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로 본 정치] 사화(士禍)의 폐해와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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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로 본 정치] 사화(士禍)의 폐해와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
  • 윤명철 논설위원
  • 승인 2018.12.09 14: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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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이 잦은 사화를 겪은 후 임진년과 병자년의 치욕을 자초한 역사를 잊어서는 안 돼”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윤명철 논설위원)

▲ JTBC 드라마 '인수대비'에서 연산군의 광기어린 복수극의 단초가 된 폐비 윤씨를 연기한 배우 전혜빈씨(좌)와 고인이 된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우) 사진제공=뉴시스

조선은 태조와 성종을 거치며 새 나라의 기틀을 마련하며 동북아의 新강자로서의 위용을 떨칠 수 있었다.

하지만 조선의 국운은 연산군 때부터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조선을 건국하고 국가의 기틀을 마련한 혁명파 사대부와 훈구세력의 높은 의기(意氣)는 기득권 층의 부정부패로 변질됐고, 왕권 유지에만 몰두한 군주들의 치졸한 권력투쟁의 서막이 올랐다.

연산군은 복수의 화신이다. 조선의 통치체제를 완성한 성종의 아들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광기가 넘친 폭군의 전형이다.

연산군은 재위 기간 중 조선의 4대 사화 중 무오사화와 갑자사화를 일으켜 조선의 현인과 군자들의 씨를 말렸다. 무오사화는 정권 유지를 위한 친위 쿠데타였지만, 갑자사화는 자신의 모친 폐비 윤씨의 죽음을 보복하기 위한 복수극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연산군의 폭정으로 정치적 사망 위기에 빠진 훈구세력은 중종반정을 일으켜 연산군을 몰아내고 새로운 군주 중종을 택군했다. 하지만 중종도 기묘사화를 일으켜 조광조 세력을 몰아내고 왕권 강화의 희생양으로 삼았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조선이 낳은 최고의 석학으로 존경받는 이황은 사화(士禍)에 대해서 “우리 나라에 사림(士林)의 화가 중엽부터 일어났는데, 폐조(廢朝)의 무오 사화와 갑자 사화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중종조의 기묘 사화는 현인(賢人) 군자(君子)가 모조리 큰 죄를 당했다”는 혹독한 평가를 내렸다.

이황은 “그때부터 사(邪)와 정(正)이 뒤섞이게 됐고 간사한 무리들이 득세했는데, 그들이 개인적으로 원한을 갚기 위해서는 반드시 기묘의 여습(餘習)이라고 했으므로 사림의 화가 연속돼  왔던 것”이라고 진단했다.

또 “당시 명종(明宗)은 어렸으므로 권간(權奸)들이 득세해 한 사람이 패하고 나면 또 한 사람이 나와 뒤를 이어 용사했기 때문에, 사화가 차마 말할 수 없게 되었던 것”이라며 “바라건대 이 지난 일들을 앞으로의 경계로 삼으소서”라고 간청했다.

이황의 간청에도 불구하고 선조는 민생을 내팽개치고 동인과 서인의 권력다툼을 이용해 자신의 왕권 유지에만 골몰하다 임진왜란의 치욕을 당했다. 수백만명의 백성이 희생되고 전 국토는 불쌍한 백성들의 피로 얼룩졌다.

지난 7일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이 투신 사망했다. 故 이재수 전 사령관은 세월호 사고 당시 기무사가 유족을 사찰했다는 의혹으로 검찰의 수사를 받았지만, 법원은 검찰의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고인은 “세월호 사고시 기무사와 기무부대원들은 정말 헌신적으로 최선을 다했다. 5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그때의 일을 사찰로 단죄한다니 정말 안타깝다”는 유서를 남기며 부하들의 선처를 당부했다.

문재인 정부는 적폐청산과 대북정책을 국정의 최우선 순위로 삼았다. 전직 대통령이 두 명이 구속됐고, 전 정권의 대법원장도 검찰 수사 대기 중이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요직에 있던 인사들이 줄줄이 검찰 수사 선상에 올랐다.

잘못이 있다면 검찰 수사를 받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정치보복의 성격을 갖는 적폐청산이 되면 안 된다. 보복은 또 다른 보복을 잉태하는 불행의 씨앗이 된다.

우리는 조선이 잦은 사화를 겪은 후 임진년과 병자년의 치욕을 자초한 역사를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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