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베트남은] 포스코가 무너뜨린 국격, 롯데·삼성이 다시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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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베트남은] 포스코가 무너뜨린 국격, 롯데·삼성이 다시 세웠다
  • 베트남 하노이=박근홍 기자
  • 승인 2018.11.19 15:09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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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이 현지 취재〉 박항서 열풍 속 한국 기업 관심↑
反中 정서 심화 반사이익, 親韓 분위기 높아…성장 가능성↑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베트남 하노이/박근홍 기자)

▲ 베트남 하노이 바딘광장. 그 뒤에 호치민 영묘가 보인다 ⓒ 시사오늘

베트남 수도 하노이에 위치한 노이바이 국제공항, 비성수기에 밤늦은 시간이지만 입국 심사대 앞은 한국 관광객들로 북적였다. 입국 수속을 밟으면서 창구 건너편을 힐끗 쳐다보니, 베트남에서 축구신화를 쓰고 있는 박항서 베트남 축구대표팀 감독이 광고 속에서 활짝 웃고 있었다.

수화물을 찾는 곳에는 삼성전자의 스마트 TV가 수십 대 깔려있었고, 그 TV에서는 '갤럭시S9' 홍보 영상이 끊임없이 상영됐다. 공항 밖에는 '롯데센터 하노이점' 옥외광고물이 하노이를 찾은 관광객들을 반겼다. 숙소로 향하기 위해 초록색 그랩(GRAB) 오토바이 택시를 타자, 기사의 입에서 친숙한 말이 나온다. "한국 사람? 베트남 너무 좋아. 최고야, 최고!"

장밋빛 미래 향하던 양국…판 엎은 포스코

1992년 우리나라와 베트남은 불행한 과거를 극복하고 새로운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베트남 전쟁 이후 처음으로 수교를 맺었다. 한국은 베트남에 생산기지를 세워 전 세계를 향한 교두보로 삼고자 했고, 베트남은 한국의 경제개발 경험과 지식을 전수 받아 선진국으로 가는 발판을 마련하려 했다.

이후 양국은 '송무백열'(소나무가 무성함을 잣나무가 기뻐한다. 벗이 잘됨을 기뻐한다는 뜻)의 자세로 함께했다. 베트남에서 생산한 우리나라 기업의 제품이 세계로 뻗어나갔고, 이는 베트남 국민들의 삶의 질을 높였다. 그 결과 우리나라는 베트남의 제1 투자국이, 베트남은 우리나라의 4대 교역국이 됐다. 현재 베트남에 등록된 한국 기업 수는 6200여 곳에 이른다.

피로 물든 옛일을 털어내고, 장밋빛 미래로 향하기 위한 양국의 의지와 노력이 통한 것이다.

하지만 최근 양국의 이 같은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 있었다. 포스코가 베트남을 통해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2015년 검찰은 대대적인 포스코 비리 수사를 단행, 일부 계열사 임원이 베트남 고속도로 건설현장 등에서 수십억 원대의 비자금을 조성한 사실을 밝혀냈고, 지난 6월 대법원은 해당 임원에 대한 비자금 조성, 횡령, 입찰방해 혐의 등을 유죄로 인정했다.

해당 사건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베트남 언론에서도 심도 깊게 다뤄졌다. 베트남 정부에서 발주한 사업으로 비리를 저지른 기업을 믿을 수 있느냐는 비판이 줄을 이었다는 게 현지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베트남 정치권의 한 핵심 관계자는 지난 15일 <시사오늘>과 만난 자리에서 "포스코의 비자금 건은 한국 기업의 신인도를 떨어뜨렸다. 가뜩이나 GS건설을 필두로 한국 건설사들이 지은 고속도로 통행료가 높게 책정돼 베트남 국민정서가 나빴는데 더 악화되는 계기가 됐다"고 회고했다.

▲ 베트남 하노이 바딘광장 앞에 위치한 베트남 국회의사당. 호치민 영묘를 마주보고 있다 ⓒ 시사오늘

이는 베트남 현지에서 우리나라의 국격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했다. 베트남 당국이 하노이 경전철 프로젝트에 대한 시찰을 진행, 해당 프로젝트를 관리·감독하는 현지 공무원들이 포스코 측으로부터 금품을 수수한 사실을 밝혀낸 것이다.

베트남 현지 사정에 정통한 한 동포는 "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베트남 언론에는 대서특필됐다. 아무리 부정부패가 만연한 베트남 사회지만, 금품 수수 규모가 무척 컸기 때문"이라며 "비리를 저지른 공무원과 포스코 관계자들이 관계당국으로부터 조사를 받았다"고 말했다.

실제로 베트남 정부 하노이 도시철도 프로젝트관리위원회는 지난해 해당 공사현장에서 철근이 도로로 떨어지는 사고가 발생했다는 이유로 포스코 측에 현장 작업 중단을 명령한 바 있다. 그 이면에는 이 같은 비화가 있다는 게 앞선 관계자의 설명이다. 해당 현장은 최근에야 공사가 재개됐다.

박항서 바람 타고 롯데·삼성 CEO 베트남 방문
"현지 갑질 횡포 근절해야 경영활동 지속할 수 있어"

포스코발(發) 악재는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박항서 감독이 지휘하는 베트남 23세 이하(U-23) 축구대표팀이 지난 1월 2018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챔피언십 결승전에 진출하는 쾌거를 거둔 것이다. 또한 박 감독은 지난 8월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4강전 진출을 이끌며 베트남에서 '박항서 신드롬'을 일으켰다.

베트남 전역이 들썩였고, 포스코로 인해 주춤했던 한국 기업에 대한 민심이 바뀌었다. 긍적 일색으로 변모한 현지 분위기에 우리나라 CEO들의 베트남 방문이 줄을 이었다. 가장 눈에 띄는 건 롯데그룹과 삼성그룹이었다.

▲ 베트남 하노이에 위치한 '롯데센터 하노이점' ⓒ 시사오늘

황각규 롯데지주 부회장은 지난 3월 베트남을 찾아 응웬 수언 푹 베트남 총리와 면담하고 현지 투자 확대와 협력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당시 신동빈 회장은 구속된 상태였고, 황 부회장은 신 회장 구속 직후 결성된 비상경영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었다. 신 회장을 대행해 베트남을 방문한 셈이다.

현재 베트남에 진출한 롯데그룹 계열사는 롯데제과, 롯데백화점, 롯데자산개발, 롯데호텔, 롯데면세점 등 총 16개, 사실상 모든 주력 계열사가 나섰다는 평가다. 현지 임직원 규모는 약 1만5000여 명에 이른다. 업계에서는 롯데그룹이 일본, 한국에 이어 베트남에 또 다른 롯데를 만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올 정도다.

가장 대표적인 사업은 '롯데센터 하노이'다. 롯데센터 하노이는 롯데그룹이 2014년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에 지은 지상 65층 규모의 대규모 복합시설로, 현재는 하노이의 대표적인 랜드마크로 발돋움했다.

실제로 기자가 직접 방문한 주말 롯데센터 하노이는 롯데호텔을 찾은 관광객과 롯데마트를 찾은 현지 주민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건물 앞 도로는 수많은 관광버스와 택시들로 교통정체가 극심했다.

롯데센터 하노이에서 만난 한 현지 주민은 "이곳 롯데마트는 베트남 상류층들이 주로 쇼핑하는 곳"이라며 "롯데센터가 들어오기 전까지는 롯데가 일본 기업인 줄 알았다. 그런데 여기가 하노이의 랜드마크로 떠오르고, 박항서 감독이 인기를 얻으면서 이제는 베트남 사람들 대부분이 롯데가 한국 기업임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 베트남 삼성전자 공장 ⓒ 시사오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직후 '박항서 바람'이 극에 달했던 지난달 30일 베트남을 찾았다.

이 부회장의 이번 방문은 베트남 경제계의 최대 이슈였다. 베트남 삼성전자는 베트남 전체 GDP의 20% 이상을 생산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세운 하노이 스마트폰 부품 공장은 약 2만5000명의 현지 임직원을 채용하고 있으며, 협력업체를 포함하면 수십만에 달하는 일자리를 창출하고 있다.

이처럼 베트남 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다 보니, 현지에서는 이 부회장의 방문을 두고 각종 유언비어가 쏟아진 것으로 전해진다.

응웬 수언 푹 베트남 총리가 하노이 공장 앞까지 고속도로를 뚫어주고, 각종 세금 혜택을 제공할 테니, 삼성전자의 모든 스마트폰 부품을 베트남에서 생산해 달라고 요청했고, 이 부회장이 이를 수락했다는 보도가 현지 언론에서 나온 것이다.

베트남 현지 사정에 정통한 한 동포는 "한국인들은 삼성이 그런 요청을 쉽게 수락할리 없다는 걸 알지만, 베트남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다. 이 부회장과 삼성에 대한 호의적인 여론이 순식간에 형성됐다"며 "베트남에서 삼성은 최고기업이다. 삼성이 또 다른 제국을 만드는 모양새"라고 전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우리나라 기업들이 베트남에서 지속가능한 경영을 이루기 위해서는 현지 임직원과 협력업체들에 대한 횡포를 줄일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실제로 롯데마트는 최근 몇몇 베트남 협력업체에 대금 지불을 미루거나 미지급하고, 임대료 인상과 보복행위 등 횡포를 부려 현지에서 구설수에 오른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삼성전자의 경우 유엔 인권고등판무관실에서 공장 노동자들의 작업환경에 우려를 표하는 내용의 권고문을 내기도 했다. 국내 백혈병 문제와 같은 일이 베트남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앞선 동포는 "포스코가 떨어뜨린 국격을 롯데와 삼성이 다시 세웠다. 지속적인 투자와 수많은 일자리 창출에 베트남 국민들이 참 고마워하고 있다"면서도 "다만, 현지에서 발생하는 갑질 횡포 문제에 대해 관리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지금은 표가 안 나지만 장기적으로는 반한(反韓) 감정을 부추길 것"이라고 경고했다.

전망 밝은 베트남 시장…"反中 정서 반사이익 누릴 것"

▲ 베트남 하노이 내 한인타운 미딩송다에 위치한 골든 팔라스 아파트. 지하엔 한인마트, 1층엔 한정식집이 있는 아파트로, 아파트 입주민 중 절반 이상이 한국인이다 ⓒ 시사오늘

베트남에 진출한 국내 기업들의 전망은 당분간 밝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현지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최근 중국에 부정적인 분위기가 심화되면서 이에 대한 반사이익을 우리나라가 누릴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베트남은 지난해 석유 4500만 배럴과 1720억 큐빅 피트 규모의 천연가스, 휘발성 액체탄화수소인 콘덴세이트 230만 배럴이 묻혀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유전을 발견하고, 국영 석유회사를 통해 원유 시추 사업을 지시했다.

그러나 산유국의 꿈은 중국으로 인해 일단 무산된 상황이다. 유전이 발견된 위치가 중국과 영유권 분쟁 중인 남중국해이기 때문이다. 중국 측은 시추 작업을 중단하지 않으면 베트남의 군사기지를 공격하겠다며 베트남 공산당에 압력을 행사한 것으로 전해진다.

베트남 국민들은 분노하고 있다. 반중(反中)정서가 다시 표출되는 실정이다. 실제로 베트남에서는 이에 앞선 2014년에도 중국이 남중국해 자원을 공동으로 개발하겠다는 합의를 무시하자, 대규모 반중시위가 벌어져 100명 이상의 중국인이 죽거나 다치는 사건이 발생한 바 있다.

베트남의 반중정서는 뿌리 깊다. 기원전까지 올라갈 정도다. 베트남 역사는 중국에 대한 투쟁사(史)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호치민 역사 박물관에서 만난 한 현지 주민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나라니까 중국이 베트남에 침략을 많이 했다. 티베트 꼴이 날 수도 있었다"며 "미국보다 중국이 더 싫다. 미국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베트남에 와서 고개를 숙이고 사과했다. 중국은 그런 것도 없다. 역사에 대한 반성이 전혀 없는 욕심만 많은 나라"라고 꼬집었다.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이 같은 반중정서가 베트남 시장에서의 지속적인 성장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베트남 현지 사정에 정통한 한 동포는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화교가 장악하지 못하고 있는 유일한 국가가 베트남"이라며 "반중은 심화되고 있고, 친한이 확대되는 상황이기 때문에 국내 업체들에게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베트남 정치권의 한 핵심 관계자는 "도심에 인구 과밀화 현상이 극심하기 때문에 재개발, 신도시 사업 등 이를 해소하기 위한 건설 관련 사업이 빠르게 전개될 것"이라며 "땅에 물이 많고, 온도가 높은 베트남 특성 등에 맞춰서 건설업 관련 수주를 노린다면 한국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내다봤다.

담당업무 : 건설·부동산을 중심으로 산업계 전반을 담당합니다
좌우명 : 隨緣無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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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리 2018-12-07 14:51:41
롯데가 한국 기업이었어? 한국말도 못하는 회장이?

ㅇㅇ 2018-11-19 16: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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