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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도의 時代架橋] '최저임금 범위' 후폭풍

기사승인 2018.06.02  11:3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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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법률안 국회통과 후유증
이해관계 충돌…사회갈등 증폭
경제활력 회복 거시지표 중요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이병도 주필)

상여금과 복리후생비 일부까지 최저임금에 새롭게 포함시킨 국회 법률안 개정이 일파만파다.

지난 28일 본회의를 통과, 내년부터 시행에 들어갈 새 최저임금법 때문이다. 반발이 전례없다. 노동계는 “상당수 저임금 노동자가 식대, 숙박비, 교통비를 받는 현실에서 심각하고 치명적인 문제” , “최저임금제도의 사형선고”, "청와대는 거부권을 행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파장이 만만치 않다.

민주노총은 8년 만에 복원된 노사정 대화에서 탈퇴하겠며 총파업을 결의 선동했고, 한국노총은 최저임금위원회 위원을 전원 사퇴시켰다. 법안처리를 계기로 노·정 갈등이 불거지고 있는 상황이다. 해마다 최저임금 결정 때문에 갈등이 있었지만 이런 평지풍파는 처음이다.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는 그동안 노동계와 재계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해 온 사안으로, 최저임금심의위원회와 국회로 이어지며 1년 가까이 논의하고도 결론을 내리지 못해오다 이번에 처리시한에 밀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환노위)와 본회의를 통과했다. 개정안은 저임금 근로자들을 보호하면서 기업 부담을 완화하려는 절충안 성격이지만, 여전히 마찰이 크다. 무엇이 쟁점이고, 현안이며, 국가경제상 해결 방향이 되어야 할 지 구조적, 실무적 진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논쟁1년 봉합

국회는 지난 28일 5월 임시국회 및 20대 국회 전반기 마지막 본회의를 열고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를 골자로 하는 최저임금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본회의는 최저임금 개정안이 의결되고 하루 뒤인 5월 29일 종료됐다.

최저임금위원회는 이번에 변경된 개정안을 토대로 내년도 최저임금을 심의하게 된다. 2019년 최저임금 결정 시한은 6월 28일이다.

새 법의 골자는 최저임금 대비 정기상여금 25% 초과분과 복리후생비 7% 초과분을 최저임금에 산입한다는 내용이다. 올해 최저임금으로 책정된 월 157만원을 기준으로 25%는 39만원이고 7%는 11만원이다. 정기상여금의 39만원 초과분과 복리후생 수당의 11만원 초과분이 최저임금에 포함되는 셈이다. 예를 들어, 월 상여금 50만원과 복리후생 수당 20만원을 받는 노동자의 최저임금은 157만원에 11만원(정기상여금 초과분)과 9만원(복리후생 수당 초과분)을 더한 177만원이 된다.

다만, 일정 기준 소득(연 약 2500만원) 미만 노동자들은 적용을 받지 않도록 했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한 사용자들의 부담을 덜어주는 대신 저소득 노동자들은 보호하는 선에서 타협점을 찾은 것이다. 경영계와 노동계가 서로 한발씩 양보토록한 절충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연 소득이 2500만원가량에 못 미치는 저임 근로자는 산입범위 확대로 최저임금이 사실상 삭감되는 부작용을 막을 수 있고, 상여금 비중이 큰 고연봉자가 최저임금 혜택을 누리는 어이없는 상황은 어느 정도 피할 수 있게 됐다. 일단은, 기본급과 고정수당만 최저임금에 포함해 온 지금보다 진일보했다는 평가를 받을 만하다.

현행 최저임금법은 기본급과 직무·직책수당만 최저임금에 포함시키고 있다. 그 결과 연봉 4000만원을 주고도 최저임금법 위반으로 처벌받아야 하는 업주들이 생겼다. 기본급에 비해 상여금.복리후생비 비중이 높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었다. 따라서 산입범위 확대는 어느 정도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다만 산입 폭을 월 최저임금액의 일정비율 초과분으로 제한함으로써 노동계의 요구도 일정 부분 수용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는 기본급과 직무·직책수당 등 사실상 고정된 급료만 최저임금에 포함됐었다. 이로써 지난해 6월부터 공전을 거듭했던 최저임금 산입범위 조정 논쟁은 거의 1년 만에 일단 봉합됐다.

상여금 시기조정 파장

그러나 여전히 많은 문제점이 지적된다.

명확한 근거와 실태 파악 없이 25%와 7%라는 산입기준을 만들다보니 상당수의 저소득 노동자들은 최저임금 인상 효과를 보기 어려워졌다는 분석이 유력하다.

더욱이 2024년부터는 아예 모든 상여금과 복리후생비를 최저임금에 전액 포함시키는 내용의 부칙까지 채택했는데, 기본급은 적고 상여금과 각종 수당만 많은 임금체계의 기본을 어떻게 바꾸겠다는 것인지, 그 세부 계획과 의지 표명은 없이 내린 무책임한 결정으로 보지 않을 수 없다.

또,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와 함께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금지’ 원칙도 훼손했다. 상여금의 최저임금 산입을 위해서는 매월 상여금을 받는 조건이 돼야 한다. 따라서 사업주가 노동자에게 불리한 쪽으로 상여금 지급 시기 등 취업규칙을 변경하려면 근로기준법에 명시된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금지’ 원칙에 따라 노조나 노동자 과반의 동의를 얻어야 하지만, 국회는 이번에 사업주가 3개월 또는 6개월 단위로 지급하던 상여금을 월별로 쪼개서 줄 때 ‘동의’가 아닌 ‘의견청취’만으로도 가능하도록 했다. 사업주의 편법적인 ‘상여금 쪼개기’를 국회 입법으로 허용한 것이다. 오히려 열악한 처지의 노동자에게 더 불리한 결과가 되기 쉽다.

한편, 노조가 있는 기업은 매년 임단협을 통해 임금을 결정한다. 법률상 단체협약은 취업규칙보다 우선하도록 돼 있다. 따라서 노조가 단협에서 상여금 지급 방식을 월간 단위로 바꾸는 데 동의해주지 않으면 달라지는 건 하나도 없다.

최저임금에 상여금 등을 포함하지 않을 경우 연봉 4000만원 고액연봉자도 최저임금 인상 대상이 되는 폐단이 발생한다. 이런 고액연봉자는 대부분 대기업 노조 소속이다. 이번 개정안은 대기업 노조원들의 경우는 상여금 최저임금 산입을 피해갈 수 있게 했다는 점에서 개선책으로 보기 어렵다. 한마디로, 노조가 잘 조직돼 상여금 지급 시기 등이 단체협약 사안에 포함된 곳은 상여금 쪼개기가 쉽지 않겠지만, 노조가 없거나 협상력이 적은 곳은 회사 마음에 달리게 된 것이다.

결국, 상당수 저임금노동자들이 피해를 볼 수 밖에 없을 것이란 추정이다. 정부 스스로의 통계도 이를 뒷받힘 한다.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로 연 소득 2천500만원 이하 저임금노동자 가운데 최대 21만6천명의 기대이익이 줄어들 수 있다는 정부 조사결과도 나왔다.

고용노동부는 언론에 배포한 '최저임금법 개정안 관련 주요 내용'이라는 제목의 자료에서 "연 소득 2천500만원 이하 노동자(1∼3분위) 중 정기상여금이 최저임금 월 환산액의 25% 또는 복리후생비가 7%를 넘어 기대이익이 줄어들 수 있는 노동자는 최대 21만6천명으로 추정한다"고 밝혔다. 이 중에는 임금 수준이 가장 낮은 1분위 노동자에 속하는 4만7천명도 포함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 노동부 조사결과는 2016년 '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와 '사업체 노동력 조사' 등의 데이터를 토대로 한 것이다.

업종별·지역별 차등화 경시

현실은 인정하지만, 이번 결정은 역시 내용 면에서나 절차 면에서나 문제가 많은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현실은 그리 수치로 단순히 정리될 문제가 아니다. 상여금은 없고 숙박비·식비 등만 받는 저임금 노동자들도 많아 연 2400만원 이하가 임금인상 배제에 포함될 가능성도 적지않다.

업종별·지역별 차등화가 법 개정안에서 빠진 것도 문제다. 서울 도심과 벽지 편의점에 근무하는 종업원은 근로 강도가 다르고, 점주의 수입도 다르다. 호황 업종과 불황 업종 근로자가 같은 최저임금을 적용받는 것도 이치에 맞지 않는다.

그동안 최저임금 산입범위 문제가 논란이 돼온 것은 우리나라의 복잡한 임금체계 때문이다. 기본급 이외에 상여금, 성과급, 각종 수당, 교통비 등이 덕지덕지 붙어 복잡하기 짝이 없다. 지난해 연장·휴일·야간 근로 등에 따른 초과급여가 근로자 임금 총액의 약 35%를 차지했을 정도다.

이런 기형적인 임금 체계를 단순화하지 않는다면 최저임금 산입범위 논란은 언제든지 재연될 수밖에 없다. 근로시간 단축 시행을 앞두고 직무·성과급 비중을 높이는 방향으로 임금 체계를 개선해 나갈 필요도 있다. 생산성과 관계없이 해마다 자동적으로 임금이 올라가도록 돼 있는 ‘호봉제’ 위주로는 기업들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기 어렵다.

대기업 노조가 최저임금 혜택을 누리기 위해 월 단위 상여금으로 바꾸는 단협 개정을 거부하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 격차는 더 커질 수밖에 없는 것도 현실이다.

결국 모든 업종, 모든 지역에 단일 최저임금을 적용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지적이 반영되지 않은 점은 아쉽다. 처음부터 업종별·지역별로 근무 강도, 생계비 수준, 기업의 지급능력 등에 큰 차이가 있는 현실을 고려했어야 타당하다. 

   
▲ 1일 청와대 분수대 광장에서 농성투쟁 돌입 기자회견을 열고 최저임금법 개정안에 대한 문재인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촉구하는 민주노총 회원들. ⓒ뉴시스

최저임금위 과제

또한 이번 개정안에 반발해 노사정 대화를 포기하고 총파업을 선동한 민주노총과 최저임금위원회 사퇴를 선언한 한국노총 마저도 1900만 명의 전체 노동자가 아니라 200만 명에 불과한 대기업·공기업 노조의 이익만 대변하고 있다. 따라서 내년에 현장에서 이번 개정으로 인한 혼란이 발생하지 않도록 철저히 대비하는 것은 정책 당국이 해야 할 일이다.

산입범위가 확정되면서 공은 내년 최저임금 인상률을 결정할 최저임금위원회로 넘어갔다. 올해 최저임금은 시간당 7천530 원으로 지난해 최저임금보다 16.4% 올랐다. 인상률로 치면 최근 10년간 평균(6.2%)의 두 배가 훨씬 넘는다. 자영업과 중소기업인들은 이런 급격한 인상의 충격으로 어려움을 겪은 게 사실이다. 최임위는 내년 최저임금 결정에 앞서 올해 최저임금 인상이 경제 전반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

지난 해 고용율이 오히려 악화된 것도 새 정부가 '소득 주도 성장' 실험을 한다면서 갑자기 충격적으로 최저임금을 올려버린 탓이 크다. 올리더라도 그 때 부터 미리 상여금, 복리후생비 등을 임금에 포함시킬지 말지를 결정하고 올려야 하는데 그것도 하지 않고 덜컥 최저임금부터 올려버린 탓이다. 향후 대책에서도 문 정부는 크게 반성해야 한다.

최저임금은 심화하는 소득 불평등을 완화하고 소득주도성장을 위해서도 당분간은 인상이 불가피하다. 하지만 사업장마다 기본급과 수당, 상여금 등 임금 구조가 상이한 현실에서 최저임금 인상폭을 일률적으로 적용할 경우 고연봉자가 혜택을 받는 임금 왜곡 현상이 일어나게 된다. 특히 사업장별로 상여금이 천차만별인 상태에서 기본급만을 기준으로 최저임금 인상폭을 결정할 경우 외려 임금 불평등 현상이 초래될 수 있다. 따라서 노동계도 기본적으로는, 최저임금에 상여금을 산입하는 것을 거부해선 안 될 것이다. 하지만 숙식비나 교통비 등 복리후생비는 그동안 기업들이 저임금 근로자에게 실질 소득을 보전해 준 측면이 컸다는 측면에서 향후 최저인금 인상에 그 연계폭이 더욱 면밀히 감안돼야 마땅하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으로 소상공인이나 영세자영업자들의 부담이 가중되고 이로 인해 고용이 악화되고 있는 현실 역시 앞으로 정책판단의 주요 기준이 돼야한다. 정부·여당은 이번 산입범위 조정을 빌미로 2020년까지 최저시급 1만 원 달성이라는 기존 대선 공약까지 밀어붙인다면 개정안의 제한적인 효과마저 사라질 것이라는 점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양극화 심화

사실, 文정부의 관련 정책착오는 이미 드러난 바 있다. 2020년까지 최저임금을 목표치까지 올려가기로 한 공약에 따라 이미 첫해인 올해 16.4%나 올렸지만, 그 결과는 긍정적 효과보다 부정적 효과가 크게 나타났다. 통계청이 24일 발표한 1.4분기 가계동향 조사에 따르면 소득이 가장 높은 상위 20%의 5분위 소득은 1천15만2천 원으로 1년 전보다 9.3% 늘어난 반면 소득수준이 가장 낮은 하위 20%의 1분위 명목소득은 128만7천 원으로  오히려 소득이 8%나 줄었다.

소상공인과 영세중소기업은 존폐 위기에 몰리고 저임금 일자리가 사라지는 등 부작용이 속출했다. 두 계층 간의 소득격차를 나타내는 소득5분위 배율도 5.95배로 커졌다. 최저임금의 과도한 인상이 양극화를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악화시킨 결과를 드러낸 것이다. 최저임금을 앞세운 文정부의 기본정책 기조인 '소득주도성장론'의 유효성까지 따져보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돌발 변수가 매일 쏟아지는 상황에서 가계소득 동향관련 긴급 경제문제 점검회의를 이례적으로 열었던 것도 그런 연유였다. 소득 양극화 문제는 그만큼 심각했다. 늘어난 취업자가 2월부터 3개월째 10만 명을 조금 웃도는 최악의 '고용 쇼크'에 1분기 가계소득 양극화도 2003년 통계작성 이후 최악으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이와관련, 정부가 온갖 해명을 하고 있지만 최저임금 쇼크로 일자리가 줄면서 저소득층이 직격탄을 맞은 사실을 감출 수 없다. 이것이 文정권이 내세운 '공정, 분배, 정의' 경제의 실체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최저임금 인상 전에 상여금·복리후생비를 포함하는 것으로 미리 조치를 했더라면 쇼크가 이보다는 덜했을 것이란 관측도 그래서 나온다. 

'소득주도 성장' 허상

文정부의 경제정책 기조를 되짚어보지 않을 수 없다. 양극화는 사회안정을 해치고, 사회 활력을 떨어트리며, 경제성장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

정부가 출범 직후부터 취한 소득주도 성장정책은 저소득층의 소득을 늘려줌으로써 소비를 촉진해 경제성장을 꾀한다는 정책이다. 최저임금 인상, 비정규직 정규직화, 일자리 나누기 등이 이런 정책에 해당한다.

그러나 문제는 이들 정책이 오히려 양극화를 확대한다는 비판이 크다는 사실이다. 저소득층의 소득을 늘려주기는커녕 그들의 일자리와 근로시간을 줄여 소득감소를 불러온다는 것이다. 정부로서는 상당히 충격적인 결과다.

그럼에도 정부는 최근 긴급회의 결과, 여전히 기존 소득주도 성장정책을 유지하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다. 문 대통령 스스로도 최근 통계로 나타난 소득 격차 확대가 최저임금 인상 때문이라는 진단은 성급한 것이라며 정부가 제대로 설명하라고 주문했다.

그렇지만, 더 늦기 전에 정책 방향 자체가 맞는지, 속도가 지나치게 빠른 것은 아닌지 등에 대해 더 정밀한 진단이 필요하다. 정부 내 경제라인들만이 모여 회의를 하는 것보다는 국내외 경제학자와 전직 경제수장들, 국민 등이 어떤 방식으로든 폭넓고 진지한 국민적 토론을 해볼 필요가 있다. 다음 달에 내놓을 하반기 경제정책 운용방향도 이런 논의를 치열하게 해본 뒤 결정하는 게 바람직할 것으로 보인다.

文정부 내부의 정책 혼선도 문제이기에 더욱 그렇다. 청와대 장하성 정책실장과 김동연 경제부총리는 최근 최저임금 문제에 다른 목소리를 내며 혼선을 빚었다. 장 실장은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이 고용에 악영향을 준다는 의견에 "3월까지 통계를 가지고 여러 연구원이 분석한 결과 일부를 제외하면 총량으로 봐도 그렇고 제조업 분야에서 고용감소 효과가 없다는 것이 결론"이라고 밝힌 반면 김 부총리는 "경험이나 직관으로 봤을 때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며 최저임금 속도 조절 필요성을 거듭 언급했다.

경제팀 안에서 경제현상을 보는 시각이 다를 수는 있지만, 청와대와 정부 경제팀 수장이 공개적으로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것은 경제정책 신뢰도만 떨어뜨릴 뿐이다. 두 사람의 역할이 세밀하게 조율되지 않으면 큰 혼선이 빚어질 수도 있다.

김 부총리가 '최저임금 속도 조절'의 필요성을 거듭 언급한 배경도 살펴봐야 한다. 그래야 내년 최저임금도 국민경제에 비추어 올바른 방향으로 결정될 수 있을 것이다. 정부여당은 '2020년 최저시급 1만 원 달성'이 아무리 대통령 공약이라 하더라도 전반적 경제 상황이나 실효성을 따져 궤도 수정이 필요하다면, 유연한 모습을 보여야 마땅하다.

당장 내년 최저임금을 얼마로 할지가 최대 현안이다. 최저임금위원회는 최근 상황을 감안해 인상률을 한자릿수 이내로 낮춰야 한다. 당분간은 최저임금을 올리기보다 과도한 인상에 따른 충격을 최소화하는 데 역점을 둬야 할 것이다. 최저임금위가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길 바란다. 

현장갈등과 서비스산업

전체적으로 문제는 더 깊은 實狀에 자리한다. 최근의 실제 현상들은 정부가 쏟아낸 많은 대책들이 '현장'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의 근거가 된다. 성장전략의 실행과 분배정책 집행간의 갈등구조 실태가 현재의 한국기업 현장에서 그대로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한국 기업의 성장부문 문제점부터 조명해 보자. 삼성·SK 반도체 등의 호황에도 불구, 한국의 경제성장을 견인해야 할 기업경기는 지난 1997년 IMF(국제통화기금) 후 처음으로 1년 내내 '꽁꽁' 얼어붙어 있다. 최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를 중심으로 수출 제조 기업들이 호황을 누리고 있지만, 대기업 경기는 여전히 부진, IMF 외환위기 때와 비슷한 양상으로 평가될 정도다.

따라서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차제에 일자리 창출을 막는 대못도 모두 뽑아내야 한다. 대표적인 게 정부 여당이 야당 시절부터 가로막아 8년째 국회에 묶여 있는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이다.

한국 서비스 산업 현장실태는 실로 심각하다. 고(高)부가 일자리 창출, 4차 산업혁명 등을 위해선 혁신이 시급한 상태지만, 文정부가 들어선 뒤에도 '하나도 되는 게 없다'는 탄식들이 나올 정도다. 서비스 수지 적자는 갈수록 늘어나고 있고, 아직도 OECD 최하위 수준이다. 역대 정부마다 ‘서비스산업 육성’을 외쳤지만 실상은 아직도 이렇게 참담하다.

왜 이렇게 됐는가. 심각한 건 소관부처 관료가 이익집단에 포획당하고, 정치는 표를 의식하면서 ‘청부입법’에 앞장서는 현실 부문이다. 업종·직역 이기주의가 부처와 국회를 점령했다. 팽배한 평등주의 앞에서 차별화를 시도했다간 세무조사를 불러오기 십상인 게 한국 서비스산업의 현주소다. OECD 마저도 최근 한국 보고서에서 “서비스산업 규제 건수가 제조업의 네 배가 넘는다”고 지적했다. 서비스산업이 R&D 투자에서 차지하는 비중 또한 한국은 2015년 8.1%로 OECD 국가 중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다. 규제가 많고 R&D 인센티브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은 한국 서비스산업이 그만큼 개방에 덜 노출됐고, 혁신 경쟁력도 갖추지 못했음을  방증하는 것이다.

역대정권 실패사례

역대정권들의 경제정책 실패 사례는 '오늘'에 더욱 살아있는 교훈을 던진다. 지난 노무현 참여도 오늘의 文정부와 비슷하게 성장보다 분배와 균형에 초점을 둔 경제정책을 폈지만, '분배 부문'의 상황을 결코 개선시키지 못했다. 소득 상위 20%의 월평균 소득을 하위 20%로 나눈 소득배율(所得倍率)이 점점 높아지는 등 소득격차는 더욱 벌어졌고, 빈부격차는 물론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격차 등 사회 각 부문의 양극화는 오히려 심화되어 갔다.

당시 중앙리서치가 실시한 '경제정책에 대한 국민지지도 조사'에서 '지금 가장 중요한 경제정책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빈부격차 해소,부동산,균형발전보다 '경제활성화(43.7%)'가 압도적으로 많았다는 사실은 분배보다 일자리 창출을 위한 성장이 시급한 과제라는 점을 요즘처럼 잘 보여줬다.

또 국민들의 92%가 참여정부의 경제정책이 잘못됐다고 응답한 점은 경제정책 실패를 압축적으로 나타냈다. 이 조사결과의 특징 중 하나는 정치적으로 노무현정부 지지도가 가장 높았던 20대의 경제 위기의식이 오히려 가장 큰 것으로 나타났다는 점이다. 그것은 당시 8% 안팍의 청년실업률이 보여주었듯, 젊은층이 당장 시급한 일자리조차 구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 뿐 아니다. 박근혜정부도 반면교사다. 허장성세였다. 박 전 대통령은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마련, 전국 17개 도시에 18개 창조경제혁신센터도 세웠고, 2014년 봄에는 청와대에서 규제완화 끝장토론을 7시간 넘게 벌인적도 있었지만 역시 말잔치로 끝났다. 한국은 규제공화국이란 오명을 결코 벗어나지 못했다. 지금도 과거 정권들의 실패사례를 적극적으로 참조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정치권 반성을

정치와 국회의 기능도 환기돼야 한다. 이런 때 일수록 정치야말로 민생불안을 덜고, 소비심리를 자극하고, 시장에 긍정적 분위기가 감돌게 함으로써 기업의 투자를 재촉하는 선순환의 출발점이 돼야 한다.
심각한 경제현실은 정치의 가장 시급한 책무이며 국회의 적극적 민생·경제대책이 요구된다. 정치적 이해타산만 따질 것이 아니라 나라 경제를 내다보는 안목이 필요하다. 경제 발전을 위한 여건과 분위기 조성이 중요하며, 그 책임의 핵심이 정치권에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래야 국회도 경제를 생각한다는 소리를 들을 것이다.

정치권 정책실패의 대표 사례로, 이명박 전 대통령 시절을 지적치 않을 수 없다. 그 때도 정부여당의 경솔한 발언, 정책당국의 엇갈린 자세 등이 자주 거론되었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위험한 것은 주요 정책이 제때 시행될 수 있도록 법제화를 서둘렀어야 할 국회의 기능 부전이었다. 당시 정기국회 들어 통과된 법안은 6건에 지나지 않았다. 이는 각 상임위원회의 법안ㆍ예산 소위 구성비율을 둘러싼 여야 줄다리기가 끊임없이 '불임국회'의 주된 요인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국회도 크게 반성해야 한다.

'안정기조' 원칙 중요

총량적인 경제지표만을 놓고 볼 때 우리는 이제 거의 선진국 문턱에까지 이르렀다. 하지만, 이같은 발전에 걸맞게 국민 개개인의 삶도 향상됐느냐고 묻는다면 고개를 가로 저을 수밖에 없다. 양극화 현상은 갈수록 심화되고, 청년층의 취업율도 어려움이 계속되고 있다.

복지 예산은 선진국의 20∼40% 수준에 비해 아직도 매우 미약한 것이 현실이다. 기본적으로 삶의 질이 세계화 되어 나가야 한다. 때문에 복지 수준을 한단계 도약시켜야할 절박한 시점이다. 거창한 구호를 내세운다고 당장 삶의 질이 향상되지는 않는다. 성장과 분배·복지의 세가지 목표를 최대한 효율적으로 조화시키는 정책, 그리고 참된 실천의지가 결정적 과제라 할 수 있다.

IMF 외환위기 때보다 수출, 외환보유액, 국가신용등급 같은 거시지표는 개선되었지만 구조개혁과 같은 과제가 마무리되지 못한 상태인 것이 현실이다. 하락하고 있는 한국의 잠재성장률을 위한 시스템 개혁과 경제체질 개선이 아직도 시급한  한국경제의 기본 과제가 되고 있다.

물론, 현실적인 세부 정책에서 모두를 누구나 만족시킬 대안을 찾기는 어렵다.

그러나 기업의 투자의욕이나 근로자의 근로의식 고취는 최소한 물가안정 없이는 기대할 수 없는 일이다. 안정기조를 유지하면서 경기부양책도 강구돼야 하고, 분배·복지책의 조정도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가장 일선 현장에 있는 기업들은 재테크등 비생산적 투자행위를 지양, 기술혁신과 신제품 개발에 전력투구해야 할 것이며, 근로자는 건강한 기업활동을 저해할 소지가 있는, 무리한 임금인상 요구나 과격한 노사분쟁을 삼가야 한다. 당장 노사정 대화는 멀어졌고 최저임금위의 파행도 불가피해 보인다. 원칙을 훼손하지 않고 끝까지 대화와 설득에 임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최저임금 제도의 보다 본질적이고 구조적인 문제점에 접근, 경제활력의 장기 도약대를 놓는다는 자세로 거시지표를 더욱 존중해 나가야 할 것임을 강조한다.

   
 

이병도는…

1952년 경남 진양에서 출생했고 서강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 1979년 동양통신 기자로 언론계에 입문한 후 1981년 연합뉴스로 자리를 옮겨 정치부 야당출입 기자로 오랫동안 활동해 왔다. 저서로는 , <6공해제>, <97년 대선 최후의 승자는> 등이 있다.

이병도 주필 sisaon@sisa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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