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황교안의 고민…‘친박이냐 아니냐, 그것이 문제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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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황교안의 고민…‘친박이냐 아니냐, 그것이 문제로다’
  • 정진호 기자
  • 승인 2019.01.18 17: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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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권 위해서는 거리 둬야 하지만…세력 없는 黃, 친박과 관계 설정 고민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정진호 기자) 

▲ 대권과 당권, 친박과의 관계 설정을 두고 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고민에 빠졌다. ⓒ시사오늘 김승종

“정치가 참 어렵지요. 허허.”

18일 <시사오늘>과 만난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기자와의 대화가 끝난 뒤 “정치는 참 어려운 것”이라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향후 행보에 대해 다양한 고민을 하고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려준 다음 덧붙인 말이었다.

입당 후 친박(親朴)의 지원을 받아 당권을 잡고, 세력을 형성해 대권으로 가려는 단순한 계획을 짜고 있던 황 전 총리는 왜 ‘정치의 어려움’을 느끼게 된 것일까. 자유민주연합(자민련) 시절부터 정치권에 몸담아온 이 노정객(老政客)의 이야기를 따라가 보자.

공천 원하는 친박 “황교안, 태도 확실히 해야”

“황 전 총리가 너무 쉽게 생각한 것 같다. 정치판에 들어오기만 하면 친박은 다 지지해줄 거라고 예상했겠지만, 정치가 어디 그런가. 친박은 황 전 총리가 확실한 ‘우리 편’이라고 생각할 때만 표를 몰아줄 거다.”

황 전 총리는 지난 15일 자유한국당에 입당하며 정치인으로서의 첫 발을 내딛었다. 그러나 ‘친박의 구심점’이 될 것이라던 당초 예상과는 달리, 친박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하다. 오히려 황 전 총리가 자신들을 대표해 비박(非朴)과 싸워줄 후보라는 데 의구심을 갖는 분위기다. 왜 그럴까.

“당연하다. 친박에게 필요한 건 당장 내년 총선에서 자기들 공천권을 지켜줄 수 있는 친박 후보다. 쉽게 말하면 ‘우리가 너 당대표 시켜줄 테니 너는 우리 공천 줘’라는 거다. 친박이 원하는 건 대권주자가 아니라 당권주자다. 그런데 황 전 총리는 대권주자 아니냐. 친박이 아니라 보수 전체, 국민 전체를 봐야 하는 입장이다. 당연히 친박은 ‘저 사람 확실히 우리 편 맞나? 총선 때 쇄신이니 뭐니 하면서 우리 뒤통수치는 거 아니야?’ 이런 생각을 하지 않겠나.”

데이비드 메이휴는 자신의 저서 <의회, 선거 커넥션>에서 “재선(再選)은 모든 의원들에게 가장 중요할 뿐만 아니라, 다른 목표들을 그려보기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성취돼야만 하는 목표다”라고 썼다. 이에 따르면, 한국당 의원들의 당면(當面) 과제는 대선이 아니라 총선 공천이다. 하지만 황 전 총리는 총선 공천 과정에서 ‘국민 여론’을 신경쓸 수밖에 없는 대권주자다. 어떤 의미에서 그는 친박이 원하는 당권주자 요건에 부합하는 인물이 아닐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친박은 황 전 총리가 공개적으로 ‘나는 확실한 친박’이라고 선언하기를 바라는 거다. 자기들과 한 배를 타야 당대표로 밀어주겠다는 뜻이다. 만약 아니다 싶으면 친박은 자체적으로 후보를 내고 당대표로 만들 만한 힘이 있다.”

실제로 친박 핵심 중 한 명인 홍문종 의원은 16일 경기도 과천에서 열린 국회의원 연찬회에서 “황 전 총리가 한쪽 편에 서야 한다”며 “탄핵 찬성이든 반대든 자기 스탠스를 확실히 밝혀야 한다”고 압박했다. 그 밖의 친박 당권주자들도 황 전 총리를 향해 쉼없이 견제구를 날리고 있다.

대권 원하는 황교안 “친박 낙인 안 돼”

“황 전 총리는 입장이 완전히 다르다. 대권을 노리는 사람이 지금 친박을 선언해서 좋을 게 없다는 건 삼척동자도 다 안다. 황 전 총리뿐만이 아니라 어떤 대권주자도 지금 ‘나는 친박이요’ 하고 나설 수가 없다.”

황 전 총리는 15일 입당식에서 계파와 관련된 질문에 “계파를 떠난 바른 정치에 동참하기 위해서 입당했다”면서 “어떤 계파와 관련한 말을 하거나 입장에 설 수 없고, 서지 않겠다는 말씀을 드리겠다”고 했다. 16일에도 자신의 페이스북에 “지금 정말 중요한 것은 제가 어제 말씀드린 것처럼 ‘미래’고 ‘통합’”이라고 썼다. 계파와 거리를 두겠다는 선언으로 풀이된다.

“대권주자로서 보면 황 전 총리 스탠스가 맞다. 문제는 당권이다. 지금 황 전 총리에게 계파가 있나 세력이 있나. 그분이 정치에 들어온 건 친박이 밀어줄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을 텐데, 친박이 안 밀어주면 답이 없는 거다. 일단 당권을 잡아야 세력이 모이고 대권도 생각을 할 수 있는데, 공천을 보장하지 않으면 친박이 황 전 총리를 밀어줄 이유가 없지 않겠나.”

전문가들은 황 전 총리의 ‘대권 시나리오’를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우선 마땅한 당권 후보가 없는 친박의 지지를 받아 당권을 잡고, 세력을 형성해 대권에 도전한다. 그러나 만약 친박의 지지가 없다면 ‘정치 신인’인 황 전 총리가 제1야당의 당대표가 될 가능성은 극히 낮다. 물론 당권 확보 실패는 사실상 ‘대선 레이스 탈락’을 의미할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황 전 총리가 엄청나게 고민을 하고 있을 거다. 당권을 잡으려면 친박이 돼야 하는데 그러면 대권으로 가기가 어려워질 것 같고, 그렇다고 대권만 바라보고 마이웨이(my way) 하자니 당권도 못 잡고 주저앉을 것 같고…. 전당대회가 얼마 안 남았으니 조만간 결정을 내리긴 할 텐데 아마 머리가 터질 지경일 거다. 정치가 참 어렵다.”

담당업무 : 국회 및 국민의힘 출입합니다.
좌우명 : 인생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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