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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도의 時代架橋] 위안부 갈등, ‘역사적 통회(痛悔)’와 韓日 미래

기사승인 2018.01.06  09:2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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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면합의 파열 격화일로
역사관 오류가 기본배경
해결과 북핵, 분리대응을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이병도 시사평론가)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한.일간 갈등기류가 예각화로 치닫고 있다. 최근 문재인 정부가 전임 박근혜 정부 당시의 양국간 이면합의 사실을 공포하면서 日 아베정부가 거세게 반발했다. 이어 한국 정부가 다시 분명한 '재협상' 의지를 밝히자, 여전한 日정부의 반발속에 이번에는 일본 언론 일각에서 마저 일본 스스로의 자세교정을 요구하고 나서는 등 초미의 쟁점으로 혼미를 거듭하고 있다.

한.미.일.중.북한 등 동북아 국제적 이해관계 정서가 최근 심상찮은 흐름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韓日간 '위안부' 사안과 갈등 재연이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파급 또는 조정, 귀결되어 나갈지 크게 주목된다.
그러나, 진실은 역시 '진실'이다. 역사적 진실은 있었던 진실 그대로 양국간에 공통 인식, 작동되는 것이 관건이다. 그런 교두보위에서 갈등을 조정할 수 있을 때만이 韓日관계도 비로소 미래지향적 발전을 위한 올바른 기반을 확보케 될 것이다. 현재 과거사를 둘러싼 양국간 충돌의 진상은 과연 어떤 것이며, 향후 진정한 화해의 길은 무엇이 되어야 할지, 그 현실과 해법(解法)을 추적한다.

충격적 비밀협상

지난 2015년 12월 28일 발표된 박근혜 정부와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부간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합의'는 그 내용이나 절차적인 측면에서 허점투성이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같은 사실은 문재인 정부의 ‘위안부 합의 재검토’ 작업이 5개월 만에 내놓은 결과물에서 밝혀졌다.

외교부 장관 직속 '한일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문제 합의 검토 태스크포스(TF)'(위원장 오태규)는 최근 2015년에 맺은 한일 위안부 합의가 피해자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지 않은 것은 물론, 밀실 협상으로 국민 정서와 동떨어진 결과를 도출했으며, 공개 내용 외에 이면 합의는 없었다는 주장도 거짓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즉, 한국과 일본 정부 사이에 '이면 합의'가 존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TF에 따르면, 양국 정부는 당시 공식발표와는 별도로 협상타결의 전제조건인 이면 합의를 통해 한국이 위안부 피해자 관련 단체 설득과 소녀상 이전, 위안부 호칭, 제3국 기림비 등과 같은 민감한 내용들에 대해 일본의 요구를 대체로 묵인(默認)해 준 것으로 밝혀졌다. 한국이 이를 사실상 수용하고 이면 합의로 숨겼다는 점은 충격적이다. 이같은 이면 합의는 이병기 당시 국정원장과 일본 야치 쇼타로 국가안보국장 간의 8차례 고위급 비밀협상에서 이뤄졌고, 한국 쪽에 부담이 되는 내용인 만큼, 공개되지 않았다는 것이 TF의 설명이다.

그러나, 그 ‘비공개’ 사안이 과연 ‘비공개’로 할 사안인지 근본적 의구심이 든다. 국가 간 협상에서 국민의 안보와 생명과 관련된 긴밀한 사안을 ‘비공개’로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소녀상’, ‘기림비’에 대한 정부 대응, ‘위안부’ 명칭 언급 등을 양국 정부가 과연 ‘비공개’로 할 사안이었는지, 그럴 권리가 있는 것인지 문제가 제기될 수 밖에 없다. 처음부터 ‘비공개’로 할 수 없는 의제들을 박 정부와 아베 정부가 상호 정치적 목적을 갖고 이를 은폐키로 한것에 다름없어 보인다. 

문제는 그 뿐 아니다. 당시 박 정부 청와대는 협상과 후속 조치 과정 전반을 주도하면서, 잠정합의안의 주요 문제점을 지적한 외교부의 검토 의견 조차도 묵살했을 뿐 아니라, 일 정부가 낸 위안부 피해자 지원재단 출연금 10억 엔의 액수 산정과 '최종적·불가역적(不可逆的) 해결 확인', '국제사회 비난·비판 자제' 등 위안부 합의의 핵심 부분을 사전에 피해 당사자인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제대로 알리지도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외교부는 잠정 합의 후 '불가역적'이란 표현의 삭제 의견을 냈으나, 청와대는 이 표현이 책임 통감 및 사죄 표명을 한 일본 쪽에도 적용할 수 있다는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얘기다. 또한 청와대가 외교부에 “국제무대에서 위안부 관련 발언을 하지 말라”고 지시한 사실도 밝혀졌다. 피해자들의 반발이 예상되는 朴 정권 일방의 허점투성이 합의였다고 하겠다.

특히, 크게 논란이 됐던 '불가역적'이란 표현은 한국측이 '사죄'의 불가역성을 강조하고자 먼저 거론했던 것이었는데, 합의 과정에서 오히려 위안부 문제 ‘해결’의 불가역성을 뜻하는 것으로 일본 측 주장대로 뒤바뀌고 말았다는 지적이다. TF는 이와관련, '최종적이고 불가역적 해결'이란 표현이 "일본 정부가 10억 엔 예산을 출연하는 것만으로" 위안부 문제의 모든 해결이 가능하다고 해석될 여지를 남겼다고 비판했다.

당시 발표된 공식 합의의 핵심은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책임 인정 △총리 자격으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사죄와 반성의 뜻 표명(기시다 후미오 외상 대독) △피해자 지원재단 기금 출연 등으로 돼 있다. 일본 정부의 공식 책임 인정과 아베 총리의 사죄·반성 표명은 이전보다 진일보한 것으로 평가되긴 했지만, 위안부 할머니들이 요구해온 '법적 책임 인정에 따른 법적 배상'과는 거리가 멀고, 사과·반성의 주체도 '일본 내각을 대표한 총리'가 아니라 '아베 총리 개인' 자격이었다. 그럼에도, 朴 정부는 "위안부 문제가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해결될 것임을 확인한다"고 이면 합의를 해주고 말았던 것이다.
이번에 다시 문 대통령의 '재검토' 선언이 나오는 등 양국간 파열음의 결정적 계기가 된 것은 TF가 보고서에서 "피해자들이 수용하지 않는 한 정부 사이에 최종적 불가역적 해결을 선언했더라도 문제는 재연될 수밖에 없다"고 결론을 맺었기 때문이다. 

   
지난 2015년 윤병세 외교부 장관(오른쪽)이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일본의 기시다 후미오 외무상과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한일 외교장관 회담´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졸속처리 배경

비공개 '이면합의' 내용을 좀 더 구체적으로 보면, 일본이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등 피해자 관련 단체를 특정하면서 한국 정부에 설득을 요청했고 △제3국에 기림비 등을 설치하는 것을 한국 정부가 지원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으려 했으며 △한국 측이 '성노예'(sexual slavery) 표현을 사용하지 말 것을 원했고 △주한 일본대사관 앞의 소녀상을 어떻게 이전할 것인지, 구체적인 한국 정부의 계획을 집요하게 물은 것으로 돼 있다.

이런 요구들은 민간 차원의 사안인 만큼 한국측이 명확한 한계의 선을 그었어야 했는데도, 朴 정부는 이를 사실상 방치 묵인, 日 정부의 외교 정략적 활용도를 높혀주고 만 것이다. 위안부의 공식 명칭을 일본 측 요구대로 ‘성노예’가 아닌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 바꾸기로 인정해 준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당시 위안부 합의 직후부터 일본이 왜 소녀상 이전을 한국이 합의해준 것처럼 국제사회에 공공연화 시키고, 최종적·불가역적 해결을 주장하며 적반하장의 태도를 보였는지, 그 배경이 이제야 이해되는 대목이다. 어설프게 신속히 마무리하려다, 日 아베정권의 정략에 그대로 말려들고 말았다.

이제, '12·28합의'에 문제가 많았다는 점은 이론의 여지가 없게 됐다. 일본 정부의 법적인 ‘배상’ 책임을 명기하지도 못한 채, 위안부 할머니들과 소통도 제대로 하지 않고 일본 정부예산 10억 엔을 받기로 했으며, 인권이 걸려 있는 문제에 써서는 안 될 ‘불가역적’이란 문구까지 명기해 버렸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당시 朴 정권은 韓日간 최대 역사적 현안을 왜 이렇게 졸속 처리하고 말았는가. 후폭풍이 예견되는 이런 합의를 박 정부가 해준 데는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인 2015년 연내에 위안부 문제를 타결한다는 당시 박 대통령의 '강한 의욕'이 작용했다는 전문이다. 그러다 보니, 피해자인 위안부 할머니들 중심이 아닌, 정부 중심의 편의주의적 결정을 해버린 것이다.

그외에, 당시 국제정세도 이같은 졸속 부실의 합의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진단된다. 對중국 포위 전략을 위한 한·미·일 3각 협력 강화가 절박했던 미국이 한일관계 개선을 위해 위안부 문제의 조속한 타결을 한국에 압박한 것이 영향을 줬다는 분석이다. 결국엔, 전시 여성 인권에 관해 국제사회의 규범으로 자리 잡은 피해자 중심적 접근이 韓日간 위안부 협상 과정에서는 제대로 반영되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일반적인 외교 현안처럼 주고받기 협상으로 처리되고 말았다는 게 TF 측 설명이다.

국내 후유증 확산

문제는 이같은 파장의 한국 국내 후유증도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는 협상 진행 도중 피해자 쪽에 때때로 관련 내용을 설명하기는 했지만, 최종적·불가역적 해결 확인이나 국제사회 비난·비판 자제 등 한국 쪽이 취해야 할 '이면 조치'가 있다는 사실은 구체적으로 알리지 않았다. 사실상 피해 할머니들을 속인 셈이다. 이와 관련, 여성가족부는 ‘화해·치유재단’이 피해 할머니들에게 위안부 문제 합의의 긍정적인 면만 부각시키고 현금 수령을 강권한 사실이 드러났다며 사과의 뜻을 밝히기도 했다. 이 때문에 돈을 받은 사람과 받지 않은 사람으로 나뉘어 한·일 갈등 구도가 한국 내부의 갈등 구도로도 바뀌었다.
이처럼 지난 한·일 위안부 문제 합의는 국내외 적으로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만큼, 굴욕적인 합의 내용과 비민주적인 과정을 볼 때 당장 폐기해야 마땅하다. 지난 대선에서 문 대통령이 성(性)평등 공약으로 ‘굴욕적인 12·28 위안부 협상 무효화와 재협상 추진’을 내놨던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지금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조차 “외교가 아니라 뒷거래”라고 할 만큼 모든 후보가 재협상이나 파기를 요구했던 것도 그런 연유였다. 위안부 피해자 지원단체인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는 이번 TF 발표와 관련해 “즉각 한·일 합의 폐기를 추진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국내적 시각으로만 보면 '합의 파기'의 당위성이 그만큼 높은 셈이다.

문제는 국내외에 걸친 이같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출구를 찾기가 결코 쉽지 않다는 점이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최근 이와관련, "TF 결과를 십분 수용하되, 문제의 직접 당사자인 피해자, 지원단체와의 소통을 통해 (정책을) 정립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2015년 합의 당시 위안부 생존자는 46명이었고, 이 중 36명이 합의에 이미 찬성했으며, 현재 생존자 32명 중 일본 정부가 제공한 위로금을 수령한 할머니도 24명이나 된다. 따라서 이같은 측면 또한 진행과정을 되돌리는 데 난제의 요소로 여겨진다.

기본적으로 이 합의 과정에서 '피해자 중심주의'를 도외시하는 등 여러 가지 실책이 드러난 것은 사실이다. 일각에서 '외교참사'라는 지적이 나올 정도이고, 일본에 대한 국민감정만 더 나빠지게 됐다. 그렇지만, 이에 반해 국가 간 합의를 파기하거나 거둬들이면 국격훼손, 신인도 추락 등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가 큰 것 또한 사실이다. 문 정부가 합의를 깨자니 한·일 협력이 아쉽고, 유지하자니 근 5개월간의 TF 활동을 헛수고로 돌려야 하는 딜레마에 직면한 형국이다.

정부간 추가갈등

문제는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당장 피해자인 위안부 할머니들 측에서는 "위안부 합의는 권력의 독단으로 밀어붙인 것으로 폐기해야 한다"고 촉구했지만, 고노 다로(河野太郞) 일본 외무상은 “민주적으로 뽑힌 정상들 아래서 모든 레벨의 노력 끝에 이뤄낸 합의”란 주장과 함께 "한국 정부가 합의를 변경하려 한다면 한일관계가 관리 불가능하게 된다. 합의 변경 요구가 있어도 결코 수용할 수 없다"고 미리 쐐기를 박고 나섰다.

국가간 갈등 조짐은 더욱 점입가경이다. 한국 정부가 이면합의 사실을 공개해 버리자 일본은 아베 신조 총리가 직접 나서,  “한일 위안부 합의는 1mm도 움직이지 않는다”고 못박았을 뿐 아니라, 日 정부와 언론 일각에서는 아베 총리의 평창올림픽 개회식에 참석해선 안 된다며 북핵 공조에도 이상이 있을 수 있다는 주장까지 하고 나섰다.

이같은 일본 당국자들의 반격에, 한국 정부가 TF보고서에 기초하여 다시 반발, 문 대통령이 직접 “2015년 한일 정부 간 위안부 협상은 절차적으로나 내용적으로나 중대한 흠결이 있었음이 확인됐다”며 빠른 시일 안에 후속 조치를 마련하라고 공개 지시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합의가 양국 정상의 추인을 거친 정부 간 공식 약속이라는 부담에도 불구하고 이 합의로 위안부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는 점을 다시금 분명히 밝힌다”고도 했다. 재협상 또는 합의 파기라는 말을 하지는 않았어도 사실상 파기를 시사한 것이다.

일본 정부는 문 대통령의 새로운 지시가 나오자 예상대로 또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고노 외무상은 "'전 정권이 한 것은 모른다'라고 한다면, 앞으로 한일 간에는 어떤 것도 합의하기 힘들다"고 거듭 쐐기를 박았고, 보다 직접적으로는 가나스기 겐지(金杉憲治) 외무성 아시아대양주 국장이 문 대통령 입장문 발표직후 주일 한국대사관 간부에게 "(위안부) 합의의 유지 이외에 정책적 선택지는 없다"는 우려를 전달했다고 교도통신이 보도했다. 

이런 파열음 속에 청와대는 '대통령의 소회'라고 한발 물러서긴 했지만, 문 대통령의 입장 발표로 한일 관계는 최악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게 된 것이 현실이다. 위안부 문제는 한국으로선 참으로 예민한 상처다. 그럼에도, 일본 정부는 합의이후에도 진정한 사죄는 커녕 위안부 존재 자체까지 격하하면서 “10억엔의 합의금으로 모두 끝난 얘기”라는 식으로 일관해 왔다. 그러다 이번에 한국 정부가 이면합의를 공표하자, 합의 파기나 재협상을 선언한 것이 아닌데도, 한일관계 파탄 운운하며 반격을 가해 오고 있는 것이다.

아베정권 역사인식

이같은 일본 정부의 자세는 근본적으로 아베 정권의 잘못된 역사관에 기인한다. 최근 아베 정권이 전쟁가능국 변신을 위한 평화헌법 개헌 야욕을 드러내고 있지만, 일본 국민의 절반 이상은 개헌에 부정적인 것으로 나타났다고 도쿄신문이 지난 3일 보도했듯, 일본 정치지도층의 역사인식은 최근 거듭 문제가 되고 있다.

아베 총리는 지난 2013년에도 군복을 입고 탱크에 오르거나 ‘천황 폐하 만세’를 외치고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한 데 이어, 침략의 정의가 정해지지 않았다고 발언하는 등 망언과 기행을 일삼았다. 일본 각료들을 군국주의 상징인 야스쿠니 신사에 떼지어 참배케 하고, 일본군 성노예 강제 동원 사실을 부정하도록 부추긴 것도 아베 총리다. 그의 언행은 사실 수년전 부터 한국 중국 등 일제의 피해국은 물론이고 양식 있는 세계인의 공분을 살 정도였다.

한때는 일본 내 항공 자위대 기지를 시찰하면서 관동군 세균부대인 '731 부대'를 연상케 하는 전투기에 탑승해 사진을 찍기도 했다. 문제는 아베 총리가 앉은 조종석 바로 아래 항공기 동체에 일장기를 상징하는 붉은 원과 '731'이라는 숫자가 선명하게 그려져 있다는데 있었다. '731'이라는 숫자는 중일(中日) 전쟁 당시 인간 마루타에 대한 생체실험으로 악명이 높은 '731부대'를 연상케 했다. 1932년부터 1945년까지 만주 하얼빈 일대에 주둔한 日 '731 부대'는 산사람을 ‘마루타(통나무)’라고 부르며 생체실험을 실시, 한국·중국·몽골·러시아인 등 3000여 명의 목숨을 앗아갔으며, 최악의 전쟁범죄로 기록돼 있다.

뿐만 아니라, 아베 내각은 최근처럼 지난 2014년에도 내각회의에서 "집단자위권 행사가 헌법상 허용된다"는 새로운 헌법해석 채택을 강행하려 했었다. 즉, `전쟁할 수 있는 국가'로의 전환을 그 때도 사실상 선언했다. 당시 日 각의 결정문은 "일본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타국에 무력공격이 발생해 일본의 존립이 위협받고, 국민의 권리가 근저로부터 뒤집힐 명백한 위험이 있는 경우 필요 최소한도의 실력행사는 자위의 조치로서 헌법상 허용된다는 판단에 이르렀다"고 주장했었다. ‘밀접한 나라. 명백한 위험’ 이란 모호하고 애매한 표현은 일본의 판단에 따라 전쟁을 할 수 있다는 뜻에 다름아니었다.

그 때도, 마이니치신문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일본인의 58%가 집단 자위권 행사에 반대했다. 그럼에도 아베 총리는 ‘전후체제 탈피’를 명분으로 내세워 2차 세계대전 후 일본 정부가 국제사회에 한 약속을 스스럼없이 지워가려 했던 것이다. 이에 따라 2차 대전 패전국인 일본은 이제, ‘전쟁할 수 있는 나라’는 물론 ‘공격받지 않아도 공격할 수 있는 나라’가 되려 하고 있고, 1945년 태평양 전쟁 이후 70년간 이어져 온 전후 질서의 틀을 깨고 사실상 언제든 전쟁을 벌일 수 있는 국가로 나아가는 첫걸음을 내디디려 하고 있는 것이다. 아베 정권의 이같은 행보는 국내외적 비판 여론에도 아랑곳 하지 않은채 계속 진행되고 있다.

아베 정권은 그 외에도, 안팎의 반대 여론을 무릅쓰고 특정비밀보호법 제정, 국가안전보장회의 설치, 무기수출 3원칙 폐기, 방위계획대강 재개정 등을 밀어붙였다. 이른바 우경화의 불길을 계속 지피는 형국이었다. 부끄러운 역사를 부정하고 지워버리려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아예 정당화하려는, 매우 위험한 일련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아베 총리 취임 후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는 일본의 이같은 '반(反) 역사적' 움직임은 여간 우려스러운게 아니다. 침략의 역사를 참회할 줄 모르는 일본 정치가 걱정되는 것은 일본인의 역사 의식을 마비시키는 결과를 낳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이 43년 동안이나 세계 2위의 경제력을 유지하면서도 동북아에서 조차 리더로 인정받지 못한 이유도 바로 이런 지도층의 치졸성 때문일 것이다.

역사의 시곗바늘을 거꾸로 돌리려는 일본의 행보는 결코 묵과될 수 없다. 일본은 지금이라도 주변국에 고통을 안긴 역사를 망각한 듯한 반(反) 문명적 행보에서 탈피, 과거사에 대한 진심어린 회개가 있어야 한다. 침략의 역사를 사죄하기는 커녕 미화하고, 반인륜적 위안부 강제동원에 대한 과거 정권의 사과마저도 `검증'이라는 구실로 뒤집어버린 아베 정권의 잘못된 역사인식은 한국에도 불가피한 대처방향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미·중·일 삼각 대치를 헤쳐갈 능동적 자주 외교가 절실함을 다시 일깨우고 있는 것이다. 획일적이고 전면적인 협력에서 사안별, 선별적 협력의 지혜를 발휘해야 할 때다.

   
지난 2015년 윤병세 외교부 장관(오른쪽)이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일본의 기시다 후미오 외무상과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한일 외교장관 회담´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韓日관계, 한계와 미래 

그런 측면에서, 박정희 군사정권이 정상화한 한·일관계는 과거사 청산 문제에서 태생적인 취약점을 갖고 있다.

지금까지 한일관계의 갈등공식은 일본이 원인제공을 하고, 한국이 이에 대응하는 형태로 이뤄져 왔다. 수 차례 되풀이 돼온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파동이 그랬고, 독도 갈등이 그러했다. 일본 역대 총리들의 야스쿠니 (靖國) 신사참배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 같은 반복적인 패턴은 일본의 근본적인 변화, 즉 과거사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반성이 없는 한 계속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독도분쟁과 함께 이번 위안부 문제로 다시 떠오른 역사 갈등은 양국관계를 65년 국교정상화 이전으로 후퇴시킨 듯한 양상으로 까지 비친다. 위안부 문제는 일본이 어떻게 사죄를 하고 어떠한 대가를 치러도 국민적 분노가 온전히 사그라지기 힘든 과거다. 박 정부가 국민들에게 합의 내용을 알려준 뒤 동의를 얻는 데 얼마나 시간이 든다고 70년도 더 된 문제를 그렇게 급히 매듭지어야 했는지 실로 의문이 들 정도다.

최근 일본의 행태는 잘못된 역사를 전면 부정하는 것이다. 같은 전범국이면서도 진심어린 사죄와 반성을 한 독일과는 완전히 다르다. 오히려, 국내 우익화 추세에 발맞춰 잘못된 과거를 더욱 강하게 은폐하려 하고 있다. 난징 대학살을 부인하고, 역사 교과서에서 식민지배를 미화하는가 하면, 전범들의 위패를 안치한 야스쿠니 신사에 정부 각료들이 다시 참배하는 것 따위가 그 생생한 예다.

그렇다면, 실질적으로 일본은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 참된 언행의 일치는 일본의 ‘한일병합조약의 원천무효 선언’으로부터 시작돼야 옳다. “한일병합이 국제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침략을 정당화하는 일본 역사학계의 논리는 이제 원천적으로 뿌리 뽑혀져야 마땅하다. 이를 기반으로 한일 간에 가로놓인 역사 왜곡, 강제징용자 배상, 독도 영유권 주장과 같은 모든 장애를 제거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와 관련, 한 때나마 일본 내부에서 불었던  ‘군 위안부 문제를 국가 차원에서 공식사과하고, 배상해야 한다’는 25개 일본 지방의회의 결의, 미쓰비시 중공업의 강제노역 한국인에 대한 보상 협상 움직임등은 일단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했다.

일본은 역시 독일의 교훈을 받아들여야 마땅하다. 독일은 2차대전 패전 후 폴란드 등 피해국들에 국가 차원의 배상을 하고 나치 시대에 독일 기업에 동원된 외국인에 대해서도 일정한 개별 보상을 했다. 그런데도 개별 보상에 대한 논란이 다시 일자, 1998년 집권한 사민당과 녹색당이 기업들과 공동으로 100억 마르크(약 6조원)의 기금을 만들어 전시(戰時) 피해자 보상을 위한 '기억 책임 그리고 미래재단'을 출범시켰었다.

그러면서, "도덕적 책임감과 연대감, 그리고 자기 존중심에서 출발해 (전쟁 피해자들에게) 확고한 인도적 신호를 보내자"는 공개취지를 내걸었다. 이 기금은 결국 중부·동유럽 출신 '노예노동 및 강제노동' 피해자들의 상처를 아물게 하는 데 도움이 됐다. 과거를 기억하고 그 과거를 씻을 줄 알았던 독일은 그 후에 역시 통일을 이루고 유럽의 중심 국가 자리를 되찾았다. 일본은 독일을 배워야 만 한다.

현재 한국과 일본은 지리적으로 인접해 있을 뿐 아니라 경제적·국제정치적으로 밀접한 관계다. 그럼에도 두 나라 관계의 밑바탕에는 항상 불안함이 깔려 있다. 과거사나 독도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양국 관계는 바닥으로 떨어지곤 했다. 이러한 불안한 관계는 중국의 급부상과 함께 동북아 정세의 불안정성에도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양국 모두에 '불행한 현실'임이 선명하다. 한.일간의 긴밀한 협력관계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북한의 군사력 증강과 도발, 그리고 중국의 경제적 군사적 급부상에 함께 대처해야 할 필요성도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국면 탓이다. 

對일본 요구

그렇다면, 당장의 현안인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의 對韓자세는 그동안 실제 어떠했는가.  ‘위안부’ 합의 직후, 당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상이 박 전 대통령에게 아베 총리의 사과 뜻을 대신 전한 게 한국에 대한 사과의 전부였다. 박 전 대통령이 ‘위안부’ 피해자인가.

당시 박 정부는 △아베 총리의 서면 사과 △주한 일본대사의 ‘위안부’ 피해자 직접 사과 △일본의 법적 책임 인정 및 ‘위안부’ 피해자들이 납득할 만한 수준과 형식의 피해자 지원 등을 일본에 요구했다고 하지만, 아무것도 이뤄진 게 없다. 오히려 지난해 10월 아베 총리는 의회에서 ‘사죄 편지를 할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 “털끝만큼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위안부 합의 이후에도 합의 정신과 무관하게 엉뚱한 정략적 행위로 일관해온 일본 정부가 오히려 한일 관계 경고 운운의 협박을 가하는 것은 가당치도 않다. 일본 당국은 크게 반성해야 한다. 최근 일본 언론들조차 “위안부 합의의 핵심 정신은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와 존엄 회복”(아사히신문), “일본 정부는 ‘피해자 관점이 결여됐다’는 보고서 지적에 겸허히 귀를 기울여야 한다”(도쿄신문)고 언급하는 점에 일본 정부도 주목해야만 할 것이다.

2015년의 한-일 위안부 합의안 어디에도 ‘피해자들의 명예와 존엄, 관점'은 들어있지 않다. ‘어쨌든 합의를 했으니 지키라’고 주장하는 건,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는 물론이고 국제사회에서의 일본 위상 제고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역사적 인권문제'에 관한 합의는 서로 유리한 걸 주고받는 식의 통상협정과는 성격이 전혀 다르다. 인류 공통의 가치를 되새기는 숭고한 작업이다. 이를 밀실에서 주고받기식으로 ‘거래’한 뒤 두 나라 국민에게 감추고 거짓말한 건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지금이라도 일본 정부는 두 나라가 ‘위안부 합의’에 왜 나섰는지를 돌아보고, 어떻게 하는 것이 한국과 일본의 미래지향적 관계에 도움이 될지 깊이 고민해야 한다. 합의의 본질은 일본 정부가 책임을 통감, 진심어린 사죄 반성과 함께 피해자들의 존엄을 회복하고 마음의 상처를 치유할 사업을 착실히 이행하는 것이다. 악순환의 고리를 풀려면 역사적 죄과가 큰 일본이 참회의 손을 먼저 내밀어야 한다. 사태 해결의 열쇠는 역시 원죄자인 일본이 쥐고 있다.

합의파기의 경우

만약, 사태가 악화되어 위안부 합의가 파기될 경우, 그 파기는 양국 관계가 사실상 파탄으로 가는 길이다. 문 대통령은 "역사 문제 해결과는 별도로 한일 간의 미래 지향적인 협력을 위해 정상적인 외교 관계를 회복해나갈 것"이라고 강조했지만, 합의 파기와 일본과의 미래지향적 관계가 병행 가능한 문제라고 보는 이들은 많지 않다.

위안부 합의 번복은 깊은 감정의 골에서 겨우 벗어나 회복되고 있는 한일 관계를 다시 미궁으로 몰아넣을 수 있다. 이와함께 당시 위안부 합의는 한·일 간 갈등 고조를 우려한 미국이 주선한 측면도 있어 자칫 미국과 불편한 관계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한국으로서는 문 정부가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문제로 한·미 관계에 평지풍파를 일으킨 데 이어 위안부 합의 문제로 한·일 관계까지 파국으로 접어들면 외교에 심각한 위기가 올 수도 있다. 벌써부터 외교가에서는 “향후 최소 2년여 동안 한·일 양국 사이에는 아무것도 되는 일이 없을 것”이라는 탄식들이 흘러나올 정도다.

아무리 국가간 합의라 하더라도, 그 과정이 졸속이었거나 일방이 그를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합의를 재검토하고 조정하는 게 순리다. 처지를 바꿔 일본 내에서 이런 문제가 발생해 국민 다수가 합의 파기를 주장할 경우, 일본 정부는 외교 합의라는 이유로 그 여론을 무시할 수 있겠는가. 일본이 기존 태도에서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는다면, 한일 위안부 합의는 파기 쪽으로 기울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뒤 한일 관계가 어떻게 전개될지는 불을 보듯 명약관화(明若觀火)하다.

문 대통령과 아베 총리는 지난 7월 독일 함부르크 첫 정상회담 때 미래지향적 관계 구축을 대원칙으로 셔틀외교 복원 등 다양한 계기를 통해 화해 분위기 조성에 노력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한일 모두 앞으로도 이 원칙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한국, 외교권 확장을

위안부 합의가 잘못됐으면 바로잡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합의를 파기하거나 수정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무엇보다 국가 간 합의를 뒤집은 데 따른 국가 신뢰도 추락을 감수해야 한다. 특히 오늘날 한일 양국 앞에 놓인 현안을 고려하면 고민은 더 깊어진다. 지금은 합의가 이뤄진 2015년 12월보다 동북아 정세가 훨씬 살얼음판이다. 북한의 핵무기 완성이 이미 3개월 시한으로 카운트다운에 들어가 그 어느 때보다도 한·미·일의 공조가 중요한 국면이다.

결국, 대북 안보 측면에서는 공조의 큰 틀을 훼손하지 않는 자제력이 중요하다. 양국 간 불행했던 과거 역사에 지나치게 얽매이다 보면 미래는 오지 않는다. 안타까운 것은 비록 전임 정부가 부실한 합의를 했더라도, 정부 간 약속은 일방적으로 바꾸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합의 과정에 중대한 흠결이 있었다고 해도 국가 간의 합의를 뒤집는 것이 정당화될 수도 없고 국제사회에서 신뢰를 잃을 수 있다.

한국으로선, 이미 대통령이 입장을 발표했으니 추가 조치를 내는 건 불가피하다. 하지만 뜨거운 감성이 아닌 냉철한 사고가 요청된다. 우리 정부로선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면서, 이번 발표가 양국 관계에 미칠 악영향을 최소화하는 게 상책이다. 피해그룹의 진심을 충분히 반영하면서도 국익도 최대한 챙길 수 있는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

따라서, 합의의 기본틀을 유지하되 일본 정부의 진정한 사과를 전향적으로 끌어내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양국이 대국적인 자세에서 외교력을 발휘해야 한다.

물론, 일본은 역사에 씻을 수 없는 죄를 저질렀다. 그렇지만, 역사 문제는 단기적 외교 협상으로 해결되기 어렵다. 역사적 정의·인권이라는 가치와 한·일관계의 개선이라는 현실적 과제가 부딪치는 상황에서 조화를 추구하면서도 미래를 고려하는 자세가 긴요하다. 위안부 합의에 문제가 있다면 뚝심 있게 물밑교섭을 통해 일본의 진정한 반성여부를 엄중히 다뤄나가면 될 일이다. 이와함께 위안부 문제를 한.일 통화스와프 재개 등 경제협력 및 북핵공조와는 분리 대응한다는 기조를 밀도있게 추구해야 한다. 이를 통해 한국의 외교 주도권을 넓혀 나가는 자세가 중요하다.

   
 

이병도는…

1952년 경남 진양에서 출생했고 서강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 1979년 동양통신 기자로 언론계에 입문한 후 1981년 연합뉴스로 자리를 옮겨 정치부 야당출입 기자로 오랫동안 활동해 왔다. 저서로는 , <6공해제>, <97년 대선 최후의 승자는> 등이 있다.

이병도 시사평론가 sisaon@sisa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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