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로 보는 정치] 조선 수취제도와 2018년 경기 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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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로 보는 정치] 조선 수취제도와 2018년 경기 침체
  • 윤명철 논설위원
  • 승인 2018.09.03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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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정책은 국민이 중심에 서야 한다”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윤명철 논설위원)

▲역사로 보는 정치를 통해 조선 인조시대 수취제도의 폐단과 2018년 경기침체를 비교해봤다.사진 왼쪽은 영화 <남한산성> 스틸컷. 배우 박해일이 인조를 맡아 연기하고 있다.ⓒCJ엔터테인먼트, 사진 오른쪽은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뉴시스

조선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며 국가 재정이 거의 고갈됐다. 두 차례의 전란으로 전 국토는 황폐화되고 조세를 납부할 생산 인구가 급감했다. 조선의 위정자들은 농촌 사회의 안정을 도모하고, 국가 재정 기반 확대를 위해 수취 체제 개편을 적극 추진했다.

조선의 수취체제는 전세와 공납, 그리고 역 등 세 가지 제도를 기반으로 했다. 토지세인 전세는 토지 소유자에게 수확량의 1/10를 징수했고, 공납은 각 지역의 특산물을 군현 단위로 물품과 액수를 징수했다. 역은 노동력을 징발하는 제도로 군역과 요역으로 구분했다.

하지만 16세기에 접어들자 사화와 붕당이 격화되면서 수취 제도의 문란이 발생했다. 가장 비리가 많았던 공납은 관리들이 공물을 대신 납부하고 그 대가를 과하게 요구하는 폐단이 빈번하게 발생했다. 이른바 ‘방납의 폐단’이 판을 친 것이다.게다가 임진·병자의 외침까지 겪고 나자 농촌의 고통은 날로 심화됐다.

임진왜란을 겪은 광해군은 방납의 폐단을 해결하고자 대동법을 실시했다. 1608년 경기도에서 실시한 대동법은 가호마다 토산물을 징수했던 것을 토지 결수를 기준으로 1결당 쌀 12두를 납부하게 했다. 토지를 많이 가진 부호들의 부담이 대폭 증가하고 가난한 농민들의 부담은 크게 줄어들었다. 대지주 기득권층은 정부의 정책에 크게 반발해 전국으로 확대되는 데 걸린 시간은 무려 100년이 걸렸다.

토지세는 영정법으로 바꿨다. 인조는 풍흉에 관계없이 토지 1결당 쌀 4~6두를 징수했다. 이 제도는 대동법과 달리 지주의 부담이 줄어들었고, 농민들은 수수료, 운송비 등 각종 부가세가 부과돼 부담은 커져만 갔다. 민심 이반은 심화됐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경제정책의 혼선이 가중돼 경기 침체 경고등이 켜졌다. 통계청이 지난달 31일 발표한 ‘2018년 7월 산업활동동향’ 보고서는 7월 설비투자지수가 6월보다 0.6% 감소했다고 밝혔다.

동행지수 순환변동치도 6월보다 0.3포인트 감소한 99.1로 나타났다. 이는 현재 경기 상황이 안 좋다는 신호다. 또 향후 경기를 예측하는 선행지수 순환변동치도 6월에 비해 0.2포인트 하락한 99.8이다.

하지만 정부는 경기 하강 등 여러 가지 부작용이 드러난 소득주도성장을 고수한다는 입장이다.

민생이 고달파지면 그 어떤 정당성 있는 정권도 버틸 재간이 없다. 조선의 위정자들이 양난 이후 수취체제 개혁을 통해 농촌 사회 안정을 도모했지만 민심을 외면한 영정법과 같은 제도로 민생을 더욱 고달프게 만들었다. 모든 정책은 국민이 중심에 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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