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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로 보는 정치] 역사를 바꾼 설계자, 한명회와 김종필

기사승인 2018.06.24  18:4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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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조와 박정희를 선택한 책사의 전형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윤명철 논설위원)

   
▲ 조선의 한명회와 대한민국의 김종필, 이들이 만난 세상은 격동기였고, 새로운 시대를 요청받았다. 이들을 혁명가로 기억할지 아니면 쿠데타의 주역으로 기억할지는 역사가 판단할 것이다. 사진제공=뉴시스

한명회는 조선 최고의 책사다. 그는 왕권을 강화해 조선 통치체제의 완성을 이룬 세조와 성종의 치세를 기획한 혁명가다.

한명회는 세조를 선택했고, 세조는 한명회를 자신의 장자방으로 삼았다. 한명회와 세조, 두 사람의 만남은 조선의 역사를 뒤바꿨다.

당시 조선은 세종의 치세를 누리며 동북아의 새로운 강국으로 발돋움했다. 세종은 4군 6진 개척으로 압록강과 두만강에 이르는 국경선을 확보했고, 한글 창제와 과학기술을 진흥시키며 조선을 문화강국으로 발전시켰다.

반면 문종과 단종의 시절은 세종이 육성한 신하들이 권력을 장악하며 왕권을 약화시켰다. 왕권의 약화를 조선의 위기라고 판단한 한명회와 세조는 계유정란을 일으켜 정권을 장악했다. 계유정란은 한명회의 머리에서 기획됐다.

세조는 직전법과 호적조사를 통해 국가재정을 안정시켰고, 국가통치체제를 확립하기 위해 경국대전 편찬을 시작했다. 세조 사후 한명회는 성종을 선택했다. 성종은 한명회와 인수대비와 정치적 타협을 통해 만들어진 군주다. 한명회는 훈구파의 생존을 위했고, 인수대비는 지아비의 단명으로 못이룬 중전의 限을 대비로 풀고자 했다.

성종은 선대왕 세조의 뜻을 받들어 경국대전을 완성했고, 조선의 기본 통치 방향과 유교적 통치 체제를 확립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한명회의 훈구파는 부정부패의 온상이 됐고, 선조가 집권한 후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진다.

23일 대한민국 현대사의 설계자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세상을 떠났다. 6·25 전쟁의 참화를 겪은 신생 독립국 대한민국은 4·19 혁명으로 새로운 도약의 전기를 마련했지만 집권 준비가 안 됐던 민주당은 신·구파의 정쟁으로 혼란을 가중시켰다.

대한민국 군부의 실력자 박정희 소장과 김종필 중령은 대한민국 산업화를 위한 혁명을 꿈꿨다. 설계자 김종필은 박정희를 지도자로 선택했고, 박정희는 김종필을 자신의 장자방으로 삼았다.

이들의 5·16은 쿠데타를 통해 권력을 장악했다. 이후 대한민국은 ‘한강의 기적’을 일으키며 전 세계 개발도상국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다. 특히 6·25의 적국인 중국과 베트남전쟁의 상대방인 베트남은 박정희식 개발독재를 모방하며 개혁개방에 나섰다.

김종필은 조선의 한명회처럼 두 명의 대통령을 선택해 만들었다. 박정희 정권 당시 야당 대표였던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은 김종필의 지원을 받아 대권 장악에 성공했다. 특히 DJP연합은 ‘물과 기름’과 같았던 유신 본당 JP와 용공분자로 의심받던 DJ의 결합으로 헌정사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라는 위업을 달성했다.

김종필 전 총리도 명암이 극단적으로 엇갈리는 정치인이다. 그는 충청권을 기반으로 한 지역주의의 맹주였다. 3김은 영호남과 충청을 기반으로 한국 정치의 병폐인 지역주의를 고착화시켰다. 또 그가 만든 공화당은 조선의 훈구처럼 변질돼 부정부패의 온상이 돼 국민의 지탄을 받았고, 국민의 심판을 받아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졌다.

조선의 한명회와 대한민국의 김종필, 이들이 만난 세상은 격동기였고, 새로운 시대를 요청받았다. 이들을 혁명가로 기억할지 아니면 쿠데타의 주역으로 기억할지는 역사가 판단할 것이다.

윤명철 논설위원 sisaon@sisaon.co.kr

<저작권자 © 시사ON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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