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농업시장 진출…'자본의 놀이터' 전락,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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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농업시장 진출…'자본의 놀이터' 전락, 우려
  • 박근홍 기자
  • 승인 2016.08.18 17: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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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박근홍 기자)

국내 굴지의 대기업들이 '농업'을 높은 잠재력을 지닌 미래성장동력으로 꼽으며 잇따라 농업시장에 뛰어들고 있는 것에 대해 전문가들과 우리 농가 대다수가 우려의 눈길로 바라보고 있다. 농업시장이 자본에 예속되는 데 따른 부작용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우리 농가 위해"…LG·SK·삼성, 농업시장 진출

▲ 국내 대기업들이 연이어 농업시장 진출을 모색하고 있다. 기대와 우려가 공존하는 가운데 후자의 목소리가 더욱 설득력을 얻는 눈치다. 사진은 현대자원개발에서 위탁운영하고 있는 현대하롤농장 전경 ⓒ 뉴시스

LG그룹은 지난해 국내 최대 농자재 업체 동부팜한농을 인수하고, 전북 새만금 산업단지에 오는 2022년까지 총 3800억 원의 사업비를 투자해 첨단온실, 식물공장, R&D센터, 가공 및 유통시설, 체험 단지 등을 갖춘 '스마트팜(Smart Farm)'을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사업은 LG그룹이 전사적 차원에서 뛰어든 프로젝트다. LG CNS를 필두로 LG전자, LG화학 등 그룹 핵심 계열사들이 참여할 것으로 보인다. 스마트팜 유리온실을 구축하는 등 우리 농업의 고도화를 위한 투자라는 게 LG그룹 측이 내세운 명분이다.

이와 관련, LG CNS 측은 <시사오늘>과의 통화에서 "이번 사업은 그룹 차원의 프로젝트가 아니라 LG CNS의 사업"이라며 "새만금 스파트팜은 LG그룹 계열사의 지분 참여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스마트팜 조성 이후 계열사와의 협업에 대해서는 부인하지 않았다.

SK그룹은 2014년 세종시 인근 농가에 SK텔레콤의 주력 기술이 들어간 '스마트팜'을 설치했다. 스마트폰 하나로 비닐하우스 농장을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IT기술을 농가에 지원해 우리 전체 농업시장 생산성을 강화하는 데 기여하겠다는 게 당시 SK그룹의 설명이었다.

일각에서는 SK그룹이 단순히 농가 지원과 이윤 창출만을 노리고 농업계에 기술을 선보인 게 아니라는 말이 나온다. 농업시장 전반에 영향력을 떨치기 위한 디딤돌을 뒀다는 것이다.

실제로 SK홀딩스 계열사 SK임업은 과거 농가들에게 전적으로 맡겼던 호두나무를 최근 들어 회사 차원에서 재배·관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SK그룹의 스마트팜 기술이 여기에도 쓰일 가능성이 높다는 후문이다. SK임업은 2013년 농업시장 진출 논란에 휩싸인 바 있는 회사다.

삼성그룹 지주회사인 삼성물산의 자회사 삼성웰스토리는 지난 6월 중국 식자재 유통사업에 본격 진출했다. 중국 국영 농산물 재배기업 인룽농업, 일본 최대 식자재 유통회사 고쿠부그룹과의 합작품이다. 업계에서는 이를 시발점으로 삼성그룹이 동아시아 농자재 유통 시스템 장악을 시도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속내는 '바이오산업' 경쟁력 갖추기?

국내 굴지의 대기업이 하나 둘 농업시장에 발을 들여놓고 있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배적인 견해다. 신성장동력 '바이오산업'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포석 마련이라는 것이다. 농작물이 식품, 의약품, 화장품 등에 두루 이용되는 원자재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LG그룹이 새만금 스마트팜 조성에 성공한다면 LG생명과학, LG생활건강 등 바이오산업 관련 계열사가 내부 거래를 통해 제품 원료를 얻게 될 공산이 크다. 값싼 비용으로 제품 개발과 생산을 위한 원자재를 확보하는 것이다.

SK임업은 자신들이 일궈온 자작나무 숲에서 채취한 수액을 '이로수'라는 브랜드로 판매하고 있다. 현재 SK임업은 SK바이오랜드와 함께 이로수를 이용한 마스크팩 개발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그룹 바이오산업의 한축을 맡고 있는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삼성웰스토리와 마찬가지로 삼성물산의 자회사다. 시너지 효과가 기대되는 대목이다.

대기업 잇속 챙기기에 농업시장 자본 예속…전문가·농가 우려

▲ 농민들은 대기업의 농업시장 진출을 강력 반발하고 있다. 사진은 2013년 동부그룹이 농업시장에 진출하려 했을 때 농민들이 반대 시위를 열며 들었던 '재벌농업진출저지' 피켓 ⓒ 뉴시스

때문에 전문가와 농가 사이에서는 대기업의 농업시장 진출 움직임에 대한 우려가 상당하다는 후문이다. 단순히 이익만을 챙기기 위해 대기업이 농업시장에 등장한다면 자본에 휘둘릴 공산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더욱이 농업은 모든 산업의 근간임과 동시에, 그 흥망성쇠에 따라 국민 생존 여부가 달려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가 LG그룹의 새만금 스마트팜 조성 사업이다. 더불어민주당 김현권 의원이 최근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LG그룹은 영국계 기업 어드밴스 인터내셔널(AI)의 자본으로 이번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외국 자본이 국내 대기업의 힘을 빌려 우리나라에서 농사를 짓는 첫 번째 사례라는 게 김 의원의 설명이다.

또한 학계에서는 대기업이 농업시장에 자리 잡는다면 농산물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된다. 농민의 부담이 더욱 커질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장상환 경상대 명예교수는 2013년 한국경제발전학회, 한국사회경제학회, 한국비교경제학회 공동학술대회에서 "자본은 농업을 둘러싼 전(全) 분야에서 독점적 지배력으로 농민과 소비자의 부담으로 높은 이윤을 올리려 한다"며 "농민들은 구입 자재와 농산물 유통자본에 의존하게 되고, 결국 농민이 누릴 부가가치는 자본에게 이전된다"고 말했다.

농민들의 반발도 거세다. '대기업 농업진출 저지를 위한 경남대책위'는 지난 4일 경남도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기업이 없어도 농민들이 직접 일군 최고 품질 농산물이 생산되고, 수출도 하고 있다"며 "대기업이 농업에 진출하면 중소 영세 농가가 무너지고 농촌은 자본의 놀이터가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다만 학계에서도 대기업의 농업시장 진출을 독려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일부 존재한다. 문정훈 서울대 교수는 지난달 한 언론을 통해 "최근 10여 년 동안 국가 주도로 농업 연구·개발을 했지만 농식품-정보통신기술 융복합 기술은 선진국에 50년 이상 뒤쳐져 있다"며 "민간 자본과 뛰어난 기술력 투입만이 이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담당업무 : 건설·부동산을 중심으로 산업계 전반을 담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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