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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자호텔] 역사 바뀐 그 곳…‘최형우’ 퇴장의 장소

기사승인 2018.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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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한국당 대의원 2/3 지지 받던 최형우…김덕룡·서석재와의 조찬 회동 중 쓰러져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정진호 기자) 

   
▲ YS와 최형우는 사선(死線)을 함께 넘나들며 민주화를 이룩한 동지였다. 실제로 최형우는 YS가 대통령에 오른 뒤에도 YS를 '형님'이라고 칭했다 ⓒ 시사오늘

1997년 2월, 서울 시내의 한 호텔 커피숍. 이원종 청와대 정무수석과 최형우 의원이 마주했다. YS(김영삼 전 대통령)가 대통령 자리에 오른 뒤, ‘좌형우 우동영’으로 불리던 최형우는 대권을 향해 거침없이 나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YS는 최형우를 자신의 후계자로 생각하지 않은 듯했다. 이원종은 이런 YS의 의사를 전하기 위해 최형우와 만난 것이었다.

“형님. 이런 식(대권 행보)로 움직이는 것은 각하께 도움이 안 됩니다. 자제해 주십시오.”

“형님(YS)한테 전해라. 나는 그만둘 수 없다고.”

“각하인들 왜 형님을 염두에 두지 않았겠습니까. 하지만 본선에서 힘들 거라는 판단 때문에….”

최형우는 정곡을 찔렸다. 신한국당 내 대의원 2/3의 지지를 받고 있는 그였지만, 정작 지지율은 한 자릿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한겨레신문>이 1997년 1월 1일자로 보도한 신한국당 대선 후보 지지율에서 최형우는 0.9%를 얻는 데 그치기도 했다.

『‘신한국당 예비후보 가운데 차기 대통령 후보로 가장 바람직한 인물’을 묻는 질문에 조사대상자 1500명의 33.5%는 박찬종 고문을 꼽았고, 25.2%는 이회창 고문을 꼽았다. 그 뒤를 이어 이홍구 대표가 10.7%의 지지를 얻었으며, 이인제(5.7%), 이수성(3.2%), 이한동(3.1%), 최형우(0.9%) 등 나머지 후보는 크게 낮았다. ‘신한국당 예비후보 가운데 차기대통령으로서의 자질을 갖춘 인물’을 묻는 질문에 대해서도 박찬종(33.7%), 이회창(24.8%) 등 선두주자에 다크호스로 이 대표(9.8%)가 뒤따르고, 나머지 후보들은 크게 뒤처지는 양상 그대로다.
1997년 1월 1일 <한겨레신문> ‘신한국 빅3 저만큼 앞서 뛴다’』

그러나 최형우는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이원종과 언쟁을 벌이던 최형우는 결론이 나지 않자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 바쁘다. 일어나야겠다. 아무튼 중단은 없다.”

“못 가십니다. 중단하겠다는 말씀을 하시기 전에는 못 가십니다.”

최형우는 이원종이 YS로부터 확실한 지시를 받고 자신을 만나러 왔다고 생각했다. 결국 다시 자리에 앉은 그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솔직히 말해. 무슨 답변을 들으러 온 거야.”

“각하께서 포기하겠다는 말을 받아오랍니다. YS 성격 아시지 않습니까.”

“좋다. 내가 들어가 형님(YS)하고 담판을 짓겠다.”

   
▲ 최형우가 쓰러짐으로써 대한민국 정치사가 뒤바뀐 장소, 프라자호텔은 여전히 서울시청 앞에서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 시사오늘

며칠 후, 최형우는 청와대로 들어갔다. 환하게 자신을 반기는 YS 앞에서, 최형우는 용건부터 꺼냈다.

“퇴임 후에 민주계를 살리고 형님을 살리는 방법은 이것(대권 도전)밖에 없습니다.”

YS는 자신이 대권에 도전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최형우의 말을 묵묵히 듣고 있었다. 그러더니 책상 서랍에서 서류뭉치를 꺼내 최형우 앞에 내놨다.

“나야 왜 너를 생각하지 않겠어. 하지만 이 보고서를 봐.”

보고서에는 최형우가 DJ(김대중 전 대통령)는 물론 정대철 등 야권 후보 누구와 맞붙어도 승산이 없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YS는 최형우 손을 꼭 잡고 대권 행보 중단을 당부했다.

“왜 온산(溫山·최형우의 아호)을 생각하지 않겠어. 하지만 사이즉생(死而卽生) 아니겠어. 이번만 참아줘야겠다.”

청와대를 나온 최형우는 불같이 화를 냈다. 일설에 따르면, 2층 청와대 집무실을 나서면서 계단 옆에 놓인 난을 집어던지기까지 했다. YS의 뜻을 거스를 수도, 그렇다고 대권 행보를 계속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1997년 3월 11일, 최형우는 프라자호텔 일식집 ‘고토부키’에서 김덕룡·서석재 의원과 조찬 회동을 갖는다. 여기서 세 사람이 무엇을 논의하려고 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이날이 최형우 정치인생의 마지막 날이었다는 사실, 그로써 대한민국 정치사가 크게 뒤바뀌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그날 저녁에 고향에 올라갔습니다. 이 양반은 어려운 일이 있으면 고향에 가는데, 고향에서 팔이 저리고 해서 밤새도록 주무르고 했습니다. (중략) 다음 날 새벽에 김덕룡 서석재 두 분과 조찬이 있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저는 7시에 비행기로 대구에 갔습니다. 그러다 9시가 되니까 제게 전화가 왔어요. 최 장관이 쓰러졌다고…. 서울대 병원으로 가니 의식은 있는데 입에 뭘 물려놓고 있더라고요. 너무 입을 꽉 다무니까…. 그 때 쓰러지기 직전에 테이블에 있는 컵을 잡으려다가 못 잡고 쏟은 다음에 벽에 기대었다고 해요. 김덕룡 서석재 두 분이 막 주무르고 했는데 옆으로 쓰러졌다고 해요. 이미 그 전날부터 뇌졸중이 온 것 같습니다.
2013년 6월 20일 <시사오늘> 최형우 “民山은 제도적 민주화를 이룬 밑거름”』

최형우가 쓰러지면서 구심점을 잃은 민주계는 신한국당 내 다른 후보들은 물론, 민정계·야당으로까지 뿔뿔이 흩어졌다. 난립했던 후보들의 ‘교통정리’도 이뤄지지 않았다. 여전히 서울 중구 소공로에 우뚝 서있는 프라자호텔(現 더 플라자)이 대한민국 정치사의 물줄기를 바꿔놓은 ‘역사의 현장’이 된 셈이다.

정진호 기자 sisaon@sisaon.co.kr

<저작권자 © 시사ON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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