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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代 散策] 박재호 “YS-노무현이 만든 민주주의 문재인이 완성해야”

기사승인 2017.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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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불어민주당 박재호 국회의원
“YS 인기에 문민정부 청와대 인사들도 자부심”
“변하는 부산, 여당의원들이 잘해야 유지될 것”
“10분 만에 노무현에게 반해서 친노가 됐다”
“국회에 감사권, 예산권 보장하는 개헌해야”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글=박재호/정리=김병묵 기자 윤슬기 기자)

많은 사람이 모였고, 많은 이들이 눈물을 흘렸다. 나도 그 중의 한 사람이었다. 23일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8주기였다. 노 전 대통령은 내게 정치를 왜 해야 하는가를 가르쳐준 사람이다. 추모사가 너무 좋아서 울음을 잘 그칠 수 없었다. 그가 이루려고 했던 꿈은 완전히 이뤄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다만 노 전 대통령으로 인해 이 세상이 한 단계 더 갈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더없이 슬픈 날이지만 희망이 남아 있어 기분이 좋아졌다. 산 자는 따르리라. 대통령 노무현이 하고 싶었던 일들은 친구 문재인 대통령이 이어갈 것이다. 그렇다면 부산에서 노무현이 하고 싶었던 일들은 누가 할 것인가. 갑자기 다시금 책임감이 밀려왔다. 이튿날인 24일, 의원회관을 찾아온 기자 앞에서, 이 시대를 사는 부산 정치인 박재호의 소명을 생각했다.

   
▲ 참여정부 이후 정권이, 약 9년 동안 문민정부, 참여정부로 온 흐름을 싹 무시했다. 과거로 쉽게 회귀한 것이다. 문민정부에서 국민의정부를 거쳐, 참여정부에서 만들어놓은 민주주의다. 그런데 이 민주주의도 권력을 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거꾸로 가더라.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문민정부와 참여정부, 그리고 문재인 정부

1986년, 서석재 전 의원 비서관으로 정계에 처음 발을 들였다. 이후 1992년까지 6년간 함께하고, 문민정부가 열리자 청와대로 들어갔다.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문민정부는 군부 독재 시절의 끝을 내는 시기였다. 억눌린 군대식 시스템을, YS가 대통령이 되고 나서 일거에 정리에 나서니 통쾌했다. 국민들은 정말 민주화가 됐구나 하는 기대치가 있었고, 정말 대단한 지지를 받았다. 지금 기준에서 보면 당시 문민정부의 청와대도 YS의 가신 그룹 위주로 구성되다 보니, 아직 권위주의적인 분위기가 있었다.

애초에 YS는 카리스마의 정치인이었으니 직언할 수 있는 참모들은 한정돼 있었다. 하지만 그 시대로 치면 여러 모로 상상을 초월하는 혁신을 많이 이뤘다. 특히 초기에 궁정동 안가 같은 거 싹 밀어버리고, 하나회 청산, 금융실명제 등을 시원시원하게 이뤄냈으니 지지도가 하늘을 찌를 수 밖에 없었다. 청와대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엄청난 자부심을 가졌다.

그리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참여정부는 또 달랐다. 아예 본인부터 기득권을 가져 본 적이 없는 분 아닌가. 너무나 자연스럽게 내려놓다 보니, 청와대도 좀 더 자유로웠다. 아무래도 상대적으로 젊은 인사들도 많았고, 토론하고 서로 할 말 다 하면서 지냈다. 그런데 이후 정권이, 약 9년 동안 문민정부, 참여정부로 온 흐름을 싹 무시했다. 과거로 쉽게 회귀한 것이다. 문민정부에서 국민의정부를 거쳐, 참여정부에서 만들어놓은 민주주의다.

그런데 이 민주주의도 권력을 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거꾸로 가더라. 문재인 정부는 그걸 알았다. 그래서 아예 사람이 바뀌어도, 누가 와도 돌아가지 않도록 새로운 제도를 만들고 있다. 적폐를 청산하려 하고, 이로 인해 국민들에게 희망을 새롭게 주고 있다는 점에서 문민정부, 참여정부, 문재인 정부는 비슷한 부분이 있다. 참여정부 때, 청와대에서 내가 본 바로 문재인, 당시 비서실장이 나중에 대통령이 될 것이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애초에 본인이 정치를 아예 하기 싫어했다. 정치인이라면 어느 정도는 때도 좀 묻고 해야 버틸 수 있는 부분도 있는데, 이 사람은 인품 좋고 그냥 순수하게 사는 사람인 거다. 그런데 노 전 대통령 서거하시면서 운명처럼 어쩔 수 없이 정치를 하겠다고 나왔다. 이제 보니 참 잘된 일이라고 본다. 이 시대에는 저렇게 정직하고, 차분한 사람이 노련한 정치인보다 훨씬 나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단 10분 만에 노무현에게 반하다

YS 방계였는데 어떻게 친노가 됐냐는 질문을 많이 한다. 나는 원래 민주계 아닌가. 민정계가 미는 이회창이 싫어서 그 당시에 민주계였던 이인제를 따라나섰던 사람이다. 그래서 정권이 바뀌자 미국에서 공부를 하고, 2000년에 돌아와서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에 갔다. 그런데 거기서 안희정이랑 이광재를 만났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종로구 국회의원이던 땐데, “우리 대장을 만나보시라”라고 해서 같이 점심을 먹게 됐다. 그 때 단 몇 마디에 내가 마음이 움직였다. 노 전 대통령이 “재호 씨도 지방대학 나와서 서울 올라와 고생했다. 나도 부산서 인권변호사로 유명했는데, 서울 오니까 대학 안 나왔다고 아무도 안 알아주더라. 이 좁은 정치바닥 사실 누가 깨끗하고, 아닌지 다 알지 않나. 재호 씨 깨끗하게 했던 거 안다.

하지만 깨끗하면 뭐 하노. 얼마나 힘들었나”라고 말하더라. 격한 공감을 했다. 그 때는 지금보다도 더 학벌주의, 지역주의가 심했을 때다. 코리아나 호텔 로비 이런 곳에 가면, 부산, 광주서 몇 억짜리 비교적 소규모 건설 회사를 만든 사람들이 많았다. 경기고등학교, 서울대학교 어떻게든 동문 찾아서 만나면, 수주 받아서 회사를 키울 기회가 생길 수도 있는 거다.

성실한 사람이 잘 살아야 하는데, 줄만 잘 서면 잘 사는 세상이 되면 안 되는데, 이런 생각을 하던 차에 노 전 대통령의 한마디 한마디가 너무 와 닿았다. 아, 이런 세상을 꿈꾸는데 이 사람도 꿈을 꾸는 구나. 정말로 한 10분 만에 넘어간 것 같다. 서석재 의원께선 “니 뭐 할라꼬, 안 된다. 노무현을 와 돕노”라고 말렸는데, 이미 나는 마음이 완전히 기울어 있었다.

   
▲ 정말로 한 10분 만에 넘어간 것 같다. 서석재 의원께선 “니 뭐 할라꼬, 안 된다. 노무현을 와 돕노”라고 말렸는데, 이미 나는 마음이 완전히 기울어 있었다.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나중에 내 깃발 세우면 효과가 있을끼다”

참여정부에서 노 전 대통령이 나를 청와대로 부른 것은 두 가지 메시지가 있었다. 내가 이미 문민정부에서 인사정무 쪽을 맡은 경험이 있어서 실정을 파악하고 있으니 좀 도와줘라. 그리고 지역감정을 극복해야 하니, 다시 부산 가서 출마해라. 이건 당연한 거였다. 사실 내가 그냥 적당히 하면서 국회의원 세 번, 네 번 해먹으려면 민정계를 따라갔든지, 서울이나 수도권에서 출마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부산을 두고 그럴 까닭이 있나.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으로 부산 남구을에 나와서 낙선한 다음, 2008년에 18대 총선 앞두고 노 전 대통령이 내게 물었다. “그래, 재호 니는 앞으로 어떻게 할꺼고.” 그래서 “전 이번엔 마, 무소속으로 나갈낍니다”라고 답했더니, “그래, 무소속도 괘않타”고 격려를 해줬다. 그런데 노 전 대통령이 잠깐 뜸을 들이더니, “근데, 내가 지금은 인기가 없어서 그렇지만도 나중에 내 깃발 세우면 효과 있을끼다”라고 말했다. 아마도 본인 임기 동안 해온 일들에 대해 자신감을 갖고 있었기에 그렇게 말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내가 ‘부산 친노’가 된 것은, 노 대통령이 나를 정치적으로 키워 줘서가 아니다. 오히려 가끔 농담으로 “저를 부산에 보내가 국회의원 시켜줬습니까, 외려 떨어지게 했지’라고 말하며 웃었었다.

하지만 나는 노 전 대통령에게 정치를 왜 해야 하는가를 정확하게 배웠다. 결국 우리는 부산에서 이겼다. 제20대 총선에서 박재호, 김영춘, 김해영, 전재수, 최인호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다섯 명이나 한꺼번에. 대부분 나름 오랫동안 지역에서 밭을 갈던 사람들이다.

부산은 이번 대선으로 새로워질 수 있다.

부산은 원래 누구나 오면 성공할 수 있는 도시였다. 호남 사람이 오건, 충청 사람이 오건, 부산에 오면 다 그냥 뭘 해도 먹고 살 수 있었다. 역동성이 강한데다, 자존심이 대단히 세서 정부가 잘못한다 싶으면 바로 야당을 찍어버렸다. 그래서 반독재 항쟁, 데모 다 부산에서 일어날 정도로 강한 도시였는데, 3당 합당을 하면서, 민주계에 민정계가 섞여 들어오며 문제가 생겼다.

당을 민정계가 다시 장악하자 부산에선 국회의원 하려면 딱 두 마디만 하면 됐다. ‘호남놈’‘빨갱이’라고 상대 후보를 공격하기만 하면 된다. 그걸 30년을 써먹었고, 부산은 그 동안에 성장 동력을 잃어버렸다. 420만 쯤 되던 부산 인구가 지금 350만이 안 된다. 약 70 만 명이 빠져나갔다. 시장, 구청장, 시의원, 국회의원 다 한 쪽이니, 이게 독재 때나 가능한 일사불란함인 거다. 부산과 어울리지 않는다. 그 결과 해운대만 ‘억수로’ 발전했다. 해운대시 부산구라는 말이 왜 나왔겠나. 역동성은 찾아 볼 수가 없다.

부산이 다 망해 가는데도 빨갱이 소리만 하면 표가 나온다. 세뇌라는 게 얼마나 무서운지, 부산에서 교수, 교장까지 지낸 지식인들도 여전히 빨갱이, 문재인도 빨갱이라고 했다. 지역에 나이 드신 분들은, “내가 재호 니는 찍어주는데, 문재인은 빨갱이라, 민주당이라 못 찍어준다”고 하시기도 했다.

지역경제는 계속 악화됐고, 이번에는 자존심이 상할 대로 상한 부산 사람들이 폭발하면서 젊은 유권자들이 투표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지난 총선에 이어, 이번 대선에서 부산은 변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았다. 대선 기간 동안 나는 약 60여 일을 부산에 내려와 있었다. 100번이 넘는 간담회를 하고, 구석구석을 누볐다. 목이 터져라 외쳤다. “부산 와 이리 됐노. 공무원은 못 자르지만 선출직은 자를 수 있다. 대통령도 바꿔야 하는 것 아니냐. 주인이 멍청하면 머슴이 주인 된다. 일 하든 말든 그냥 찍어주니 우습게 보지 않느냐”고 설득했다. 분위기는 일단 변했다. 나를 포함해서 우리 ‘갈매기 오형제’ 부산 여당 의원들이 더 잘해야 한다. 그래야 이 기류가 유지될 거라고 생각한다.

상임위가 달라서 자주 보긴 힘들지만, 다들 사이가 좋아서 가끔 만나서 소주 한 잔 한다. 상임위도 부산이 다양하게 발전한다 해서 모두 다른데로 나눠서 갔다. 내가 그 중에 나이가 제일 많아서 양보도 많이 한다. 전재수가 ‘행님, 저 교문위 한번 해보겠습니다’라고 해서 주고, 김해영이 조심스럽게 ‘행님, 저 정무위 한번 해보고 싶습니다’해서 하라고 하고 나는 산자위를 맡았다. 편하게 하라고 했다. 어차피 다 부산에 필요한 일들이다.

   
▲ 참여정부 때는, 노 전 대통령을 달갑게 여기지 않는 기득권들이 너무 많았다. 기득권 언론까지 모두 합세해 도저히 이길 수가 없었다. SNS 같은 것도 지금 수준으로 발달하지 않았을 때다. 무력하게 당했다.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참여정부의 검찰개혁, 문재인 정부의 검찰개혁

지금의 검찰은, 일제가 통치를 위해 만들었던 제도가 그대로 있다. 기소권, 수사권을 독점하고 있고 그 절차가 아주 간단한 편이다. 게다가 견제장치도 없다. 검찰을 견제할 수 없는 국가는 우리나라 뿐 이다. 게다가 특권의식도 심해졌다. 몇 년 열심히 고시공부를 해서 패스했다. 그런데 자꾸만 그 시간을 보상받으려 한다. 솔직히 암기를 잘 하는 사람도 있고,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도 있는 것 아닌가. 모두 분야가 다른데, 골방에서 암기를 열심히 해 어려운 시험을 통과했으니, 이제 자신들끼리 엘리트 집단이 되어 나머지 사람들을 지배하겠다는 꼴 아닌가.

전형적인 기득권 집단으로 부패하면서 다른 청렴하고 정의로운 검사들마저 욕을 먹이는 이들이 너무 많아졌다. 그래서 검찰개혁은 꼭 필요했다. 그런데 참여정부 때는, 노 전 대통령을 달갑게 여기지 않는 기득권들이 너무 많았다. 기득권 세력은 노무현의 승리를 민심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변방에서 고등학교밖에 안 나온 사람이 포퓰리즘으로 당선 됐다고 봤다. 인정을 안 하면서 사사건건 딴지를 걸었다. 자신들은 다 옳고, 상대가 하면 잘 몰라서 그렇다고 생각하는 편향적인 사고에 빠져서 무슨 말을 해도 듣지 않았다. 참여정부는 나름 노력했지만, 기득권 언론까지 모두 합세해 도저히 이길 수가 없었다. SNS 같은 것도 지금 수준으로 발달하지 않았을 때다. 무력하게 당했다.

 반면 문재인 대통령은, 연수원 차석 등 기득권이 보기에도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요소들이 있다. 게다가 10년이 흐르면서, 시민의식수준은 많이 올라왔다. 출세지향적인 세대는 많이 물러났고, 사회가 다원화됐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박근혜 정권의 극단적인 한심한 모습이, 국민들에게 경각심을 심어줬다. 민주화를 넘어서 국가의 시스템이 바뀔 수 있는 배경이 생겼다. 마침 문재인 대통령도 공수처를 만들어서 하든, 기소권과 수사권을 분리하든 확실하게 바꿔내겠다는 의지가 보인다. 조심스럽지만, ‘이번에는 성공할 수 있겠다’ 하는 느낌이 든다.

허수아비 국회, 개헌으로 바꿔야 한다

   
▲ 국회의원의 다른 특권 같은거 다 줄여도 상관없다. 감사권, 예산권, 입법권을 확보해 줘야 쓸데없는 정치 다툼을 안하고 국회가 정말 머슴처럼 일할 수 있다.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국회에 처음 들어와서 놀란 게, 제대로 된 삼권분립이 하나도 안 돼있었다는 거다. 국회의원들이 굉장한 권한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건 거들먹거리며 국민들에게 거만하게 비치기만 할 뿐이지 실제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부분이 없다. 미국의 대통령제를 받았다고 하면서 미국에서 들여온 제도는 없다. 예를 들면, 우선 감사권이다. 미국 같은 경우엔 감사를 해서 징계를 할 수 있는 권한이 국회에 있다. 우리는 공기업이든 정부 부처든 대통령이 임명하고, 행정부 말만 듣는다. 국회는 그냥 국정감사장에서 이야기만 할 뿐이다. 심지어 박근혜 정권 때, 내가 장관한테 한참 지적을 하다가도 속으로, ‘내가 이야기하면 뭐하노’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을 정도다. 바뀌는 게 있어야 할 것 아닌가.

다음은 예산권이다. 행정부가 모든 예산을 짜고, 국회는 심사만 한다. ‘쪽지 예산’ 어쩌고 하는 이야기는 다 짜인 예산에서, 여기를 빼서 저기 넣는 식이다. 큰 틀에서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다.

또한 행정입법이란게 있어서 문제다. 국회에서 확실한 입법권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번에 개헌을 한다면, 이 세 가지는 꼭 이뤄졌으면 한다. 다른 이들은 대통령 중임제니 이원집정부제니 하는 이야기들을 많이 하는데, 나는 이러한 권력구조에는 큰 관심이 없다. 정말 중요한 것은 국회의원들에게 제대로 일을 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이래서는 허수아비 국회를 벗어나지 못 한다. 다른 특권 같은거 다 줄여도 상관없다. 감사권, 예산권, 입법권을 확보해 줘야 쓸데없는 정치 다툼을 안하고 국회가 정말 머슴처럼 일할 수 있다.

 

글=박재호/정리=김병묵 윤슬기 기자 sisaon@sisa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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