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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인터뷰] 박주선 ˝제2의 박주선 만들지 않는게 정치적 사명”

기사승인 2018.08.06  10:5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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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선 국회의원
4번 구속되고 4번 무죄 받은 초유의 기록
호남 정치 복원의 파수꾼, ´포스트 DJ´
정의와 통합, 미래 위한 ´새싹론´ 강조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윤진석·김병묵 기자)

“제2의 박주선을 만들지 않겠다.”

정치인 박주선의 꿈이자, 정치를 하는 이유다. 4번 구속되고, 4번 무죄를 받는 동안 이 같은 결심은 굳건해졌다. 죄 없는 사람이 억울한 누명으로 고통 받지 않는 세상을 만드는 게 그가 정치하는 이유다.

정의와 통합, 미래를 강조한 호남 정치 복원의 파수꾼이자, 여전히 제1의 포스트 DJ(김대중)의 무게를 감당하고 있는 박주선 전 국회부의장. 인터뷰는 지난 7월 27일 여의도 의원회관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 박주선 전 국회부의장은 4번의 구속, 4번의 무죄라는 초유의 기록을 갖고 있다. 이로 인해 그를 두고 인동초, 불사초 오뚝이, 풍운아라는 수식어가 따라붙고 있다. 이에 박 전 부의장의 정치적 목표는 자신과 같은 억울한 이가 나오지 않는 사법 개혁을 이루는 것이라고 했다.ⓒ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박주선의 4번의 구속, 4번의 무죄 왜?

“박주선 의원님 미안하게 됐습니다, 민주당과 박주선 의원님하고는 구별해서 취급을 했어야 했는데 내가 잘못했습니다.” -2008년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검찰의 무리한 구속 수사 에 대해 직접 사과한 발언 내용 중

“여러분도 다 아는 바와 같이 검찰의 판단이 항상 옳지는 않다. 박주선 전 의원에 대한 거듭된 무죄가 검찰권 남용으로 지적된 바 있다.” -2005년 노무현 정권 참여정부 당시 문재인 민정수석이 기자회견을 통해 반성과 유책의 일환으로 한 발언 중

참여정부로부터 일련의 사과와 반성이 말해주듯 ‘정치인 박주선’은 정치적 탄압과 정치적 사건에 연루돼 피해를 본 인사다.

‘박주선의 삶’에 대해 시곗바늘을 돌려봤다.

박주선이 가진 기록들

바른미래당 전 공동대표였던 박주선 의원(70, 광주동구을, 4선)은 기록의 보유자다. 헌정사상 최초 4번 구속, 4번 무죄를 받았다. 이로 인해 KRI(한국기록원)에서 신기록 인증서를 받기도 했다. 2008년 18대 총선에서는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광주동구에 출마해 88.7%라는 전국 최고 득표율의 기염을 토했다. 반대로 2012년 19대 총선에서는 광주동구에 무소속으로 도전, 31.6%라는 전국 최저 득표율을 기록했다. 서울대 법대 4학년 재학 시절인 1974년에는 제16회 사법시험에 수석 합격하며, 일찌감치 호남 100년의 인재라는 소리를 들었다.

그러기까지 어머니의 헌신이 컸다. 자신의 피를 뽑아 아들의 입학금을 마련할 만큼, 어머니의 뒷바라지는 가난조차 꺾지 못할 만큼 남달랐다. 덕분에 박 의원은 광주고, 서울대, 사법수석, 서울지검 검사, 대검찰청 수사기획관 등 엘리트 코스를 밟을 수 있었다. 특히 5,6공 시대와 YS(김영삼) 정부를 거치며 명 검사로 활약했다. 청렴함과 강직하다는 평판을 얻으며 호남 출신의 검찰총장 감으로 기대를 받아왔다.

하지만, 김대중 국민의 정부 당시 대통령 법무비서관으로 발탁되면서 검찰총장의 꿈과는 멀어지게 된다. 대신 “나와 역사를 같이 할 사람”이라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평가처럼 ‘포스트 DJ'로서 주목받기에 이른다. DJ를 잇는 호남의 차세대 대표주자로 지목되기도 했다. 그러나 4번의 구속과 4번의 무죄가 말해주듯, 박 의원을 향한 주목도는 그의 시련을 더하는 격이었다.

<아름다운 부활>이라는 제목의 회고록에 따르면, 박 의원은 김대중 정부 때인 1999년 말 기득권 세력이 던진 유탄의 희생양이 되며 ‘옷로비 사건’에 휘말렸다. 이후 무죄를 받았지만, 노무현 참여정부 당시 열린우리당 합류를 거부하면서 정치적 표적 수사 대상으로 집중 포화를 맞았다. 이 때문에 박 의원은 2004년 나라종금 퇴출저지 로비사건, 현대건설 후원금이 뇌물로 둔갑된 사건의 타깃이 돼 혹독한 누명과 맞서야 했다.

여기에 선거법 위반 의혹 등 장장 4번의 구속과 4번의 무죄가 될 때까지 도합 16년이 실형이 구형됐다. 무죄가 판결되기 전까지 그는 336일 넘는 기간을 감옥에서 보내야 했다. 너무 억울한 나머지 옥중 출마도 하고, 어느 날은 극심한 화병으로 말미암아 스트레스성 심장병이 생길 정도였다. 심장 관상동맥 4군데가 막혔고, 대수술 끝에 목숨을 간신히 건졌다고 하니 풍운아, 불사조, 인동초라는 수식어의 무게만큼이나 험난한 정치 여정이 아닐 수 없었다는 평가다.
 

   
박주선 전 국회부의장은 기록의 보유자다. 4번 구속 4번 무죄 이외에 전국 최고 득표율, 전국 최저 득표율, 사법시험 수석 등의 기록을 갖고 있다.ⓒ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법치주의 증인, 사법정의의 산증인”

- 그간 4번의 구속 4번의 무죄가 말해주듯 핍박받는 이미지가 강했다.

“저야말로 법치주의 증인이고, 사법 정의의 증인이라고 생각한다. 한번 생각해보라. 총 16년 구형을 받은 사람이 저다. 하지만 저는 16년이 아니라 16시간도 구치소에 들어갈 이유가 없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4번 구속시키면서, 검찰 입장에선 나를 16년 간 교도소를 보내려고 한 게 아닌가. 그런데 교도소를 보내기는커녕 국회의원이 됐고, 정당의 최고위원이 됐고, 심지어 대표도 됐다. 또 국회부의장도 했다. 이 말은 무슨 말인가. 16년 간 국민을 위해 일해야 할 사람을 이렇게까지 한 것은, 달리 말하면 공권력이 죄 없는 사람에게 억울한 누명을 씌웠거나 사법이 불의에 가담했거나 그랬을 것 아닌가. 그럼 그건 그것대로 고쳐야할 명분이 있고, 당위가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제까지 내 사건의 진상을 규명해달라고 그렇게 요구를 해도 사법당국에선 일절 언급이 없다. 진정한 사법개혁을 위해서는 스스로 증언대에 서는 역할을 해야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또한, 이는 박 의원이 정치를 하는 이유라고 했다.

“(정치인인) 내가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일반 민초들은 얼마나 큰 고초를 겪고 있겠는가. 누구도 다시는 이런 억울한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 제도를 고치고 바꿔야 되겠다는 것이 제 정치적 사명이자 목표다. 나 보고 정치적 불사조, 불사신, 오뚝이 등 여러 이야기를 한다. 하나의 어려운 시련과 고난을 겪어온 다음에 주어지는 아름다운 이름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그 아름다운 이름을 얻으려고 일부러 고생을 자초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때로는 삶 전체가 부정되는 너무나 좀 억울한 인생을 살아왔는데, 다시는 나 같은 사법의 불의와 정치적 탄압이 없는 대한민국과 국가를 만들어야겠다는 책임감으로 정치를 계속하고 있다. 평소 제 소신은 그렇다. 정의에 대해선 얼마든지 타협과 양보를 넘어서 모든 걸 털어내 놓고 모든 걸 숙일 수 있다. 그러나 불의 앞에선 타협과 양보도 못할 뿐더러 불의 앞에서는 고개를 절대 숙일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것이 제가 살아온 정치적인 지향점이고 정치적 기본이다.”

- 이런 원인을 두고 주류 정치, 기득권 정치에 각을 세워왔기 때문이 아니냐는 분석이 적지 않다.

그 예로 들려준 것이 앞서도 잠깐 언급된 故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과 일화다. 또, 이 얘기를 하려면 박 의원이 들려준 ‘포스트 DJ'로서 겪은 시련부터 먼저 해야 할 듯싶다.

“개인적으로 많은 시련과 고난을 겪으면서 DJ가 저한테 하신 말씀이 있다. ‘내가 사형선고를 받지 않았더라면 대통령 되기 어려울 것이다. 아무 죄 없이 사형선고까지 받아든, 시련과 고난이 국민의 마음에 짠한 마음으로 울림을 가져와 대통령이 됐다고 생각하다. 박주선 의원도 하늘이 이유 없는 억울한 고난과 시련을 주지는 않을 거고 뭔가 깊은 뜻, 단련을 시키기 위해서 이런 시련을 주는 거 아니겠느냐’고 한 바 있다.”
 

   
▲ 포스트 DJ로서 주목받은 박주선 전 국회부의장. 그는 국정원 조사 결과 김대중 전 대통령을 잇는 차세대 호남 대권주자로 지목돼 왔다.ⓒ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故 이수일 전 차장으로부터 들은 얘기…

박 의원은 그러면서 DJ 정권 마지막 국정원 시절에 몸담았던 故 이수일 전 국정원 2차장으로부터 들은 얘기를 전했다. 이수일 전 2차장은 2003년 참여정부로 넘어오면서, 광주 호남대 총장으로 갔다가, 국정원 불법 도·감청에 관여한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던 중 2005년 11월 관사로 쓰던 아파트 베란다에서 목을 매 숨진 것으로 전해졌다.

“참여정부 출범이 한창이던 2003년 1월인가, 이수일 전 차장으로부터 전화가 왔었다. 당시가 참여정부를 앞두고, DJ 대통령 퇴임이 한 달 정도 남았을 땐데, DJ 이후 정치적 가치와 정신, 그리고 역량을 계승하는 호남 사람 중에 누가 있겠느냐, 하고 여러 자료를 놓고 국정원에서 정보 분석을 한 결과 압도적으로 박주선 의원이더라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큰 꿈을 갖고 호남 자존심을 세우고 국가 백년대계를 위해 헌신해주기를 바란다는 격려성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그 뒤에 붙인 말이 뭐냐면… ”

박 의원은 다음 말로 이어나갔다.

“한편으로는 이런 분석이 나와 기쁘지만 대한민국 정치의 또 다른 측면에서 보면 중상과 모략이 좋은 정치인들을 죽이고, 매몰시켰지 않았냐는 거였다. 앞으로 정치적 중상과 모략을 박 의원께서도 겪을지 모른다는 불안함감도 없지 않다는 것 이 전 차장의 말이었다. 그러니 DJ처럼 굳센 의지와 용기, 집념, 지혜로 해결해나가라, 라는 조언이었다. 이후 그분이 2003년 3월 초에 참여정부 국정원에 인계를 하고 나오면서 다시 나한테 전화를 했다. 지난번 1월 달에 했던 이야기를 머릿속에 꼭 기억하고, 그런 목표를 향해서 달려가라, 나도 (국정원) 밖에서나마 기도하고 기원하겠다고 하더라….”

“민주당 남은 後 싹쓸이 구속”

이 전 차장의 막연한 염려는 얼마 안 가 현실이 됐다.

“노무현 정부가 집권한 다음에 제가 구속이 됐다. 열린우리당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였다. 당시 민주당이 중심이 돼서 노무현 후보를 당선시키고 호남에서 95%이상 지지율을 보내줬음에도, 참여정부는 호남 중심의 민주당을 버려야 만이 노무현 정권이 성공하고, 정국정당 백년정당을 만들 수 있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또 그 논리로 민주당을 버리고 2003년 11월 열린우리당을 창당했다.

그 시기 저는 열린우리당 분당 및 창당을 반대했던 사람이었다. 정치적 도리에도 맞지 않고, 호남에 대한 자존심을 짓밟는 일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왜 호남이 중심이 되는 지지정당, 호남의 지지가 기반이 되는 정당은 왜 전국정당이 될 수 없고 왜 백년정당이 될 수 없다는 얘기냐, 그렇게 저는 반대했다.

그런데 그때부터 검찰이 민주당에 남아있던 사람들을 수사하기 시작했다. 사실은 정치적 말살을 하려했고 민주당에 남아있는 사람들을 완전히 부정부패의 원흉으로 몰아세웠다. 상대적으로 열린우리당을 대안대체 세력으로 세우려고 했던, 중상과 모략이 있었다. 당시 민주당에 남아있던 사람들이 저를 비롯해 한광옥, 한화갑, 권노갑, 김운용 등이었는데 싹쓸이 구속됐다.”

이 시기 나라종금, 현대 비자금 사건에 연루 돼 구속됐던 박 의원은 사법 투쟁을 벌인 끝에 2005년 5월 27일 최종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그리고 이는 검찰과 사법개혁의 기폭제로 쓰이며, 같은 해 국정감사의 쟁점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청렴을 자랑으로 여겼던 자의 명예와 자존심, 그리고 가족이 당했던 수모까지 송두리째 짓밟힌 시간을 보상할 길은 없었다고 박 의원은 소회했다.
 

   
박주선 전 국회부의장은 검찰의 무리한 구속 남용에 강분했다. 또 참여정부 당시 검찰의 구속 수사 관련, 무죄 확정 이후 노무현 전 대통령으로부터 사과의 말을 들었다.ⓒ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배후는 盧 대통령이다”

한차례 광풍이 지나가고, 용서와 화합을 모토로 분열됐던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이 다시 합해 통합민주당(후에 민주당으로 당명 개편)으로 거듭났을 때다. 그 시기 박 의원은 2008년 18대 총선 광주동구에 출마해 전국 최고 득표율로 당선됐다. 이어 민주당 최고위원으로서 7월 12일 노무현 전 대통령을 만나기 위해 김해 봉화마을로 찾아갔을 때의 일화를 들려줬다.

“당 지도부와 함께 노무현 (전)대통령께 인사하러 갔을 때다. 그때 저는 노무현 대통령에게 정말로 하고 싶은 얘기를 다했다. 그리고 저처럼 억울함이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라도 진상을 규명해야 하는 것 아니냐, 원인이 어디에 있어서 이런 일이 벌어진 건지, 밝혀달라고 했는데도 검찰은 묵묵부답이었다.

이게 열린우리당에 참여하지 않고 민주당에 남아있다는 죄로, 수사를 받은 건데, 그러면 수사라인을 문책 하고 책임을 추궁해야 하는 것 아니냐. 그런데 그 사람들 전부 다 영전시키고 승진시키고 심지어 대법관으로 만들어주고 하는 대통령 인사를 보면서 최고 배후는 노무현 대통령이다, 제가 그렇게 얘기를 했다. 부당한 불법 정치적 도구로 검찰을 이용한 수사는 노무현 대통령 책임 아니냐고 했다.

-노 전 대통령이 뭐라하고 했나.

그러자 노 대통령이 일분일초도 머뭇거리지 않고, 나한테 그렇게 말하더라. ‘박주선 의원님 미안하게 됐습니다, 민주당과 박주선 의원님하고는 구별해서 취급을 했어야 했는데 내가 잘못했습니다. 앞으로 좋은 일만 있지 않겠습니까? 저희 집에서 소주 한 잔 하면서 회포를 푸십시다, 미안하게 됐습니다.’ 그렇게 저한테 세 번 미안하다고 했다. 이게 무엇을 의미하나면, 열린우리당 창당에 참여 안 하고, 민주당에 남았기 때문에 검찰을 통해 정치적으로 압박을 가하고 수사했고 억울함을 당한 것을 방증하는 것 아닌가. 달리 말하면 만약 제가 주류세력에 합류해서 열린우리당을 만드는데 참여했다면 그런 일을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대통령이 그렇게 말한 거 아니겠는가?”

- 그런데 아까 열린우리당 창당이 사실상 호남 말살이라고 했는데, 열린우리당 창당 때, 호남출신의 천정신(천정배, 정동영, 신기남)은 적극적이었지 않나.

“결과적으로 호남을 분열시켰던 거다. 호남을 중심으로 하는 정당에서는 백년 정당을 만들 수가 없고 전국정당이 될 수가 없다는 논리로 말이다. 하지만 당시로서는 김대중 노무현이라는 두 대통령을 만든 뿌리가 호남에 있었지 않나. 거기서 더 발전을 시킨다는 지혜와 전략을 가졌었다면 호남 분열이 일어나지도 않았을 게다. 호남이 통합된 채로 유지됐다면 호남 정치는 더 만발할 수 있었을 게다. 어찌됐든 그 뒤 열린우리당은 실패했고, 다시 민주당과 통합이 됐지 않나. 그때 반성적 구호로 외친 게 다시는 헤어지지 말자는 거였다. 그런 논리로 통합이 됐는데, 이제 와서는 또 여러 이유를 내세우면서 호남이 분열됐지 않나.”

 

   
▲ 박주선 전 국회부의장은 지역감정은 무서운 위험인자라고 지적했다. 동서화합의 통합을 반대할 호남인은 없다고 그는 강조했다.ⓒ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무서운 위험인자는 지역감정"

박 의원은 자신이 안철수 전 대표를 도와 산파 역할을 한 국민의당이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으로 갈라진 것, 특히 호남 정치인들이 분열의 길을 걷게 된 점에 몹시 착잡한 심정임을 내비쳤다.

“지금 세상이 어느 땐데 글로벌 사회에서 호남은 호남끼리라는 지역주의를 외치고, 지역감정을 이용하려는 정치를 하려는 것인지 모르겠다. 지금 정치권에 있어서 가장 무서운 위험인자는 지역감정이라고 생각한다.

지역감정이라는 화염이 터져버리면 어느 누구도 살아남을 수 없다. 하지만 지역감정이라는 화상을 딛고 치료가 되면, 통합의 가치를 외친 제가 걸어간 길이 맞구나, 할 때가 올 것으로 본다. 물론 호남의 기대를 받아온 정치인으로서 지금 호남민의 반응과 반향이 어떻다는 걸 왜 모르겠나. 그러나 잘못된 인식과 오해는 아침 안개 걷히듯 걷히고 나면 역시 그랬구나, 그런 참다운 뜻이 있었구나 하고, 새로운 평가를 받는다고 본다.”

- 그럼에도 바른미래당이 6·13 선거 결과 호남에서 정당득표율이 가장 낮게 나온 것 관련, 뼈아플 듯하다.

“2016년 국민의당이 출범하면서 호남 지역구 28석 중 국민의당이 23석의 승리를 견인한 바 있다. 그것은 호남 유권자 입장에선 호남의 정당한 이익을 대변하고 호남의 가치와 정신을 실현하는 정당이 국민의당이라고 평가했기 때문에 그런 결과가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국민의당이 바른정당과의 통합과정에서 분열이 생겼고, 민주평화당이 별도 당을 창당했지 않나. 호남유권자 입장에선 호남의 정당한 이익을 보호하고 호남 정신의 가치를 실현시켜줄 정당으로 기대했는데 내부의 분열로써 그 역할을 전혀 할 수가 없다고 평가했고, 선거 결과가 이를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이에 분열을 막지 못했던 국민의당과, 분열을 강행한 민주평화당 모두가 책임을 져야 할 문제라고 본다.”

박 의원은 그러면서도 평화당의 분당 논리에는 혹평을 가했다.

“굳이 이야기하자면, 호남은 호남끼리 뭉쳐야 한다는 명분과 논리를 내세워 호남 국회의원들 14명이 교섭단체도 구성하지 못하면서 민주평화당을 만들었던 것은 진정한 호남인의 기대를 무너뜨린 것이라고 판단된다. 호남 정신의 가치를 훼손하는 것이자, 유권자의 정당한 이익을 실현시키지 못하는 길이었다. 그러면 왜 바른미래당이 민주평화당보다는 조금이라도 지지를 더 얻어야 하는데 더 못 얻었는가. 그 이유로 평화당이 시대에 뒤떨어지는 지역감정을 너무 부추기고 이용하는 선거를 했기 때문에 다소 영향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평화당이 기초단체장 5명을 당선시켰다고는 하지만, 후보자들 개인의 역량과 지역사회에서의 평가 때문인지, 평화당 후보였기 때문에 일어난 결과는 결코 아니다.”

“동서화합, 국민통합의 길”

- 사실상 호남 국회의원으로서 바른미래당에서 살아남기 어려울 것을 예상했을 법하다.

“저는 정치는 당장의 현실 보다는 미래를 보면서 가야한다는 지론을 갖고 있다. 또 현실의 이익보다는 미래의 가치와 꿈을 목표로 해 대의와 명분에 맞는 길을 가야한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동서화합을 통한 국민통합을 반대할 국민은 아무도 없다고 본다. 호남도 이를 반대하는 유권자가 한분도 안 계시다고 저는 믿고 있다.

그런데 민주평화당에서 정체성이 맞지 않는 사람들과 정치를 한다는 건 도저히 수용하기 어렵다는 명분을 내세워, 호남은 호남끼리 뭉치자는 정당을 만들었지 않나. 이는 동서화합을 거부하는, 국민통합에 반대한 것이자, 마치 호남의 정서가 그런 것처럼 일반 국민에게 오도를 시킨 부분은 너무 크다고 생각한다. 동서화합을 거부하고 국민통합을 반대하는 호남인은 한사람도 없다고 단정한다. 어찌됐든 호남민이 분열된 두 정당에 대해 매서운 회초리를 들었다. 양당 모두 호남 이익을 보호하고 가치와 정신을 실현시키기 위한 방법이 뭐겠는가, 하는 것을 다시금 심사숙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앞서도 호남의 정신과 가치를 언급했고, 평소 호남 정치의 복원을 강조해왔다.

“호남은 상대적으로 기득권을 누려본 지역이 아니었다. 항상 소외와 낙후, 배제와 피해의 지역이었다. 그럼에도 근현대사에서 나라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마다 용감하게 자기를 던지고 버려가면서 구국의 일생의 자세를 지녀왔다. 바로 이 점이 호남 제일의 가치와 정신이라고 보고 있다.

두 번째는 5·18 민주화 운동이 초석이 돼 결국은 기득권 세력이 교체됐고,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꽃피웠던 것 아니겠는가. 하지만 그 과정에서 호남의 피해가 얼마나 컸나. 지금도 역사적으로 완벽하게 5·18에 대한 진상규명이 되지 못하고 있는 안타까움이 있다. 그동안 소외돼왔던 호남인을 위한 정당한 이익이 보장돼야 한다고 보고, 구국의 자세와 민주주의를 꽃피운 호남민의 정신과 가치를 국정에 구현하는 것이 곧 호남정치 복원이라고 생각한다.”

- 포스트 DJ로 기대를 모아온 분이다. 그러나 DJ 이후 호남 대망론은 나오지 않고 있다.

“아까 말씀처럼 호남이 통합되지 못하고 일시적 통합 위에 다시 분열이 돼왔지 않나. 그런 원인이 있겠고, 뭣보다 호남 출신으로는 대통령이 되기 어렵다, 호남에서 나오면 다른 지역에선 지지하지 않는다는 패배주의적 관점, 편견에서 깨어나야 한다. DJ도 DJP(김대중+김종필) 연합을 만들었지 않나. 이처럼 호남이 먼저 통합을 이루고, 자신감을 회복한다면 호남출신 대통령이 얼마든지 나올 수 있는 전략과 지혜는 모아질 수 있다고 본다.”
 

   
박주선 전 국회부의장은 호남 100년의 인재로 불려진 바 있다. 그는 광주고, 서울대 법대, 사법시험 수석, 명 검사 활약 등 엘리트 길을 밟았다. 가난함 속에서 수재의 꿈을 키울 수 있던 데에는 어머니의 남다른 희생과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전해진다.ⓒ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새싹론 주장, 젊은 사람들 나와야”

얘기는 다시금 현안으로 옮겨왔다.

- 바른미래당이 9·2 전당대회를 앞두고 있다. 당의 앞날을 위해 어떤 지도부가 필요하다고 보는지?

“저는 이번 전당대회에서 새싹론을 말씀드리고 싶다. 실상 당이 처한 현실이 전당대회에 대한 국민적 관심도 없는 절체절명의 위기의 상황 아닌가. 이럴수록 저는 완전히 화마로 초토화가 된 상황에서 새싹을 길러내야 한다는 절박하고, 처절한 심정으로 전대를 맞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위기를 극복하려면 새로운 사람들, 젊은 사람들이 나와서 역할을 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래야 화마로 초토화된 당에서 새싹이 나오는구나, 국민들께서 좀 더 관대하고 애정을 갖고 봐주시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서다. 새싹을 큰 나무로 키워가는 과정 속에서 당의 결속과 유대가 만들어지면, 국민의 기대와 지지를 모을 수 있는 기회는 얼마든지 오리라 믿는다.”

- 야권재편 과정에서의 이상적인 개헌과 선거제도 개편은 무엇인가.

“제왕적 대통령제의 권력 남용과 국정농단의 가능성을 봉쇄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개헌이 이뤄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다당제 협치의 정치 조건과 환경이 필요하다. 개헌과 선거구제도는 촛불민심 여망이요, 국민의 소망이다. 동전의 앞뒷면과 같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문제점을 (이명박 박근혜)두 대통령의 국정농단과 부정부패를 통해 우리가 목도하고 있지 않나.

촛불민심은 제왕적 대통령제의 국정농단과 권력남용 부정부패를 다시는 이 땅에 발붙이지 못하도록 해달라는 것이다. 그런데 대통령 선거가 끝난 뒤 촛불민심의 여망에 따르는 조치는 아무것도 없었다. 개헌을 거부하는 것은 촛불민심을 거역하는 것이고, 국가의 백년대계를 아예 포기하는 것이라고 본다. ”

특히 박 의원은 지금의 정치가 시련을 극복할 때 정치 발전을 이룬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대한민국 정치는 여러 사람의 고뇌와 시련, 국민의 오해와 진상규명이 반복됨으로서 발전해왔다고 본다. DJ만해도 얼마나 많은 시련과 고난을 겪었나. 사형선고를 받고. 망명을 하고 정치 은퇴선언을 하고, 그런데도 다시 또 기회를 얻지 않았나.

노무현 전 대통령은 또 어땠나. YS의 양아들로까지 평가받던 사람인데 90년 3당 합당을 거부하고, 정치적 낭인이 되다시피 했지 않았나. 하지만 나중에 대통령까지 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폐족이라고 스스로 일컬으면서 정치 포기까지 갔던 사람 아니었나. 또 대통령이 되기 직전까지 지지율이 10% 밑으로도 내려가 보기도 했다. 그렇지만, 대통령이 됐다. 정치는 살아있는 생물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결국은 부침과 격랑, 파랑은 있지만 이 모든 것을 이겨내는 것은 대의와 명분이고, 소신과 강단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안철수 전 대표도 쉽게 잊힐 정치인은 아니라고 전망했다.

“본인이 정치권에서의 이탈을 선언했지 않나. 더 넓은 세상의 견문을 넓히고 국민이 다시 부르는 계기가 있기 전까지는 돌아오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때문에 당분간 정치적 역할을 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렇지만, 안철수 전 대표가 가진 잠재적 역량과 대한민국 국민을 위한 헌신과 봉사의 자세, 이런 것은 여전히 지워지지 않는 상당한 기대와 가치를 모으는 잠재력이 있다고 본다. 때문에 완전히 잊힌 인물이 되거나 사라진 인물이 될 것으로 생각지 않는다.”

 

   
▲ 박주선 전 국회부의장은 대한민국 정치는 시련을 극복하고 잘못 된 것을 고쳐나가면서 발전해왔다고 말했다.ⓒ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 김병준 비대위원장 출범 후 자유한국당 갈 길을 놓고 바른미래당과의 통합 전망도 있다.

“스스로 해체가 돼야지, 우리하고의 통합 운운 대상이 아니다. 바른미래당은 자유한국당을 청산과 극복의 대상으로 평가하고 있다. 연합과 연대 통합의 대상으로 평가하지 않는다.”

-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 하락, 원인은?

“경제 위기 극복 없이는 하루가 멀게 고공에서 저공으로 바뀔 가능성이 높다. 대통령의 성공은 곧 국가의 성공, 국민의 성공이다. 대통령이 실패를 하게 되면 국가와 국민이 실패하는 것. 진심으로 고공행진 했으면 좋겠는데, 그런 기대 갖기 어려워 안타깝다.”

- 제시하고픈 경제 해법은?

“소득주도성장이라는, 한국 실정에 맞지 않고 세계에서도 공인받지 못하는 경제 논리 하루빨리 걷어치워야…. 두 번째는 말로만 혁신 경제 주장할 게 아니라, 경제구조를 정말로 뜯어고쳐야 한다. 세 번째는 성장 동력을 살려야 한다. 최저임금제, 52시간근로 등은 언젠가는 달성해야 할 목표지만, 현실을 외면하고 성급하게 달성에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성장동력이 꺼지면 분배자원도 마련할 수 없고, 사회구조를 정상화 시킬 수가 없다.”

- 청와대 협치 내각 참여 가능성은 있나.

“진정성 있는 협치를 하려면 대통령이 나서서 협치의 필요성과 그 조건을 얘기해야 한다. 근데 각 정당에서 이미 소득주도 성장은 성장 엔진을 꺼버리는 세금주도 성장이고, 세금은 정작 국민의 주머니 속에서 나오는 것이지, 하늘에서 솟아나고 땅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지 않느냐며 고치라고 하는데, 정작 고치지 않으면서, 어떻게 협치를 하려는 것인가? 여야가 격의 없이 토론하고 설정하고 대통령이 수용할 줄 아는 것이 진정한 협치다.”

- 외통위원회 소속으로 한반도 흐름은 어떻게 보나.

“18대부터 줄곧 외통위에 몸담았고 위원들 중 가장 오래됐다. 한반도 평화 해법의 가장 필수적 전제조건은 비핵화다. 이 방향에 대해선 문재인 대통령이 설정을 잘하고 있다. 하지만 운전자 역할론에 대해서는 미지수다. 4·27 판문점선언만 해도 이미 비핵화는 90%된 듯했고, 한반도에 다시는 전쟁이 없는 것처럼 들뜨게 만들었는데 정작, 손에 잡힌 게 하나도 없지 않나. 대북 제재 압박 강화는 국제사회 여론인데, 남북 공조 문제는 연일 언론에 보도되니 국민이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있다.”

- 송영무 국방부장관- 기무사 진실공방전 논란 관련한 의견은 있나.

“송영무 국방부장관은 권위와 체신을 잃었고, 더는 기대할 수 없게 됐다. 하루 속히 스스로 퇴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당 차원에서 해임 건의안을 낼 생각이다.”

- 이재명 경기지사, 은수미 성남시장 조폭연루설 논란 관련된 사항도 얘기한다면.

“우리나라 선거문화 혁신 차원에서라도 진상이 명명백백 규명돼야 한다.”

- 노회찬 원내대표의 비극을 몰고 온 드루킹 후폭풍을 어떻게 보나.

“특검으로선 더욱더 사명감,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성역 없는 수사로 의혹을 남기지 않도록 명명백백히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

윤진석·김병묵 기자 sisaon@sisaon.co.kr

<저작권자 © 시사ON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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