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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代散策] 홍문표 ˝바른정당, 반기문 품기 위해 만들어졌다 ˝

기사승인 2017.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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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한국당 홍문표 사무총장
"길 아니면 안 간다"…50년 한 정당에
차떼기가 선풍기면 최순실은 에어컨
반기문 포기에 좌파 집권 막으려 복당
한국당, 원외호소 통해 반등 시작했다
미래 생각하는 중심있는 정치가 목표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글=홍문표 정리=김병묵 기자)

“홍 선배가 움직일 때는 이유가 다 있는 것 아니겠나.”

바른정당 김무성 의원이 지난 대선정국에서 한국당으로 복당하는 자신의 측근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들었다.

실제 정치를 하면서 숱한 위기와 유혹에도 단 한 번도 사심(私心) 때문에 당적을 옮긴 적이 없었다. 그러나 지난 2016년, 정치권 초유의 사태 속에서 나는 바른정당으로 갔다가 다시 자유한국당으로 돌아왔다. 나를 아는 이들은 모두 놀라워하고, 한편으론 궁금해 한다. 결론부터 간단히 말하자면 나의 정치 신념은 늘 한결같았고, 이번에도 소신에 따라 행동했을 따름이다. 어느새 시간이 흘러 벌써 지난 정권의 일이 된 지금, 20일 사무총장실을 찾은 기자들에게 그 막전막후(幕前幕後)를 들려줬다.

   
▲ 처음부터 야당으로 시작한 탓에, 군사정권의 감시와 탄압이 심했음은 물론이고 경제적으로는 생계를 꾸리기조차 쉽지 않았다. 그 때 신조가 생겼다. 길이 아닌 곳은 가지 말아야 하며, 옳지 않은 일은 하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지금도 이 생각은 변함이 없다. ⓒ시사오늘 윤지원

    
 길이 아닌 곳은 가지 말아야 한다

이야기에 앞서 내가 걸어온 길을 잠깐 되짚어 봤다. 1967년 2월, 유진오 박사가 국회의원이 될 당시 나는 그의 선거운동원이었다. 처음부터 야당으로 시작한 탓에, 군사정권의 감시와 탄압이 심했음은 물론이고 경제적으로는 생계를 꾸리기조차 쉽지 않았다.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어려웠지만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희망으로 버텨나갔다. 그 때 신조가 생겼다. 길이 아닌 곳은 가지 말아야 하며, 옳지 않은 일은 하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지금도 이 생각은 변함이 없다.

 물론 당적을 바꿔야 할 상황은 수차례 있었다. 여당을 하고 싶은 욕심도 있었지만, 소신까지 꺾으면서 그럴 순 없었다. 김영삼(YS) 전 대통령이 삼당합당을 할 때도 따라가지 않고 당에 남아 있었고, 1995년 김대중(DJ) 전 대통령이 새정치국민회의를 만들 때도 따라가지 않고 꼬마민주당에 남아 있었다. 꼬마민주당이 이후 신한국당과 후보단일화를 하며 합당협의를 하자 국민회의에서 파격적인 제의가 들어왔다. 노무현 전 대통령, 김원기 전 국회의장 등이 국민회의로 이동했지만 하지만 나는 그 때도 움직이지 않았다. 가끔 주변의 지인들이 이야기하길 그 제의를 받았다면 아마 5선은 했을 것이라고 아쉬워한다. 물론 내 소신에 따른 일이었기 때문에 후회는 조금도 없다. 그리고 합당으로 난 한나라당 소속이 됐고, 제18대 총선에서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와 맞붙었을 당시에도 제안이 왔다. 출마를 포기하고 선진당으로 오면 비례대표 한 자리를 주겠다는 내용이었다. 물론 거절했다. 그 선거는 완패했지만 결과적으로 나는 19대, 20대에서 재선했다. 뚝심의 승리였고, 소신의 승리였고, 내 지역구인 홍성·예산 군민들의 승리였다.

   
▲ 이회창이 불러도 안 갔던 당신이, 왜 바른정당으로 갔냐는 질문을 받았다. 크게는 두 사람 때문이라고 보면 된다. 한 사람은 반기문, 한 사람은 박근혜다. ⓒ시사오늘 윤지원

불균형의 한국, 충청대망론을 꿈꾸다

이때까지 단 한 차례도 탈당을 하거나 고향을 떠나는 일 없이 한 당, 한 지역구를 지키면서 나는 몸이 무거운 정치인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내 오랜 정치경력에 대한 경의를 표하는 의미로 나를 선배라고 불러주는 4선, 5선 정치인들도 있다. 김무성 의원도 그 중 한사람이다. 그리고 그런 이들이 내게 물었다. 이회창이 불러도 안 갔던 당신이, 왜 바른정당으로 갔냐는 질문이다. 크게는 두 사람 때문이라고 보면 된다. 한 사람은 반기문, 한 사람은 박근혜다.

 바른정당은 반기문 전 UN 사무총장을 담기 위한 그릇이기도 했다. 대선과 관련한 반 전 총장 얘기를 들은 것은, 2016년에 그가 방한했을 때다. 그 때 정진석 의원이 원내대표, 내가 사무부총장을 하고 있을 땐데 5월 25일 제주포럼 환영 만찬에 초청을 받고 갔다. 그런데 이미 언론에서 반 전 총장이 대선 출마를 하느냐 마느냐 가지고 세간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을 때다. 거의 대선에 나가는 쪽으로 정리가 된 상황에서, 반 전 총장의 핵심 참모라는 인물이  포럼에서 내게 연락처를 줬다. 언론에서는 거의 반 전 총장이 나오는 쪽으로 보도를 하고 있고, 나도 그 핵심 인물을 통해 확인해 본 결과 사실상 출마가 확정됐다는 거다. 정 의원도 나와 비슷한 시기에 다른 채널을 통해 이 사실을 들었고,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인데 김무성 의원도 또 다른 쪽에서 들은 정보로 확신을 하게 됐다고 하더라. 그 때 내가 든 생각은 충청권 출신 대통령에 대한 생각이었다.

이명박(MB) 정부 때 내가 MB에게 가서 했던 이야기다. 내가 대통령직 인수위원이 됐을 때 MB에게 가서 들이댔다. ‘대한민국은 불균형한 나라입니다’라고 했더니, MB가 그게 무슨 소리냐고 했다. 그래서 ‘영남과 호남은 정권을 서로 번갈아 가면서 쥐어서 예산을 투입했고, 그 결과 교통망이 확충됐고 투자가 이뤄졌습니다. 그런데 충청은 여전히 일제가 놓은 장항선 단선으로 다니는 중입니다’ 라고 하면서 지도를 보여줬다. MB는 원래 건설업자 출신 대통령 아닌가. 지도를 보자마자 바로 알더라. MB가 ‘제도적으로 개선해야지. 한 번에 어떻게 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했었다. 국회에 충청 출신 예결위원장도 내가 최초다. 무려 55년간 충청 출신 예결위원장은 나오지 않았었다.

이런 상황에서 충북 출신이고 국제기구의 수장까지 맡아본, 정치 때가 비교적 묻지 않은 반기문이라는 인물이 등장했다. 충남이 지역구인 정진석도 반대할 이유가 없고, 김무성은 여기에 개헌까지 얹어서 새로운 판을 짜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들 각자의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요는 반기문 중심의 새로운 정치 구도를 만들어서 한국 정치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은 같다. 마침 정계의 분위기는 거의 대부분의 정당이 새로운 인물, 새로운 사람을 통한 새 정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던 때였다. 반 전 총장 출마를 우리 당에서 돕겠다는 말이 나왔고, 사실상 약 70~80명 정도가 뜻을 함께 하기로 했었다.

그런데 당 내부에선 강성 친박계가 반대를 시작했다. 그 때만 해도 워낙 친박계의 힘이 드세고 강압적이었던 때다. 반 전 총장은 사실상 결심을 굳혔는데, 한국에서 내부 정리가 되지 않고 있었다. 그 와중에 김종인 전 민주당 대표나 국민의당 박지원 의원 등의 주장으로 ‘빅 텐트론’이 이곳저곳에서 펼쳐지기 시작했다. 반 전 총장은 아마도 자신을 중심으로 한 ‘빅 텐트’라고 생각했을 것 같다. 그런데 막상 귀국을 해서 선거에 뛰어들려고 보니, 자기를 부른다는 정당은 내부 정리가 안 돼서 국회의원도 한 명도 공항에 나오지를 않고 있는 거다. 그 와중에 빅 텐트라는 것이.., 김종인은 자신을 위한 텐트, 박지원도 자신을 위한 텐트로 흘러가는 모양새였다. 반 전 총장이 실망할 만한 상황이었다.

차떼기가 선풍기면 최순실은 에어컨

친박계 설득을 시도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이미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조짐은 이미 포착됐었다. 일본에서 먼저 이야기가 나온 것을 들었다. 나는 한나라당 당시 차떼기 파동을 직접 온몸으로 겪어 본 사람이다. 그것과 비추어 볼 때, 이건 비교도 안되게 큰 거대 게이트인 느낌이 왔다. 차떼기가 선풍기라면, 최순실은 에어컨이다. 차떼기는 기업인 11명에게 돈을 받아서 선거에만 썼던 사건이다. 그럼에도 당사 빌딩, 연수원을 비롯해 당의 모든 재산을 팔고 남은 돈도 국고에 반납한 뒤, 천막당사를 치고 국민들에게 용서를 빌어서 간신히 살아났다.

그런데 이 최순실 국정농단은 대한민국 안 건드린 곳이 없는 어마어마한 일이다. 나는 상황이 심각한 것을 알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을 빨리 당에서 내보내고, 당을 해산하고 용서를 빌고 새로운 전당대회를 하지 않으면 국민들이 용서할 사안이 아니라고 했다. 하다못해 정치 전략상으로라도 후퇴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그러나 친박계의 핵심들은 오히려 박 전 대통령을 감싸기만 하는 거다. 내게 ‘친박계인 내가 모르는데 당신이 어떻게 아느냐’라든가, ‘대통령이 누군데 그렇게 (최순실에게) 놀아날 것 같으냐’라고 오히려 면박을 줬다.

상황은 점점 악화됐다. 반 전 총장을 품기 위한 정당으로서도, 친박계가 고집을 부리는 당에 더 이상 있지 않기 위해서도 새누리당을 나와야 했다. 그게 바로 바른정당이다. 하지만 반 전 총장은 앞서 말했듯 자신이 생각한 국내 상황과 직접 겪은 환경이 너무 달랐고, 결국 중도 포기하고 말았다.

반기문의 포기, 좌파 대통령은 막아야 한다

   
▲ 나는 사회주의에 가까운 사람들이 당선되면 안 된다고 봤다. 문재인 집권은 막아야 했다. 그래서 내놓은 카드가 대통합론이다. 그래서 홍준표, 안철수, 유승민이 통합을 했으면 좋겠는데 모두가 거부했다. ⓒ시사오늘 윤지원

반 전 총장이 포기하니까 너무 허망했다. 바른정당이 만들어진 이유의 절반이상이 사라지지 않았나. 특히 충청권 대통령에 대한 꿈을 가지고 있던 나는 더 심했다. 하지만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고, 대선은 점점 다가왔다. 정신이 들었을 때 보니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 중에 선두를 달리고 있었다.

문재인, 심상정은 좌파 후보다.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를 정치적 지표로 내걸고 있는 나는, 이런 사회주의에 가까운 사람들이 당선되면 안 된다고 봤다. 문재인 집권은 막아야 했다. 그래서 내놓은 카드가 대통합론이다. 그래서 홍준표, 안철수, 유승민이 통합을 했으면 좋겠는데 모두가 거부했다. 홍준표는 제일 먼저 우선 거부했다. 그리고 안철수는 한참 지지율이 올라가던 때다. 거의 문재인을 턱밑까지 추격하자, 통합 안 해도 이긴다고 생각해서 거부했다. 그래서 확실한 승리를 원하는 박지원과 갈등이 생겼던 거다. 자만이었다. 그리고 유승민은 대통령을 하고 싶은 마음이 확고했다. 나와 이야기를 두 차례 해 봤는데, 바른정당의 정신을 지켜야 한다는 이야기를 반복하더라. 나도 상당부분 공감을 하지만, 우선 우리가 좌파 집권부터 막아야 하는 것 아닌가. 표를 분산시켜 문재인 당선에 도움을 주는 일을 해서 되겠는가라고 이야기해 봤지만 결국 안 됐다. 그래서 세 후보 모두가 거부하면서 각자도생이 된 거다. 결국 난 개인적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안철수가 결단하면 3당합당도 가능

솔직한 고백을 하자면, 충청권 대통령의 꿈이 사실상 무산됐기 때문에 나는 더더욱 좌파 집권을 막는 데 집중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내가 선두에 서서 다시 한 손이라도 보태기 위해 한국당 복당을 추진했다. 나와 공감한 이들은 복당키로 했고, 다른 의원들은 ‘바른정당의 정신’에 더 강조점을 두면서 남겠다고 했다. 보수 내 분란은 잠시 접어두었어야 했는데, 결국 그게 안 된 거다. 황영철 의원은 며칠만 시간을 달라고 했었고, 정운천 의원은 자신은 전북도청서 기자회견을 따로 한다더니 결국 둘 다 남았다. 나머지는 다같이 기자회견을 열고 한국당으로 돌아왔는데 그 중 김무성 의원의 측근으로 알려진 이들도 꽤 있지 않나. 김 의원이 “홍문표 선배가 사실 6선, 7선급 중량감이 있는 분인데, 저 분이 움직일 땐 이유가 있고 소신대로 하는 거다. 알아서들 하라”고 굳이 강하게 만류하지 않았다고 했다.

요새 바른정당이 어렵다고 하니 어떤 사람들은 의원을 한 두명 빼와서 무너뜨리라는 말도 한다. 교섭단체가 무너지면 뉴스에서 사라지고 자금지원도 끊기면서 확 힘들어지게 되는데, 그런 식으로 공격하는 것은 정치적 도리가 아니다. 어차피 우리가 바른정당의 정신을 존중해서 당내 친박계를 청산하고 대대적 혁신으로 정지(整地) 작업을 하면 바른정당은 명분을 따라서 돌아오게 돼 있다. 그런 것이 큰 정치가 아니겠나 생각한다.

지방선거 전에 한국당이 바른정당과 합쳐질 것인지 물어보는 이들이 있다. 미래는 알 수 없지만, 부분 통합 정도는 이뤄지지 않겠나 싶다. 국민의당에서도 안철수 의원이 결단을 내리면 3당 합당도 아주 불가능한 이야긴 아니다. 본인은 3당 합당을 주도하고, 대표직 같은 걸 탐내지 않고 백의종군하면 아주 큰 정치인이 될 수도 있다. 어차피 1~2년 후면 대권주자가 곧 필요해진다. 물론 가능성은 아주 낮다. 현실적으론 일어나지 않을 거라 본다.

원외 호소, 한국당은 반등 중이다

한국당의 상황은 나아지고 있다. 당에 몸담고 있는 내 이야기는 사실 주관적일 수 있으나, 객관적 지표인 여론조사만 봐도 달라진 것을 볼 수 있다. 지지율을 반등시킨 요소 중에서 결정적인 것은, 내가 사무총장을 맡은 뒤 진행한 방송장악에 대한 원외 항의다. 지난 1일 MBC 사장이 구속된다는 보도가 나왔다. 우리가 보니 MBC 사장이 구속되면 그 다음은 KBS, 연관돼 있는 언론장악 시나리오가 보이는 거다. 그래서 당에서 긴급최고회의를 열고, 언론장악을 막아야 한다고 결론이 났다. 그래서 의원총회도 두 번 열고, TF(태스크포스) 팀도 만들고 해서 밖으로 나가자고 결정, 가장 먼저 체포영장을 발부한 검찰에 가서 항의를 했다. 검찰총장을 직접 만났다. 그 다음엔 방송통신 위원회, 그리고 노동부에 가서 노동부 장관을 찾았다. 마지막에 청와대를 갔는데 대통령 대신 실장이 나온다고 해서 발길을 돌렸다. 이 기간 동안 가장 적게는 62명, 최대 92명이 참여했다. 이는 한국 정치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과거 카리스마 정치라는 3김 시대에도 이런 일은 없었다. 그간 장외투쟁이라 하면 대표나 몇 명이 잠깐 가서 얼굴을 비추고, 사진 찍고 국민들에게 피켓이나 세워두는 ‘보여주기식’ 이었다. 장외투쟁을 자주 했던 민주당도 똑같다.

그런데 이번엔 대규모 현역 국회의원이, 함께 행동을 했다. 이는 보기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사전에 준비를 잘 해야 몇 십 명이 같이 움직인다. 국회의원들의 일정이란 건 아주 빡빡해서, 사무총장이 조율을 안 해두면 같이 보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일각에서 지금이 어느 땐데 밖에 나와서 투쟁이냐고 비판하기도 했다. 물론 국회의원이 국회에서 일해야 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우리가 에어컨 바람 쐬면서 '잘못됐다'고 떠들어 봐야 소용이 없고, 차라리 국민속에서 동의를 받아야 할 타이밍이라고 판단했다. 그 결과 열흘간의 항의 끝에 삼성동에서 대 보고회를 열었는데 10만 여명이 운집해서 대 성황을 이뤘다. 그 기세를 타고 대구에서 연 대회도 2만여명이 몰리면서 대성공을 거뒀다. 바로 다음인 16일 오후 <문화일보>가 여론조사를 한 게 있는데 한국당 지지율이 18.6%가 나오더라. 그 전에는 9%~12%를 왔다 갔다 했으니, 이게 장외투쟁의 결과다. 국민들께서 상당부분 동의해주셨다고 본다.

   
▲ 표를 얻기 위해서 지역에 다리를 놔주겠다고 약속하는 것은 쉽다. 하지만 정말로 이 지역에 도움이 오래도록 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지키지 못할, 당장 인기를 끄는 약속은 위험하다. ⓒ시사오늘 윤지원

내 중심을 잃지 않는 정치

정치를 하는 목표가 뭐냐고 묻는다. 아들을 잃고도 며칠 후에 다시 당무에, 입법에, 정치 일선에 복귀해야 하는 것이 정치인이다. 초선, 재선 정치인들은 자기욕심 정치를 하기 쉽다. 다시 당선되기 위해서다. 하지만 3선을 넘어가면서는 나라를 생각하게 된다. 대한민국이란 나라가 발전해야 하는데, 내가 무슨 역할을 할 수 있을까. 국가관이 우선이 되고, 보다 멀리 보는 눈이 생긴다.

표를 얻기 위해서 지역에 다리를 놔주겠다고 약속하는 것은 쉽다. 하지만 정말로 이 지역에 도움이 오래도록 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지키지 못할, 당장 인기를 끄는 약속은 위험하다. 예결위원장, 인수위원 등을 하면서 나는 나라가 돌아가는 원리와 구석구석을 볼 기회가 있었다.

문재인 정부의 정책을 보면서 걱정이 앞선다. 요약하면 생산 없는 복지다. 문재인 정부가 하자는 일들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저런 일을 하면 돈이 많이 들 텐데’라는 우려다. 결국 세금이 늘어날 텐데 누가 책임을 지느냐는 거다. 지금 경제부총리와 청와대의 갈등은 거기 있다고 본다. 부총리는 오랫동안 경제에 몸담아온 인물이다. 생산 없는 복지는 거짓말이라고 본다. 그런데 청와대에 있는 몇몇 사람들은 대통령 약속이니 지켜야 한다고 밀어붙이고, 우기는 상황이다. 그래선 안 된다.

나는 정치를 하다보니 국가관과 경제관이 나름 정립이 됐다. 또한 농민들을 위해 법을 쉬지 않고 고민하고 만들었고, 지역을 위해서도 최선을 다했다. 남은 것은 내가 이 중심을 잃지 않고, 내 정치를 이어나가는 것이다. 그게 나라에 한 줌이라도 보탬이 되길 바랄 따름이다.

 

글=홍문표 정리=김병묵 sisaon@sisaon.co.kr

<저작권자 © 시사ON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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