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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도의 時代架橋] '헌정사 비극' 양승태 구속과 司法 혁신

기사승인 2019.02.02  12:4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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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부 참담한 과거와 미래
무너지는 신뢰…'국민의 사법부'로 거듭나야
‘사안 중대·증거인멸 우려’ 영장 발부
논쟁적 판결 파장확산 가능성
법원, 사법농단 피해 ‘결자해지’를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이병도 주필)

사법부 수장이 구속 수감되는 헌정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사법농단’ 혐의로 구속됐다. 퇴임한 지 489일 만이다. 아직 유죄가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사법 신뢰는 더욱 추락하게 됐다.

법원이 '꼬리 자르기'나 '제 식구 감싸기'라는 비난을 각오하고 양 전 대법원장의 구속영장을 기각할 것이라는 전망이 상당했지만, 법원은 결국 구속영장 발부를 선택했다.

전직 사법 수장의 구속은 71년 사법 사상 초유의 일로, 사법부의 치욕이라는 차원을 넘어 헌정사의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최악의 사법권위  추락이다. 국가적으로도 이명박·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의 수감에 이은 또 다른 역사의 오점이다.

법원은 사회적 갈등을 법치주의의 틀 안에서 공정하고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사회의 보루다. 그런데 그 법원의 수장이 스스로 공정성을 깨뜨리고, 법원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재판에 개입한 혐의로 구속돼 국민의 불신을 초래했다면 사법사에 씻을 수 없는 오점이다.

파장이 적지않을 전망이다. 논쟁을 야기한 정치적 사건에 대한 판결이 다시 분란으로 빠져드는 도화선이 될 개연성도 높다.

양 전 대법원장 구속의 후폭풍은 넓고도 깊다. 양 전 대법원장 구속은 재판의 독립을 훼손한 과거 법원에 대한 반성으로 볼 수 있다. 동시에 김명수 대법원장이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내부적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검찰 수사에 협조하면서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자초했다는 비판도 있다.

애초에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바라보는 시각 자체도 극단적으로 엇갈렸다. 전직 대법원장을 구속까지 할 사안인가에 대한 논란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진영 간의 대립이나 법원 내부의 분열이 커져서는 안 된다.

지금 사법부 역시 정치권에 동료 법관 탄핵을 촉구하는 등 내홍에 휩싸여 있다. 사법개혁은 지지부진하고 ‘코드 인사’의 폐해도 여전하다.

양 전 대법원장 구속으로 국민의 사법부에 대한 불신은 더 커지게 됐다. 대법원장 차량에 화염병이 날아들고, 대법원에서 소송 당사자가 목을 매는 사건이 벌어지는 지경이다. 이런 판국에 누가 재판을 믿고 수긍할지 심히 우려스럽다. 사법부가 불신을 받으면 법치주의는 존립할 수 없다. 그로 인한 피해는 국민 전체에 돌아갈 것이다.

진정한 '사법개혁'이 중대 국가현안으로 대두했다.

법은 만인에게 평등하고, 어떠한 성역도 있을 수 없다. 여론을 의식한다든지 정치적 고려를 해서도 안 된다. 오직 법과 원칙, 증거에 입각한 재판이 관건이다.

사법이 신뢰를 잃으면 법원만 흔들리는 것이 아니다. 나라가 흔들리게 된다. 시민들의 자유와 재산을 지키는 일을 심판인 판사들에게 믿고 맡길 수 없다면 국가가 온전할 수 있겠는가. 땅바닥에 떨어진 사법부의 명예를 어떻게 되찾을 것인지, 향후 이번 사건의 처리방향과 사법개혁 추이가 실로 주목된다.

법원판단 존중, 정쟁화 극복을

양 전 대법원장은 25년 후배 판사가 맡은 영장실질심사에서 구속 사유가 인정돼 구치소에 수감됐다.

명재권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범죄사실 중 상당부분 혐의가 소명되고 사안이 중대하며,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고 그 이유를 밝혔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의 최종 책임자로 지목된 양 전 대법원장의 혐의가 구속이 불가피할 정도의 중범죄라고 법원이 판단한 것이다.

법원이 제 식구 감싸기를 할 것이란 예상을 깨고 구속영장을 발부한 것은 검찰 수사 결과를 법원 스스로 상당 부분 인정한 것으로 봐야 한다. 그동안 법원은 재판거래 의혹과 관련해 부실한 자체 조사와 자료제출 거부, 압수수색영장 및 구속영장 기각 등으로 일관했기 때문이다.

물론, 7개월에 걸친 수사를 통해 검찰이 관련 증거들을 샅샅이 뒤졌고, 양 전 대법원장이 도주할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점에서 과연 구속영장 청구와 발부가 불가피했느냐는 일각의 문제 제기에도 타당한 측면은 있다. 가급적 불구속 상태에서 피고인이 재판을 받게 해야 한다는 형사소송의 원칙에도 어긋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법원의 판단은 존중받아야 한다. 구속 자체를 정치적 쟁점으로 삼는 것은 사법 신뢰 회복이라는 우리 사회의 중대한 과제를 해결하는 데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여야가 “당연한 귀결” “정권의 사법 장악 시도” 등으로 성급한 평가를 한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제 중요한 것은 재판을 통해 ‘사법 농단’ 의혹의 실체를 명확히 확인하는 일이다.

2017년 2월 ‘판사 블랙리스트’ 업무 지시를 거부하고 사직서로 저항했던 이탄희 판사의 용기가 없었다면 사법농단은 아직까지 세상에 드러나지 않았을지 모른다. 이 판사처럼 소신 있고 양심적인 법관들이 적지 않기에, 사법부가 오늘의 치욕을 딛고 다시 태어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재판거래’ 의혹과 양 전 대법원장 항변

양 전 대법원장은 박근혜정부 당시 청와대와 재판거래를 하고 특정 법관들에게 인사 불이익을 준 혐의를 받고 있다.

그중에서도 ‘재판 거래’에 관여했다는 부분이 가장 두드러진다.

상고법원 설치를 위해 청와대와 ‘재판거래’를 하는 등 반헌법적 행위에 직간접적으로 간여했다는 것이다.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 민사소송과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댓글 사건에서 각각 재판거래한 혐의, 옛 통합진보당 의원 지위확인 소송 개입, 헌법재판소 내부 정보 불법 수집, 법관 사찰 및 ‘사법부 블랙리스트’, 공보관실 운영비로 비자금 3억 5000만원 조성 등 적용된 혐의만 40여건이 넘는다.

법원이 영장을 발부하게 된 데는 이규진 전 양형위원의 업무수첩이나 김앤장 문건, ‘물의 야기 법관’ 문건 등의 물증과 관련자 진술이 결정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또 대법원 앞 담벼락 회견으로 법원 안팎의 반감을 불러온데다 영장심사 과정에서도 사과나 반성은 커녕 후배 법관들의 ‘모함’ 또는 ‘조작’이라는 등 부인으로 일관한 것도 역효과를 낸 것으로 보인다.

명 부장판사가  영장을 발부하며 공식으로 밝힌 사유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 혐의가 소명되며 사안이 중대하다는 것이다. 이는 양 전 대법원장이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에게 지시하거나 보고받은 것을 넘어 ‘직접 개입’한 증거들이 제출된 데 따른 판단이다.

양 전 대법원장은 일제 강제징용 재판에서 주심 대법관에게 “국제법적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며 신중한 검토를 요구하고, 전범기업을 대리한 김앤장 변호사를 직접 만난 것으로 드러났다.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의 수첩에 대법원장 지시를 뜻하는 ‘대(大)’자가 적힌 점 등도 영장 발부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영장 발부 사유는 ‘증거인멸 우려’다. 양 전 대법원장은 줄곧 “기억이 안 난다”거나 “나는 모르는 일”이라며 혐의를 강력히 부인해온 탓이다.

7개월 넘게 전ㆍ현직 법관 100여명을 조사한 검찰은 "헌법 질서를 위협하는 중대범죄"라고 지적했다. 청와대와 '재판거래'를 하고 특정 법관들에게 인사 불이익을 준 것은 삼권 분립을 위배한 범죄라는 것이다. 

검찰은 당초 강제징용 재판과 관련해 변호사를 따로 만난 사실이 적시된 문건, 이른바 ‘판사 블랙리스트’ 문건, 대법원장 지시를 구체적으로 담은 부장판사의 업무수첩 등을 증거로 제시했다. 양 전 대법원장이 사법농단을 기획하고 실행한 핵심 행위자라는 것이 검찰의 주장인 셈이다.

반면, 이에대해 양 전 대법원장은 “재판에 개입한 적이 없고, 법관에게 불이익을 주지 않았다”며 철저히 부인해왔다. 핵심 증거물로 제출된 업무수첩은 조작 가능성이 있다고 항변했다. 하지만 구속영장 심사에서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비록 전직 사법부 수장이지만 이런 혐의를 밝히려면 구속 수사가 불가피하다는 법원의 판단이 내려진 것으로 보인다.

새 분란 도화선 가능성 - ‘신(新)적폐’ 우려

파장은 크다. 현 정권과 사법권력은 그동안 前 사법부에 대해 ‘재판 거래’와 ‘사법 농단’이라는 정치적 구호로 공격했는데, 양 전 대법원장 구속으로 과거의 논쟁적 판결들이 모두 부정 받을 지경에 처했다.

그의 재임 기간 중 논란이 된 판결은 모두 불신과 의심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좌파 단체들은 전교조 법외노조 재판 등 각종 시국 사건을 문제 삼을 태세다. 특히 통진당 세력은 그동안 양 전 대법원장 구속을 집요하게 요구해온 터다.

우려되는 것은 양 전 대법원장의 구속으로 그동안 논쟁을 초래했던 정치적 사건 판결들이 다시 당사자들의 극심한 반발에 부딪칠 것이라는 개연성이다.

양승태 대법원장 체제에서 판결이 났던 이석기 전 통진당 의원의 내란음모사건을 비롯해 민주노총, 전교조 사건 관계자들이 재심청구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이 그것이다. 민주노총과 일부 좌파 단체들은 이석기 전 의원에 대한 대법원 판결을 재판거래로 몰면서 “사법부를 적폐 판사의 피로 물들이자”고까지 주장하는 상황이다.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까지 문제 삼겠다고 한다.

특정 세력에 사법부가 공격을 받으면서 법적 안정성이 우려되는 국면이다. 오히려 새로운 분란의 도화선이 됨으로써 사법부에 대한 불신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얘기다.

현 정부 출범 이후 ‘사법 권력’은 보수에서 진보로 대대적으로 교체됐으며 현재도 진행 중이다. 법관 탄핵을 촉구한 전국법관대표회의는 권력기관화한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반면 과거 정권에서 요직을 맡았던 많은 법관들은 검찰 수사로 치명상을 입었다. 사법부가 잘못된 과거와 단절하는 차원을 넘어 개혁의 이름으로 새로운 부조리와 폐단을 잉태하는 잘못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 사법 권력의 얼굴만 보수에서 진보로 바뀌었을 뿐 비슷한 양태가 되풀이돼 훗날 ‘신(新)적폐’라는 비판이 제기된다면 사법 신뢰 회복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정치권 사법부 압박 전례

물론, 법원은 직전의 사법부 수장에 대한 구속영장 발부를 놓고 당연히 고심했을 것이다. 하지만 국민을 납득시킬 만한 사유 없이 영장을 기각할 경우 불어닥칠 안팎의 후폭풍을 의식해 전직 사법부 수장을 구속하는 고육지책을 택했을 것으로 보인다.

‘방탄 판사단’이라 비판받아온 법원도 헌정질서를 뒤흔든 사법농단의 중대성을 외면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일로 검찰과 정치권이 사법부를 압박할 수 있는 전례가 만들어진 것은 심각한 문제다. 이 지경에 이른 1차적 책임은 김명수 현 대법원장에게 있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내부적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검찰을 끌어들여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자초했다.

사건의 도화선인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은 세 차례에 걸친 대법원 자체 조사에서 사실무근으로 결론이 난 바 있다. 재판거래 문제에 대해서도 김 대법원장이 구성한 조사팀조차 ‘어떠한 자료나 정황도 찾지 못했다’고 했다. 대법관 13명 전원도 “재판거래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그런데도 문재인 대통령이 수사촉구로 압박하고 김 대법원장이 검찰 수사에 협조하겠다고 밝혔다. 김 대법원장은 사실상 대통령 뜻에 맞춰 문제를 검찰로 넘겼다. 여당은 판사 탄핵에 나서고 있다. 사법부가 정치에 오염됐다는 비판이 일었다.

파장이 클 수 밖에 없다. 김 대법원장 체제가 정치적 풍향계를 따라가고 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운 이유다. 세간에는 정권이 바뀌면 이번 사태를 주도한 판사들에게 부메랑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말까지 돌고 있다.

김 대법원장은 사법부의 분열과 갈등이 극에 달한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 뼈를 깎는 각오로 국민 신뢰를 회복할 특단의 대책을 내놔야 할 것이다.

김 대법원장은 이번 사태에 대해 “참으로 참담하고 부끄럽다”며 국민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그가 진정으로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믿음을 되찾고 싶다면 국제인권법연구회와 같은 특정 모임에 속한 판사들이 법원을 장악해 또 다른 적폐를 만들고 있다는 지적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 지난 달 23일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서울구치소로 향하고 있다. ⓒ뉴시스

사법 안정성과 검찰권 남용

양 전 대법원장 구속 수감은 그 자체만으로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곤두박질쳤음을 의미한다.

여기에다 논란을 빚는 재판거래 의혹이 정치적 잣대를 들이대면서 표면화된 만큼, 앞으로 법관들이 정치적 성향에 맞춰 판결을 내리거나 나중에 세상이 바뀔 때 궁지에 몰릴 수 있다고 의식할 수 있으니 이는 사법부의 안정성이 뿌리째 흔들리는 상황을 부를 수도 있다.

검찰권 남용 문제도 제기된다. 검찰이 집중적 수사결과 내놓은 많은 문건은 거의 대부분 대법원의 정책이나 절차에 관련된 것이었다.

양 전 대법원장이 상고법원 설치를 위해 대통령과 국회의원들을 상대로 로비를 벌이거나, 강제징용 재판과 관련해 변호사를 따로 만났다면 부적절하고 지탄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부적절한 행위와 범죄는 다른 문제다. 검찰이 양 전 대법원장에게 적용한 혐의는 거의 전부가 '직권남용'이다. 피의자에 대한 마구잡이 '직권남용' 적용은 검찰권 남용의 대표적 사례로 꼽히고 있다.

구속영장이 발부됐다고 해서 유죄가 되는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 드러난 법원행정처 문건에는 양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행정권이 부적절하게 사용됐음을 보여주는 흔적이 들어있다. 하지만 그것을 ‘재판 거래’의 직접적 증거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반론도 적지 않다. 또한 관련자들의 행위가 과연 형법적으로 죄가 되느냐는 별개의 문제다. 유·무죄는 앞으로 재판 과정에서 관련 증거들과 법리적 판단으로 가려져야 한다.

영장발부 이후 과제

지난 정권 당시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이제 사법부는 만신창이가 되고 온 나라는 벌집 쑤신 듯 발칵 뒤집어졌다.

그 실체는 반드시 밝혀져야 하고 관련자는 엄중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검찰 수사를 통해 그 윤곽은 어느 정도 드러났다고 볼수 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건 이제부터다.

양 전 대법원장이 구속 수사를 거쳐 2월 중순께 다른 피의자들과 함께 재판에 넘겨지면 사법농단의 실체를 가리는 본격적인 법적 공방이 벌어진다.

전 대법원장을 구속할 정도로 증거와 법리가 충분한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물증으로 제시된 문건들도 재판거래 혹은 재판개입을 유죄로 입증할 만한 확고한 증거로 보긴 힘들다. 구속영장 발부는 강제수사의 필요를 인정한 것일 뿐 유무죄는 결국 법정에서 가릴 수밖에 없게 됐다.

곧 재판부가 결정되고 본격적인 심리가 시작될 것이다. 법은 만인에게 평등하고, 어떠한 성역도 있을 수 없다. 재판부는 정치적 고려없이 오직 법과 원칙, 증거에 입각한 판단을 해야 한다. 만신창이가 된 사법부의 위상을 조금이라도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그렇게 해야 한다.

‘사법 농단’ 의혹 재판은 조사 대상이 광범위하고 법리 공방이 치열하게 벌어질 수밖에 없어 긴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1심 판결 전 구속 기간이 최장 6개월이란 점을 의식해 재판을 촉박하게 진행한다면 실체적 진실 규명이 제대로 되지 않을 수도 있다. 법원은 재판 일정에 쫓기지 않고 충분한 법리 검토와 정확한 판단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법원은 지난 2년간 ‘꼬리 자르기’ 자체 조사에 이어 자료제출 거부와 잇따른 압수수색 영장 및 구속영장 기각 등으로 조직적으로 진상을 은폐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그러다 마지막 순간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는 헌법의 대원칙에 일부나마 부응한 결과를 내놓은 셈이다.

이런 저간의 사정 때문에 앞으로 진행될 재판의 공정성은 아직 미지수다. ‘부적절하나 죄가 되지 않는다’던 특별조사단의 보고서, ‘대법관이 심의관 보고서를 보고 재판할 리 없다’는 압수수색 영장 기각 사유, ‘재판거래는 없다’던 대법관 일동의 입장문은 여전히 국민 뇌리에 생생히 남아 있음을 사법부 구성원들은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전직 대법원장을 구속까지 할 사안인지에 대한 논란도 여전히 진행형이다. 재판부는 정치적 고려 없이 오직 법과 증거에 입각해 실체적 진실을 가려야 할 것이다.

치밀한 후속수사 공정재판 관건

양 전 대법원장의 구속은 끝이 아니다. 진정한 법적 조치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검찰은 사법농단 관련자들을 재판에 넘길 때까지 치밀한 수사로 한 점 의혹 없이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 전·현직 법관들이 기소되면 공정한 재판이 과제로 대두할 것이다. 법원이 재판의 공정성을 담보하지 못한다면 특별재판부 구성을 다시 검토할 수밖에 없다.

양 전 대법원장과 관련자들에 대한 재판 과정에서 사법행정권 남용과 재판거래를 명확히 구분해 시시비비를 가려내는 일도 중요한 과제다.

양승태 대법원장 및 법원행정처 수뇌부의 행위가 사법행정권 남용인지를 세세하게 밝혀야 하는 지난한 과정이 남아있다. 법원은 앞으로의 재판 과정에서 법과 양심에 따라 공정하게 판단해야 한다.

재판에 임하는 양 전 대법원장은 사법부 전직 수장이자 어른으로서 책임질 것은 책임지겠다는 자세를 보이기 바란다. 작년 6월 집 근처 놀이터 기자회견부터 이달 3차례 검찰 출석까지 그는 일관되게 "모른다" "아랫사람이 다 했다"라는 입장을 고수해 법원 안팎에 실망을 안겼다.

양 전 대법원장은 증거가 조작됐다거나 후배 판사의 모함으로 일축할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밝혀야 한다. 자신의 법률 지식을 이용해 법망을 빠져나가려 할 경우 국민들의 실망은 더 커질 것이다. 진실을 밝히고 책임질 부분이 있다면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사법부 수장을 지낸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국민에 대한 도리다.

앞으로의 재판과정에서 다른 현안에 가려져 있지만 서영교 의원 등 전·현직 국회의원들의 재판 청탁 혐의도 이와 별도로 반드시 실체를 규명해 책임을 물어야 한다. 박근혜 정권에 대한 ‘협조사례’로 거론된 과거사 사건이나 케이티엑스(KTX) 해고무효소송을 비롯한 민생·노동 사건 등 공정성을 의심받는 재판은 법원 스스로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사법 전면적 제도개혁 필수

이번 사태가 남긴 교훈은 크다. 법적 안정성이 흔들리면 사법 불신은 가중될 수밖에 없다. 사법농단의 재발을 막기 위해 제도개혁이 필수적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검찰 수사로 드러난 ‘재판 민원’ 외에도  사법부 내에는 잘못된 관행이나 부조리가  적지않을 것이다. 수사를 받은 법관들 중에는 과거부터 있던 일인데 왜 이제 와서 문제 삼느냐고 항변하고 싶은 사람들도 있겠지만, 결코 그대로 가선 안된다.

과거에는 눈감아주던 일도 법의 심판을 받게 되고 잘못된 관행이나 불합리는 바로잡을 때가 온 것이다.
사법부 내 문제점으로는 대법원장의 제왕적 권한과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왜곡된 인사 구조 등이 꼽힌다. 사법개혁 논의에 속도를 낼 필요가 있다. 대법원장이 독점하는 사법행정 권한을 분산하는 등 제도개혁 방안을 추진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무너진 법원에 대한 신뢰 회복이다. 양 전 대법원장 구속을 계기로 김명수 대법원장을 비롯한 전국의 모든 판사가 재판 독립을 어떻게 지키고, 어떤 사법부를 만들 것인지를 성찰하고 또 고민해야 한다.

만신창이가 된 사법부를 폐허에서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한다. 역시 관료적 사법행정 체계를 개편하는 일이 급선무다. 법원 주도하에 외부위원을 포함시키는 ‘사법행정회의’ 수준으로는 제왕적 대법원장 체제의 적폐를 청산하는 일이 불가능하다. 법관들이 ‘좋은 재판’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전면적 개혁에 나설 때다.

정치권도 크게 반성해야 한다. 이번 사태를 정쟁화 해선 안되며, 국회는 현직에 남아 있는 문제 법관들이 법대에 다시 서지 못하도록 탄핵 절차에 착수해야 할 것이다. ‘재판청탁’에 연루된 정당들의 경우는 소속 전·현직 의원에 대해 엄중한 조치를 취해야 옳다.

추락史 극복 自淨의지 중요

역사의 경고는 중요하다. 과거에도 우리 사법부내에는 일부 법관들이 품위를 잃은 행동을 자행하거나 직무규정에 위배되는 비리를 저지르는등 위신을 스스로 실추시키는 사례들이 적지않았다.

지난 1992년 대한변협이 공개한 부조리 백태를 보면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속설의 횡행속에서 판사들의 판·검사출신 신임 변호사들에 대한 전관예우 명목의 편향판결, 변호사나 당사자와의 친소관계에 따른 불공정한 재판과 보석·집행유예를 받기 위한 청탁관례화 등은 이미 뿌리깊은 고질이 되어있었다.
학연과 지연에 의한 불합리한 판결, 소송을 둘러싼 재판부의 금품수수 의혹 등 재판에 대한 공정성 시비가 끊이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퇴임후 갓 개업한 선배 변호사의 수임사건을 담당 후배판사가 재판을 유리하게 진행시켜주는 '전관예우' 관행도 공공연히 이루어져왔다.

무엇보다 사법부가 정치권력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거나,적어도 집권세력의 눈치를 살피는 권력의 시녀로 전락해버린 경우가 있었음은 가장 유의해야할 대목이다.

정치권력 과도기인 지난 6공 들어 민 형사사건, 특히 시국사건의 피고인이나 가족들이 사법의 권위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고 판결의 공정성을 믿지 않아 걸핏하면 법정소란이 잇따라 일어났던 것은 대표적 사례다. 심지어 방청객들이 공판정을 점거하고 판결문을 찢거나 집기를 부수는 무법난동사태까지 벌어져 도무지 사법권위를 찾을 수 없었던 적도 있었다.

민주사회가 최고의 가치로 지향하는 '자유'는 법질서의 토대위에서만 존립이 가능하다. 사법권의 독립을 강조하고 재판의 권위를 신성시하는 까닭도 법질서를 확립하는 한편 불이행자에 대해 제재를 가하기 위해서이다. 그런측면에서 볼때 근래 우리사회 일각에서 재판의 권위를 무시하고 법정소란을 일삼는 행위가 빈발하고 있음은 여간 우려스런 사태가 아니다.

길게보면, 지난 5공시절의 시국재판이 외압에 의해 좌지우지된 일면이 법정을 투쟁의 장으로 만든 근원이라 할 수 있다.

재판의 공정성을 더욱 확고하게 정착시키려면 무엇보다 재판의 권위부터 확립돼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법정을 신성시하는 풍토를 정착시키는게 시급하다. 더이상 법정소란행위가 유발되지 않도록 차제에 단호한 장치가 강구돼야 할 것이다.

사법부를 인권과 사회정의의 최후 보루라며 법과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재판할 것을 헌법도 명문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권위주의 정권시절 사법부의 독립은 국민적 염원이자 민주화의 상징이었다. 권력의 시녀라는 핀잔속에서도 사법부의 양심과 고군분투를 국민들은 그 얼마나 성원해왔던가를 우리는 지금도 기억한다. 이제 국민의식은 높아지고 시대도 많이 달라졌는데, 사법 스스로가 자정의지를 잃고 국민의 기대를 저버리려 한다면 결코 사법부의 내일은 없음을 지금이라도 깨달아 거듭 태어나야 할 것이다.

권력이념 탈피 완전 독립을

국민은 오직 법에 따른 공명정대한 재판을 기대하며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법원은 항상 명심해야 한다. 그것만이 사법부가 거듭 나는 길이다.

재판과 소추를 분담하는 법원과 검찰은 사법 정의를 세우는 데 없어서는 안 될 국가 중추기관들이다. 어느 한쪽이 흔들리면 사법 정의까지 흔들려 결국 국민이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이번 사법농단 사태의 경우 누가 구속되고 누가 처벌되고를 넘어 사법 신뢰를 무너뜨린 한 시대의 불행을 매듭지을 때가 됐다. 실추된 법원의 권위와 신뢰를 회복하는 것은 오로지 법과 양심에 따라 공정하게 판단하는 것뿐이다.

이제부터라도 사법부 전체가 법원의 폐해를 스스로 도려내고, 공정 재판을 통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길로 나서기 바란다.

양 전 대법원장도 재판과정에서 모든 것을 있는 것대로 밝혀야 한다. 진실을 밝히고 책임질 부분이 있다면 책임지는 당당한 모습을 보여주기 바란다. 그것은 실망과 충격에 빠진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일 것이다.

이번 양 전 대법원장의 구속을 계기로 사법부가 그릇된 정치적 판단의 관행을 떨쳐내고 제 모습을 찾기를 바란다. 전직 수장의 구속을 결정한 법원의 고뇌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라 짐작하지만, 법원은 충격을 딛고 아직 미진한 사법개혁을 가속해 신뢰를 회복하는 밑거름으로 삼아야 한다.

사법 독립을 저해하는 권력의 외풍이나 내부의 압력을 차단하지 못하면 법률과 양심에 따른 소신 재판은 요원하다. 치욕을 딛고 새로운 역사를 쓴다는 각오로 법관 개개인이 자성과 쇄신에 힘쓸 필요가 있다.

양 전 대법원장 구속을 사법부가 과거를 반성하고 잘못을 고치면서 새 출발 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제도적 개선과 함께 사법농단 혐의에 연루된 법관들을 과감하게 청산해야 한다. 이를 통해 땅에 떨어진 사법부의 권위를 회복하고, 정권의 사법부가 아닌 국민의 사법부로 되돌려 놓아야 할 것이다.

권력이나 이념에 흔들리지 않고 사법부 독립을 지켜내 공정한 재판을 하는 것이야말로 혁신의 근간이다. 제대로 사법혁신에 나서야 한다. 한국 민주주의 진전에 중요한 디딤돌을 다시 놓아야 한다.

   
 

이병도는…

1952년 경남 진양에서 출생했고 서강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 1979년 동양통신 기자로 언론계에 입문한 후 1981년 연합뉴스로 자리를 옮겨 정치부 야당출입 기자로 오랫동안 활동해 왔다. 저서로는, <6공해제>, <97년 대선 최후의 승자는> 등이 있다.

이병도 주필 lebd052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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