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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스케치] Tears in heaven

기사승인 2018.04.09  17:5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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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 팽목항, 노란 리본…세월호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정명화 자유기고가)

전국을 충격의 도가니에 빠지게 한 가슴 시린 역사의 한 페이지, '세월호 참사'가 4주기를 맞았다.

그날의 충격과 아픔을 반추하며 희생자와 유가족에 추모와 조의를 표하고, 오늘에 이르런 상황을 돌아 보고자 한다.

   
▲ ⓒ정명화

2014년 4월 16일 아침은 여느때처럼  평범한 날의 시작이었고, 부지런한 새들이 재재거리며 하루를 열었다. 아침 식사후 마당을 내다보니, 꽃잔디위에 검은 나비 한쌍이 날아들어 평화로이 꿀을 먹고 있었다.

필자 역시 아침 시간 여유롭게 TV 시청을 하다, 이 무슨 날벼락인가...탑승객 476명을 태우고 인천에서 제주도로 향하던 세월호가 진도 팽목항 인근에서 침몰중이라는 긴급속보가 떴다.

우리의 평범한 일상은 순식간에 깨졌고, 돌아가는 사태가 불길해 초조감에 휩싸인 채 넋놓고 뉴스에 집중했다.

사건의 발단인 세월호는 오전 8시 35분경 기울어지기 시작해 두시간도 채 안된 10시 30분 경 거의 전복됐다. 순식간에 세월호가 뒤집어졌고, 탑승객의 대다수가 안산 단원고 수학여행길 학생이었는데, 먼저 학생 한명의 이름과 함께 사망자 4명이라는 충격적인 뉴스가 전파를 탔다.

수색이 장기화되며 대형사고 가능성이 예측되자 전 국민은 집단 아노미에 빠졌다. 300여명에 가까운 승객이 희생될 수도 있다는 엄청난 소식에 너무나 고통스러워 도저히 일상을 유지해 나갈 수 없었다.  

특히 2014년 당시 진도 팽목항은 수시로 비가 내려 수색 작업이 난항을 겪는 더욱 안타까운 상태였고, 연일 비보가 전해졌다.

   
▲ ⓒ정명화

답답함을 가누지 못하고 마당에 나가니 여전히 한가로이 노니는 나비가 눈에 띄었다.

어디서 온 걸까.

나비는 좋겠다.

지맘대로 훠얼훠얼 날아서 가고 싶은 곳으로 가고…

이 때 유독 자유로운 나비가 부러웠고, 저멀리 창공으로 오르는 새까지도 부러웠다.

사람도 홀로이 나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새처럼 나비처럼, 날아 오르기를… 세월호야 세월호야 미친듯이 간절히 기도했다.

특히 안타깝게도 희생자가 수학여행을 떠난 고교생이 대부분이라 이 처참한 사태에 모두들 식음을 전폐할 정도였다.

그렇게도 현실이 아니길 거부하고 부정했던, 인정할 수 없었던 비극은 시간이 지날수록 기정사실이 되고야 말았다. 수많은 꽃다운 청춘들이  순식간에 매몰, 수장, 희생되다니 통탄을 금치 않을 수 없었다. 300여명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희생자, 사체인양도 안된 미수습자까지, 대참사로 진도 팽목항은 오랫동안 비통함과 눈물의 바다가 됐다.

   
▲ ⓒ정명화

그해 봄은 꽃이 붉어서 더 슬프고 더 미안한... 세월호 사태 후 화려한 꽃들과 나비들이 노니는 광경을 카메라에 담는게 힘들었다. 이들을 챙기고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너무 죄스러워서.

일년을 기다리며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존재를 드러낸 그 봄의 붉은 꽃들은 그 땐 모두 다 숨고 싶을거 같았다.  피빛 화려함이 처연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SNS에는 노란 리본 릴레이가 큰파도처럼 끊임없이 일렁이고 있었다.

세월호 참사때 생존한 학생 상당수가 사건 발생 20개월 후에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에 시달린 것으로 나타났는데, 너무나 당연한 결과다.

국립중앙의료원과 안산시 마음토닥정신건강의학과 의원 등 공동연구팀은 세월호 참사 20개월째인 2015년 12월 단원고 생존학생 57명의 설문조사를 분석한 결과 26.3%가 PTSD 임상적 위험군이었다고  밝혔다.

연구팀에 따르면 PTSD 양성으로 나온 학생들은 배는 물론 비행기나 버스, 지하철 등을 회피하거나 친구를 잃은 경험 때문에 새로운 관계 형성을 두려워하는 경향을 나타냈다고 한다.
  
다만 가족들로부터 정서적 지지를 받거나, 사회적 지지가 충분하다고 느끼는 경우, 적절한 정신과 진료를 받는 경우는 PTSD 증상이 완화될 수 있다.

필자에겐 다섯살 경 잃은 동생에 대한 상처가 거의 50년 가까이 내 몸 어딘가 자리하고 있었다.  완전히 자유로워지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런만큼 세월호 참사때 받은 충격과 상실감은 쉬이 사라지는게 아니라, 시간이 지나도 단원고 학생들에게 심리적 후유증이 남을 여지가 있다. 즉 오랜 세월이 지나 잊혀지는 듯해도 그 멍든 마음속 충격의 상흔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트라우머로  남아 평생 상처가 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전국민이 그토록 극한 비상사태에 직면한 그 시간에, 국가최고통수권자인 박근혜 전 대통령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사건 발생후 아무런 움직임이 드러나지 않았고, 비서실장은 그녀의 동태를 모르고 연락도 안되며 행적이 모호한 상태였다.

그러다 세월호가 완전히 전복돼 수많은 희생자가 예상되는 오후 5시가 넘어서야 박근혜 전 대통령이 중대본(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상황실에 나타났다.  이 엄청난 상황에 혼비백산이나 긴박함은 거의 보이지 않고, 어울리지 않게 차분(?)하다고 해야하나 멍해 보인다고 할까.

그리곤 카메라앞에 앉은 첫 육성이 참사완 전혀 어울리지 않는 태도와 말로 전국민을 경악케했다. '구명조끼를 학생들이 입었다는데 그렇게 발견하기 힘듭니까?'

뉴스를 30분만 봐도 사태 개요를 충분히 알텐데, 전 국민은 다들 알고 있는 소식에, 대통령이란 인사가 골든타임을 넘기고도 7시간 동안 사태 파악마저 제대로 안한건 지 못한건 지 참 통탄할 노릇이었다.

평소 박근혜 전 대통령은 자신의 심기가 불편하면 날까로운 눈빛을 발사한다고 평가 받을 정도로 감정이 솔직이 드러나는데, 참사 후 중대본에 나타난 그녀는 평상심을 너무 잘 유지한다 할 만큼 감정의 변화를 전혀 보이지 않아 의아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탄핵이 결정돼 재판이 진행되던 중 박근혜 전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 행적에 대해 오랜 시간 추적 조사를 했으나, 그녀와 주변 인물들이 모두 함구하여 그 진실을 밝혀내지 못했다. 법정에 참석한 정호성, 이재만, 안봉근 문고리 삼인방을 위시하여 청와대 참모진이나 비서진,의료진 등 박근혜 전 대통령 주변 인사들은 다들 모른다며 묵비권을 행사하거나 본질에서 완전히 벗어난 증언으로 일관해 오리무중에 빠졌다.

   
▲ ⓒJTBC 보도자료 참조


무수한 억측과 루머로 시끄러웠던 미스테리같던 박근혜 전 대통령의 세월호 당일 '7시간의 실체'가 참사 4주기가 다 되어서 드디어 윤곽이 드러났다.

참사 당일 박근혜 전 대통령은 평소처럼 혼자 12시경 점심식사를 했다는 청와대 조리사의 증언이 있었듯이 청와대를 벗어났을리 만무하다. 그녀는 청와대 관저 침실에서 당일 오전 시간을 보냈으며, 국민의 생존이 촌각을 다투는 상황에서도 오랫동안 집무실이 아닌 관저에 있었다는 최종결과가 나왔다.  

비선실세 최순실과 자신이 직접 개입하여 저지른 국정농단의 각종 비리 범죄는 제쳐 두고라도, 세월호 참사 당일 국가 최고책임자로서 자세와 대처방식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대한민국과 결혼했다던 그녀가 어린 생명들의 절체절명 촌각을 다툴 이 상황에 직면해 얼마나 절실히 애통해하며 통곡했는지 묻고 싶다.

평범한 범부인 전국민이 집단우울증에 걸릴 정도로 침통할진대, 그녀는 그 비상사태에서도 여유롭게 점심이 넘어 가던가? 어쩜 그리도 무감각해 보일 수 있을까? 

참사후 대국민 사과 성명을 냈지만, 그녀의 태도에서 진심어린 애통함과 안타까워 하는 모습이 별로 읽혀지지 않았다. 진정성있는 태도보단 책임회피하며, 비판적인 여론에 도리어 억울하고 잘못한 게 없다니 참 위대한 대통령 납시었다.

세월호 참사는 우리 현대사의 가장 아픈 상처중 하나이며, 박근혜 전 대통령은 가장 무책임한 집무유기 대마왕의 흑역사로 영원히 기록될 것이다.

당시 상황 파악을 위해 청문회에 호출된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 한 증언은 역사적인 명언(?)으로 남을 것 같다. 비서실장이란 인물이 대통령의 동선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으면서 “대통령님은 아침에 일어나서 주무실 때까지가 근무시간이고 어디 계시든 집무실" 이라고 했다.

일국의 대통령이 해가 중천에 뜬 오전 10시가 넘어서까지 관저 침대에서 자고 있어도 근무시간이고 집무실?  대통령하기 참 쉽다.

결국 4년만에 세월호 7시간은 조작과 새빨간 거짓말투성이임이 밝혀졌다.

우리 공주마마 보호하느라 청와대 참모진 등은 전국민을 농락했는가?

박근혜 그대는 고귀해서 컨디션이 안좋아 관저 침상을 지키고 있어도, 풍전등화같던 위태로운 국민의 생명은 눈에 보이지 않던가?

국민과 결혼한 거 맞나?

그렇다면 우리 국민은 역사에 오래 회자될 세기적 사기결혼을 당했다.

참사 직 후 개인적으로 비약해 추론컨데 그녀는 '피곤해서 자는데 깨우고 야단이야... 너네가 알아서 처리하면 되잖아. 얼굴은 내밀어야한다고? 선생님(최순실) 말이라면, 그럼 내 트레이드 마크인 올림머리를 보여주마' 하지 않았을까.

촌각을 다투는 천금같은 그 상황에서 어찌 2시간여에 걸쳐 올림머리 꽃단장을 할 수 있으며, 그리고 긴박했던 하루가 다 저물어 가는 5시 넘어 중대본에 나타나 한다는 소리가 구명조끼 운운하며 고작 그거였나?

'대통령 맞아?', 그러니 당시 이게 나라인가 하는 전 국민의 탄식이 이구동성으로 흘러 나왔다.

하물며 세월호 희생자의 안위와 아픔보단 그 7시간의 진실을 은폐 위장, 조작, 부인, 책임 회피하느라 황교안 전 국무총리를 위시하여 김기춘 전 비서실장, 안종범, 우병우 전 수석및 국무위원들, 청와대 비서진및 참모진, 심지어 의료진까지 거짓 시나리오를 짜서 다들 최고 연극배우 못지 않았다.

또한 일신의 영달과 주인님의 존재를 보호하느라 제대로 양심선언하며 진실을 실토한 인사가 거의 없었다. 국민혈세로 먹는 양반들, 그 당시 소위 청와대 고급 공무원들의 작태는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고도 뭘 잘했다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자신의 잘못은 인정않고 재판 거부하며 억울하다지?  특히 그 어떤 것으로도 바꿀수 없는 소중한 국민 생명 경시한 죄는 살인과 다름없다. 알고 있나?

산발로 혼비백산해 나타났더라면 이보다 더 나쁘지  않았을거다. 우리 국민을 저토록 사랑하는구나 여기며 정상참작해 용서하기 쉬웠을거다.

책임전가와 변명과 회피로 일관할 게 아니라, 우상처럼 모시던 올림머리와 피부관리를 할 게 아니라, 긴 머리칼을 풀고 국민앞에서 무릎꿇고 석고대죄해야 했다.

하긴 그 정도의 진정성과 책임감이 있었다면 국가 최고 지도자로서 그토록 무신경하고 사명감 없는 행태를 보이지 않았겠지.

박근혜 그녀는 평소 자신의 맘에 안드는 대상은 '나쁜 사람'이라 일갈했고, 그리고 그 당사자는 가차없이 내쳐졌다.

그대야말로 진정 나쁜 사람, 나쁜 사람, 나쁜 사람...

그녀와 그 공범자들을 절대 용서할 수 없다. 그리고 그녀를 영원히 용서할 수 없다.

끝으로 수많은 희생자와 유가족들에게 심심한 조의를 표하며, 할 수 있는게 없어 미안하기 그지없던 국민이었음에 자괴감이 드는 날이다.

                                                                     
Beyond the door,

There's a peace I'm sure,

And I know there'll be no more 

Tears in heaven

by Eric Clapton

 

   
 

정명화는…

1958년 경남 하동에서 출생해 경남 진주여자중학교, 서울 정신여자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연세대 문과대 문헌정보학과 학사, 고려대 대학원 심리학 임상심리전공 석사를 취득했다. 이후 자유기고가로 활동 중이다.

 

 

정명화 자유기고가 sisaon@sisaon.co.kr

<저작권자 © 시사ON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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