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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 무궁화장 논란이 된 까닭…´영욕의 정계개편史´

기사승인 2018.06.25  19:3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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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와 YS·DJ까지…군사독재와 민주정권의 교집합인 ´그´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윤진석 기자)

故 김종필(JP) 전 국무총리의 무궁화장 추서 논란이 시끌시끌하다.

JP는 지난 23일 눈을 감자(향년 92세) 정부는 25일 JP에 민간인이 받을 수 있는 최고의 훈장인 무궁화장을 수여했다.

하지만 찬반 양상은 팽팽하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즉각 계획을 중단하라”고 밝혔다. 황교익 맛 칼럼니스트는 전날(24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런 식이면 전두환이 죽어도 훈장 주어야 한다는 말이 나올 것”이라며 “정치가 한량들 놀이판이냐”고 비판했다. 그러나 청와대 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전직 총리에 대한 예우 차원”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한 것으로 전해졌다.

영욕(榮辱)의 정치인이란 평가처럼 훈장이 주어지는 일에도 명암이 교차되고 있는 셈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김 전 총리는 군사 독재 정권과, 민주 정권 탄생 모두에 장자방 역할을 했다. 장자방은 중국 한나라의 건국 공신이다. 유방이 천하를 통일하는 데는 장자방의 계책도 큰 역할을 했다고 전해진다.

특히 현대 정치사의 획을 긋는 정계개편 교집합에는 故김종필(JP) 전 총리가 있었다. 군사독재에서 1987체제 이후 민주정부로 나아가는 세 개의 정계개편 길목 모두 그가 있었다는 평가다. 

 

   
▲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23일 향년 92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뉴시스

1960년 JP는 ‘박정희’를 도와 5·16군사 쿠데타를 주도했다. <시사오늘>의 윤명철 논설위원 글을 빌리면 JP는 설계자였다. 대한민국 산업화를 꿈꾼 그는 소위 때 만난 ‘박정희 소장’을 지도자로 선택했다. ‘박정희’는 ‘김종필’을 자신의 장자방으로 삼았다. 이들은 쿠데타를 통해 권력을 장악했다.

중앙정보부를 창설했고, 서른다섯 살의 나이로 수장에 올랐다. 공화당을 창당해 ‘박정희 대통령 만들기’에 앞장섰다. 쿠데타에 대한 비난이 일자, 본인이 기획했다고 수습했다. “낡은 구시대의 정치 진출을 차단하기 위한 거사였다”는 명분을 갖다 댔다.

권력의 2인자로 1인자와의 갈등이 불가피하기도 했다. 그러나 유신헌법을 만들기 전까지 ‘박정희 3선’에 있어 킹메이커 노릇을 했다. 경제개발계획수립 등 개발독재를 모델화했다. 군사독재 반민주주의 정부의 부역자, 한일협정 뒷거래 의혹 등 부정적 평가가 불명예스러운 꼬리표로 남았다. 

1990년대는 3김(김영삼·김대중·김종필)의 트로이카 시대였다. 3김이 주축이 된 정계개편은 문민정부와 국민의 정부를 만드는 요람이 됐다. 또 그 중심축을 이룬 것이 JP였다.

1990년대 초 삼당합당(민자당)의 가교 역할을 했다. 보수와 민주 정당이 합한 삼당합당은 전두환 계의 민주정의당, 민주계 거목 YS의 통일민주당, JP의 충청권 신민주공화당의 결합체이다. YS는 호랑이(군정종식)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한다는 명분으로 군사정권의 잔재당과 손잡았다.

가장 큰 정계개편이라 평가받는 삼당합당은 1993년 2월 YS 대통령 당선, 문민정부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출범 후 YS는 부패척결을 표어로 ‘전두환의 군사조직 하나회와 신군부’를 숙청했다. 호랑이를 잡아 군정을 종식시키겠다는 공언을 스스로 지켰다. 이 일로 군사독재계 JP는 민주계에 밀려 탈당했다. 이후 자유민주연합(자민련)을 창당했다.

결과적으로 자민련은 DJP(김대중+김종필) 연합의 정계개편을 일으키는 계기가 됐다.

JP는 내각제를 연결고리로 DJ와 손을 잡았다. 그리고 1997년 2월 박정희, YS에 이어 세 번째 ‘DJ 대통령 만들기’에 성공했다. 50년 만의 실질적인 정권교체가 이뤄진 것이다. 국민의 정부 초반에는 첫 총리를 맡는 등 합을 이뤘다. 하지만 DJ의 내각제 개헌 파기와 햇볕정책 이견은 또 다시 결별로 이어졌다.

YS, DJ 양김 정권 탄생에 기여했지만, 화학적 결합에는 실패한 것이다.

한 정치평론가는 <시사오늘>과의 통화에서 “JP는 한국 정치사에 한 획을 그었던 박정희-YS-DJ를 대통령으로 만든 조력자였지만 입지 면에서 보수 진보 양쪽에 공격을 받고 씁쓸하게 정치무대에서 내려온 경우”라고 말했다.

이 평론가는 “2인자였을 때는 박정희 정권의 끊임없는 견제를 받아야 했고, YS와 DJ를 번갈아 오갈 때는 군정종식, 내각제 약속 파기 등 배신 아닌 배신을 받아야 했다”고 설명했다. 또 “민주계인 YS와 DJ를 도울 때는 민정당계 보수인사들의 비토를 받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윤진석 기자 sisaon@sisaon.co.kr

<저작권자 © 시사ON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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