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안 톺아보기③]5인 미만 사업장은 노동법 사각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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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안 톺아보기③]5인 미만 사업장은 노동법 사각지대
  • 정진호 기자
  • 승인 2016.10.21 16: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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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애 의원, 근로기준법 전사업장 확대 적용 법안 발의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정진호 기자)

“아침 7시에 출근해서 저녁 7시까지 근무해요. 수당 같은 건 당연히 없고요. 가족 같은 분위기의 회사라고 해서 일 좀 빨리 배울 수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냥 작은 회사라는 뜻이었어요(웃음). 이 학벌에 이 나이에 자격증도 하나 없는데 여기 나가면 누가 받아줄까 싶어 그냥 다니긴 하는데…. 참 힘드네요.”

21일 〈시사오늘〉과 만난 IT 업체 직원 A씨는 하루 12시간씩 주 60시간을 근무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연장근로수당은 받지 못했고, 심지어 설·추석 명절을 제외하면 연차 유급휴가조차 가본 적이 없다고 했다. 우리 근로기준법은 1주 근로시간을 40시간, 1일 근로시간을 8시간으로 제한한다. 연장 근로를 할 경우 통상임금 100분의 50 이상을 가산 지급하도록 정해뒀다. 1년간 80퍼센트 이상 출근한 근로자에게는 15일의 유급휴가도 주도록 규정한다. 이에 따르면, A씨 회사는 전방위적으로 근로기준법을 위반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A씨 회사는 법적으로 전혀 문제가 없는 경영을 하고 있었다. 직원에게 하루 12시간 근무를 강요하고, 연장근로수당도 주지 않지만 근로기준법에는 위배되지 않는 이 회사의 비밀은 무엇일까? 

▲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한정애 의원이 근로기준법 전사업장 확대 적용 법안을 발의했다 ⓒ 뉴시스

노동법은 ‘큰 회사’ 직원만 보호한다

근로기준법 제11조 제1항. ‘이 법은 상시 5명 이상의 근로자를 사용하는 모든 사업 또는 사업장에 적용한다.’
제2항. ‘상시 4명 이하의 근로자를 사용하는 사업 또는 사업장에 대하여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이 법의 일부 규정을 적용할 수 있다.’

우리 근로기준법은 적용범위를 ‘상시 5명 이상의 근로자를 사용하는 모든 사업 또는 사업장’이라고 명시한다. 5명 미만 사업 또는 사업장의 경우에는 대통령령에 따라 일부 규정만 적용받도록 했다. 모든 사업장에 일괄적으로 법을 적용할 경우, 영세 사업장은 경영 악화를 피하기 어렵다는 주장을 수용한 결과였다.

대통령령에 따르면, 5인 미만 사업 또는 사업장은 근로조건 위반으로 근로계약이 해제됐을 경우 귀향여비를 지급해야 한다는 제19조 제2항, 정당한 이유 없는 해고를 제한한 제23조 제1항, 해고사유 서면통지를 규정한 제27조, 휴업수당 지급을 명시한 제46조, 법정근로시간과 연장근로시간을 정한 제50조와 제53조, 가산임금과 연차유급휴가 조항이 있는 제56조와 제60조 등을 적용받지 않는다.

쉽게 말해, 전 직원이 4명인 A씨 회사는 하루 12시간을 일하게 하면서 연장근로수당을 주지 않고, 휴가도 부여하지 않다가 갑자기 별다른 이유 없이 해고를 통지해도 법적인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상시 5명 이상의 근로자를 사용하지 않는 A씨 회사는 애당초 근로기준법 적용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시사오늘〉 취재 결과, A씨가 몸담고 있는 소규모 IT업체들뿐만 아니라 영세 출판사, 미용실, 식당 등에서도 이런 일은 비일비재(非一非再)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정애 의원, 근로기준법 전사업장 확대 적용 법안 발의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한정애 의원은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 8월 ‘근로기준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한 의원은 “현행법은 상시 근로자수가 5명 이상의 사업 또는 사업장에 대해서만 적용하고, 4명 이하의 사업 또는 사업장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일부 규정을 적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며 “이처럼 사업장 규모에 따라 일률적으로 적용범위에 차등을 두는 것은 근로자간의 형평성 문제가 있을 뿐만 아니라, 현행법을 부분적으로 적용받는 4명 이하인 사업장에 근무하는 근로자의 근로조건은 매우 취약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현행법의 적용범위를 근로자를 사용하는 모든 사업 또는 사업장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법안 발의 이유를 밝혔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이 법은 상시 5명 이상의 근로자를 사용하는 모든 사업 또는 사업장에 적용한다’는 근로기준법 제11조가 ‘이 법은 근로자를 사용하는 모든 사업 또는 사업장에 적용한다’로 변경된다. 5인 미만 사업장도 해고 제한, 법정근로시간 준수, 연장근로수당 지급, 연차유급휴가 부여 등의 의무를 지게 되는 것이다.

▲ 이 법안이 통과되면 근로기준법 제11조가 ‘이 법은 근로자를 사용하는 모든 사업 또는 사업장에 적용한다’로 변경된다 ⓒ 국회 의안정보시스템

번번이 좌절된 개정, 이번에는 가능할까

하지만 이 법안에 대한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우선 소규모 사업장 근로자들은 개정안을 반기는 분위기였다. 서울 시내 한 소규모 출판사에서 일하는 30대 여성은 “우리 회사는 근무시간은 길지 않지만, 언제 나가라고 할지 몰라서 근무조건 협상은 꿈도 못 꾸는 것이 현실”이라며 “다른 것보다도 대표님 기분 따라 잘릴지도 모른다는 걱정 없이 할 말 할 수 있게 되면 좋겠다”고 바람을 밝혔다.

A씨 또한 “IT 업종 특성 상 야근이 불가피할 수밖에 없는데, 돈 받고 일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느냐”라며 “8시간 근무는 어차피 불가능하다 해도, 가끔 피곤하면 휴가 쓸 수 있고, 야근해서 휴가 때 쓸 수 있는 돈 벌면 충분히 행복한 인생일 것 같다”고 웃으며 말했다.

반면 익명을 요구한 한 소규모 IT 업체의 대표는 “우리가 나쁜 사람이라서 돈도 안 주고 부려먹는 게 아니다”라고 항변했다. 그는 “우리가 직원을 두 명 쓰는 것은 지금도 쪼들려서 인건비에 쓸 돈이 없기 때문”이라며 “왜 우리 회사가 다섯 명도 못 쓰고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돈이 없어서 사람을 못 쓰고 있는 건데 큰 회사처럼 근로기준법 다 지켜가면서 회사 운영하라는 것은 우리 같은 작은 회사는 다 망하라는 이야기”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로 근로기준법을 5인 미만 사업장에까지 확대하는 안(案)은 매 국회마다 논의 테이블에 올라왔다. 영세 사업장이 상황에 따라 근로기준법을 선별적으로 적용할 수 있도록 배려한 제정 당시 의도와 달리, 현장에서는 이를 악용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실질적으로 근로기준법 보호가 필요한 근로자들은 대부분 영세 사업장에서 일하고 있다는 점도 개정 필요성에 힘을 실었다.

그러나 재계 반발과 영세 사업장 연쇄 도산 우려, 일손이 부족한 관계 부처의 난색 등이 맞물리면서 개정 움직임은 번번이 좌절됐다. 2008년 국가인권위원회의 개정 권고에도 근로기준법은 바뀌지 않았고, 19대 국회 때 한 의원이 발의했던 같은 내용의 법안도 계속 계류되다가 회기 종료와 함께 폐기됐다. 이번에도 개정안 통과는 난망(難望)하다는 것이 대체적인 시각인 만큼, 근로기준법 개정안의 통과여부에 관심이 쏠린다.

 

담당업무 : 국회 및 국민의힘 출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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