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마광수는 없다, ´즐거운 사라´는 판매금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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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마광수는 없다, ´즐거운 사라´는 판매금지 中
  • 윤진석 기자
  • 승인 2013.05.11 17: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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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뒤로 호박씨 까는 나라는 작가의 상상력만 거세한다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윤진석 기자)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고전소설 춘향전은 청소년 권장도서이다. 이몽룡과 춘향이는 요즘으로 치면 미성년자 때 성 경험을 했다. 이들이 정을 통하는 대목은 꽤 농염하다.  "네 양 다리 사이의 수룡궁에 나의 심술방망이로 길을 내자꾸나”, "귀와 뺨도 쪽쪽 빨고..입술도 쪽쪽 빨고..젖을 쥐고 발발 떨며…."

춘향전이 오늘날에 나왔다면 청소년의 건전한 인격형성을 저해할 수도 있다는 이유로 청소년 보호법에 의해 저촉됐을 거라는 게 일각의 견해다. 오늘날 출판정세를 움켜 쥔 검열바람은 주로 성의 검열, 음란물에 대한 검열이었던 이유에서다.

꽤 오래 전에 출간된 것이긴 하지만 방영웅의 분례기, 염재만의 반노, 마광수의 즐거운 사라, 장정일의 내게 거짓말을 해봐 등이 모두 음란죄로 치부돼 곤욕을 치뤘다.

이중 마광수 교수는 <즐거운 사라>로 인해 여러 풍파를 겪었다. 음란서적으로 몰려 1992년 연세대학교에서 강의를 하던 중 현행범으로 긴급 체포됐으며 전과 2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는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필화사건이다.

특히 <즐거운 사라>는 지금도 불온서적으로 낙인 찍혀 판매 금지 상태다. 마 교수는 전과자라는 이유로 연세대 교수직에서 물러나도 연금을 받을 수도 없다.

책 <즐거운 사라>의 주인공 사라는 자발적으로 술집에 나가는 한편 대학생 신분이면서도 교수와 사랑을 나누고 동성과의 육체적 교감 등을 마다하지 않는 능동적 성 주체자다. 한참 전에 나온 책의 여주인공이지만, 요즘 젊은이들과 어딘지 닮은 구석이 있다. 여성 스스로 성적 자유와 성적 해방을 표방한다는 점에서 보면 페미니즘 소설에 가깝다.

그런 사라를 창조한 마 교수는 보수주의 성향의 학계와 문단의 왕따를 당하게 된다. 한 문학교수는 "사라가 끝까지 반성을 안 한다"고 괘씸해했고, 혹자는 "마광수 때문에 에이즈가 발생한다"며 근거 없는 비난을 멈추지 않았다. 사라가 교수와 관계를 가진 것도 경멸을 받는 주요 원인이 됐다. 마 교수가 사라를 통해 교수의 권위를 실추시켰다는 이유에서다.

책에서 문제가 된 부분은 전체 내용 중 성행위를 묘사한 2%정도에 불과하다. 마 교수를 구속한 검사와 형량을 내린 판사는 그의 책을 두고 "하수도 문학"이라며 폄하했다. 사회적 통념에 어긋나고 청소년 독자들에게 모방심을 부추길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그들에게 마 교수는 가운데 손가락을 날린다. "상수도만 중요한가? 하수도가 얼마나 중요한데."
무엇보다 그는 문인으로서 표현의 자유가 억압 당했다는 점에서 분개하고 있다. 마 교수는 얼마 전 <시사오늘>과의 인터뷰에서 “재판받을 당시 판사로부터 책에 묘사된 성행위를 직접 해봤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렇다면, 완전범죄를 소설화한 작가는 직접 살인을 하고 쓴 것이냐"고 일갈했다.

그는 이어 "우리나라는 유독 성문제에 있어서만은 비합리적인 비난을 서슴지 않고 퍼붓는다”며 "문학적 상상력의 활기 있는 실천을 위축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지적했다. 또 "영화에서는 사람을 잔인하게 죽이는 장면이 버젓이 등장하지 않느냐. 모방 범죄를 우려한다면 소설보다 영화가 더 위험한 것 아니냐"며 "서로 합의된 섹스가 나쁘냐, 한쪽의 일방적인 폭력이 나쁘냐"고 반문했다.

음란물을 규정하는 잣대는 여전히 모호하다. 오죽하면 미국연방대법원의 포토 스튜어트 대법관은 음란 여부를 판단하는 게 어려워 "음란한지 아닌지는 보면 안다(I know it when I see it)"라고 말했을 정도다.

강금실 전 법무부장관도 예전 모 매체와의 인터뷰에서“외설적인 성표현물일지라도 예술에 해당한다면 사회적 가치를 지니는 것으로서 반사회적 범죄의 소산이라고 할 수 없고 이는 형법에서 말하는 음란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상식의 힘>의 저자인 차병직 변호사는 그의 책을 통해  "성적 흥분을 일으키면 대체로 수치심을 유발할 수밖에 없다는 법률가들의 감정판단에 음란물을 맡겨서 과연 상식적인 결말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라고 탄식하기도 했다.

사실상 성을 억압할 수록 성범죄가 증가한다는 게 다수의 주장이다. 실제로 개방적인 성문화로 유명한 일본 보다 우리나라 성범죄 수치가 7배나 많은 때도 있었다.

최근 정·재계 인사들의 성로비 동영상 논란이 큰 파장을 낳고 있다. 이게 곧 우리나라다. 명예와 돈이 많을 수록 낮에는 도덕을 얘기하고, 밤에는 음성적 성문화를 즐긴다.

인터넷을 통해서는 초등학생들까지 본다는 각종 포르노가 불법적으로 난무하고, 집창촌은 봉쇄했지만 이 때문에 2·3차 퇴폐 업소가 즐비하는 나라, 겉으로는 엄숙한 척하면서 알고 보면 고급 룸살롱을 드나드는 지식인들의 나라. 어찌 보면 과거의 춘향이가 비웃지 않을까 싶다.

결국 이중적 성문화가 만연한 우리 사회에서는 제2의 마광수가 나오기는 어려울 듯하다. 뒤로 호박씨 까는 이들이 자신들의 겸연쩍음을 숨기고자 애꿎은 작가의 상상력만 거세하기 때문이다. 

담당업무 : 정치부 기자입니다.
좌우명 : 꿈은 자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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