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왕국① 백화점 야간 청소에 취업하다 [이순자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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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왕국① 백화점 야간 청소에 취업하다 [이순자의 하루] 
  • 이순자 자유기고가
  • 승인 2024.04.28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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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이순자 자유기고가]

나는 지금 새로 취업할 백화점의 감독관 사무실을 찾아가고 있다. 면접을 보기 위해서다.

감독관 사무실은 백화점 지하 6층에 있었고 찾기도 쉬었다. 보통 다 감독관의 사무실 크기는 거의 비슷하다. 지난번 때의 감독관 사무실의 넓이와 비슷했다. 그저 허름한 책상 하나와 의자 한 개 서너 명이 앉을 수 있는 긴 의자 한 개가 있는 세평 정도 되어 보이는 그런 사무실이다. 감독은 의자 위에 몸을 비스듬히 기대어 있었고 이미 먼저 와 있는 남자 미화원 면담자와 얘기 중이었다. 

내가 들어서자 그들은 말을 뚝 그치면서 동시에 시선이 내게로 향했다. 나도 동시에 그들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보통 사람을 처음 대할 때 누구나 나름대로 느껴지는 상대방의 인상착의는 다 다를 것이다. 

“안녕하세요?” 라고 나는 감독한테 먼저 꾸벅 인사를 하고는 긴 의자에 앉아있는 남자에게도 가볍게 목례를 했다. “어서 오세요” 감독이 응수하면서 손가락으로 긴 의자를 가리켰다. 나는 얼른 긴 의자에 앉으면서 얼핏 감독을 바라봤다. 

대뜸 감독이 거만스럽게 느껴졌다. 약 오십 대 후반으로 보이는 나이와 희끗희끗 희어지고 빼곡한 머리숱과 희지도 검지도 않은 피부 색깔을 가지고 있는, 그리고 뚱뚱하지도 빼빼하지도 않으면서 키까지 커 보이는 감독은 역시 거만스럽게 내가 내민 이력서를 훑어보면서 이것저것 묻는 데 특이하게도 그 묻는 목소리가 내 귀에는 몹시 역겹게 들려졌다. 

평소 내가 제일 듣기 싫어하는 바로 그런 목소리였다. 그런 와중에 감독의 질문은 나의 빈정을 상하게 하는 질문을 하기도 했는데 예를 들면 자식들의 직업을 묻고 내게는 주량이 얼마쯤 되느냐는 등의 본질과는 동떨어진 질문을 하는 것이었다. 또한 기분 나쁘게 나를 곁눈질로 살펴보는 것이었다. 

그런 행동 또한 내가 제일 싫어하는 짓이었지만 나는 그냥 대수롭지 않게 무시하면서 어서 감독의 입에서 내일부터 출근하라는 말이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그 이유는 나의 집과 이곳의 거리가 그리 멀지 않고 교통 또한 좋았기 때문에 나는 이곳 백화점에서 일하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랐기 때문이었다. 

초조하게 기다리는 마음은 언제나 아주 짧은 시간도 몹시 지루하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내가 지금 딱 그 짝인 것이다. 전혀 호감이라고는 느낄 수 없는 감독은 급하지 않은냥 별 대수롭지 않은 얘기로 귀한 시간을 끌다가 “김정자 씨 내일부터 출근하세요”라고 하는데 어딘지 모르게 그 말속에서는 권위적인 느낌이 다분히 느껴졌다. 일단 취직이 되었구나 하는 안도감이 뒤섞인 채로 나는 감독에게 “감독님 내일 뵙겠습니다”라고 허리를 굽실하고는 빠르게 밖으로 나왔다. 

나보다도 먼저 면접을 본 것 같은 내 또래의 남자는 계속 감독관과 할 이야기가 많은 듯이 입을 연신 합죽거리면서 대꾸를 하고 있었다. 그 소리가 복도 끝 엘리베이터 앞까지 들려왔다. 

춥지 않은 때였다. 감독실 문을 닫아 놓지 않았고 지하 6층은 감독실과 그 옆으로 큼직하게 조립식으로 꾸며진 방인 것 같은 구조물 빼고는 텅텅 비어있었다. 자연스레 울림이 클 수밖에 없을듯했다. 

보나 마나 감독실 옆의 커 보이는 구조물은 미화원들의 휴게실 겸 탈의실일 것이다. 엘리베이터를 타면서 나는 좀 전에 감독으로부터 들은 설명을 다시금 꼼꼼히 되뇌어 봤다. 

설명인즉 이곳 백화점의 청소 일은 주간 조와 야간 조로 나뉘어 있다. 주간조 인원이 여자 7명과 남자 3명이며 야간 인원은 남자가 한 명 여자가 7명이다. 전체 인원은 18명이다. 주간 조의 월급은 90만 원, 야간 조는 95만 원이다. 주간 조는 오전 10시까지 출근하고 퇴근은 오후 7시다. 야간 조 출근은 오후 8시며 퇴근은 새벽 6시라는 설명이었다. 

나는 야간 조에 속했다. 내일부터 오후 8시까지 출근 시간이며 퇴근은 다음날 새벽 6시에 해야 한다. 그런 것은 나에게 아무 문제도 되지는 않는다. 또 다른 한 가지는 밥은 미화 방에서 전기밥솥으로 지어먹고 반찬은 각자 싸와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문제는 먼저 일터와도 같았다. 엘리베이터는 백화점 지하 6층부터 지상 10층까지 이어져 있고 지상 10층은 영화관이다. 영화관에는 따로 미화원이 있기 때문에 우리 미화원들은 9층까지만 하면 된다. 나는 일부러 엘리베이터를 타고 9층까지 올라갔다가, 차례차례 내려오면서 대강 둘러보았다. 9층과 8층은 식당, 7층부터 2층 까지는 의류 판매장이었으며 1층은 신발 판매장이고 지하 1층은 우산과 화장품과 각종 액세서리가 진열돼 있었다. 지하 2층은 도서 판매장이었다. 

이쯤 하면 대략 둘러 본 셈이니 나는 서둘러 집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해졌다. 버스를 타려면 지하철 안으로 들어가서 5번 출구로 나가야 한다. 백화점은 지하철 2번 출구와 맞닿아있고 저녁 장을 보려는 사람들로 매우 혼잡했다. 버스를 탔을 때는 이미 6시나 되었다. 집에까지 도착하려면 50분은 걸릴 것이다. 

퇴근시간이니 길은 다소 막힐 것이었다. 나는 청소 일이 식당 일보다는 좋다. 식당 일은 5시간짜리가 있고 12시간짜리가 있는데 5시간짜리는 너무 보수가 적고 12시간짜리는 보수는 좋지만 몸이 너무 지쳐버린다. 청소일이 보수는 덜하지만 중간 중간 쉴 틈도 있기 때문에 몸이 덜 지친다. 그런 이유에선가 집에 가면 심적인 여유도 생기고 가족들과도 함께 밥도 먹을 수 있다. 이런저런 대화도 나눌 수가 있으니 이 얼마나 값진 삶인가?

나는 내 가족을 위해서 음식을 장만할 때가 참으로 보람된다.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향하는 나의 발걸음은 걷는 것이 아니고 차라리 날아가고 있었다.

※ 시민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 글은 2010년 백화점 청소일 당시의 체험소설이며 글을 쓰는 이순자 씨는 서울 양천구 신월동에 사는 78세 할머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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