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교호텔] 민주당·평민당 통합 무산, 현대정치사 물줄기 바꾼 그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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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교호텔] 민주당·평민당 통합 무산, 현대정치사 물줄기 바꾼 그 곳
  • 정진호 기자
  • 승인 2018.11.12 18: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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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총선 앞두고 서교호텔서 야권 통합 협상 무산…‘3당 합당’으로 이어져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정진호 기자) 

▲ 때로는 동지 때로는 라이벌이었던 YS와 DJ는, 서교호텔 폭력 사건을 계기로 영원한 경쟁자의 길에 들어서게 된다. ⓒ시사오늘

1987년 12월 16일. 우려하던 일이 현실화됐다. YS(故 김영삼 전 대통령)와 DJ(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단일화 실패로 민주정의당 노태우 후보와 통일민주당 김영삼 후보, 평화민주당 김대중 후보, 신민주공화당 김종필 후보가 모두 출마한 제13대 대통령선거에서 ‘군사정권 연장’이라는 결과가 나왔기 때문. 목숨을 걸고 민주화를 쟁취한 국민들은 양김(金)의 분열에 실망했고, 대선 결과에 절망했다.

그러나 계속 고개를 숙이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4개월 후 곧바로 제13대 총선이 열릴 예정이었던 까닭이다. 야권은 바삐 움직였다. 우선 YS는 민주당 총재직에서 사퇴하는 강수(強手)를 던졌다. 대선 단일화 실패에 대한 국민적 분노가 여전한 상황에서, 양당 통합 과정에서마저 YS와 DJ가 분열하는 모습을 보일 경우 총선 패배는 뻔하다는 위기감의 발로였다.

「민주당의 김영삼 총재는 8일 “야권의 신속한 단일화를 위해 민주당 총재직을 사퇴, 평당원으로 백의종군 하겠다”고 발표했다.
김 총재는 이날 오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다가올 총선에서의 승리로 참다운 민주주의를 실현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야권의 단일화가 시급하다”고 말하고 자신은 이 같은 민주대업을 위해 총재직을 사퇴한다고 밝혔다. (중략)
이날 김 총재가 야권 단일화를 호소하며 총재직을 떠남에 따라 민주·평민 등 야당의 총선 전 단일화 움직임은 새로운 차원에서 활발히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김 총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야당이 비록 대통령선거에서는 패배했지만 지금 또 다시 선거혁명을 이룩함으로써 진정한 민주주의를 실현시킬 기회를 맞고 있다”면서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모든 민주세력이 대동단결하고 당이 단일화 돼야 하며 이 문제야말로 총선이 얼마 남지 않은 이 시점에서 하루속히 해결해야 할 가장 시급하고 절박한 과제”라고 말했다. (후략)
1988년 2월 8일자 <동아일보> ‘김영삼 씨 총재직 사퇴’」

YS의 총재직 사퇴는 야권 통합 논의에 불을 붙였다. YS 사퇴 사흘 뒤, 민주당과 평민당은 남산 외교구락부에서 야권 통합기구 합동회의를 갖고 총선 전 양당을 통합하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 단, 민주당은 무조건 통합을, 평민당은 소선거구제 합의 후 통합을 주장함으로써 방법론에 이견을 드러냈다.

그리고 소선거구제에 대한 이견은 양당 통합을 무산 직전까지 몰고 갔다. ‘전국구 정당’이었던 민주당은 중선거구제를 포기할 이유가 없었고, 호남에서 압도적 지지를 받고 있던 평민당은 소선거구제 도입을 정치적 돌파구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금도 물러설 생각이 없었던 양당의 통합은 사실상 무산 단계로 접어들고 있었다.

「총선 전 야당 통합은 사실상 무산되고 말았다.
민주당과 평민당은 4개 원칙 합의에 따라 15일 개최키로 합의했던 ‘양당합동의원총회’를 이루지 못한 데 이어 16일에도 합동 의총 절충이 결렬됨에 따라 상대방이 야권 통합 의사는 없이 명분치레 논의만 하려 한다고 서로 비난하면서 통합 논의를 중단, 총선 채비에 돌입할 의사를 강력히 보였다.
이날 민주·평민 양당은 각각 당 공식회의를 열고 통합대책을 논의했는데 평민당의 허경만 총무는 민주당의 김현규 총무에게 합동 의총과 야권 통합 결의의 전제로 소선거구제의 우선 수락을 재차 요구했고 김 총무는 이를 거부, 합동 의총은 열리지 못했다. (후략)
1988년 2월 16일자 <동아일보> ‘야권 통합 사실상 무산’」

▲ 개장 당시 신문에 실린 서교호텔 광고.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결국 YS가 다시 한 번 나섰다. 총재직에서 물러난 뒤 설악산, 속리산 등을 오르며 잠행하던 YS는 야권 통합이 무산될 위기에 놓이자 급히 상경했다. 그리고 DJ와 만나 소선거구제를 수용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김영삼 전 민주당 총재는 23일 상오 상도동 자책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민주당은 야권 단일화를 달성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소선거구제를 적극 수용할 것을 당부드린다”며 현재의 중선거구제 당론을 철회하고 소선거구제로 당론을 변경할 것을 촉구했다. 지난 8일 총재직을 사퇴한 후 일체의 정치적 활동을 중단했던 김 전 총재는 이날 야권 통합의 최대 장애 요인이었던 선거구 문제가 해소될 것으로 보고 통합 논의를 위해 김대중 평민당 총재와의 회담을 제의했다.
김대중 평민당 총재는 이 제의를 즉각 수락, 두 김 씨는 이날 하오 서울 가든호텔에서 분당 이후 첫 회동을 갖고 민주당의 중선거구제 당론 포기에 따른 야권 통합 원칙 문제를 논의했다.
이날 회담에서 김 전 민주당 총재는 민주당 측에서 야권 통합을 위해 소선거구제로의 선 당론 변경을 수용한 만큼 김 평민당 총재도 야권 통합 후 제2선 후퇴라는 약속을 지켜줄 것을 촉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야권의 통합과 여야의 선거법 협상도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1988년 2월 23일자 <경향신문> ‘두 김 씨 전격 회동’」

하지만 야권 통합으로 가는 길은 멀고도 험했다. 이번에는 DJ의 2선 후퇴 문제가 쟁점이 됐다. 민주당은 소선거구제를 받아들이는 대신 총선 전에 DJ가 2선으로 후퇴할 것을 요구했다. 정치권에서는 소선거구제 도입을 탐탁찮아 했던 민주당 의원들이 ‘총선 전 DJ 2선 후퇴’라는 카드로 소선거구제 채택을 막아보려 했다는 해석을 내놨다. 소선거구제 도입과 양당 통합이 DJ의 손에 달렸던 셈이다.

「민주·평민 양당이 통합추진위 모임에서 5일 중 소선거구제안을 공동 발의키로 합의했으나 막상 국회 제출 시한에 이르자 또 다시 김대중 씨의 거취 문제라는 불씨가 재연돼 소선거제안의 공동발의 자체가 불투명해졌다.
이날 민주당은 의총에서 “김대중 씨의 사퇴가 전제되지 않는 공동발의는 있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고 이에 대해 평민당 측은 “그 같은 전제를 단다면 양당이 소위에서 작성했던 기존 소선거제안을 단독 발의하겠다”고 맞섰다. (중략)
이 같은 양당의 태도는 뿌리 깊은 불신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가능하면 소선거제 채택에 따른 위험 부담을 피해보려는 대다수 민주당 의원들의 내심이 표출된 것이라는 게 정가의 지배적 관측.
특히 여세가 강한 영남 지역에 지역적 기반을 둔 민주당은 소선거구제로 대세가 기울자 난감한 분위기. (중략)
이 때문에 민주당의 많은 의원들은 소선거구제안의 국회 통과시까지 어떤 형태로든 저지 의사를 나타낼 자세.
1988년 3월 5일자 <경향신문> ‘소선거구 급류 “모두에 위험 부담”’」

이러자 이번에는 DJ가 나섰다. DJ는 야권 통합을 위해 총재직을 조건 없이 사퇴한다고 발표했다.

「평민당의 김대중 총재가 17일 야권 통합을 위해 총재직을 조건 없이 사퇴했다.
이에 따라 그의 거취 문제에 걸려 사실상 결렬된 것으로 보였던 야권 통합 협상은 곧 재개, 급진전될 것으로 보인다.
김 총재는 이날 오전 박영숙 부총재가 중앙당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대독한 성명서에서 “이제 야권 통합 성패의 기로에 서서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선 사퇴를 하는 것만이 우리의 지상과제인 통합에의 마지막 기회를 놓치지 않는 것이라고 믿고 오늘도 평민당 총재직을 사퇴하기로 결심하게 됐다”고 밝혔다.
1988년 3월 17일 <동아일보> ‘김대중 씨 총재직 사퇴’」

▲ 서교호텔은 1983년 준공된 후 30년 간 홍대의 랜드마크로 기능하다가, 2014년부터 리모델링을 시작해 올해 4월 라이즈호텔로 다시 문을 열었다. ⓒ시사오늘

이로써 길고 길었던 양당의 통합 협상은 급물살을 탄다. 그러나 협상이 막바지에 이른 상황에서, 예상치 못한 또 하나의 변수가 발생했다. 민주당과 민평당, 한겨레민주당이 통합 협상을 갖기로 한 3월 19일, 회의 장소인 서울시 마포구 서교호텔에 평민당 지지자들이 몰려들어 소란을 피웠다. 결론적으로 협상은 결렬됐고, 이날을 끝으로 야권 통합 역시 완전히 무산됐다.

「19일 하오 서울 서교동 ㅅ호텔에서 열린 민주·평민·한겨레 3당 통합 회의는 전대협 소속 학생과 평민당 지지자들이 몰려들어 소란을 피우는 바람에 홍은동 ㅅ호텔로 장소를 옮기는 사태까지 빚었으나 결국 민주·평민 양당 간의 감정만을 악화시킨 채 다시 결렬.
이날 민주당의 최형우 전 부총재가 회담장에 도착하자 이미 1시간 전부터 농성을 벌이던 전대협 소속 학생 150여 명과 평민당 지지자 100여 명이 ‘무조건 통합’, ‘독재 타도’, ‘최형우 사쿠라’라는 등의 욕설을 퍼붓고 손찌검까지 하는 바람에 회담장은 아수라장으로 변모. (후략)
1988년 3월 21일 <경향신문> ‘통합협상대표에 손찌검’」

「김대중 씨의 3·17 평민당 총재직 사퇴 선언으로 재개된 민주·평민·한겨레 민주당의 야권 통합 협상은 다시 좌초되고 말았다.
통합 협상을 결렬로 이끈 직접적 원인은 외형상 19일 하오의 3차 협상 개시에 앞서 있었던 최형우 민주당 대표에 대한 폭력 사태이다.
민주당은 폭력을 휘두른 주체가 평민당원이라고 주장하면서 협상 계속의 조건으로 공식 사과를 요구했으나 평민당은 야권 통합을 바라는 대학생들의 우국충정대열에 잠입한 불순분자의 소행이라며 민주당 측의 협상 테이블 무조건 복귀를 촉구했다. (후략)
1988년 3월 21일자 <경향신문> ‘역시 결렬로 끝난 야권통합’」

이 사건은 대한민국 현대정치사의 물줄기를 근본적으로 바꿔 놨다. 야권 통합을 조건으로 소선거구제를 수용했던 민주당은 야권 통합에 실패하자 제3당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고, 결국 YS는 ‘3당 합당’을 결행하게 된다. 따지고 보면, 현재의 정치 지형을 만든 사건이라는 3당 합당의 원인은 야권 통합을 무산시킨 서교호텔에서의 폭력 사건이었던 셈이다.

한편, 우리나라 정치사를 바꾼 역사적 장소인 서교호텔은 1983년 준공된 후 30년 간 홍대의 랜드마크로 기능하다가, 2014년부터 리모델링을 시작해 올해 4월 라이즈호텔로 다시 문을 열었다.

담당업무 : 국회 및 국민의힘 출입합니다.
좌우명 : 인생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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