, 이동휘가 국무총리로 하는 초대 임시정부가 1919년 수립됐다.

대한민국 임정은 연통제와 교통국을 중심으로 국내외에서 활발한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이들은 무장투쟁보다는 외교활동에 주력했다. 이는 나중에 분열의 단초로 작용한다.

일제는 임정의 무력화를 위해 연통제와 교통국을 무력화시키는 데 집중했다. 일제의 탄압으로 임정의 국내 기반은 무너졌다. 또한 임정이 주력했던 외교활동도 제1차 세계대전 승전국인 일본의 국제적 지위에 밀려 국제사회의 외면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임정의 활동은 점차 위축됐고, 신채호와 같은 비판세력들은 임정의 개편을 촉구했다. 임정 출범 4년만인 1923년 국민대표 회의가 개최됐다. 주요 안건은 독립운동의 새로운 방향 모색이었다.

안창호는 교육과 산업 등 민족 실력 양성을 우선시했고, 이동휘는 연해주를 무대로 삼은 항일 무장 투쟁을 역설했다. 신채호 같은 이는 국제연맹에 위임통치를 주장하는 이승만의 퇴진을 촉구하는 등 내부 분열이 가속화됐다.
 
결국 국민대표회의는 임정의 해체와 새로운 정부 수립을 원하는 창조파와 임정 조직의 개편만을 주장하는 개조파의 갈등이 촉발됐다. 두 계파의 대립과 갈등으로 국민대표회의는 결렬됐다.

회의의 결렬은 임정의 분열을 촉발시켰다. 이탈 세력은 흩어졌고, 완전 침체 상태로 조직을 운영하기 어려울 지경에 다달았다. 후일 김구 중심의 임정으로 회복하는 데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2018년의 자유한국당은 1923년 임정의 국민대표회의를 상기시킨다. 탄핵과 대선 패배에 이은 지방선거 참패에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한국당은 당권 장악을 위한 2월 전대에만 총력을 집중하고 있는 모습이다.

국민대표회의의 실패는 독립운동의 새로운 방향 모색을 위한 각 독립운동세력의 역량과 주장을 조정하지 못한 데 있다. 한국당이 이번 전대를 보수정권 재창출이라는 새로운 방향을 제시할 지도부를 뽑지 못한다면 제2의 국민대표회의의 전철을 밟게 될 것이다.

윤명철 논설위원 sisaon@sisaon.co.kr

<저작권자 © 시사ON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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