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필담] 이완용의 선택과 오늘의 한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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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필담] 이완용의 선택과 오늘의 한반도
  • 윤진석 기자
  • 승인 2018.10.14 19: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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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배척하며 독립협회운동에서 을사오적 되기까지
나라의 운명을 결정짓는 위치의 누구든 심사숙고해야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윤진석 기자)

▲ 이완용도 한때는 독립협회에 가담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1986년 7월 서재필 오세창 등 명망가 및 유지들과 함께 이완용은 독립협회를 창립하고, 독립신문을 발행했다. 조선 말기 4대 명필가로 꼽혀온 그가 독립문 현판 글자도 썼다고도 전해지고 있다.ⓒ뉴시스

“조선이 독립을 하면 미국과 같이 부강한 나라가 될 것이며 만일 조선 인민이 단결하지 못하고 서로 싸우거나 해치려고 하면 구라파의 폴란드라는 나라처럼 남의 종이 될 것이다. 미국처럼 세계 제일의 부강한 나라가 되는 것이나 폴란드와 같이 망하는 것 모두가 사람하기에 달려 있다.”

1896년 독립문 정초식을 이끈 이완용이 강연한 발언이다.

이이화의 <인물한국사>에 따르면 이완용은 1896년 7월 서재필 오세창 등 명망가 및 유지들과 함께 독립협회 창립에 참여했다. 이들은 <독립신문>을 발행했고, 이완용은 초대 창립총회 위원장으로 추대됐다.

그 해 민족의 독립 정신을 높이기 위해 서울 서대문구에 세운 독립문 현판 글자도 이완용이 쓴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이완용은 조선말기 4대 명필가로 꼽혔다.

이완용은 원래 명성황후를 따라 일본은 배척하는 대신 친미‧친러파였다. 1888년 대리공사 자격으로 미국에 파견돼 발전된 현지 문물을 접하며 대미외교의 1인자가 되기도 했다.

그때만 해도 30대 젊은 관료로 한국 근대화를 앞당긴 인물이었다. 또 명성황후를 도와 국익을 위해 미국 · 러시아, 유럽의 강대국과 손을 잡으려는 정치집단 ‘정동파’의 리더로 활약했다.

명성황후 시해사건 을미사변  

앞서 서울 주재 일본공사 마우라 고로는 조선 침략 최고의 걸림돌이었던 명성황후를 제거하는 공작을 펼쳤다. 1895년 10월 8일 일본은 경복궁을 습격해 45세 나이의 명성황후를 참살했다. 국모를 시해한 을미사변(乙未事變)이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이완용은 앞서 언급했던 대로 독립협회 소속으로 민족운동을 벌이게 된다. 고종과 태자를 친일내각의 손아귀에서 구해내기 위해 수를 쓰기도 했다. 독립협회 2대 회장이 되면서는 러시아의 견제를 받기도 했다. 그러다 독립협회가 민중 주도화 되고, 외국의 이권개입을 규탄하면서 관련자 이완용도 비판을 받고 물러나게 된다.

친일파로 돌아선 이완용
 
그렇다면 이완용은 어떤 계기로 친일파로 돌아섰을까. 1904년 러일전쟁에서 일본은 러시아에 대승을 거뒀다. 이것을 계기로 조선에 대한 일본의 영향력은 가장 커지게 된다.  ‘한일협약’을 맺고 고문정치를 단행한 것이다. 정세가 일제에 기운 것을 지켜본 이완용도 태도를 바꾸게 된다. 일제에 회유당해 친일파의 길을 택한 것이다.

‘동양 평화를 위해서는 한국의 외교권을 일본에 이양해야 하며 그래야 한국을 보호할 수 있다.’

1905년 조선통감부 초대 통감 이토 히로부미가 고종 황제에게 을사늑약(乙巳勒約‧을사조약)을 강요할 때도 학부대신이었던 이완용은 전쟁을 우려하고 평화를 강조하며 일본의 편에 섰다.

“아무리 나쁜 평화라도 전쟁보다 낫습니다. 이게 다 조선 백성을 위한 일입니다.”(이완용이 고종황제에게 한 말)

을사늑약 체결로 사실상 나라의 주권은 일제에 넘어간 거나 마찬가지였다. 이 일로 문신이었던 민영환 등은 나라를 잃은 울분을 참지 못하고 자결을 택했다. 그러나 이완용은 자신이 그렇게 함으로써 조선 황실의 목숨을 지켰다며 자랑했다고 전해지니 역사의 아이러니다. 이 때 을사늑약 체결에 찬성한 인물은 이완용 포함 다섯 명이었다. 역사는 나라를 팔아먹은 이들을 을사오적(乙巳五賊)이라고 부른다.

▲ 이완용은 친미 친러에서 친일로 변모하는 처세술을 보였다. 처음엔 명성황후를 따르는 정동파로 일본을 배척하며 미국 등 강대국과 손잡으려고 했다. 명성황후가 시해된 후에는 서재필 등과 함께 독립협회에 가담했다. 하지만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대승을 거두며 전쟁보다 평화가 낫다는 논리로 고종황제가 을사늑약을 체결하도록 강요했다. 사진은 이완용을 비롯해 한국의 외교권을 일제에 넘긴 을사늑약을 체결에 찬성하며 나라를 팔아먹은 원흉들로 불리는 을사오적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서울역사박물관/뉴시스

지도자 선택에 따라…

역사에 '만약'은 없지만 많이들 이런 물음을 던졌을 게다. 친일, 친중, 친러, 친미 등 국론이 분열됐던 혼돈의 조선 말기. 흥선대원군이 만약 쇄국정치를 하지 않고 좀 더 일찍 문호를 받아들였다면 어떻게 됐을까. 명성황후가 죽지 않고 이완용 등 정동파와 함께 미국 등 강대국과 확실히 손잡고 일본을 몰아냈다면 어땠을까. 36년간의 일제강점기 같은 비극을 비껴갈 수 있었을까. 허허로운 일임에도 ‘만약’이라는 전제하에 이런 자문을 하게 된다.

처음엔 모두 국익을 위한 선택이었을 게다. 부국강병, 외세에 굴복하지 않는 자주독립의 위치를 굳건하게 하기 위한 방법론이 달랐을 뿐이다.

그러나 선의의 행동이 반드시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않는다. 스스로 옳다고 여기는 그 선택에 따라 역사는 격동한다. 죄 없는 민초의 운명이 송두리째 바꿔질 수 있음이다. 지도자의 위치에 있는 이들의 ‘선택’이 그래서 중요한 것이다.

국론 분열의 그때처럼
살얼음판 한반도 정세


조선 말기 어수선했던 정세처럼 요즘의 한반도 정세도 평화 물결이 출렁이고는 있지만 여전히 풍전등화다. 미중 무역전쟁은 심화되고 있고, 작년까지만 해도 북미 간 전쟁 우려도 높았다. 북한의 비핵화가 진행되고 있지만, 잘 안 될 경우 일본 등 동북아의 핵도미노 확산도 우려되고 있다.

남북 간 화해는 급물살을 타고 있지만 남남갈등 역시 고조되는 모습이다. 조선말기 국론이 분열됐듯 우리나라 정치권 역시 첨예한 대립을 겪고 있다.

남남갈등 이면에는 북한에 대한 견해차가 크게 작용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촛불로도 대통령을 감옥에 보내고 정권을 바꿀 정도로 변화를 거듭했다. 남한 정부 수립 후 이승만 정권부터 현 문재인 정권까지 12명의 대통령이 나왔다. 그러나 북한은 단독 정권 수립 후 한 가문의 3대 세습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박근혜 정권 때 집권여당이었던 자유한국당(당시 새누리당) 등 반공보수 쪽은 북한 인민과 북한 정권을 분리해 사고한다. 한국당은 정치범수용소, 강제 북송, 기아, 고모부 장성택 숙청 등에 주목하며 북한 인권을 문제제기하는데 집중해왔다.

때문에 북한 정권을 인정 않고 대립하는 대신 북한 인민을 구출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북한정권 붕괴론, 북한민주화 주장, 남한 위주의 흡수통일을 지향하며 ‘통일대박론’을 꺼내든 것이다. 또 이 방법론을 위해 안보는 곧 평화다라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북한의 비핵화를 위해 유엔과 미국의 대북제재에 적극 찬성하고 있다.

반면 현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 등은 북한 정권과 북한 인민을 동일시하는 쪽이다. 북한 정권을 인정하고, 하나의 체제로 보자는 견해다. 북한을 비정상 국가로 보는 한국당과 달리 북한을 정상국가로 인식해야 한다는 보고 있다. 때문에 북한 정권과 협력해 화해 무드를 조성하고 남북경협을 활성화해 한반도 평화를 정착시키는데 주력하고 있다.

흡수통일이 아닌 남북이 각각의 체제로 살고 교류하다 적정 시기에 평화통일을 하자는 생각이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영구적으로 통일은 어렵다는 일각의 지적도 있다. 종전선언, 평화협정, 개성공단 재개 등이 비핵화를 추동해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평화가 곧 경제라며 대북제재완화를 이끌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남남갈등 갈수록 심화…
'민초의 운명이 달렸다'

상반된 견해차로 정치권은 분란의 연속에 있다. 단적으로 이해찬 민주당 대표가 얼마 전 방북해 북한 인사들을 만난 자리에서 국가보안법 재검토 등을 발언한 것 관련 여야는 대립했다.

자유한국당 김영우 의원은 “조공외교하고 왔냐”고 맹비난했다. 바른미래당 이언주 의원도 “민주당은 북한의 독재정권이 동지이고, 남한의 보수가 주적인 모양”이라고 비판했다. 아울러 "이들은 자유민주주의와 공존이 가능한 북유럽식 좌파가 아니라 세계 유일의 세습공산독재정권인 북한과 맥을 같이 하는 시대착오적 체제변혁론자이자, 이미 몰락해버린 중국 문화혁명기 또는 소련 스탈린 식의 좌파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그러자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전 의원은 “닉슨이 모택동을 만났다고 닉슨이 모택동의 동지라 할 수 있는가? 부시가 고르바쵸프를 만나 동서냉전체제를 해체했다고 하여 부시가 공산주의의 동지인가?”라고 질타했다. 더불어 “김대중 대통령은 국익을 위해서는 악마와도 악수할 수 있어야한다고 했다”며 “공부 좀 하라”고 일침을 가했다.

지난 10일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5·24 조치 해제 검토 발언에서도 남남 갈등 여론은 첨예화됐다. 특히 해당 발언 이후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우리의 승인 없이 한국은 해제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것에 여론은 분화됐다.

관련 기사에 한 댓글러는 “우리가 (미국의)식민지냐”며 분개했다. 그런가 하면 또 다른 댓글러는 “트럼프 대통령이 자유대한민국을 지켜주는구나. 안 그러면 한국을 갖다 바쳤을 게다”라고 안도했다. 반미‧친미를 둘러싼 정부 옹호 및 비판은 댓글에서도 들끓은 것이다.

근래 한반도 정세 토론장을 다녀 봐도 학자들의 생각은 나뉘고 있다. 어느 학자는 “정부가 미국을 멀리하고 친중 행보를 보여 염려 된다”고 우려했다. 다른 학자는 “북한이 비핵화 단계를 밟으려는데 미국은 왜 하나도 양보하는 것이 없느냐”며 대북제재를 완화하지 않는 것에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방미나 유럽 순방 등을 통해 김정은 위원장의 메시지를 전하는 행보 또한 남남 갈등 양상은 뚜렷하다. 일부에서는 ‘김정은 나팔수냐’, 반대편에서는 ‘평화의 나팔수’라고 대립하고 있다. 

저마다 국익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선택을 달리하고 있음이다. 다시금 지도자의 선택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되새김질해본다. 정치권에 몸담은 인사들은 자신의 선택이 훗날 어떤 평가를 받을지를 생각해야 한다. 그렇다면 모든 행보들에 대해 살얼음판 걷듯 신중해야 할 것이다.

힘없는 민초의 운명이 당신들의 선택에 달렸기 때문이다.

담당업무 : 정치부 기자입니다.
좌우명 : 꿈은 자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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