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도의 時代架橋] 남북관계, 졸속 독선 '비준'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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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도의 時代架橋] 남북관계, 졸속 독선 '비준' 안된다
  • 이병도 주필
  • 승인 2018.10.2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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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 일방비준 파장
비핵화 없는 남북경협은 도박
'핵 있는 한반도 평화'는 환상
한·미 균열, 국민 비판론 극복을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이병도 주필)

한반도 문제는 여야를 떠나 우리와 후손들의 운명이 걸린 문제다. 한치도 소홀함이 있어선 안된다.
그러나, 국회를 배제한 문재인 대통령의 평양공동선언과 군사분야 합의서에 대한 일방적 비준은 큰 역풍과 갈등을 일으켜 나갈 전망이다. 앞으로 많게는 수백조, 천문학적인 국가재정이 투입돼야 할 국가 중대사이기에 더욱 그렇다.

이 두 남북간 합의서는 4·27 판문점선언의 후속 조치로 이뤄진 것이었다. 평양선언의 모태가 되는 판문점선언의 국회 비준 동의안 처리마저 여야간 이견으로 접점을 찾지 못한 상태에서 후속적이고 부속적인 성격의 남북합의 부터 비준해 버린것은 것은 순서가 바뀌어도 한참 뒤바뀌었다. 절차적 문제는 물론 효력 발생 여부도 계속 논란이 될 소지가 크다.

정치적으로는 자유한국당 등 야당을 무시하는 처사로 전형적인 야당 패싱이다. 국회 비준 동의를 미리 포기한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평양공동선언과 군사합의서는 비준 동의가 필요 없다는 법제처의 해석 역시 정부 내에서 내놓은 일방적 해석일 뿐이다.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이 임의적인 유권해석이라고 거세게 반발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우리 헌법은 조약의 체결 및 비준권을 대통령에게 부여하면서 안전보장에 관한 조약, 국가나 국민에게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지우는 조약 등에 대해서는 반드시 국회의 동의를 얻도록 규정하고 있다. 더욱이 판문점선언과 관련 납북합의 비준은 막대한 재정 지출이 필요한 조약이기 때문에 국회 동의가 필수적이다. 야당이 반대하면 반대하는 대로 비준 동의안의 처리 절차를 밟는 것이 정도다.

국제기류도 존중돼야 마땅하다. 문 대통령은 유럽 순방을 통해 이번 비준처럼 대북 제재 완화를 공론화하려 했지만 국제사회의 반응은 싸늘했다. 오히려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에 나서지 않는 한 대북 제재는 계속돼야 한다는 원칙을 재확인했을 뿐이다.

현실이 이런데도 문 대통령이 남북협력에만 매달린다면 국제사회의 따돌림은 물론 한미공조 균열로 비핵화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게 뻔하다. 지금, 미국 조야의 북한 비핵화에 대한 전망은 대북 강경파는 물론 온건파까지도 부정적이다. 이미 한국 정부가 지나치게 과속한다는 불만이 적지 않은 상황에서 미국의 의구심을 더 키울 위험이 있다.

남북협력사업은 북한의 비핵화가 실현됐다는 것을 전제로 했을 때만 가능한 시나리오다. 남북관계와 비핵화의 진전 속도에 오차가 있어선 안된다. 화해 분위기에 취하기보다는 냉철한 시각에서 국가안보가 위험에 빠지지 않도록 치밀하게 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

판문점선언 비준 동의안은 국회에서 정확히 처리돼야 정권이 바뀌더라도 남북 관계를 지속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 항구적인 디딤돌을 놓아야 한다. 독일이 일관되게 통일 정책을 펼 수 있었던 것도 국회 비준 동의를 거쳤기 때문이다. 오늘의 문재인 정권 대북 드라이브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와 국민적 국가적 해법을 제시치 않을 수 없다.

국민·국회동의 필수

정부의 이번 일방통행식 일 처리는 야당 반대에도 불구하고 개헌안을 국회에 제출했을 때의 모습과 비슷하다. 정부가 온갖 이벤트는 솜씨있게 기획하면서 유독 국회·야당 관계, 나아가 국제관계는 매끄럽게 풀어가지 못하는 이유를 알 수 없을 정도다. 남북관계 행보는 더욱 심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3차 남북정상회담에서 채택한 ‘평양공동선언’과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서’를 지난 23일 국무회의의 심의 의결만 마친채 일방적으로 비준한 것이 바로 그렇다.

파장이 만만치 않다. 평양선언은 철도·도로 연결을 포함해 남북이 실무협의 중인 협력사업에 가속도를 붙이겠다는 선언이다. 정부 의도대로 흘러간다면 국민 동의 여부와 상관없이 수년간 조 단위가 넘는 천문학적 재정이 투입될 수밖에 없다. 야당이 정부의 일방적 비준에 반발하는 것도 당연하다.

이와관련, 법제처는 국회 동의를 거치지 않은 평양 공동선언의 정부 비준에 대해 "판문점 선언 이행의 성격이 강한데, 판문점 선언이 이미 국회 비준 동의 절차를 밟고 있어 평양 공동선언은 따로 국회 동의를 받을 필요가 없다"며 대통령 비준 절차에 하자가 없다고 해석했다. 즉, 군사분야 합의서는 '국가나 국민에게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지우거나 입법사항이 필요한' 비준 동의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한 것이다.

참으로 무책임하다. 기본적으로 후속 합의서만 비준되는 상황은 형식상으로 모순인 데다, 남북관계는 국회 비준동의로 상징되는 국민적 합의로 뒷받침되는 것이 당연하다.

특히 오늘의 남북협력관계 모법인 판문점선언을 이행하려면 천문학적인 비용이 필요하다. 그러나 아직 통과되지 못한 국회 비준동의안에 첨부된 비용 추계서에도 남북 도로·철도 사업 등 남북경협 사업에 들어가는 예산 중 2019년도 예산안 2900억원 정도만 기재돼 있다. 부실하기 짝이 없다. 이러니 백지수표를 달라는 것 아니냐는 소리까지 나온다.

판문점선언 속 비핵화 조항이 실현을 담보할 수 없는 '약속어음' 수준이라는 게 문제인 것이다. 야권이 천문학적 재정 부담이 예상된다며 비준안 동의에 난색을 보이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철도 연결·현대화에만도 수조원이 소요될 정도라면 전반적 선언 이행에 수반되는 비용추계안을 납세자인 국민 앞에 소상히 밝히고 동의를 받는 게 당연한 도리다. 국회 비준은 필수다. 이런 지경인데도 문 대통령은 후속 남북합의서부터 일방적으로 비준을 하고 만 것이다.

청와대 행보와 한미공조 이완

군사 분야 합의서의 일방적 비준이 가져올 부정적 영향은 실로 우려된다.

가뜩이나 백악관은 한국이 미국과의 사전 조율 없이 남북 군사 합의를 하거나 5·24조치 해제 검토 발언을 쏟아낸 것을 두고 우리 정부에 강한 불만을 제기해 왔다.

대북 문제에 대한 한·미 간의 이견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 상태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최근 “북한에 관한 한·미 간 의견 차이가 벌어지면서 양국의 70년 동맹관계가 위험에 빠지고 있다”고 보도할 정도다.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한국 정부의 대북제재 완화 기류에 공개적으로 경고음을 내보낸 것도 그 연장선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기자들에게 "한국 정부는 우리의 승인 없이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즉, '승인'이라는 강도 높은 표현을 썼다. "(한국이) ~하지 않을 것"이라는 수동태 문장이었지만, '주권적 간섭'으로 비칠 수도 있었다. 작심하고 한국의 '선(先)비핵화-후(後)제재완화' 기조 이탈 조짐에 제동을 걸려는 의도까지 감지됐다.

문제없다던 한·미 공조에 누수가 생긴 현실을 다시 돌아볼 때다. 북한산 석탄 밀반입, 남북 군사합의 등을 놓고 양국 간 엇박자가 이어져왔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 정부는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방북을 앞두고 "북한에 대해 핵무기 보유목록 제출 요구를 보류해야 한다"고 주장, 북의 논리로 미국을 압박한다는 '오해'까지 자초한 경우마저도 있었다. 참으로 문제다.

남북 협력을 가속화하려는 한국과 속도 조절을 요구하는 미국 사이에 불협화음은 더욱 커질 수 있다. 최근 미국 뉴욕에서 열린 유엔총회 1위원회 회의에서 영국 등 유럽 국가들이 북한의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CVID)를 강조한 반면 우리 정부 대표는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일방적으로 역설한 것도 같은 기류다.

남북협력은 청와대 혼자 뛰어간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이 마무리돼 북핵문제가 해결되고 남북경협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뒷받침돼야 한다. 남북정상회담을 두 차례나 갖고 북·미 정상회담이 열렸어도 화려한 수사만 난무했지 실질적이고 의미있는 조치가 이뤄진 것은 아직 아무것도 없다. 국가적 대사에 조급증은 금물이다.

최근 북한 당국은 남북 경협에 목을 매는 기미가 역력하다. 선전매체 '우리민족끼리'는 지난 7일 '남조선 경제와 민생위기를 극복하는 길'이라며 '남북 경협'을 해결책으로 제시했다. 심지어 문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도 판문점선언을 이행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궤변까지 펼쳤다. 그렇기에 우리가 지금 '비핵화 없는 경협이라는 도박'을 벌일 까닭은 더욱 없다.

▲ 지난 24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실에서 열린 현안관련 긴급 기자회견에서 국무회의에서 비준한 '평양공동선언과 남북군사분야합의서'의 효력정지가처분신청서를 들고 있는(왼쪽부터) 한국당 곽상도 의원, 김성태 원내대표, 최교일 의원. ⓒ뉴시스

재정 수백조 필요…국가안보 직결

 실제, 남북협력사업이 본격적으로 실행되면 얼마나 많은 돈이 들어갈지 아무도 모른다. 국회예산정책처조차 관련 비용을 추계할 수 없다며 두 손을 든 상태다. 이런데도 정부는 판문점선언 이행비용으로 4,712억원 규모의 1년짜리 추계 비용만 제시할 뿐 사업이 본궤도에 오를 경우 수백조원이 필요할 것이란 지적은 외면하고 있다.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은 두 합의서에 대한 국회 비준동의 주장과 관련해 “새로운 남북의 합의들이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만들 때 국회에 해당하는 것이지 원칙·방향·선언적 합의에 대해서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고 했지만, 이 해석부터 사실과 다르다. 평양공동선언에는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우선 정상화, 금년 내 동·서해선 철도 및 도로 연결 등 구체적인 남북 경협 합의가 담겨 있다. 자유한국당이 논평에서 “이들 합의는 막대한 예산과 국가안보에 직결되는 내용이어서 국회 비준동의가 필수적인 사안”이라고 반박한 이유도 그 배경이다.

평양 공동선언은 남북 철도·도로 연결 등 남북 교류협력 강화와 이산가족 문제 해결, 다방면 교류 등의 남북 간 합의를 내용으로 하고 있다. 무엇보다 북한이 미국의 상응 조치에 따라 영변 핵시설의 영구적 폐기와 같은 추가적 조치를 계속 취해나가겠다는 입장, 그리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서울 답방을 명문화한 문서다.

물론, 문재인 대통령이 이 문서들의 정부 비준을 조속히 매듭지은 것은 남북관계 발전을 통해 북미 관계 개선을 견인하고, 비핵화에 속도를 내겠다는 정부의 의지를 담았다고 하지만, 현재 한국정부의 처리실상은 너무도 일방적이고 부실하다. 전면적 핵 신고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문 대통령이 이런 식으로 계속 나가다간 핵 사찰·검증은 수박 겉핥기에 그칠 것이고, 완전한 비핵화에 이르는 길은 더욱 험난해질 것이다.

'판문점선언' 국회 쟁점

그렇지 않아도, 현재 남북협력 모법인 ‘판문점선언’의 국회 비준 자체부터 논란이 가열되고 있는 상황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국회가 해야 할 기본적 책무를 다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지만, 현재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은 비용추계를 할 수 없다며 비준 불가로 입장을 정리한 상태다.

어렵게 이룬 남북 평화공존 분위기를 확고히 하려는 문 대통령의 뜻을 이해 못할 바 아니지만, 판문점선언 비준은 북한의 비핵화 약속 진전과 맞물려 갈 수밖에 없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4차 방북에도 불구하고 북핵 폐기에 의미 있는 진전은 없었다. 이번 방북에서 북한의 핵 신고와 미국의 종전선언 간 빅딜이 이뤄질 것이라는 기대는 다시 무산됐다. 북한이 핵을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비관론자들의 주장에 힘이 실리는 형국이다. 이런 만큼 구체적인 대북사업 비용추계도 없는 판문점선언 국회 비준은 결코 밀어붙일 사안이 아니다.

대북 전략의 측면에서도 국회 비준 카드를 지금 써버릴 게 아니다. 판문점선언 국회 비준은 북한의 미진한 비핵화를 강제하기 위한 지렛대가 될 수 있다. 북한에게 이처럼 비핵화 조치에 소극적이면 판문점선언 비준 등을 통한 남북관계 개선도 속도를 내기 어렵다는 걸 인식시켜야 한다.

이미 '판문점선언' 국회 비준 동의는 여야 간 큰 쟁점으로 부상했다. 남북 협력을 가속화하려는 여권과 북한의 비핵화 보장 없는 대북 지원을 우려하는 야당의 입장이 평행선을 긋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이 핵무기를 내려놓지 않은 한 비준안이 한반도 평화를 보장하지도 않을뿐더러 이행 과정에서 막대한 예산이 소요된다는 차원에서다.

연내 종선선언이 목표인 문 대통령의 조급성을 실로 문제로 보지 않을 수 없다. 정부가 추진하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방식에 대해 야당의 협조를 기대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그렇더라도 판문점선언은 놔두고 후속 조치부터 서둘러 비준한 것은 야당의 반발을 더욱 부채질하는 꼴이다. 국민들에게도 뭔가 조급하게 서두르는 인상을 준다. 혹시라도 정부가 이렇게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북한에 보여주려는 의도가 있다면 더욱 잘못이다.

안보 차원에서 국민이 궁금해하는 건 북한의 비핵화 진척 여부다. 북한이 판문점선언 후 유효기간이 사실상 만료된 풍계리 핵실험장 폭파 이벤트를 벌이긴 했다. 하지만 이후 실질적 비핵화는 첫발조차 떼지 않고 있다. 핵 물질·시설에 대한 신고서조차 내지 않으면서다. 이런 마당에 판문점선언의 국회 비준을 서두른다면 북핵 폐기를 놓고 한·미 간 탈동조화 현상은 심화될 개연성이 더욱 농후하다.

진전없는 북 비핵화

사실,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의 길을 걷고 있다는 확신을 갖기는 참으로 힘들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풍계리 핵실험장의 불가역적 해체를 확인시키기 위해 사찰단을 초청하면서도 9월 평양선언에서 약속한 동창리 엔진시험장과 미사일발사대에 대해서는 입을 닫았다. 영변 핵 시설에 대해서도 아직 나온 게 없다. 완전한 비핵화까지는 갈 길이 멀다는 뜻이다.

따라서 비핵화에 대한 불확실성이 가시지 않은 상황에서 남북관계 개선에 매달리는 것은 북측에 시간을 끌수록 유리하다는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

남북관계가 속도를 내면 북한의 비핵화를 추동할 수 있다는 정부 주장도 받아들이기 어렵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비핵화 협상과 관련해 “서두르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2차 북미정상회담 개최 시기를 당초 예상했던 미국 중간선거보다 두 달가량 늦어진 내년 1월1일 이후로 예상했다. 군사·사회간접자본 분야의 남북 협력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지만 비핵화는 전혀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대목이다.

더군다나 11월 미 의회 중간선거 이후 미·북 간 핵게임의 향방은 예측 불허다. 트럼프정부가 대북협상에서 미국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제거에 초점을 맞출 것이란 관측까지 나오는 터다. 제재는 혹여 북한 정권이 핵능력을 포기하지 않은 채 국제사회를 속이려는 꼼수를 막는 마지막 지렛대다. '선핵폐기-후제재 해제' 원칙의 전술적 융통성은 허용하되 한·미 공조를 깨면서까지 그 골간을 흔드는 우를 결코 범해선 안된다.

넘어야 할 산(山)

북미 정상회담이 정상으로 가고, 남북관계의 평화적 진전을 구축해 내기 위해서는 여전히 넘어야 할 산이 적지 않다.

지금은 비핵화 조치의 선행 조건으로 종전선언을 요구해 온 북한과 최소한 핵 리스트 신고 등의 실질적 조치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미국의 대치가 계속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북한은 판문점 선언과 싱가포르 선언을 통해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하자’고 약속했지만 5개월이 넘도록 구체적인 진전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북한은 종전선언을 요구하면서도 비핵화 조치를 전혀 실천하지 않았다. 그동안 북한이 기껏 한 것이라고는 풍계리 핵실험장을 전문가 검증도 없이 폐쇄하는 시늉만 하고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의 지상 구조물 일부를 철거한 정도다. 우리는 북한의 핵물질이 얼마나 되고 어디에 보관돼 있는지 아직도 알 길이 없다.

일각에서는 2차 북미 정상회담과 관련, 북한이 핵신고서 제출에 대해 구두약속만 하고 종전 선언을 한 뒤 실제 리스트는 그 뒤에 제출하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지만, 지난 수십 년 동안 북한의 행동을 봤을 때 이런 식으로는 북핵 문제를 풀기는 어렵다.

더욱이 북한은 1차 북미 정상회담 이후에도 핵개발을 멈추지 않고 있다는 보도가 끊이지 않고있다. 미국 NBC방송은 미 정부 관리들을 인용, 6·12 정상회담 이후 3개월간 북한이 최소 1곳의 핵탄두 보관시설 입구를 가리는 구조물을 지어왔고, 북한 노동자들이 핵탄두를 보관시설에서 운반하는 모습을 미 정부가 관찰해왔다고 전했다.

미국 정보기관은 여전히 북한이 올해 5∼8개의 새로운 핵무기를 생산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불신을 거두지 않고 있다는 보도도 나왔다. 결국 치밀한 협상을 통해 북한의 핵신고와 동결 같은 분명한 조치를 받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북한 핵 파기 파행史

지난 날 북한의 핵 파기 파행史는 이를 더욱 확인시킨다. 앞으로의 여정에 더 확실한 경고를 던진다.
그동안 남북 당국 간엔 남북기본합의서와 한반도비핵화 공동선언, 6·15공동선언 그리고 판문점선언에 이르기까지 기념비적 합의가 여러 번 있었다. 그럼에도 북핵 신고와 사찰이라는 마지막 고비를 못 넘어 항구적 평화는 항상 구두선에 그쳤다. '핵 있는 한반도 평화'도 가능하다는 환상을 이제는 버려야 한다.
특히 지난 24년간 한반도에는 세 번의 공인된 핵위기가 있었다. 북한이 1993년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특별사찰 요구를 거부하고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하자 미국이 94년 6월 영변 핵시설 폭격을 검토한 게 1차 핵위기다. 1차 위기는 94년 10월의 제네바 합의로 넘겼다. 북한이 핵시설을 동결하면 보상해 주는 내용이었다.

2차 핵위기는 2002년 북한이 고농축우라늄 개발을 시인하면서 찾아왔다. 제네바 합의는 곧바로 휴지 조각이 되고 새로운 9·19 공동성명(2005년)이 탄생했다. 북한이 모든 핵을 포기하되 북·미 관계를 정상화한다는 내용을 담은 역사적 합의였지만, 이 역시 백지화된 지 오래다.

지난해 북한의 핵실험과 ICBM 개발 완성은 세 번째 핵위기의 절정이었다. 하지만 이 사태의 연장선상에서 나온 1차 미북 합의문은 얼핏 9·19 공동성명 수준에도 이르지 못했다.

더욱이 북한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에만 12번의 핵과 미사일 도발을 감행했다. 그랬던 북한이 최근들어 남한과 미국을 향한 조기 정상회담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건 국제사회의 대북 압박을 외교적 관계 개선으로 돌파하려는 계산 때문이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국제사회의 북한 핵 도발에 따른 제재와 압박, 그 중에서도 경제 압박이 상당한 효과를 발휘하고 있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도발에 이은 대북 제재, 유화 제스처에 따른 국제사회 지원 그리고 또 다시 도발이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이어 갈수도 있다는 배수진의 의도가 깔려 있는 건 아닌지, 항상 유의하며 주시해야 한다. 언제든 돌변 가능성은 상존하고 있다.

향후 김정은의 태도 가변성에 대한 엄밀한 주시가 필요한 것도 그런 탓이다. 북·미 대화 내용상의 실질적 진전이 확인되기 전까지는 북한에 대한 국제 제재가 계속 빈틈없이 이행돼야 하는 근거다. 김정은의 진정성을 확인하기 위해서도 비핵화 프로세스와 대북제재는 병행돼야 마땅하다.

해법은 구체적 로드맵

빅핵화는 말이 아니라 행동이어야 한다.

남북정상회담이든 미·북정상회담이든 또 한 번의 이벤트일 뿐이라는 얘기를 듣지 않으려면 반드시 실질을 채워야 한다. 한국과 미국이 북한을 상대로 비핵화 이행에 얼마나 구체적인 실천방안과 로드맵을 끌어내느냐가 핵심이다.

가장 본질적인 문제는 북한이 실질적이고 가시적인 비핵화 조치를 취하느냐 여부다. ‘종전선언-핵 신고’의 선후를 따지는 수준을 넘어, 비핵화 초기 조치부터 실현까지 북한의 구체적 로드맵 제시가 나와야만 비로소 北核 해법의 1차 단서가 확보될 수 있을 것이다.

'북핵 해결'은 남북한간 신뢰를 좌우하는 문제일 뿐 아니라, 지금 국제적 중대 현안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역사적 반복사례 처럼 다시 '신뢰'의 문제에 직면하게 될 때, 북측의 의도를 재평가, 대응방향을 새롭게 수립치 않을 수 없다.

따라서, 문재인 정부의 남북합의서 비준에 대한 국민 여론은 분명하다. 국회가 비준 동의안을 처리하되, 여야가 합의로 처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여론이 압도적이다.

정부는 북한이 실질적인 비핵화 조치를 이행하지 않은 상황에서 우리만 앞서나간다면 되레 역효과가 날 수 있음을 각별히 유념해야만 한다. 한·미동맹이 삐걱거리고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전선에도 더욱 균열이 커질 수 있다.

머리 위에 핵을 이고 있는 상황이 해소되지 않은 채 이뤄지는 남북관계 개선은 북한의 핵 개발을 도와주는 것이나 다름없다. 게다가 남북협력사업으로 우리가 실제로 얻을 수 있는 이익이 얼마나 되는지도 꼼꼼하게 따져봐야 한다. 무턱대고 남북관계 개선에만 매달리다가 명분도 실익도 모두 잃어서는 안 된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주한미군은 동아시아 평화와 안정에 매우 중요하다”며 북한 비핵화 협상의 일환으로 주한미군을 철수하는 방안에 반대 입장을 밝혔다. 우리 정부가 해야할 말을 이웃나라 지도자에게서 듣는 꼴이다. 정부는 과연 한반도의 새로운 질서에 제대로 대비하고 있는 것인가. 남북관계는 정권이 바뀐 후에도 안정적으로 발전돼 나갈 수 있어야 한다. 북핵 문제가 엉뚱하게 굴러가다 우리 발등을 찍지 않도록 해야하는 건, 바로 국가와 정부의 기본 책무다.

 

이병도는…

1952년 경남 진양에서 출생했고 서강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 1979년 동양통신 기자로 언론계에 입문한 후 1981년 연합뉴스로 자리를 옮겨 정치부 야당출입 기자로 오랫동안 활동해 왔다. 저서로는 , <6공해제>, <97년 대선 최후의 승자는>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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