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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인터뷰] 김영호 ˝박근혜 공작정치 용서…아버지께 배웠다˝

기사승인 2018.05.13  22:2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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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호 국회의원
2016년 중국방문 간첩몰이…˝인혁당 생각났다˝
아버지 김상현, 원칙 위해 평와민주당 안 따라가
˝정치인 핵심은 사회적 약자의 편에 서는 것˝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김병묵 기자)

변함없었다. 더불어민주당 김영호 국회의원을 두 번째로 마주하고 든 생각이다. 김 의원과의 앞선 인터뷰는 지난 2016년 초 그가 원외(院外)에 있던 시절이었다. 이젠 의원이 됐으니 어깨에 조금 힘이 들어감직도 한데,˝사람이 변하면 되겠느냐˝며 웃었다. 차를 가져다 준 보좌진에게 깍듯이 ˝고맙습니다˝라고 인사를 건네는 모습도 예전과 똑같았다.

사실 김 의원과의 인터뷰는 얼마 전 세상을 떠난 그의 아버지, 고(故) 김상현 전 민주당 상임고문을 추념(追念)하는 의미로 기획됐었다. 하지만 막상 그를 마주하니 그 밖에도 물어볼 것이 자꾸만 떠올랐다.  다음은 <시사오늘>이 9일 의원회관 935호를 찾아 김 의원과 나눈 이야기들이다.

   
▲ ˝내가 자신 있는게 하나 있다. 초심을 지키는 거다. 그리고 애초에 나는 스타일상 어깨에 힘주는 걸 못한다. 국회의원이든 아니든 김영호라는 사람은 똑같으니까. 이걸 잊지 않으면 된다.˝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당선 후 첫 인터뷰다. 질문이 늦은 감은 있지만 국회의원이 되고 나니 변한 부분이 있나.

˝내가 자신 있는게 하나 있다. 초심을 지키는 거다. 그리고 애초에 나는 스타일상 어깨에 힘주는 걸 못한다. 국회의원이든 아니든 김영호라는 사람은 똑같으니까. 이걸 잊지 않으면 된다. 하지만 처음 당선후 몇 달간 느낀 건데, 전화가 줄었다. 친했던 지역구의 주민들이 전화를 거짓말처럼 안 거신다. 내가 달라져서도, 싫어져서도 아니다. 한 가지는 국회의원을 권위적 대상으로 보셔서 그렇다. 새벽에 전화와서 ´술먹으라 나오라´고 하긴 어렵게 됐다는 거다. 또 다른 한 가지는 이제 나랏일을 하니 일할 시간을 주자는 배려도 있다. 그래서 말씀드렸다. '감사하지만 옛날처럼 일 없어도 그냥 전화 주셔도 된다. 물론 본회의, 국정 일이 있을 땐 못 받는다. 하지만 꼭 다시 전화 드린다'고 했다. 지역구 국회의원이 뭔가. 지역구 주민들의 대표가 돼서 입법하라는 자리 아닌가. 소통하고 전화받고 해야 한다. 물론 이렇게 말씀드려도 예전만큼은 전화가 오진 않는다. 하하.˝

-지난 2년간 의정활동도 상당히 활발히 한 것으로 안다. 오늘(9일)도 경찰법 일부개정안을 발의했는데.

˝어제(8일)도 경찰의 수사를 위해 독립된 수사본부를 설치하는 개정안을 발의했고, 오늘 발의는 수사심의위원회 설치 의무화에 대한 법이다. 그동안 경찰이 잘해도 억울한 이미지가 씌워지는 경우가 많았다. 일제강점기부터 시작해서 군사독재시절엔 권력의 도구로 전락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 들어서 반듯한 경찰의 본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경찰 내부에서도 개혁안을 만들고 있는데, 모든 조직이 그렇듯 안에서 하는 개혁은 쉽지 않다.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그래서 국회가 입법기구니까, 검·경독립에 대해 발의하고 쟁점화 시키면서 속도를 낼 수 있게 도운 거다. 많은 관계자 분들의 조언을 들은 뒤 낸 법안이다보니, 나름 합리적이라는 평을 듣고 있다. 경찰의 자체개혁에도 본보기가 됐으면 한다.˝

-장애인들을 배려하는 법안도 많이 냈다.

˝정치라는 것 자체의 가장 중요한 핵심 중 하나는 사회적 약자의 편에 서야 한다는 사명감이라고 생각

   
▲ ˝정치라는 것 자체의 가장 중요한 핵심 중 하나는 사회적 약자의 편에 서야 한다는 사명감이라고 생각한다. 사회적 약자 속엔 장애인을 빠뜨릴 수 없다. 우리는 아직 미국에 비하면 사회적 약자를 위한 사회기반이나 인식이 부족하다. 국민들의 인식들을 개선하고,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한다. 사회적 약자 속엔 장애인을 빠뜨릴 수 없다. 지금 우리나라도 장애인들에 대한 배려가 많이 개선 됐지만, 또래에 비해 정신이 미숙한 편인 발달장애인들에 대해선 아직이었다. 다른 장애인들에 비해 이들은 표현을 할 수가 없다. 그래서 그 주체는 가족들이 되더라. 내게 친구가 하나 있는데, 아이가 발달장애인이다. 경제적으로 풍족한 편인데도 결국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지금 당장보다도 자신들이 죽고난 뒤, 아이가 걱정돼서다. 우리는 아직 미국에 비하면 그런 사회기반이나 인식이 부족하다. 국민들의 인식들을 개선하고,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이런게 잘 갖춰진나라가 곧 선진국이다. 그래서 관련 법안을 내고 전국을 돌았다. 국민들이 더 관심을 가져 주시면 감사하겠다˝

-지금도 하고 있는 장보기 운동 등을 보면 재래시장에도 꾸준히 관심이 많아 보인다.

˝재래시장 장보기 운동은 원외에 있을 때, 불신받는 정치를 신뢰의 정치로 바꿔보겠다는 작은 실천에서 시작했다. 10년 전에 처음 정치 시작할 때는 나도 시장가서 생선 한번 들어보이고, 사진찍고 그런 일을 했다. 하지만 선거 끝나고 재래시장을 찾지 않으면 모두 ´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꾸준히 했다. 상인분들도 이젠 마음을 여셨다. 당선 후에도 100회차가 될 때까지 한 번도 빠진 적이 없다. 이제 나는 국회를 빼먹을 수는 없으니 본회의가 있을 때와 같은 경우엔 못 간다. 그런데 이게 활성화 돼서, 내가 없어도 우리 당원들이 간다. 어차피 먹고살려면 장은 봐야 하니 재미를 붙여서 화요일마다 가는 거다. 그러다보니 상인들과도 가까워지고, 다른 이들이 못 듣는 자세한 사정도 듣게 된다. 내가 낸 법안 중에 ´억울한 상인 방지법´은 그렇게 나왔다.˝

-´억울한 상인 방지법´에 대해 좀더 자세히 설명해준다면.

˝간단히 줄이면 말 그대로 억울한 일을 당한 상인들에게 정상참작이 되도록 하는 법안이다. 곱창을 파는 한 상인 분이 있었는데, 청소년들에게 술을 팔았다고 벌금과 영업정지를 당했다. 그런데 사정을 들어보니 한 무리의 젊은이들이 들어와서 술을 마신다는데, 주인이 철저히 신분증 검사도 했지만 이게 신분증 위조가 감쪽같아서 속고 만 거다. 나중에 누군가의 제보인지 여튼 경찰이 단속나와서 결국 처벌받았다. 그래서 억울하지만 자신은 처벌을 감수하긴 하는데, 꼭 다른 유사한 피해자가 안 나왔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하더라. 그게 계기가 됐다. 점점 이런 범죄가 지능화 되는 상황에서 최선을 다했는데 속았다면 정상참작 정도는 해서 구제해 줘야 한다는게 취지다. 물론 청소년에게 술을 알고도 판매하는 이들에겐 더 강화된 법이 적용돼야 한다.˝

김 의원은 한국인 최초로 북경대를 졸업한 중국통이다. 2년 전 본지 인터뷰에서 ´20년 내로는 반드시 통일된다´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남북정상회담으로 한반도 분위기가 급격히 좋아지고 있다. 어떻게 보고 있는지.

˝통일이 더 빨라질 것 같다. 아침에 깨어날 때마다 아주 상쾌하다. 평화의 공기다. 외교나 정치는 상상력이 가장 중요하다. 그 상상력을 실천하고 실현하는 것이 외교고 정치다. 이명박(MB) 정부땐 너무 경직된 외교관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박근혜 정부는 말 할 것도 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평화에 대한 상상력에 더해 강한 의지도 가지고 있었다. 앞으로 변수도 있겠지만 현 상황은 상당히 긍정적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여러 독재국가의 붕괴를 봤다. 그래서 이는 체제 안전과 생존을 위한 도박이고 몸부림일 수 있다. 거기에 더해 문 대통령에 대한 인간적 신뢰다. 문 대통령에 대해 개인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평가에 혹시 여야를 막론하고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나. 적어도 국내에 문재인 개인에 대해 의문을 갖는 사람은 없다. 있어도 이유를 못 댄다. 약속을 잘 지키고 과묵하게 실천하는 사람이다. 이게 중요하다. 트럼프 대통령, 시진핑 주석도 문 대통령에 대해 왜 모르겠나. 이들도 알고 있다. 문 대통령이 결코 전략과 전술, 모략을 짜는 스타일의 소위 ´기술자´가 아니란 사실을 안다. 외교에선 이런 사람이 필요한 경우도 있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게 먹히는 것이 바로 중재자의 역할이다. 운전대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술수와 계략을 가지고 있다면 어떻게 믿을 수 있겠나. 운전자는 안전 운전과 분명한 목표가 최고다. 음주운전, 과속 안된다. 트릭이 있을 수 없다. 그래서 문 대통령이 운전자론의 가장 적임자인 것이다. 애초에 성격이 솔직담백해서 음모같은 걸 꾸밀 수가 없는 분이다. 이런 것들을 감안해 볼 때, 지금 외교는 성공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김 위원장이 최근 방중한 것에 대한 분석은 어떤가.

   
▲ ˝통일이 더 빨라질 것 같다. 외교나 정치는 상상력이 가장 중요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평화에 대한 상상력에 더해 강한 의지도 가지고 있었다. 앞으로 변수도 있겠지만 현 상황은 상당히 긍정적이다.˝ⓒ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내가 팟캐스트에서 1월 쯤부터 시 주석이 김 위원장을 한 번 부를거라고 예측하기도 했다. 이게 꼭 좋은 일 같지는 않다. 악화된다기 보다는, 일이 복잡해질 수 있는 신호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이 한반도에서 다시 충돌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물론 김 위원장과 시 주석의 일관된 논조가 있다. 김 위원장의 비핵화 천명, 그리고 시 주석의 강한 지지다. 이는 거의 원칙이 됐기 때문에 한반도가 지금 어느 때보다도 평화에 가까운 것은 사실이다. 북한이 경제와 핵을 동시에 추진한다는 병진정책을 포기하고, 개혁과 개방을 통해 경제중심 정책을 준비하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그러니 조금 상황이 복잡해지더라도, 문재인 정부는 우리 국익을 중심으로 중재와 설득의 역할을 계속해 나가야 할 것 같다.˝

-지난 2016년엔 일명 ´사드정국´상황에서 중국방문이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박근혜 정권의 공작정치를 온 몸으로 느꼈었다. 나를 마치 매국노 사대외교의 핵심처럼 몰아가지 않았나. 야당의 초선 의원이, 모교인 북경대 좌담회를 가는데 이걸 국무회의에서 언급하고, 청와대 대변인이 브리핑을 하면서 나를 거의 간첩으로 만들어갔다. 귀국할 때는 인천국제공항에 파병용사 1500여 명을 동원해서 집회를 열게 했다. 함께 갔던 86세대 학생운동권 출신 선배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김 의원은 운이 좋다. 이게 박정희 정권 같았으면 더불어민주당 초선 간첩단 사건으로 귀국하자마자 남산에 끌려가고 사형당했을 수도 있다´. 순간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 것이 인혁당 사건이었다. 아 이렇게 간첩을 만들었구나, 싶더라. 김장수 중국대사가 나를 먼저 만나자고 해서 약속을 잡았는데, 갑자기 취소해놓고 ´김영호 의원이 일방 취소했다´고 보도가 됐다. 북경에서 교민들과 기업들과 만나는 자리가 있었는데, 국정원이 그 장소를 대관해준 기업 한국 본사에 전화해서 취소시켰다. 그래놓고 ´김영호를 교민들도 외면했다´고 왜곡했다. 나중에 김장수 대사를 만나서 ´그 때 왜 거짓말 하셨습니까´라고 물었더니 ´미안하게 됐습니다´라고 사과하더라.

외통위 국정감사 때 박병석 선배에게도 왜 그랬었냐고 질문해달라고 부탁했었다. 비행기에선 분해서 눈물이 났다. 인천에 도착하니 친한 기자들한테 전화가 와서, ´선배, 그리로 나오면 큰일납니다. 계란이랑 물통같은걸 던지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라고 알려줬다. 그래도 잘못한 게 없으니 그냥 나가려 했는데, 억울하더라도 그런 사진이 찍히면 나중에 정치적으로 이용된다고 하면서 말렸다. 계란 맞는 사진같은 건 나중에 선거에서 상대 후보가 돈을 주고 사기도 한다는 거다. 그래서 결국 경찰들이 유도하는 대로 돌아나왔다. 무슨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닌데 경찰이 700명이나 동원돼서 와 있더라. 이건 박정희 정권의 연장선상이라는 생각밖에 안들었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정말 위험한 정권이구나. 반드시 끝까지 싸우겠다´고 다짐했다. 얼마 전에 그 때 왜곡 보도를 낸 기자들에게도 물어봤다. 데스크의 의중이었다고 해명하더라. 청와대 홍보수석이 전화를 다 돌렸으니 빤한 일이다. 탄핵 때도 정말 열심히 투쟁했다. 지금도 나를 가끔 사드 국회의원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있다. 박근혜 정권이 물러났지만 그 분노는 남아있었는데, 이번에 아버지 장례식을 계기로 마음을 가라앉혔다. 아버지께 또 배운 셈이다.˝

-아버지인 김상현 전 고문도 군부정권에서 심한 탄압을 받았는데.

˝내가 일곱살 때 아버지가 유신반대하다가 감옥에 갔다. 중학교 들어갈 때는 또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으로 구속됐다. 어렸을 때 내 추억은 불행한 장면밖에 없다. 지금도 흑백사진처럼 보인다. 아버지는 감옥에 가고, 술집 빚쟁이들이 와서 어머니 머리채를 잡고 협박하던 생각이다.

그래서 군부독재, 그 잔재에 대한 분노는 무척 뿌리가 깊다. 그런데 아버지 장례일정을 보면서 느꼈다. 정치는 분노로 해서는 안 되는구나. 아버지도 다 용서를 했는데, 내가 당한 공작정치는 탄압 수준도 못 된다 싶다. 추모 미사에서 함세웅 신부님이 추도사를 하는데, 아버지는 본인을 고문했던 사람들도 다 용서했다고 했다. 자기를 고문한 사람을 찻길을 건너서 인사하고 손을 잡고 인사하는가 하면, 아버지를 고문했던 사람이 죄책감에 일을 그만두고 아버지 참모로 일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함 신부가 가장 놀란 것은 감옥에서 아버지가, '전두환 대통령에 대한 기도를 올리고 있다'고 했을 때라고 했다. 깜짝 놀라서 함 신부가 '아니 그 살인마를 위해서 왜 기도를 하느냐'고 물었더니, '하느님께서 이제라도 전두환에게 판단력이라는 걸 주셔서, 지혜라는 것을 주셔서 지금이라도 국민들이 행복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기도했다'고 답했다는 거다. 대한민국 정치에서 가장 가혹한 고문을 받은 아버지도 용서했는데 내가 용서를 못할 건 뭔가. 그래서 나도 이제 과거의 분노보다도 미래를 보면서 정치를 하려 한다. 아버지가 마지막까지 큰 가르침을 주고 가셨다.˝

   
▲ ˝헌정사에 아버지만큼 에피소드와 낭만이 있는 정치인이 있나 싶다. 아버지는 인본론자였다. 정치는 사람이 하는 일이다 보니 인본론이 통한다. 전쟁 중이라도 적장에게마저 존경을 받는 사람이 돼야 한다고 이야기하셨던 분이다.˝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김 의원의 아버지 김상현 전 민주당 상임고문은 한국 현대사를 풍미한 대정객(大政客)으로 평가받는다. 그의 장례식엔 여야를 가리지 않고 정치권의 조문이 줄을 이었고, 거의 모든 언론사는 일제히 추모의 기사를 냈다. 상(喪)을 치른지 얼마 되지 않는 그에게 조심스레 다시 김 의원의 아버지 이야기를 꺼냈다. 김 의원의 눈가가 촉촉해지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어떤 정치인이었는지 들려 달라.

˝헌정사에 아버지만큼 에피소드와 낭만이 있는 정치인이 있나 싶다. 정치를 시작한 뒤 거의 하루에 한 번 꼴로 아버지에 대한 일화를 듣는다. 만나는 분들마다 ´아, 예전에 너희 아버지가…´라고 이야기를 풀어주시는데, 하나같이 상당히 재미있다. 그런데 그 일화들을 관통하는 하나의 주제가 있다. 인간적인 부분이 강하다는 거다. 아버지는 인본론자였다. 정치는 사람이 하는 일이다 보니 인본론이 통한다. 그러다 보니 마당발이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는데, 그 별명은 별로 좋아하지 않으셨다. 후농(後農)이라는 호도 싫어하진 않으셨지만, 가장 좋아했던 호는 신경림 시인이 선물한 무경(無境)이다. 정치는 경계가 없어야 한다는 통합주의자셨다. 전쟁 중이라도 적장에게마저 존경을 받는 사람이 돼야 한다고 이야기하셨던 분이다.˝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도 많이 알려졌다.

˝김대중(DJ) 전 대통령과 50여 년 함께 정치를 했지만, 항상 DJ에게 직언을 했다. 다른 가신들과 달리 DJ와 동등한 동지였다. 하지만 DJ와는 가끔 의견이 다를 때도 있었다. 아버지는 유연하지만 상당히 강력한 원칙이 있는 정치인이다. 한 번도 변한적이 없는 대 원칙 두 가지는 통합과 의회 민주주의다. 아시다시피 아버지는 1984년에 민주화투쟁협의회를 만들고, 신민당을 만들어서 제도권에서 투쟁하자는 입장을 가지고 계셨다. 그런데 사실 재야인사들은 전두환정권 밑에서 국회의원을 하는 것은 군부독재를 인정하는 것이라는 반론을 펼쳤다.

하지만 아버지는 의회주의의 원칙을 버리지 않고 12대 총선을 주도했고, 결국 신민당 돌풍을 만들었다. 1987년 평민당이 만들어질 때도 그랬다. 아버지는 절대로 양김이 분열해선 안 된다고 했다. 단일화에 실패하면 다시 군부독재의 시대로 돌아가고, 역사의 죄인이 되는 것이라고 했다. DJ가 평민당을 창당해서 나갈 때 김상현 의원이 따라가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자신의 원칙때문에 따라가지 않았다. 대신 백만인 서명운동을 하는 등 마지막까지 통합을 위해 노력했다.˝

-김 전 고문은 정치적 중량감에 비해 요직(要職)을 맡은 적은 없는 것 같다.

˝아버지는 한 번도 임명직을 맡은 적이 없다. 대변인, 원내총무, 사무총장 등을 한 번도 못 해봤다. 아버지는 권위나 가식이 없고 솔직한 사람인데, 엘리트 사회에선 이게 잘 안 통한다. 하지만 대중들에겐 통한다. 그래서 국회의원으로는 6선, 당내 경선으로 최고위원은 됐었다. 개인적으로는 아버지가 당대표 대통령, 총리, 장관을 못해봤지만 많은 정치후배들에게 좋은 그냥 선배로서 기억되고 있는 것이 더 큰 업적이라고 본다˝

 

김병묵 기자 sisaon@sisaon.co.kr

<저작권자 © 시사ON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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