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윤명철 논설위원)
조선은 대간제도를 통해 왕권견제와 관리들의 부정부패를 방지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조선이 519년의 역사를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대간제도가 권력의 독점과 부정을 방지했던 덕분이라고도 볼 수 있다.
중종시절에도 전국에서 발호하고 있는 탐관오리들 때문에 골치 아팠던 모양이다.
<중종실록> 중종 2년 12월 25일 기사를 보면 헌납(獻納) 박상(朴祥)이 “정난 공신(定難功臣) 김양언은 호남에 근친(覲親)할 때 노비 30여 명을 거느리고 내려가서 경유하는 고을마다 여러 가지로 침학(侵虐)했으며, 관찰사는 진원(珍原)·금구(金溝) 등 수령으로 하여금 음식 등을 바치도록 했으며, 바른길로 지나지 않고 여러 관가를 돌아다니면서 번잡한 짓을 자행함이 너무 심했습니다”라고 고했다.
대사간 남율도 "밀양 부사 정자지(鄭子芝)는 해주 판관(海州判官)으로 있을 때 탐오(貪汚)가 너무 심해 해주 백성들이 그를 원망해 시구(詩句)로 전파하기도 했으며, 임숭재(任崇載)의 종사관(從事官)이 돼서는 홍준(紅駿)을 경상도에서 뽑아 들이고, 여러 읍 백성과 아전들을 가두고 독촉해 뇌물을 받고 놓아주는가 하면, 역마(驛馬)를 사용해 공공연히 자기 집의 물건을 실어 나르기도 했습니다“고 처벌을 간청했다.
하지만 중종은 이들의 간청에 대해 ”아뢴 바 수령의 불법은 어찌 모두 직접 보았겠는가? 만일 직접 보지 아니하고 어느 한 사람한테서 들은 것이라면, 한 사람이 헐뜯거나 칭찬하는 말은 공론이 아닐 수도 있으니, 포폄(褒貶) 을 받아 본 다음에 그들을 추문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고, 김양언(金良彦)의 일은 감사(監司)에게 추문하도록 하라“라고 거절했다.
중종의 시절은 조광조와 같은 개혁정치도 있었지만 백성들의 삶은 탐관오리들의 끊이지 않은 부정부패로 고달팠던 시기로 유명하다. 후일 곪을대로 곪은 부정부패의 염증이 터져 임꺽정과 같은 도적들이 들끓는 원인이 됐다.
최근 김기식 금감원장의 외유성 출장 의혹 논란으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야권은 김기식 원장이 국회의원 시절 피감기관의 자금으로 여성 인턴 여비서와 외유성 출장을 다녀온 의혹으로 사퇴를 연일 촉구하고 있다. 심지어 문재인 정부의 우군으로 알려진 정의당도 김기식 원장의 자진사퇴를 촉구했다.
아울러 김 원장이 소장으로 있던 더미래연구소와 관련된 의혹도 터져나와 검찰의 압수수색도 단행됐다. 김 원장은 재벌개혁의 선봉에 서며 부정부패 척결에 앞장섰던 인물인지라 의혹 자체만으로도 큰 충격을 주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3일 입장문을 통해 “김기식 금융감독원장의 과거 국회의원 시절 문제되고 있는 행위 중 어느 하나라도 위법이라는 객관적인 판정이 있으면 사임토록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그러나 당시 국회의 관행이었다면 야당의 비판과 해임 요구는 수긍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며 “궁극적으로 국민들의 판단에 따라야 하겠지만, 위법한지, 당시 관행이었는지에 대해 먼저 확인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즉각 해임을 거절했다.
문 대통령은 김기식 원장의 행위가 당시 국회의 관행이었다고 치더라도 잘못된 관행이라면 척결하는 것이 옳다. 현 정부가 출범한 이유가 적폐청산이 아니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