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로 보는 정치] 조선 망국의 주역 고종과 난국에 빠진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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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로 보는 정치] 조선 망국의 주역 고종과 난국에 빠진 한국
  • 윤명철 논설위원
  • 승인 2018.09.09 19: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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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집권계획보다는 현안처리가 시급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윤명철 논설위원)

▲ 조선 망국의 주역 고종과 크게 기울어진 상도동 유치원 사진제공=뉴시스

조선 망국의 장본인 고종은 준비된 군주가 아니었다. 조선을 대표하는 야심가인 아버지 흥선대원군의 권력욕에 의해 자신의 의사와 관계없이 어린 나이에 ‘만인지상 (萬人之上)’의 자리에 올랐다.

고종은 10년을 대원군의 꼭두각시로 살았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부친의 뜻에 따라 빈천한 출신인 민비와 원치 않은 결혼도 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민비는 부친의 늪에서 벗어나게 한 구세주였다.

고종은 친정(親政)을 권하는 민비의 권유에 따라 대원군을 실각시켰다. 즉위 10년 만에 권력의 정점에 섰다. 그러나 호랑이가 비운 자리를 여우가 차지했다. 민비는 시아버지 대원군 못지않은 야심가였다. 정부 요직을 민씨 일족으로 채우기 시작했다. 시아버지 대원군이 능력에 따라 인재를 등용했던 인사개혁은 민씨 일족에 의해 과거로 회귀했다.

대원군은 임오군란을 계기로 반격을 시도했으나 민비는 청군을 요청해 정치적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다. 고종은 부친과 아내의 권력 투쟁에 지쳐만 갔다.고종도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김옥균, 박영효와 같은 개화파를 중용했지만 민비는 청군을 다시 끌어들여 갑신정변을 격파했다. 고종의 정치적 반격은 실패로 돌아갔다. 결국 고종의 남자 김옥균은 민비가 보낸 자객에 의해 불귀의 객이 됐다.

민비의 뜻에 따라 이번엔 러시아를 택했다. 일본은 고종과 민씨 정권보다 몇 수 위였다. 러시아의 남진을 우려한 영국과 미국의 의도를 알아챈 일본은 영·미 양국을 동맹으로 삼아 조선 침략의 후견국으로 이용했다.

영국은 일본의 의도대로 거문도 사건을 일으켜 러시아를 확실히 견제했다. 일본은 조선의 종주국임을 자처하는 청국과 민씨 정권이 선택한 러시아를 주적으로 삼고 공략에 나섰다. 일본은 냉철한 국제정세파악으로 주적을 제대로 삼은 것이다. 고종과 민비는 열강의 침략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마침 동학농민운동이 발생했다. 열강의 침략에는 무능했던 고종도 내부의 권력 도전에는 민감했다. 관군이 진압에 실패하자 청군에 지원을 요청했고, 일본은 텐진조약을 구실로 조선에 출병해 결국 청일전쟁이 터졌다.

국제사회의 예상과 달리 청군은 종이호랑이에 불과했고, 일본은 아시아의 맹주에 등극했다. 이른바 극동의 헌병이 됐다. 다급해진 민씨 정권은 마지막 후원자인 러시아에 기댔다. 일본은 을미사변을 일으켜 민비를 제거했다.

졸지에 정치적 스승인 민비를 잃은 고종은 생명의 위협을 느끼자 러시아 공사관으로 도망쳤다. 갑신정변의 주역인 서재필이 세운 독립협회를 지원해 자신의 정치적 자산으로 삼고자 했으나 보수 관료파의 모함에 정치적 우군 서재필을 버렸다. 서재필은 고종에 두 번 버림을 받은 비운의 지식인이 됐다.

독립협회를 버린 고종은 허울좋은 대한제국의 황제에 즉위했다. ‘구본신참(舊本新參)’이라는 시대착오적인 구호를 내세웠으나 백성은 외면했다. 의도가 아무리 좋다고 해도 권력도 없는 이름뿐인 황제를 지지할 백성은 없었다.

일제는 을사조약을 통해 조선 병합의 기반을 만들었다. 이른바 을사5적의 주역은 다름 아닌 고종의 총애를 받던 이완용이다. 이완용은 친미, 친러를 거치며 최후의 주군으로 고종이 아닌 일본을 선택했다. 역사는 이완용을 한민족 최고의 매국노로 기억하고 있다. 결국 고종은 헤이그 특사 사건으로 황제의 지위에서 쫓겨나 조선의 망국을 무기력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역사의 패자는 고종이다. 고종은 근대화라는 세계사의 큰 흐름에 역행했다. 혹자는 고종 나름대로 개혁을 추구했다고 항변할 수 있다. 하지만 고종도 권력의 화신이었다. 이씨 왕조의 존립이 민생보다 더 소중한 가치였다.

만약 고종이 민생을 중시했다면 임오군란과 동학농민운동 당시 외세의 개입을 요청하지 않았을 것이다. 조선 위정자들의 탐욕과 권력욕에 의해 배고픔에 살고자 궐기했던 백성들을 외세를 끌어들여 탄압한 군주의 개혁이 진정성을 인정받을 수 있었을까하는 의문이 앞선다.

대한민국이 대혼란에 빠졌다. 기업은 활력을 잃어 해외로 떠나고 있고, 자영업자는 최저임금인상 폭탄에 눈물을 머금고 폐업하고 있다. 청년은 일자리가 없어 아르바이트를 전전하고 있다. 뜬금없이 터져 나오는 부동산 정책은 신뢰감을 잃었고, 정부를 믿었던 국민들은 망연자실 상태다.

또 시도 때도 없이 바뀌는 교육 정책으로 수험생과 학부모는 미래를 대비할 수 없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사태에 실망한 국민은 문재인 정부를 통해 힐링을 기대했다. 하지만 정부 출범 후 1년 4개월이 지난 현재 대한민국의 대혼란과 고통은 아직 진행되고 있다. 정치는 국민을 위한다는 기본적인 대전제가 실종된 것 같다.

문재인 정부와 여당은 20년 집권계획을 세우기보다는 3년 만에 한국을 다시 찾아온 불청객 메르스와 학교에서 케이크를 먹고 집단 식중독에 걸린 학생들, 크게 기울어진 유치원 건물 등 당장의 현안부터 처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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