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해운 파산' 업계 맏형 40년 만에 역사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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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해운 파산' 업계 맏형 40년 만에 역사속으로
  • 송지영 기자
  • 승인 2017.02.17 15: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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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송지영 기자)

▲ 대한민국 해운업계를 이끌었던 한진해운이 업황 악화와 유동성 위기를 견디지 못하고 40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 시사오늘

대한민국 해운업계를 이끌었던 한진해운이 업황 악화와 유동성 위기를 견디지 못하고 40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17일 업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파산6부는 이날 한진해운에 파산 선고를 내렸다. 지난 2일 한진해운 회생절차 폐지 결정을 내린 지 2주 만의 일이다.

비록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한진해운의 역사는 우리나라 해운업의 발전과 궤를 같이 해왔다는 점에서 의미를 가진다.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는 지난 1966년 베트남 퀴논 항에서 미국 화물선의 하역을 지켜본 후 귀국해 해운사 설립에 착수했다. 그리고 그 이듬해인 1967년 한진해운의 전신인 대진해운을, 이후 1977년 한진해운을 세웠다.

국내 최초 컨테이너 전용 선사로 설립된 한진해운은 1978년 중동 항로를 시작으로 1979년 북미서안 항로, 1983년 북미동안 항로 등을 연이어 개척하며 대한민국 해운업계의 역사를 써내려갔다.

물론 경영 위기도 있었다. 1986년 불황에 따른 적자 누적을 겪었지만 조 회장은 경영혁신과 구조조정을 통해 가까스로 정상화를 이뤄냈다.

이후 한진해운은 1988년 정부가 설립한 국내 1호선사인 대한상선을 합병, 종합해운 기업으로 거듭났고 1992년 국적선사 최초로 매출 1조 원을 달성하는 쾌거도 이뤘다.

1995년에는 거양해운을 인수하며 유럽-중국 서비스를 시작했고, 2003년 중국 코스코, 대만 양밍, 일본 K-Line과 얼라이언스를 결성하며 글로벌 컨테이너선사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한진해운은 2002년 11월 조중호 회장이 타계한데 이어, 경영권을 넘겨받은 셋째 아들 조수호 회장마저 2006년 지병으로 별세하며 두 번째 위기를 맞게 된다.

이듬해 조수호 회장의 부인인 최은영 전 회장이 경영권을 잡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장기 해운 침체 등과 맞물리며 유동성 위기에 빠진 것이다. 결국 최 전 회장은 2014년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에게 회사 지분과 경영권을 넘기고 회사일에서 손을 뗀다.

조 회장 역시 1조 원이 넘는 돈을 쏟아부으며 한진해운의 경영 정상화에 힘썼으나 해운업 장기 불황을 이겨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조 회장은 지난해 4월 경영권을 포기하고 채권단에 자율협약을 신청하기에 이른다. 다음 달인 5월부터 용선료 조정, 사채권 만기연장 등 조건부 자율협약이 시작됐지만 한진해운은 결국 채권단의 요구안을 충족시키지 못했다.

이후 채권단은 8월 30일부로 자금 지원 중단을 발표했고 한진해운은 이틀 뒤인 9월 1일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이후 한진해운은 선박 가압류 등으로 영업망이 무너지고 인력과 주요 자산을 매각하면서 청산하는 편이 낫다는 선고를 받는다.

법원은 지난 2일 회생절차 폐지를 결정한 데 이어 약 2주 만인 17일 파산 선고를 내렸다. 이로써 한진해운의 40년 역사는 종지부를 찍었다.

담당업무 : 항공,정유,화학,해운,상선을 담당합니다.
좌우명 : 서두르지 말되, 멈추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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